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6)
나 빼고 다 회귀자-356화 (마지막 회)(356/356)
나 빼고 다 회귀자 (마지막 회)
Epilogue. 빛을 가져오는 자 – 3
외신을 쓰러트린 이후 기준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사람들의 추앙이었다.
대륙 전체가 많은 상처를 입었고,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소모되었다.
복구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고, 하물며 모든 분쟁의 여지가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의지할 대상을 찾게 마련이었으며― 승급과 함께 레타 전역을 돌본 기준의 활약상은 사실 신으로 떠받들어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최후의 순간 최강이 입으로 분투해 준 덕에 기준의 활약에는 미미한 금이 갔다.
그를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나, 외신과의 전투에서 보여 준 절대적인 신위를 다소나마 흐릿하게 만들었고.
에픽 등급으로 성장해 나타난 한 용인이 어그로를 모조리 끌어 준 덕에― 상황은 강제로 수습되며, 기준은 조용히 퇴장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개중에는 기준이 힘이 다해 죽었다고 믿는 이가 있을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그로부터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기준은 여전히 결계로 감추어진 거점에 머무르고 있었다.
―도와줘.
―아, 가시라니까.
―도와줘! 우리도 도와줬었잖아!
―그게 어디 도와준 건가, 다 같이 살아 보려고 발악한 거지. 아무튼 일없으니 돌아가셔!
루시가 힘을 잃고 몰락한 지금 거점의 문지기를 맡고 있는 것은 라피다.
푸른 바람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마구 펄럭이며 오늘도 그녀는 불청객을 열심히 몰아내고 있었다.
―아아, 도와줘도와줘도와줘도와줘! 이러다 정말 미카가 죽어!
“진짜 시끄럽게 구네, 태교에 안 좋게.”
그러나 상대방은 더욱 절실했던 모양이다.
라피가 끝내 쫓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자라는 뜻이기도 했고.
뭐, 불청객의 정체가 가브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기준! 뭐 하고 있다가 이제 나와!
섬을 둘러싸고 있는 호숫가에서 라피와 실랑이를 벌이던 가브가 홀연히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기준을 보곤 잔뜩 성을 내며 외쳤다.
기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마누라한테 자장가 불러 주고 있었는데.”
―자, 자장가……? 네 아내 중에 자장가 정도로 잠들 수 있는 낮은 격의 존재가 있나?
“자장가 정도로 무슨 격을 따지고 그러냐. 그냥 불러 주고 싶어서 불러 주는 거지.”
자장가가 진짜로 수면 마법인 것도 아니고.
아니, 매력과 관련된 고유스킬을 지닌 민이라면 혹시 목소리로 특정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미카, 미카를 도와줘!
“왜, 아직까지 포기를 못 한 끈질긴 신들이랑 싸움이라도 붙었어?”
―그걸 알면서 여태까지 태평하게 저급한 유희나 즐기고 있었단 말이야?!
아내들은 엄청 좋아하던데, 저급한 유희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그렇게 위험하면 너라도 빨리 가서 도와주지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이익! 내가 동급에 비해 전투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건 그때 같이 싸웠던 너도 잘 알잖아! 잘 들어, 놈들 가운데 용사 노릇을 하려는 놈들이 있어. 미카를 무슨 외신에 버금가는 악으로 규정하고 그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신앙을 얻으려는 작자들이 있다고!
“뭐야 그게, 시스템의 도움이 없으니 이젠 직접 활약하면서 인간들을 지배하겠다는 건가?”
―그래! 한때는 문명 전쟁이 재미없다는 이유만으로 회귀를 했던 전적도 있는 막돼먹은 놈들이라구! 너는 인간들이 신적인 존재에게 휘둘려선 안 된다고 생각하잖아. 저 괘씸한 짓을 가만두고 볼 생각이야?
기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사실 인간들이 신앙의 대상을 찾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거든. 하물며 지금은 서사 영역에 이른 이들이 자유롭게 지상에 풀려나기까지 했으니 오죽하겠어.”
신앙에는 죄가 없다.
신앙을 핑계로 삼는 이들에게만 죄가 있다.
신앙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더더욱 그렇고.
“다만 그들이 가장 먼저 미카를 사냥하겠다고 나서는 건…… 그래, 신앙을 확립하는 데 미카가 제일 방해가 되기 때문이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올곧은 형태로 신앙하고 있는 존재를 한 명 꼽으라면 그건 바로 미카니까! 초월자이기도 하며, 신들을 적대하고 있기도 하고.
