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4)
나 빼고 다 회귀자-54화(54/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54)
Chapter 11. 내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 4
레타 대륙에서 가장 알기 쉬운 강함의 척도는 무엇인가.
바로 스탯 등급과 스킬이었다.
그만큼이나 종족 등급과 직업도 중요하겠으나, 사실 이 두 가지는 상태창을 열어 보이지 않는 이상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문제.
그래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요 스탯 테스트와 스킬 테스트 등으로 그 사람의 강함을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종족 등급과 직업도 스탯과 스킬에 영향을 끼치겠죠? 그러니까 테스트를 할 때 그것까지 감안해서 최종적인 수준을 평가하는 거죠.”
“상태창은 중죄인이 아닌 이상에야 함부로 열라고 강요할 수 없으니까요.”
“그럼 이젠 상태창 순수 대전도 못 하겠네…….”
비브와 우니카의 설명에 기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섭섭해져 중얼거렸다.
물론 튜토리얼에서도 상태창의 중요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서로의 매력 수치로 놀리며 상태창을 열어 순수를 증명하라는 장난도 칠 수 있었다.
서로가 상태창을 열지 않는 것을 전제로 말로만 장난을 쳤다는 얘기다.
“염인들은 대단하네요. 그건 레타에서는 거의 최상위 도발로 취급될 거예요.”
어쩌다보니 염인들을 장난을 잘 치는 종족으로 만들어 버린 기준은 앞으로는 입을 더 조심하자고 반성하며 말없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기준(1년 차): 지구 대표] [칭호 ― 최후의 용사(Legendary) 외 10개] [광인(R) 빛의 인도자(U) Lv25] [근력(U) ― 29+25] [재주(L) ― 21+20] [내구(U) ― 28+20] [광 마력(L) ― 34+22] [매력(L) ― 17+20] [영력(L) ― 38+20]레벨은 퀘스트 완료 시점에서부터 1도 오르지 않았지만, 단련을 꾸준히 하는 덕에 유니크 등급인 근력과 내구는 1씩 성장했고―― 대형 퀘스트를 깬 이후로 워낙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탓인지 어느덧 매력도 1이 더 올라가 있었다.
매력은 레벨 업으로 얻는 스탯으로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레전더리 등급에 이르러서까지 꾸준히 성장하는 그의 매력은 정말 기이한 것이었다.
‘역시 버그 같은 게 아닐까, 애초에 내 매력이 쭉 성장했던 이유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언제든 순수를 증명할 수 있는 그의 매력 수치가 아닌 다른 스탯들이다.
가장 낮은 근력과 내구가 유니크 등급의 20대 후반이고, 나머지는 싹 다 레전더리 등급.
그가 염인이라는 사람들의 오해를 단번에 박살 낼 종족명과 직업명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것을 아예 없는 셈 쳐도 그의 스테이터스는 독보적이었다.
‘고마워, 비체.’
어떻게든 그의 스테이터스 등급을 키워 내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던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지은 기준이 시선을 전방으로 되돌렸다.
평균 스탯 레어 등급의 벽을 돌파한 한 자릿수의 후보자가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설마 이 정도밖에 없을 줄은 몰랐는데.”
“쓸 만한 녀석들은 이미 고정 파티가 있으니까요.”
“납득했어.”
대학교에 올라가서 연애 따위는 관심 없는 척하다가 2학기 들어 슬슬 크리스마스가 신경 쓰이고 옆구리가 외로워졌을 즈음이면 이미 어지간한 녀석들은 다 커플이 되어 달라붙어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즉 지금 기준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모종의 이유로 커플…… 아니, 파티가 깨지고 프리가 된 경우, 혹은 다른 도시에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 그도 아니면 성격에 난이 있어서 파티에 오래 속해 있지 못한 경우…….
혹은 여태껏 홀몸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온 진정한 솔로 부대뿐이라는 얘기다.
“섀도 스토커, 허번트라고 합니다.”
바로 그 솔로 부대에 속한 남자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후드를 벗고 자기소개를 했다.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회색빛이 감도는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남자.
키도 크고 훤칠한 데다 피부는 한밤중에 창가로 스미는 달빛처럼 창백해 매력을 더했지만, 사내놈 외모를 이 이상 묘사하기 싫었던 기준은 거기서 사고를 중단했다.
“허번트?! 투리스에 왔었어?”
“아니, 섀도 스토커가 경쟁 상대면 우린 다 뒤에서 닥치고 붕대나 감아야 되잖아…….”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유명한 사람인 모양.
의문을 담은 그의 시선을 받은 비브와 우니카가 차례로 해설해 주었다.
“유명해요, 그라티아 전역에서. 직업군은 척후 계열.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네요.”
