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8)
나 빼고 다 회귀자-58화(58/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58)
Chapter 12. 내가 캐리한다 – 3
늑대 인간의 이름은 긴, 올해로 19세.
나무가 울창하게 솟아 있어 달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속 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달빛이 들어오지 않는?”
“늑대 인간은 달빛을 받게 되면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성이 증폭됩니다. 최대한 인간성을 유지하려면 달빛을 피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럼 지금은 왜 여기에 있지?”
“어, 그건, 식량을 구하러 나왔는데 아까 그놈들한테 붙들리는 바람에…….”
긴은 늑대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순혈 늑대 인간이지만, 그의 부모님은 과거 인간이었다가 늑대 인간에게 물려 전염된 케이스라고 한다.
거기까지 듣고 허번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보충했다.
“역시 브리콜라카스군요. 라이칸스로프는 달빛에 강화되지도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전염 능력이 없습니다.”
“마, 맞아요. 브리콜라카스입니다. 하지만 우린 다르다구요……!”
야성에 지배되어 브리콜라카스의 군대에서 전투를 벌였던 그들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브리콜라카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주―― 이 유적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째서 이 유적이지? 달의 기운이 가득한 곳인데.”
“그건 무리를 이끄는 자의 뜻이었어요. 반드시 강해져 자신을 늑대 인간으로 만든 브리콜라카스에게 복수하겠다며, 몰래 숨어 힘을 키울 수 있는 유적을 찾아내 모두를 이끌고 온 거죠.”
“네 부모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게…… 네. 부모님은 그저 맹수처럼 미쳐 날뛰는 신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하셨어요. 당장 놈들로부터 벗어나는 게 급해 퀴노돈에게 협력했지만…….”
퀴노돈, 그것이 이 유적에 들어온 늑대 인간 무리의 두목의 이름이었다.
흡혈귀와 함께 장생을 자랑하는 종족인 만큼 놈도 건재할 터, 아마도 이 유적의 레전더리 등급의 보스란 바로 퀴노돈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기준이 조용히 그 이름을 읊조리는 동안에도 긴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유적에 들어온 후 얼마간은 문제가 없었으나, 퀴노돈의 복수에 찬동하는 무리는 소극적인 무리와 반대하는 무리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긴의 부모와 같이 싸움을 싫어하는 자들은 깊은 숲속으로 숨어들어 조용히 살거나, 인간이 되는 법을 연구하며 어떻게든 브리콜라카스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고 한다.
“핫. 아, 그냥 웃겨서요.”
그 부분에서 아르밀카가 코웃음을 치더니, 기준이 그녀를 보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머리 뒤로 팔짱을 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가 자신을 비웃었음을 눈치챈 긴은 한결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저들은 우리를 놔주려 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끌어내 병사로 쓰려 하고, 통제하지 못할 바엔 그냥 말을 잘 듣는 가축으로 만들어 부리려 하죠.”
“가축?”
“피와 전투밖에 생각할 수 없는 늑대로 만드는 거예요. 저, 저걸 써서.”
긴이 손을 들어 허번트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어느샌가 허번트가 주워 들어 살피고 있는 자그마한 돌멩이였다.
일제히 멤버들의 시선을 받은 그는 당황하며 기준에게 돌멩이를 내밀었다.
“죽은 늑대 인간의 주위에 구르고 있더군요. 제가 보기엔 달빛을 받아 유독 반짝이는 듯한데…….”
“맞아요, 그건 달빛을 축적해 힘을 발휘하는 영월석(迎月石)이에요! 늑대 인간들을 더욱 강화시켜 주지만 이성을 빠른 속도로 마모시켜요. 더, 더구나.”
그가 돌멩이를 내밀자 그 거리만큼 간격을 벌리며 눈을 감아 버린 늑대 인간이 자세히 말하기도 무서운지 더듬거렸다.
“그걸 삼키기라도 하면…… 돌아올 수 없어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괴물이 되고 말아요.”
모두 그 말에 잠시 침묵했다.
기준은 아까 유적 정보에서 확인했던 ‘이성을 잃고 한낱 야수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이, 비단 세월로 인한 변화만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섭네에, 이렇게 예쁜데. 저 이거 가져도 되죠?”
“아니.”
이 광석이 이번 유적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비단 기준만이 아니리라.
그는 자신에게 손을 뻗어 오는 아르밀카에게 즉답하며 그것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앞으로 영월석은 모두 내가 관리한다. 유적을 나갔을 때, 가치가 밝혀지면 그때 공평하게 나누지.”