“음…… 혹시 미카가 먼저 나서서 신들을 사냥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
―…….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불쑥 질문하자 가브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기준은 한숨을 내쉬곤 등을 돌렸다.
“나 들어가서 잘게. 소중한 시간만 손해 봤네.”
―기다려, 제발! 지금 미카가 죽는 것을 방치한다면 나중에 대륙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 거야! 너는 네 힘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시대를 마무리하려면 그 힘이 필요해! 앞으로의 시대에 신들이 필요 없다는 건 너도 동의하잖아――!
“외신도 죽었겠다, 다들 평화롭게 살면 좋을 텐데. 왜 적을 만들고 필요도 없는 투쟁을 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네. 하필이면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아니, 그래선가.”
프런티어가 멸망했고 다른 나라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대륙이 혼란스럽지만, 만약 새로운 세력을 일으키고자 작심한다면 지금만 한 적기가 없었다.
어둠의 진영도 대륙 멸망이라는 공동의 위기 앞에 신의 지시를 받아 일시적으로 협력했을 뿐, 태생적으로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고.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지지고 볶건 그들의 자유고, 분쟁은 안 된다며 기준이 간섭했다간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신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가브의 말마따나 구 시스템의 잔재인 신들이 다시 한 번 대륙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건 위험한 일이 맞았다.
“그래, 가자, 가.”
―고마워!
얼마나 다급했는지 곧장 기준의 소매를 붙들고는 호수로 뛰어들려는 가브.
그 전에 그녀를 말린 기준이 품에서 슈크림 하나를 꺼내 입에 던져 넣었다.
슈크림을 통해 이어진 무수한 인연 가운데 율영의 것을 찾아내어 발현했다.
기준은 이제 더는 그 과정에서 시스템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착.”
―……아니.
순식간에 주위 풍경이 뒤바뀌자 가브가 기함하며 기준을 돌아보았다.
공간 이동에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는 자신을 뛰어넘는, 의지가 동한 순간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신의 위업이 아니고 무어라 부르지?
그러나 그녀는 기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기준은 지금 은신의 고유스킬의 도움으로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브……?
기준이 모습을 감춤에 따라 혼자만 덩그러니 전장에 출현한 셈이 된 가브는 모두의 눈에 띄었고, 몇 명인가의 신들과 치열한 혈전을 벌이던 미카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미카! 괜찮아?!
“저기 그자와 닮은 자가 나타났다!”
“황폐해진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은 위업…… 절대 놓칠 수 없어.”
신들을 따르는 머저리가 누가 있을까 싶었는데 과연, 그들은 바로 소환자 문명이었다.
단독으로 강한 힘을 갖추고 있지만, 프런티어에 속하지 않은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날, 그때에 모든 강자가 외신이 나타난 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 인류는 자연스럽게 그날 전장에 있었던 이들과 연대를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그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납득이 갔다.
시스템의 인도를 잃어버린 소환자들이 생각할 만한 일이 초월자 사냥인 것도, 기가 막히지만 뭐어 타당한 수순이겠지.
―왜 왔나, 가브.
―혼자 온 게 아냐! 아, 아니…… 너를 어떻게 혼자 놔둘 수 있겠어!
―……그래, 그런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가브는 미카를 조금 묘한 의미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지들끼리 뭘 하건 알 바는 아니지만, 지구의 신앙인들이 보면 각혈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카엘X가브리엘 TS백합물이라니, 성경의 팬픽은 여태까지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마이너한 장르의 팬픽이잖아……!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리던 기준은 에픽급 강자의 출현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전장에서 잠시 눈을 떼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이곳은 프런티어는 물론이고 자신이 이끄는 테라 길드마저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미개척지였다.
원래는 프런티어와 제국에 앞서 미개척지에 잠든 유물이나 유적 따위를 얻어 내 세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때도 있었는데 프런티어의 성대한 삽질로 갑작스레 최종 국면에 접어든 탓에 미처 찾을 새도 없게 되어 버린 미개척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한편에서 기준은 한때는 웅장했을 건축물의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버티며 마력과 영성을 얻은 그것은 기적적으로 한창때의 모습을 유지하며 푸르게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주인을 가리는 것인지 덩그러니 놓여 있었음에도 여태껏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였다.
―미카,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
―여기서 내가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또한 그분의 뜻이겠지.
―아직 이 땅에는 미카가 필요해!
“역시 대미를 장식하는 건 이것 말곤 없지.”
돌연 기준에게서 터져 나온 탄성에 모두가 움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은신 탓에 신들을 포함해 모두가 바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왔던 건가.
