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1)
나 빼고 다 회귀자-351화(351/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51)
Chapter 65. 기준 – 8
크로캉부슈(Croque en bouche)라는 케이크가 있다.
한국에서도 흔히 디저트로 즐기는 슈크림을 여럿 쌓아 올리고, 그 위로 끓인 설탕물을 실처럼 길게 뽑아내 장식한……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슈크림의 끝판왕.
생김새가 트리와 같아 일본 등지에서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로도 즐겨 찾지만, 원래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웨딩 케이크이다.
그래, 웨딩 케이크.
함께 고생해 온 이들의 마음을 배신할 수 없어, 까딱하면 세상이 멸망하는데 조금이라도 모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기준.
스스로 초인이 되기를 천명했는데 그깟 과거의 관습에 매달릴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어떤 의미로든 그가 파티원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 형태가 조금 달라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다만 신부가 너무 많은 데다 레타 멸망이 목전이라 성대한 결혼식을 치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둘러서라도 황제를 겁박해 결혼식이라는 인생 최대의 행사를 완벽하게 개최한 비체의 영리함이 더욱 돋보였다.
비체의 권위는 확실하게 확보했지만, 반대급부로 자칫 다른 멤버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위축될 수도 있는 상황.
기준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꺼내 든 것은 물론 조리 도구였다.
이로써 비로소 처음 언급했던 크로캉부슈로 돌아오는 것이다.
“와아, 이렇게 예쁜 케이크는 처음 봐요…….”
“누나, 그런 눈으로 날 봐도 나는 요리 같은 거 못하는데.”
“신 군, 다음에 제가 맛있는 과자를 만들어 드릴게요.”
“이 비겁한 년이 이렇게 점수를 벌어?!”
“그리고 당신의 점수는 대폭락하겠죠.”
때는 바로 어제, 뒤틀린 황천의 마탑이 위치한 프런티어 수도에 도달하기 얼마 전 어렵게 얻은 휴식 시간에.
기준은 파티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시간 날 때마다 정성껏 만들어 놓은 슈크림의 산, 크로캉부슈를 대접했다.
물론 다른 파티 음식들도 마련했지만, 파티원들의 눈은 아름답고 거대한 케이크에 꽂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웨딩 케이크야.”
“우리 웨딩 케이크?”
“그래, 우리.”
기준은 비체뿐만 아니라 예민과 틸라, 로라와 율영까지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탱커 노릇을 하겠다고 어깨를 키워 놓은 것이 오늘만큼 도움이 되는 날은 없었다.
“너희가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런 거라도 챙겨 주고 싶었어. 실은 한 명 한 명 자리를 마련하고 싶지만 지금도 없는 시간을 간신히 쥐어 짜내 만든 거라서…….”
“읏, 오빠…… 저는 불만 같은 거 없, 지금도 감지덕지인데요.”
절대 그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예민이 대꾸했다.
반면 최근 루멘 파티에서 가장 활약한, 그래서 비체 다음으로 콧대가 높아져 있던 율영은 괜히 우쭐거리며 말했다.
“시간은 이번 전쟁 끝내고 만들어 줘. 지금은 예쁜 케이크로 참을게.”
“우리뿐만 아니라 다 같이 나눠 먹으려고 만든 거구나, 그렇지? 슈가 수백 조각도 넘겠어.”
“맞아.”
틸라의 예리한 지적에 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할라 저택에 마련된 파티장에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케이크에 꽂혔던 것은, 그야 물론 크로캉부슈가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비주얼을 자랑해서이기도 하지만 일단 크기가 거대해서였다.
루멘 파티는 물론이고 200명의 무녀들까지 모조리 배불리 먹일 수 있을 만한 숫자를 쌓아 놨으니 얼마나 거대하겠는가.
시스템도 기준의 결의를 알아챘는지 그동안 80레벨의 벽에 막혀 있던 영혼의 요리가 단박에 90레벨까지 성장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어째서일까.
……인생에 한 번밖에 먹지 못할 웨딩 케이크여서?
그런 주제에 기준은 여러 번 만들어야 하는 웨딩 케이크를, 한꺼번에 퉁치려고 한 업보를 정산받아서?