“굉장히 실적이 높은 트레저 헌터입니다. 던전 탐색에 특화되어 있고 전투 능력도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설마 투리스로 올 줄은 몰랐네요.”
우니카는 그렇게 말하곤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섀도 스토커, 투리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당신 같은 능력자가 활동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섭섭하죠, 레이디.”
우니카에게 작업을 걸듯이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내민 허번트가 그녀를 비롯해 코앞에 앉아 있는 기준과 비브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트레저 헌터가 움직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
투리스 인근에서 미발견 유적을 찾아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는 말에 우니카는 물론 기준과 비브도 몸을 흠칫했다.
이게 파티에 가입하기 위한 뇌물이라면 아주 대담한 수가 아닌가?
“안 그래도 믿고 등 뒤를 맡길 멤버를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투리스로 들어오자마자 소문 한번 뻑적지근하더군요. 마치 운명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듯하여 바로 달려왔습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와 만나게 될 줄은―― 하고 우니카를 향해 악수라도 청하듯 뻗어 오는 허번트의 손등을 그녀가 가만히 노려보자, 그는 실례, 하며 다시 손을 뒤로 물리더니 기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신사분은 인사를 받아 주시겠지요?”
“준이다.”
“허번트입니다. 가면 잘 어울리네요! ……오오.”
허번트는 기준의 손을 맞잡는 순간 잠시 움찔하더니, 감탄하며 그의 손을 놓고는 말했다.
“강하시군요. 손을 잡자마자 느낌이 옵니다.”
“요란스럽군.”
기준은 코웃음을 치곤 그의 손을 놓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허번트 역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를 마주보았다.
그렇게 잠시 둘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자니 우니카가 당황하여 말했다.
“준 님? 섀도 스토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파티에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능력도 확실하고 각지 용병 길드에서의 신뢰도도 높습니다. 적어도 뒤통수를 칠 인물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이렇게 제 얼굴에 금칠을 해 주시니 부끄럽군요.”
“태도가 경박한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립니다만.”
“오우.”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말솜씨에 과연 영주의 따님다운 입담이라며 감탄하면서도, 기준은 딱 잘라 말했다.
“허번트, 원하는 게 뭔지 분명히 말해. 내 파티에 가입하고 싶은 거냐, 아니면 미발견 유적을 함께 공략할 임시 동료를 원하는 거냐.”
“아, 이런.”
그제야 기준이 자신을 쏘아 본 이유를 깨달은 허번트가 감탄사를 흘리며 제 이마를 짚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허번트가 논한 미발견 유적이라는 말에 혹해, 트레저 헌터로서 지닌 명성에 혹해 덥석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나 기준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기준이 파티를 결성하려는 것은 최종적으로 1년 후 있을 흡혈귀 왕국의 습격에 대비해 움직일 정예 부대를 만들고자 함이므로, 아무리 허번트가 발견한 유적이 매력적이라 한들 그거 하나 공략하고 해산할 파티라면 굳이 그를 파티에 넣을 이유가 없었다.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준――. 유적입니다. 공략에 몇 달이 걸릴지 모르고,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벌써 그 뒤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사람들이 당신을 보며 환호하는 목소리만 들어도 당신의 능력과 인성에는 의문을 가질 여지가 없더군요. 하지만 말입니다, 저라고 오늘 처음 본 당신을 믿고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만큼 절실한 ‘약자’는 아니에요.”
허번트의 창백한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절 쫓아낸다면 당신은 섀도 스토커의 탐사 제안을 걷어찬 희대의 멍청이로 기록될 겁니다. 이번 유적은 특히 엄청나게 큰 건이라 공략에만 성공하면 반드시 나라 전체에 소문이 납니다. 당신은 나중에 성과를 듣고 홀로 후회하는 꼴이 되겠죠.”
과연, 그것도 흔히 있는 일이지.
나한테 관심을 보이던 누나가 끝내 나를 포기하고는 다른 남자를 찾는 데 성공하더니, 크리스마스 날 나는 데이트했는데 너는 뭐 했냐며 굳이 한밤중에 전화해 외로운 심장에 비수를 찌르는 그 현상.
“그래서 대답은? 넌 내 파티에 가입하려는 거냐, 유적만 공략하고 해산할 임시 멤버를 원하는 거냐.”
물론 기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질문을 반복했다.
연애라는 겉멋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좇는 자는 헛된 미련에 붙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거야 참――.”
기준의 굳은 태도를 느낀 허번트가 한순간 싸늘했던 표정을 싹 풀어 버리며 웃었다.
“당신을 테스트해 볼 셈이었는데 내가 시험당하고 있군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파티에 가입하죠.”
“그래?”
솔직히 그대로 뒤돌아 떠날 줄 알았는데.
