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5)
나 빼고 다 회귀자-355화(355/356)
나 빼고 다 회귀자 (355)
Epilogue. 빛을 가져오는 자 – 2
―계약자, 명색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여명이 되었다면서 운석 하나도 못 막아 내?
“아니, 하루 종일도 막을 수 있는데?”
―막기만 하면 안 되지, 으깨 버려야지.
“알면 좀 도와줘.”
―말도 간신히 건네고 있는데 무리한 요구를 하네. 하지만 안심해.
“응?”
―계약자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니까.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검은 별을 방패 하나로 틀어막고 버티던 그때, 뒤에서 그에 못지않게 밝게 빛나는 빛이 날아들었다.
“비체?”
“자기, 죽으려면 내 허락 맡고 죽어. 어딜 맘대로 죽으려고 해.”
검은 별에 저항하는 빛이 한층 짙어졌다.
기준과 어깨를 맞대고 선 비체가 그에게 자신의 빛을 보태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진짜 할 만하네. 드디어 이 빌어먹을 자식한테 한 방 먹여 준다고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해.”
“이것만 없앤다면 이제 문명 전쟁이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은 그만둬도 되는 거겠지? 우리 동족들이 들으면 기뻐하겠어.”
한 줄기 불꽃이 되어 날아온 틸라가 기준의 반대편 어깨를 지탱하며 섰다.
기준은 이러다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그에게 한 마디씩 던지며 항성을 몸으로 들이받겠다고 오버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어 슬쩍 뒤를 돌아보았으나 다행히 그런 만용을 부리는 것은 에픽 등급의 존재들뿐이었다.
―그분께서 만드신 세상이다. 비록 내 한 몸 스러진다 해도 외계의 더러운 이물을 들일 수는 없으리니.
―여태까지 힘들게 살아왔어…… 그 끝이 이거라면 난 납득할 수 없어!
―미카 얘는 정말 맨날 그분만 찾는 말버릇만 어떻게 고치면 좋을 텐데.
―주인님, 조금만 힘을 보탤게요. 마지막 발악만 버텨 내면 분명히 이길 수 있어요.
모두가 존재의 소멸마저 감수하고 별의 추락을 몸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자신에게 걸리던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들을 살피던 기준이었으나 비체의 단호한 목소리가 그를 질타했다.
“혹시나 홀로 부담을 지겠다는 생각은 버려. 모두 자신의 뜻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자신이 응당 받아 내야 할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거야. 준, 너처럼 말이야.”
“……이래서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봐.”
“알면 잘해.”
“후후, 나도 잊으면 안 돼.”
그들이 몸으로 외신을 막아 내는 사이, 지상에서도 별을 향해 한층 거센 공격을 퍼부어 댔다.
어느덧 황제가 직접 이끄는 연합군은 물론이고 미지의 세력까지 더해졌음을 기준은 눈치챘다.
그래, 아마도…… 어둠의 진영이다.
그것을 이끄는 이는 놀랍게도 서사 영역에 이른 존재― 아마도 신이리라.
어둠의 진영을 관장하는 신 가운데 제정신이 박힌 이가 헬 외에도 또 있었다는 게 놀랍지만, 지금은 그저 도움이 기꺼울 따름이었다.
―――――――!
자신의 몸을 마구 두드려 대는 외부의 공격에 외신이 포효했으나―― 놈의 아우라는 더 이상 세상을 침식하지 못하고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치는 기준에 의해 소멸했다.
본래 최소한 서사 영역에 이른 존재가 아니고서야 외신의 몸에 흠집조차 내기 어려울 텐데도, 기준의 고유스킬이 놈의 신성을 완전히 부정하며 놈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 덕에 연합군에 속한 레어 등급의 병사가 쏘아 올린 화살마저도 일단 놈의 몸에 닿을 수는 있게 되었고.
이 순간 전장에 결집한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발하는 마법과 주술, 저주, 화살, 오러 모두가 놈의 거체를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깎아 냈다.
“후우우…….”
놈의 추락을 방패로 받아 내는 순간만 해도 죽음을 각오했는데, 모든 이의 도움으로 놀랍게도 기준에게 여력이 생겼다.
몇 번의 호흡으로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는 재차 빛으로 화해 검은 별을 감싸 안았다.
“자기?!”
―죽은 게 아냐, 안심해. 주인님은 아마 이대로…….
―정면충돌을 하다니! 무모해!
―이 어찌 오만한. 그러나…… 너의 희생이 이 세상을 살릴 것이다!
―주인님을 죽은 자 취급하지 마세요!
검은 별은 더 이상 기준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필사적으로 빛을 지워 내려 꿈틀거릴 뿐.
빛으로 화한 기준은 밝기를 더하며 놈을 밀어붙였다.
단순히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놈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뭣?!
―잘한다, 계약자!
“흡…… 흐아아아아아아아압!”
빛에 감싸인 별은 더 이상 검지 않았다.
이윽고 추락조차 멈춘 그것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나갔다.
―믿을 수가, 없어…….