“후후, 준다운 생각이야. 이래서야 신부를 위한 케이크가 아니라 동료들을 위한 케이크지만, 난 마음에 들어.”
“윽.”
어째서 신부들뿐만 아니라 파티 멤버들까지, 그 뒤로 우르르 밀려들어 오는 무녀들까지 파티장에 있는지를 은근슬쩍 지적하는 틸라에게 감히 뭐라 변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무는 기준.
그야 최종 결전을 앞두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요리로 모두가 스펙을 높였으면 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진리가 모두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실은 기준이 자신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율영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시간은 전쟁이 끝나고 나누어 받으면 되겠지요. 저는 준 님께서 ‘그래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에’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물론 아니지. 다 같이 소중하지만, 모두 다른 이유로 소중한 거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기쁩니다.”
흡혈귀로 종족이 변화된 이후로 한창 질풍가도의 시기를 달리던 끝에 비로소 성장을 마친 로라는 때로 기준을 가시로 쿡쿡 찌를 때가 있는 틸라보다도 성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비체의 고자질에 따르면 여자들만 있을 땐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남자는 원래 여자가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면 그만인 법이다.
한편 파티의 유일한 사수, 긴은 한때 로라에게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성숙한 탓인지― 혹은 로라보다도 기준에게 깊은 경애를 품고 있기 때문인지 기준과 로라가 스킨십을 하는 모습을 보여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기준과 가까운 곳에서 그의 활약을 보며 격의 차이를 느낀 탓인지도 모르고.
“그런데 루시는?”
본래 비체와 기준의 곁을 놓고 경쟁하던 루시가 보이지 않자 틸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기준이 뭐라 답하기 전에 비체가 스스로도 그게 아님을 아는 표정으로 독설을 토했다.
“드디어 준이 그 정령의 속내가 시커멓다는 사실을 깨닫고 쫓아낸 거겠지.”
“물론 아냐. 루시는 지금 나 이상으로 중요한 때니까. 비체 이상으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속을 터놓을 만큼 터놓기도 했고, 새로 생겨난 얘기들은…… 그거야말로 전쟁이 끝나고 하면 그만이야.”
그리고 루시는 대놓고 질투심이 강해서, 기준이 다른 여자들과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 사이에 끼어 같은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나중에 기준을 독점하겠다는 것이 루시의 생각이었다.
과연 사랑 때문에 온갖 사건 사고를 저지른 이슈타르의 원본임을 납득케 했다.
“형, 이제 슬슬 먹으면 안 돼요? 괜찮은 분위기인 건 알겠는데 우리 이제 여유시간 1시간밖에 없어요.”
그 와중에 누군가는 맡아야 할 악역을 맡아 준 은신의 발언에 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먹자. 다들 슈크림 하나는 꼭 먹어.”
“또 무슨 효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사실 나도 안 먹어 봐서 모르지만, 온 힘을 다해서 만들었으니까 반드시 좋은 효과가 날 거야.”
“흠, 그럼 나부터.”
비체가 가장 먼저 꼭대기의 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굳은 설탕의 실타래와 함께 장식되어 있던 슈가 그녀의 손짓에 절로 떨어져 나오더니 손바닥에 폭신하게 안착했다.
그녀가 그것을 그대로 베어 문 순간…… 마치 입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마히어!”
“그건 예상했어.”
“효과를 알려 줘야지.”
“더는 못 기다리겠으니까 나도 먹을래!”
정실에게 양보할 만큼 양보한 여성진이 참지 못하고 각각 슈크림을 하나 떼어 내 먹기 시작했다.
기준은 슬금슬금 다가오는 파티의 나머지 멤버들과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던 무녀들에게도 미소 지어 주며 손짓했다.
“다들 하나씩 먹으라니까.”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슈크림을 하나씩 받아 들었다.
맨 마지막으로 남은 슈크림을 집어 든 기준이 그것을 베어 물려고 할 때, 간신히 입을 연 비체가 눈을 별처럼 반짝반짝 빛내며 외쳤다.
“너무 맛있어! 슈 안에 여러 겹의 층이 있고 그 안에 각각 다른 종류의 크림이 가득해! 이거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음식 전문 평론가인 줄 알았네. 용케 알아챘구나.”