“그렇게 말하면서 혼자 다 챙기려는 거 아녜요, 리더――?”
어지간히도 영월석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는 아르밀카에게 기준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내겐 이걸 탐낼 이유가 없지.”
“늑대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위험한 물건이라면.”
인 또한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어 기준에게 동조했다.
“한데 모아 리더가 관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중에 나눌 때를 생각해도 그렇게 하는 게 낫지.”
“그건―― 그렇지만요. 나중에 안 주기만 해 봐요.”
“그런 일은 없다.”
기준의 확실한 일 처리에 허번트도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준, 얘기도 얼추 들은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이들을 살려 두는 게 우리한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 수 없군요.”
“힉!”
“하지만 죽일 필요도 없지.”
“후우…….”
기준이 그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대꾸하자 이번엔 옆에서 아르밀카가 끼어들어 외쳤다.
“장난해요? 죽이면 경험치가 되잖아요!”
“흐끅!”
“경험치는 얼마 되지도 않을 터다, 검사.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성과 대화의 의지다.”
그러나 다행히도 봉술사 인 또한 기준과 생각이 같았는지 그의 편을 들어 아르밀카에게 따졌다.
“어둠의 진영이라도 지성이 있고, 빛의 진영에 대한 적대 의사가 없다면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하아아…….”
파티 멤버들과 의견을 나눌 때마다 옆에서 일일이 반응하는 것을 보니 과연 이 늑대 인간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이 실감이 갔다.
기준은 쯧, 혀를 차곤 긴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사람이 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지.”
사실은 아까부터 그게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립하는 종족, 늑대 인간의 운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
만약 자신들이 그 구도에 끼어들어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상대가 어둠 진영이라고 해서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네? 넵, 맞습니다!”
긴은 투구 너머로 이글거리는 기준의 눈을 보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노력을 알아봐 주는 기준에 대한 감사함이 그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은 것이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마을 어른들이 어떻게든 사람으로 돌아가고 말겠다며 벌써 수십 년째 연구 중이세요……! 태어날 때부터 선택의 여지도 없이 늑대 인간으로 태어난 저만은 어떻게든 야성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의 삶을 누리게 해 주겠다고, 정말, 저는 그런 부모님을……!”
“리더, 설마 그 바보 같은 얘기를 믿어요?”
아르밀카가 질색하는 목소리로 끼어들어 말했다.
아까 긴의 말에 코웃음을 칠 때부터 대충 짐작했지만 그녀는 늑대 인간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굉장한 불신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종족 변화라는 건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그렇게 간단히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한 번 늑대 인간이 되면 그걸로 끝. 흡혈귀랑 마찬가지에요. 인간이 한 번 흡혈귀가 되면, 결코 다시 인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잖아요?”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가 되겠군.”
“세상에나.”
아르밀카가 머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품에서 다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물었다.
로라에게 하나 먹겠냐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공 확률이 높지 않겠지. 하지만 손해는 없을 거다. 결국 긴과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이 유적에 들어온 우리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무슨 뜻인데요?”
“아, 과연.”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반문하는 아르밀카에게 기준 대신 허번트가 답했다.
“추격대가 옵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인기가 많은 모양인데.”
“읏, 으윽…….”
“아직 말하지 않은 게 있지?”
허번트의 싸늘한 시선이 긴을 위아래로 훑었다.
긴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주먹을 세게 쥐며 몸을 떨었다.
“그건…… 저들이.”
―찾았다!
―크르르르…… 다른 놈들이 같이 있다!
곧 나머지 일행의 시야에도 놈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족히 열 마리 이상, 그것도 아까 해치운 놈들과 비슷한 차림새였다.
하긴 자리를 옮길 생각도 안 하고 훤히 드러난 데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아까 해치웠던 늑대 인간 놈들과 행동을 함께하던 무리가 있다면 들키는 것이 당연했다.
―다른 늑대들한테 알려라, 놈이 외부에서 인간을, 컥!
허번트가 품에서 꺼낸 소형 석궁을 번개같이 쏘아 내 한 놈의 목을 관통시켰다.
새하얗게 번쩍이며 하늘을 가르는 볼트의 뾰족한 촉을 확인한 기준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은인가?”
“예리하시군요, 맞아요. 전 준비성이 철저한 편인지라.”
연사 기능이 있는 석궁인지, 허번트는 연달아 은 화살촉이 달린 볼트를 쏘아 내 늑대 인간들을 무력화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흡혈귀와 늑대 인간은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공유하고, 그것이 바로 은이었다.