―주인님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신의 영역에 이르렀어. 하지만 그걸로도, 이건.
―외신이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겠지.
일찍이 세상을 돌보았던 천사들이 기적적으로 모두 제힘을 되찾고 힘을 합쳐 대항한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겠지.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부족한 화력을 보충한 것은 지상에 있는 저들이다.
신들이 믿지 못해 매번 시간을 되돌리게 만들었던 대상인 저들 필멸자.
저들이 무엇을 알기나 하겠는가?
얼마나 숭고한 뜻으로 외신에게 대항하겠는가?
기준이 아니었더라면 모두 한순간에 침식되어 다음 순간에는 충실한 외신의 권속이 되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저들은 지금 한마음으로 외신을 공격하고 있다.
살기 위해.
회귀와 함께 풍화되었을 기억 너머의 그들이 매 순간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의, 기준…….
결국 이 모두가 기준이 이끌어 낸 광경임을 깨닫고 미카가 신음했다.
그 많은 신적인 존재들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외신을 상대로, 감히 진흙 인형 따위가 상처를 입히고 있다.
심지어 그것은 놈에게 유효한 데미지를 입혀 약화시켰고, 그 결과 기준이 놈을 밀어내게 만들기까지 했다!
―신들이 경계하지 않았다면 저와 같은 존재가 훨씬 금방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니, 때가 지금이 되어 나타났을 뿐이야. 지난 회귀마저 앞으로의 세계를 위한 사전 준비에 불과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자.
―결국은 모두 그분의 뜻이었다는 건가…….
―진짜 얘랑은 무슨 얘기를 못 하겠다니까.
라피가 혀를 내두르며 외신을 공격했다.
미카와 가브가, 우르가, 비체와 틸라가 그 뒤를 이었다.
로라와 긴과 은신이, 지혜와 렌카가.
예민과 그녀가 이끄는 연합군이, 신이 이끄는 어둠의 진영과 뒤섞여 그들과 함께 제각기 마력을 뿜어냈다.
“아, 차원의 틈이…….”
“사라지고 있어!”
차원의 결계가 부서지는 순간을 목도하며 한층 경지가 오른 율영의 공간마도는 기준의 고유스킬과 뒤섞여 미증유의 위력을 뽐냈다.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부서진 결계의 수복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이는 외신을 레타 밖으로 쫓아낼 기회가 사라졌다는 얘기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놈을 이 세상에 가두었다는 얘기도 되었다.
덤으로 여전히 차원의 틈에 넘실거리는 외신의 기운을 격리하는 결정타가 되기도 했다.
“스! 날―― 날 대현자라고 불러!”
“하, 기어이 터무니없는 짓을 해내는군. 마도왕의 자리라도 넘겨줄까?”
“아…… 당분간 육아로 바빠질 것 같으니까 그건 됐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격에 별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기준의 빛은 완전히 별을 잠식해, 이제 그것은 검은 별이 아니라 작은 태양이라 불러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 별이 점점 더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하게도 밤이 지나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밝다…….”
“빛이 돌아왔어.”
“용사가.”
“대륙에 빛을 되찾아 왔구나.”
별은 점점 더 빠르게 상승해 이윽고 까마득히 높은 곳, 한 점으로 보이는 높이까지 이르렀다.
―네가 세상의 신이 되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놈이 기준을 비웃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반복되겠지. 조장된 갈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어둠에 숨어 틈을 넓힐 것이다.
―싸움은 계속될 거야. 시스템의 힘이 다해 그들을 관리하지 못하는 만큼 더욱 극단으로 치닫겠지.
―네가 관리하는 세상이 이전까지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이 있어?
―마지막 기회를 주지.
―돌아갈 마지막 기회야.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신이 아냐.”
차라투스트라도 말했잖아, 신은 죽었다고.
당연하지만, 그건 정말로 신이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은 더 이상 다른 무언가의 이름을 빌려 변명해서는 안 돼.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동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의 책임을 갖고 행해야 해.”
그러니 기준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기준으로 존재할 것이다.
―인간 이상의 힘을 지녔으되 인간으로 남겠다면, 너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풍화될 것이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두려운 일이야. 하지만 살아 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외신은, 혹은 그의 미혹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기준은 픽 웃곤 전력을 집중해 별의 남은 부분을 으깨어 버렸다.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폭발하며 마치 불꽃놀이의 종막처럼 화려하고 성대한 궤적을 그렸다.
―주인님!
우르가 다급히 치솟아 추락하는 기준을 받아 냈다.
전신이 희미하게 깜박이는 그의 모습에 눈물짓는 그녀였으나 그 눈물에는 안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이야, 회복할 수 있어……!
―그런가.
바로 근처에서 들려온 미카의 목소리에 흠칫한 우르가 기준을 품에 끌어안고 그녀를 경계했으나 미카는 이미 흥미를 잃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의지를 들었다.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 그에게 불경죄를 물을 까닭이 없다.
―정말 끝까지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게 누군지.
―죽었다 다시 태어나더니 말버릇이 고약해졌어.