그러나 허번트는 얼굴을 싹 바꾸어 싱글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라고 제 실력에 기대어 한탕 하고 빠질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라서요. 그런 건 너무 많이 당했어요. 이제 슬슬 정착할 파티를 찾고 싶은 참이었습니다.”
“그런가.”
“기대 이상입니다. 준은 여러 의미에서 제 의표를 찌르는 분이군요. 물론 그 옆에 계신 아리따운 레이디도――.”
“전 파티원이 아닙니다.”
“너무나 안타깝군요.”
기준은 픽 웃으며 그에게 재차 손을 내밀었다.
허번트도 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기준이 만들어 낸 파티에 허번트가 참가했음을 시스템이 인증했다.
운명 공동체가 된 것이다.
―계약자, 벌써 한 명을 찾았네.
‘그래, 루시. 제법 순조로워.’
한 번에 파티로 결성할 수 있는 숫자는 사실 10명까지다.
그러나 10명쯤 되면 이미 파티보다는 클랜에 가깝고, 경험치나 전리품 분배에 있어 지장이 생기기 쉬운 탓에 레이드가 아닌 한 이런 대규모 파티는 결성되지 않았다.
다른 걸 다 제쳐 놓고 파티 시스템에 의한 경험치 분배만 놓고 따졌을 때 가장 효율적인 것은 네 명에서 다섯 명.
아무래도 네 명보다는 다섯 명이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레타에서는 대부분 다섯 명으로 파티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최강오크오형제도 다섯 명으로 완성된 파티가 아닌가.
해서 기준은 허번트 외에도 세 명을 더 뽑기로 했다.
“인. 인이라고 불러 주시오.”
“인은 오랫동안 투리스에서 활동한 용병입니다. 통짜 철로 이루어진 봉을 다루는 봉술이 유명하고, 강인하고 신의 있는 남자이니 믿고 함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거대한 근육질 덩치, 대머리 오크 키푸즈를 떠올리게 하는 반짝이는 머리에 험악한 인상의 남자 ‘인’.
아니나 다를까 오크와 타 종족의 혼혈이라는 그는 무척 과묵했으나 우니카가 적극적으로 나서 그를 보증해 주었다.
그녀는 투리스를 물려받을 후계자로서 이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용병들에 대해서는 빠삭할 터, 스탯 평균 레어 등급도 거뜬히 충족하는 그를 기준이 거절할 이유가 없어 흔쾌히 파티로 받아들였다.
“아르밀카예요! 그라티아의 대도시 코르에선 이름 좀 날리는 검객이죠.”
“그라티아 여러 곳을 떠돌다 몇 달 전에 코르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용병입니다. 검으로 벤 자리가 썩어 버리게 만드는 능력으로 유명하죠.”
아르밀카는 풍성한 금빛의 갈색 머리를 머리 양옆으로 모아 질끈 묶어 내린,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트윈테일의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소녀였다.
눈이 유독 크고 검은 것이 정말로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겨서―― 생긴 것만 보면 영국 신사처럼 품위 있게 잘생긴 허번트와 붙여 놓으면 기묘하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허번트만큼 유명한 인사는 아니더라도 한창 떠오르는 용병계의 유망주라는 듯해서, 그녀가 투리스로 넘어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코르에 정착했다더니 투리스에는 왜?”
“뻔하잖아, 오버플로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온 거겠지.”
“하긴―― 전력이 비어 있는 곳에서 활약을 할수록 몸값을 띄우기 쉬우니.”
“흐응.”
뒷담을 하는 사람들을 흘긴 아르밀카가 코웃음을 치곤 우니카를 보며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가 이 파티 멤버를 뽑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예쁜 만큼 잘 싸워요. 우리 같이 해 봐요. 마음만 잘 맞으면 아주 오래 갈지도?”
“그래, 잘 부탁하지.”
그녀는 기준을 통과한 지원자 가운데서도 유독 화려하고 강한 스킬을 구사했고, 뭣보다 민첩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기에 능력으로 줄을 세우면 뽑지 않을 수가 없는 인재였다.
―정말? 예뻐서 뽑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루시. 너는 알잖아?’
―흐으으음, 어떨는지…….
―……후후.
루시는 그의 의도를 조금 오해하는 듯했지만.
그리고 잊을 만하면 웃음소리로 존재감을 내는 악령이 너무 무섭다.
“잘 부탁한다.”
“나도 잘 부탁해요! 아, 그런데 악수는 좀.”
기준이 내민 손을 거절하며 아르밀카가 새초롬하게 웃었다.
“난 남자를 만지면 몸에 두드러기가 돋아서요.”
“그런가.”
“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아무 문제도 없지만요!”
“안 물어봤다.”
어째 아까부터 우니카를 향해 자꾸 윙크를 하고 끼를 부린다 싶더니만 그래서였구나.