유일하게 미카만은 어깨에 힘을 풀고 실소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기준은 바닥에 나뒹구는, 횃불을 든 거대한 구리 팔을 매만졌다.
오래된 유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싹 튼 오우카의 고유스킬을 빌려 와, 그것에 깃든 기나긴 세월을 모조리 읽어 냈다.
“역시나 지구가 처음이었구나.”
아무래도 자유의 여신상이니만큼 기준도 ‘맙소사! 여기가 지구였다니!’ 같은 소리를 하며 좌절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 정도는 이미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대신 지구 시절부터 존재해 온 자유의 여신상의 파편을 분석하며 신들이 회귀로 만들어 낸 무수한 세상 가운데 지구가 몇 번째였는지는 알아낼 수 있었는데, 기준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지구야말로 처음으로 존재한 세상이었다.
이 세상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물론 레타가 아니고 지구다.
‘몇 가지 사소한 의문은 남아 있지만…… 뭐 그리 중요하진 않나. 불변이라 믿던 역사마저 세월에는 풍화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유의 여신상에 별 의미가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무려 처음 세상부터 존재했던 까마득한 고대의 유물.
아마 그 처음 세상에 소속된 이가 아니면 만지는 것도 거부했을 이 유물에는 기준과 함께 수없는 회귀를 겪으며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온 힘이 있었다.
그럼 이걸로 무얼 할 수 있느냐면, 결론부터 말해서――.
―짠, 자유의 여신 루시 등장!
“아무렇지도 않게 구라 치지 마.”
―진짜야, 이제부턴!
힘을 잃고 기준의 내부에 침잠했던 루시가 다시 독립적인 격을 얻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슨, 이런…….”
―안 돼!
―맙소사.
―쯧, 쓸데없는 짓을.
인류는 경악하고 신들은 공포하고 가브는 까무러치고 미카는 혀를 찼으나, 기준은 그 가운데 미카만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똑같이 지구 시절부터 존재했던 미카가 이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유물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지금 이 자리에는 다른 에픽 등급의 존재들도 있는데, 그들 모두가 이걸 모르고 있었다고?
초월자들이 바보였던 것이 아니다.
미카가 이것을 감추어 두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이유는…….
―미카, 나 감동했어! 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구나!
―에이잇, 아니다!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당연히 루시를 되살리기 위해서였겠지.
고집불통이고 독선적이며 사이코 같은 신앙심을 가진 미카지만 신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날 모두를 대신해 희생했던 루시에게 미안함을 품고 있던 그녀가 이때까지 루시를 도와주려 대륙을 헤매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기준도 다소 가슴이 뭉클해졌다.
―도, 도망쳐.
―저 여자가 우릴 모두 죽일 거야!
―이제야 완전히 소멸했다고 생각했는데!
―지옥에서 다시 기어 올라오다니――!
미카를 상대로도 기세등등했던 신들이 루시가 등장하자마자 라라를 본 용병들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루시는 어느덧 자신의 손에 잡힐 만큼 크기가 줄어든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자자, 다들 여기 보세요! 셋을 셉니다―― 셋!
콰아아아앙!
혹시나 모두의 기억을 지우는 마법이라도 쓰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더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으니 뭐 대충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아아, 그래도 죽으면서는 웃고 있네.
“회귀하는 환각이라도 봤나 보지.”
새로운 무기를 얻은 루시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기준의 등에 업혔다.
―그럼 돌아가자, 계약자!
“가브랑 미카도 같이 가자. 볼 일도 다 끝났겠다, 루시 부활 기념 파티라도 하자고.”
―거기서 네가 만든 음식을 내게 먹일 셈이지? 그렇게 나도 유혹하려는 거야!
―……빚을 갚았을 뿐이야, 괜히 내게 잘해 주려 애쓸 필요 없다.
잔뜩 날을 세우면서도 기준의 요리에 호기심을 보이는 가브와, 괜히 툴툴거리며 뒤로 발을 빼는 미카.
기준은 그들의 거부를 무시하고 모조리 거점으로 끌고 왔다.
“자기, 어서 와―― 어머? 특이한 손님들이네?”
슬슬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비체가 반갑게 기준을 맞이하더니 그 뒤로 나타난 천사 군단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까지 싸잡아 손님 취급하는 것을 눈치챈 루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체와 말다툼을 시작하자, 비로소 일상이 되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에 기준이 빙긋이 웃었다.
문득 니체의 말이 빌리고 싶어져 입을 열었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삶을 찬양하는 데 굳이 타인의 말을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그저 행복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행복할 것이다.
《나 빼고 다 회귀자》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