우르와 함께 기준을 지키려 날아든 라피에게 코웃음을 쳐 준 미카는 정말로 기준에게 흥미를 잃은 듯이 지상을 둘러보았다.
과연 외신이 소멸하자마자 필멸자들은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것처럼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의 여파를 계산하느라 바빠질 것이고, 그중에는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도 있겠지.
“저 자가―― 대륙을 끔찍하게 망쳐 놓은 장본인이다!”
그래,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내, 뻔뻔하게도 목소리를 높이는 저 남자처럼.
놀랍게도 그는 기준과 동향인으로 보였으며, 등 뒤로 서사 영역에 이른 자― 신의 지원을 업고 있었다.
“신께서 알려 주셨다! 용사를 자칭하는 저 남자야말로 저 끔찍한 검은 별이 레타를 침공하게 만든 원흉이라고! 뿐만 아니라 놈은 이 세상을 복원하고 죽은 자들을 살려 내려 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마법 술식을 망가트리기까지 했어! 제국 황제, 내 말이 틀린가!”
“건방지구나, 그 술식은――.”
“술식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구나!”
등에 업은 신의 힘으로 강화되었을 남자의 목소리는 이 넓은 전장을 가득 채운, 수백만에 이르는 존재 모두에게 닿고 있었다.
개중에는 황제가 술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모습에 한층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저 무서운 외신마저 물리친 기준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 악의 근원을 처단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레타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기회가 있다! 다행히 지금은 놈이 지쳐 쓰러져 있는 상태, 모두 힘을 합하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어!”
루멘 파티의 면면은 비로소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는 최강이었다.
필시 테라 길드를 떠난 이후로 많은 변고를 겪은 것이리라, 잔뜩 지치고 나이 들어 보이는 그 남자는, 그럼에도 오직 자신만이 옳다는 신념으로 무장하고 기준에게 올곧은 적의를 표출하고 있었다.
감히 그 말이 거짓임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박력이었으니 그에 선동되는 무리가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정말 우습네.”
예민이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레타 대륙에 떨어진 날, 거짓으로 사람을 선동하려던 이를 비웃으며 나섰던 이가 그였음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는 기준을 성가시게 여기는 신들이 대충 고른 인형에 불과하겠으나, 그렇다면 더더욱 우스운 일이었다.
“고뇌하고 망설이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행하는 사람의 세상…… 그걸 위해 오빠는 투쟁한 건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예민의 옆에서 지혜가 이를 갈며 말했다.
“민아, 네 전문 분야잖아. 나서서 말로 짓밟아 줘.”
“아냐.”
최강의 선동은 계속되고 있었고 심지어 그에 찬동하는 무리가 일부 나타났으나 예민은 굳이 그에 맞서 입을 열지 않았다.
최강을 우습게 봐서는 아니었다.
물론 그는 우스웠지만, 그 뒤에 숨은 신들의 적의는 우습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녀는 기준이 싹 틔운 가능성을 믿었다.
―콰앙!
최강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외신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 내며 힘을 소모한 천사들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최강의 뒤에 버티고 서 있던 신의 압박을 이겨 낼 힘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해라.”
놈의 목을 벤 것은 한 명의 용인이었다.
전신이 너덜너덜했으나 오직 손에 쥐고 있는 대검만은 황금빛으로 찬란했다.
“이제 누구에게든 휘둘리는 것은 지긋지긋해서, 그 꼴을 더는 봐 줄 수가 없거든.”
용인, 파툼이 대검을 신에게 겨누었다.
그 뒤로는 진홍의 비늘이 돋아난 용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일찍이 침식이 시작된 프런티어의 대지에서, 그는 자신이 지닌 빛의 힘으로 일부의 용인들이 침식되지 않도록 지켜 냈던 것이다.
―……그대들을 돌보던 신들을 버리고, 자기중심적이고 근시안적인 저 남자를 따르겠다는 것입니까?
뜻밖에도 최강을 조종하던 신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았다.
“준이 네놈들과 똑같을 거라 착각하지 마라. 그는 가장 낮았을 때부터 가장 높아진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다.”
―후회하게 될 겁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지, 너희가 정할 것이 아니다.”
용인의 묵직한 목소리를 신호로 삼아 싸울 힘이 남은 자들이 모두 무기를 들었다.
어둠의 진영만은 기준에게 적의를 품은 자도 있었으나, 정작 그들을 이끄는 신이 혀를 차며 다른 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니 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를 죽이겠다고?
“밑바닥이 이미 드러났어. 얼렁뚱땅 절대자 행세를 하며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무것도 모르고 용사로 선정되어 많은 고통을 겪었으나, 그 모두를 이겨 내고 가장 위대한 용인이 된 남자가 삐죽삐죽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험악하게 웃었다.
“이로써 종막이다……!”
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지는 상처 입었고 인류는 2할 가까이 줄었으며 분쟁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외신은 사라졌고 시스템은 힘을 잃었으며 신들 또한 모습을 감추었으니.
문명 전쟁이 비로소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