기준은 허번트와 아르밀카에게 연달아 시달린 우니카를 살포시 자신의 뒤로 끌어당겨 주었다.
파티원 선발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서무장이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자, 전투 멤버는 그만하면 충분히 뽑은 것 같은데. 척후 한 명에 전위 둘, 준 당신은 염인이라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데다 방패까지 다루잖아?”
“그렇다만.”
“그럼 빈자리에는 회복 담당, 사제를 넣어야지. 우리 길드가 추천하는 인재가 있는데 어때?”
아무래도 사제라서 평균 스탯은 낮지만 말이야―― 하고 밑밥을 까는 서무장을 보며 기준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다른 후보들은 반발했지만, 솔직히 말해 남은 이들의 스펙은 기준의 능력을 감안해 보면 그리 큰 의미가 없었고…….
기준은 전투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루시를 통한 치유 능력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그것은 일단 숨겨 둘 필요가 있는 터라.
결국 서무장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길드에 신세를 졌으니 그 정돈 들어주지. 키우고 싶은 인재가 있나 보군.”
“캬, 아주 예리해. 그러면…… 로라?”
“네, 넵!”
서무장의 부름에 여태껏 숨어 있다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소녀가 있었다.
누가 사제 아니랄까 봐 가녀리고 연약한 인상을 주는, 금발에 푸른 눈의 아름다운 소녀가 가지런히 사제복을 입고――.
“어머, 어머. 맙소사……!”
기준의 파티에 합류하곤 내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르밀카가 그녀를 보며 급격히 흥분하여 외쳤다.
“리더, 리더! 반드시! 저 아이를 반드시 파티에 넣어야 해요! 부탁이에요, 안 그러면 전 나갈 거예요!”
“……이 파티에 들어오면 그 소녀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무장. 괜찮을까?”
광적으로 흥분하는 아르밀카의 모습에 싸늘한 표정을 짓고 만 기준이 서무장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는 난감한 미소를 띠면서도 물릴 생각은 없는 듯 소녀를 그들 쪽으로 밀어붙였다.
아리따운 소녀, 로라는 예쁜 언니가 자신에게 주는 관심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힘을 내어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결심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 준 님!”
“응?”
양팔을 벌려 그녀를 맞이하려는 아르밀카를 무시하고 기준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디며 소녀가 외쳤다.
“이번 오버플로에서 활약……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치료소에서 병사들을 회복시키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런 저한테도 준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모두가 용기를 내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건 모두 준 님 덕분이에욧!”
“아.”
“영웅이신 준 님과 같은 파티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무척 영광일 거예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지만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닷!”
“나도 같은 생각이다.”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반응에 기준이 눈만 깜박이고 있자니 그 옆에서 봉술사 인 또한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오버플로에서 몬스터들에 맞서 싸운 이라면 누구나가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할 것이다. 나 또한 이 파티에 참가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정말 그래요!”
“끙…….”
두 사람이 일제히 그를 찬양하는 모습에 기준은 이전 영주에게 포상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부끄러워져 제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의 등 뒤에서 바로 그 모습을 본 우니카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다가, 그가 홱 돌아보자 시치미를 뚝 떼는 모습이 얄미웠다.
그런데 서무장은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로라 영입에 망설이는 것이라고 느꼈는지, 그녀에 대한 어필을 덧붙였다.
“로라는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성심을 다해 봉사하고 기도하며 수련한 끝에 신의 축복을 받아 무려 레어 등급인 홀리 블러드로의 종족 성장을 이뤘지. 치유 능력은 물론이고 인성도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최고야.”
“이미 결정했다, 서무장. 그녀를 동료로 받겠어.”
“정말인가욧!”
설마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녀를 내치겠는가.
기준에 대한 존경심은 진짜였는지 로라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고, 아르밀카 역시 로라에게 한눈에 반했는지 투리스로 오길 잘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르밀카, 범죄는 일으키지 마라.”
“당연하죠! 그런 천박한 짓을 할 리가!”
아니, 그렇게 흥분하는 꼴을 보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혀 상상도 못 했던 걱정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성공리에 파티가 결성된 순간이었다.
염인 준(Jun), 검사 아르밀카(Armillca), 트레저 헌터 허번트(Hervunt), 봉술사 인(In), 마지막으로 사제 로라(Laura)까지.
“파티 이름은 어쩔 텐가?”
“글쎄, 생각한 건 없는데.”
“그럼 임시로 구성원의 이름 이니셜을 따 자힐(JAHIL)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아니, 잠깐…… 진짜?”
그보다 여기 공용 문자가 영어였어?
그렇게 해서 총 다섯 명으로 결성된 파티 ‘자힐’의 첫 목표는, 물론 트레저 헌터 허번트가 정보를 가져온 유적으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