이름하여 레인보우 슈.
요리에도 절정의 경지가 있다면 틀림없이 거기에 이른 기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신메뉴다.
쨈과 생크림, 커스터드, 꿀을 비롯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크림을 짜 넣은 이 슈크림은 이 하나만으로도 개성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를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하며, 그런 슈크림이 또다시 가득 쌓여 하나의 케이크로 완성된 것이 한층 의미를 부가시킨다.
결정적으로 그 케이크가 상징하는 것이 신성한 결합이니, 기준으로선 자신의 요리 역사를 걸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을 만들어 냈다고 자부할 수밖에.
“맛, 맛있어……!”
“진짜 맛있어, 이거 대체 뭘로 만든.”
“글리터토스한테 부탁해서 조금 특별한 조리 기구를 만들기는 했지. 하지만 재료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황제한테 부탁해서 대륙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재료들을 선정하기는 했지만.”
“스카이나를 너무 편하게 써먹다가 나중에 보복당할지도 몰라.”
“별로 안 무서운데.”
“침대에서.”
“그건 무섭네. 되도록이면 침실로 오라는 요구는 거절해야겠다…….”
하지만 이 케이크의 정말로 대단한 점은 맛이 아니라 그 효과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슈크림에 모든 이가 던지는 복잡미묘한 시선을 느끼며, 기준이 그것을 입안에 던져 넣은 순간.
* * *
―케이크를 나누어 먹은 이의 고유스킬을 한 번씩 다룰 수 있습니다.
―예민의 고유스킬 [라스트 스탠드(L)]를 발현합니다.
극에 이른 기준의 매력 스테이터스가 일순 그 빛을 더했다.
예민의 고유스킬은 자신의 매력을 더 높이거나, 반대로 매력을 다른 스테이터스로 전환하여 막강한 힘을 발할 수 있는 말도 안 되게 사기적인 스킬.
그러나 지금 기준의 스테이터스는 대부분 에픽 등급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매력을 나누어 준다 해도 그 이상 효과를 보기는 힘들었다.
고유스킬의 힘으로 신의 영역에 이르려거든 최소한 그 고유스킬이 에픽 등급 정도는 되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력 하나에 치중된 예민의 고유스킬은― 다양한 스탯을 강화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오직 매력만은 한계를 돌파해 초월시켜 주는 것이 가능했다.
어째서 기준을 제외하고 그녀가 지구의 희망으로 손꼽혔는지 알게끔 해 주는 사기적인 능력!
―매력(E)이 일시적으로 갓 등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스테이터스 중에서 영력도 광마력도 아닌 매력이,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처음으로 신의 영역에 이른 순간 일어난 변화는 터무니없이 많았다.
―일찍이 이 땅에 없었던 신화적인 업적을 세웠습니다. 비록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당신은 찬란하게 빛납니다. 칭호 [세상의 주인공(E)]이 한계를 초월하여 [세상의 주인공(G)]으로 성장합니다! 매력이 당신보다 낮은 존재가 모두 당신 앞에서 위축되며, 매력 스테이터스에 비례해 상대의 정신에 디버프를 줄 수 있습니다.
―매력(E)이 한계를 초월하여 진화합니다. 매력(G)이 1이 되었습니다!
일시적인 성장으로 얻어 낸 업적과 그로 인해 성장한 칭호, 그 효과로 정말 한계를 초월해 버린 매력!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콤보에 정작 일을 벌인 기준조차 아연해져 말을 잃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기준의 스테이터스, 칭호의 힘으로 이성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던 외신의 권속들마저 모조리 그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게 그를 시야에 담은 것들은…… 놀랍게도, 침식 정도에 따라 움직임이 극적으로 느려졌다!
“……정신! 놈들을 움직이는 건 신체 반응이 아니라 정신이야! 준의 매력이 지나치게 높은 나머지 저들의 정신에 이상이 생겨 움직임이 멈춘 거야!”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먹기 힘들지만―― 오빠! 지금부터 한곳에 모을 테니까 모조리 죽여 버려요!”
“오케이!”
기준이 한 손을 들어 방패를 빛으로 변화시켰다.
마치 천신 제우스가 내던지는 번개처럼―― 빛이 대지에 작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