볼트가 명중할 때마다 놈들의 털이 한 움큼씩 빠지고 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을 보면 과연 효과가 확실했다.
―젠장, 은 화살이다!
―너무 빨라――!
과장 조금 보태면 비처럼 쏟아지는 볼트에 늑대 인간들이 당황하며 전열을 흩트리는 그때.
헷, 하고 웃음소리를 흘린 아르밀카가 바닥을 박차고 도약해 놈들과의 거리를 좁히더니.
“읏차!”
―스륵.
어느덧 칼집에서 뛰쳐나온 칼과 함께 적들에게 돌진해―― 한없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갈 지 자를 그리며 놈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칼을 허공에 한 번 가볍게 털고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납검하는 그 모습이 실로 오만하고도 요염했다.
―쿠허억!
―케엑!
다음 순간, 그녀가 움직이는 궤적 안에 놓여 있던 것들 모두가 썩은 피를 토해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전멸이었다.
신속, 거기에 더해 필살.
어째서 그녀가 대도시에서 이름을 날리는 용병이 되었는지 익히 짐작케 하는 섬뜩한 실력이다.
“이것들은 졸병이겠죠? 영 손맛이 없는데. 더구나 개털.”
뒤돌아서며 늑대 인간들이 죽은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을 확인한 아르밀카가 질색을 하며 일행에게 돌아왔다.
여태껏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던 언니가 깜짝 놀랄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 주자 로라도 그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는지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어땠어? 나 멋지지?”
“정말 굉장히 빠르시네요……. 아, 혹시 다치신 곳이 있나요? 회복을.”
“아니, 완전 멀쩡해. 저런 것들을 상대하면서 다칠 리가 없잖니.”
로라에게 받는 관심이 기뻤는지 징그럽게 웃는 아르밀카에게서 금방 시선을 떼어 낸 기준.
그는 그사이 허번트에게 구속되어, 목에 은 화살촉이 겨누어진 채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긴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가 숨긴 건 뭐지?”
“그건…… 놈들이 저를 노리고 있다는 거예요. 퀴노돈으로부터 숨어 사는 늑대 인간들 중에서도, 특히 저를…….”
“그래, 저렇게 집단으로 쫓는 걸 보니 그건 알겠다만. 어째서지?”
“잠시, 준. 이상합니다.”
그때 허번트가 한 손을 들어 기준이 긴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을 막았다.
“보통 늑대 인간은 이 정도로 은과 맞닿으면 화상을 입거나 변신이 조금 풀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지나치게 멀쩡하군요.”
“제, 제가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데요……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던 긴이 목을 슬쩍 내밀어 은 화살촉에 직접 제 가죽을 긁었다.
허번트도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깜짝 놀라며 화살촉을 뒤로 물렸으나, 놀랍게도 긴은 조금 긁힌 상처만 났을 뿐 그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일행을 둘러본 그는 쭈뼛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불완전하게나마 제가 성과를 거두어서.”
“……거두어서?”
허번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르밀카를 비롯한 파티원들도 낯빛을 굳히는 것이, 기준이 논했던 퀘스트가 단순한 망상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
“은에는 상처를 입지 않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제 달빛이 없을 때도 변신을 풀 수가 없게 되어서…….”
“인간으로 돌아간 게 아니라, 늑대 인간으로서 지닌 약점을 극복해 버린 셈이 됐나.”
“윽.”
“와―― 대박! 대박이에요, 리더!”
아르밀카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여기서 유효한 정보를 얻어 내기만 하면 우리 모두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안 죽이길 엄청 잘했어, 리더는 천재라고요! 천재!”
“하.”
기준의 행동을 이해 못 하겠다는 투로 비난하던 아르밀카가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모습에 허번트가 진심으로 경멸스럽다는 듯 한숨을 토해 냈다.
기준은 그제야 정말로 허번트가 아르밀카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더 말해 봐라, 긴. 네가 늑대 인간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은 것이 저놈들의 습격과 어떻게 연관되지?”
조금 날카롭게마저 들리는 허번트의 추궁에 긴이 주먹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건……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놈들도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 되는 연구?”
“브리콜라카스를 뛰어넘는, 연구요.”
“풉.”
아르밀카는 이번에도 비웃었다.
“아무리 성장해 봤자 브리콜라카스의 순혈을 뛰어넘지도 못할 잡종들이 뭐? 자신을 늑대로 만든 태초의 늑대를 뛰어넘어?”
“굉장히 잘 아는군.”
“늑대 인간은 질색이라서요, 적이니 더더욱 철저하게 분석해야죠! 그런 늑대 인간 전문가로서 제가 말씀드리건대 브리콜라카스에 물려 늑대 인간이 된 것들이 브리콜라카스를 뛰어넘겠다는 건 늑대 인간이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얘기에요!”
“그들도, 방법을 찾아냈다고 해요.”
“흐응?”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르밀카에게, 긴은 어딘가 단단히 각오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동족 포식이에요. 그중에서도, 심장을.”
“……괜히 들었어.”
“정말 그렇군요.”
파티 멤버들이 일제히 표정을 구겼다.
지금 긴은 브리콜라카스에 복수를 하고자 하는 늑대 인간들에게 일종의 영약 취급을 당해 노려지고 있다는 얘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녀석을 데리고 있으면 이 유적에서 사냥감을 찾아다닐 필요성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 * *
예민 파티는 던전 깊숙한 곳에서 하이에나와 닮은 머리를 달고 있는 근육질의 인간형 괴물, ‘놀(Gnoll)’들의 보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스는 총 두 마리로 놀 백부장과 그 백부장을 지키는 놀 수호병이 있었고, 그 외에도 백부장의 지시에 따라 한층 강화된 상태로 일행을 공격해 오는 다양한 직업군의 놀이 거의 수십 마리나 있었다.
우선 지혜의 광역 마법으로 놀들을 거의 일소하고 돌격, 은신과 예민이 빠르게 남은 놈들을 정리하며 나아가 놀 수호병을 마크.
목수는 놀 백부장이 괜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놈을 막아서고, 그사이 지혜가 정교하고 위력적인 저격용 마법 ‘라이트닝 스피어’로 수호병을 공격해―― 끝내 빈틈이 드러난 수호병을 예민의 롱 소드가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이제 남은 것은 놀 백부장뿐이었는데,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고는 해도 이놈의 생명력이 초월적으로 질겨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키이이이익!”
“아앗, 진짜 끈질겨!”
그러다 끝내 지혜가 거칠게 소리 지르며 쏘아 낸 거대한 불꽃이 놈의 머리통을 집어삼켰다.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버티던 놈의 심장에 은신이 힘껏 내지른 단검이 틀어박히고.
이어서 예민이 휘두른 검이 기어이 놈의 목을 베어 허공에 날려 버리는 데 성공했다.
“허억, 허억…….”
놈이 죽고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예민이 드물게도 지친 티를 내며 근처에 주저앉았다.
은신 역시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을 깨닫자 그 자리에 쪼그려 앉더니, 한숨을 내쉬며 드물게도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엄청 질겼네요, 얘만 혼자 등급이 레전더리 정도 됐던 거 아녜요?”
“메시지 뜨는 거 봤잖아, 레전더리가 아니고 유니크였어……. 여기 던전, 분명히 보스가 레어 등급이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가 인간이라고 설마 길드에서 이런 식으로 우릴 속인 걸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길드가 길드 멤버를 속이는 건 말도 안 되죠, 누나……. 어쩌다 등급 진화가 일어난 것 아닐까요? 최근에 클리어 기록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예민과 은신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길고 긴 전투가 끝나기까지 홀로 백부장의 공격을 버텨 냈던 목수 또한 그제야 간신히 망치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수 아저씨!”
목수를 걱정한 지혜가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상처는 없으세요?”
“괜찮아, 공격이 엄청 무거워서 애를 먹긴 했다만. 그런데 이 자식 늑대도 아닌 것이 엄청 물어 대네.”
“물었다고요?”
놀은 머리가 하이에나의 그것인 만큼 무는 공격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할 수는 있지만…… 지혜는 목수의 말을 듣고 어째 조금 불안해졌다.
“아저씨, 상처 좀 봐요.”
“엇! 아니, 이 녀석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을――.”
“되도 않는 꼰대 흉내 좀 그만 내고 빨리 벗어요!”
기어이 목수가 입은 가죽 갑옷을 벗기고 상처를 확인한 지혜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해 비싼 돈을 주고 신전에서 구해 온 성수를 꺼내, 그것을 목수의 상처에 꼼꼼히 발랐다.
그러자 치직―― 소리를 내며 상처 부위에서 울컥울컥 검은 피가 흘러나와 타 버렸다.
그제야 목수 역시 자신의 물린 상처가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정색했다.
“……뭐였냐, 이거?”
“흡혈귀.”
지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던전 보스인 놀 백부장이 흡혈귀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여태껏 누구도 모르게 은밀하게.”
나라 반대편에서부터 시작된 흡혈귀들의 침공에 대한 단서를 예민 파티 또한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