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60)
나 빼고 다 회귀자-60화(60/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60)
Chapter 12. 내가 캐리한다 – 5
긴의 부모는 달이 늑대 인간의 야성을 강화하고, 이성을 앗아 간다는 점에서 결국 늑대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달을 정면에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시에 달이 늑대 인간에게 가져오는 정신적 오염 현상을 극복하고 독기를 씻어 내기 위해선 소독 능력을 지닌 은 또한 필수였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철저히 스케줄에 맞춰 달과 은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켰어요. 긴에게는 정말…… 정말 몹쓸 짓을 했죠.”
밖에선 여전히 아버지에게 혼나고 있는 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부인이 연구실의 테이블 위에 널린, 거의 20여 년에 걸친 긴의 실험 일지를 손으로 훑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긴에게서만은 늑대 인간의 굴레를 벗겨 주고 싶었어요. 보름달을 볼 때마다, 우두머리 늑대가 울부짖을 때마다 이성을 완전히 잃고 살육에 미친 짐승으로 화하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마을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 건가? 자신들이 아니라 긴을 우선시하냐는 것이다.”
기준의 예리한 질문에 파티 멤버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부인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흰 모두 같은 연구소 출신이었어요. 까마득한 오래전부터 함께 연구하고, 마법을 배우고……. 늑대 인간이 된 후로도 서로를 의지해 악착같이 살아남아 이곳에까지 이르렀어요. 이젠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죠.”
“한 가족이라.”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긴을 유독 반기며 그의 등짝을 때려 콤보 공격의 스타트를 끊었던 여성을 떠올리고 기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원래 순혈이 아닌 늑대 인간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 긴은 마을 사람들 모두의 아이나 다름없답니다.”
“확실히 놀라운 일입니다. 애초에 브리콜라카스에 물려 그들의 권속으로 전락한 이들이 가정을 이룰 자유를 얻는 것부터가 드문 일이긴 합니다만.”
“예에, 퀴노돈을 따라 도망친 이유에는 그것도 있었죠. 서로 많이 사랑했으니까요.”
허번트의 지적에 희미하게 웃으며 보충 설명을 한 부인이 다시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지금의 연구는 긴이 제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철저하게 계획하고 실험한 것이라 다른 이들에게까지 적용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긴이 인간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로 보다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우리와 다른 늑대 인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자료는 이미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으나, 연구 내용은 큰 기대를 품고 있던 아르밀카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만큼 독자적이고 특수한 것이었다.
부인이 설명했듯 긴의 출생 당시부터 철저하게 짠 스케줄로 만들어 낸 연구에 이제 와 자힐 파티가 끼어든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연구에 정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기는 한가?”
만약 인체 실험이 필요하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리라 다짐하며 묻는 기준.
다행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저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해 본 상황이에요.”
남은 건 하나, 하고 그녀가 검지를 세웠다.
“바로 달빛을 머금은 은.”
달빛으로 강화되는 늑대 인간을 억제하는 금속, 은.
그것만 보면 달과 은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달에 지배되는 늑대 인간이기에야말로 진정한 달의 힘을 이용해야만 완전히 억누를 수 있다는 이론을 세운 것이다.
이열치열과 비슷한 사이비 이론으로 느껴졌지만, 그걸 옆에서 듣는 다른 이들이 모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기준도 일단 분위기에 묻어 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올여름에는 삼계탕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기준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그때 옆에서 허번트가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정말로 있기는 합니까?”
“이 유적이라면 분명 달빛을 품은 은도 있을 거예요. 위치도 추측은 하고 있고요.”
이 유적에서만 나오는 특수한 광물인 월영석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이곳에선 유독 달의 힘이 강했다.
브리콜라카스의 도망자들이 정착하기도 훨씬 전부터 그 신비를 계속 쬐어 왔다면 은에 달의 힘이 깃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위치는?”
“이전에 저희가 은을 채취한 곳이 있어요. 그게 지도로 보면 이쯤인데…….”
부인은 유적의 지리를 제법 세밀하게 묘사한 지도를 꺼내 펜으로 중앙쯤에 과감하게 동그라미를 치더니, 거기서부터 선을 쭉 그어 아주 커다란 산맥에 이르더니 그 위에 동그라미를 두 번 겹쳐 그렸다.
“지맥을 따라 거슬러 가면 여기에 은 광맥이 있는 게 거의 확실해요. 실제로 유적을 지배하고 있는 퀴노돈 패거리도 이 산을 피하는 경향이 있고요.”
“늑대 인간을 크게 약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건 일단 확실하다는 거지…….”
“하지만 가는 길은 무척 위험할 거예요. 이 너머는 완전히 퀴노돈 패거리, 그리고―― 맹수화한 늑대 인간들에게 점령된 곳이라서, 저희는 여태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잔뜩 걱정하며 말하는 그녀였으나 정작 파티원들은 그 말을 듣고 반색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역시 핫 스팟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
“경험치는 확실히 벌어 갈 수 있겠군.”
“긴장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이제야 조금 퀘스트 같은 느낌이 나는군요.”
마지막으로 허번트가 덧붙인 말에 기준도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기준 또한 연구를 돕겠다고 끼어든 때부터 내심 이런 전개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NPC이고, 소환자는 연구에 필요한 물건들을 차례차례로 구해 오는 그런 전개.
그 와중에 유적 내부를 세밀하게 묘사한 지도까지 얻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성과였다.
“아하하…… 용감한 분들이시네요. 그래도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하세요. 이제 곧 월광이 더 강해질 시간이라, 늑대들을 상대하기엔 힘드실 거예요.”
“월광(月光)?”
기준이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의 달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는 것 아닌가.”
“맞아요. 단지 하루에 한 번씩 뿜어내는 빛이 강해질 때가 있는데, 그땐 일대에 지진이 일뿐더러 이 마을에까지 달빛이 들어온답니다.”
진짜 유적 컨셉 한 번 확실하네.
기준이 혀를 내두르고 있자니 부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여러분도 짐작하시다시피 진짜 달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 유적의 탄생과 관련된 굉장한 기물이겠지요.”
“기물! 저 달도 가져갈 수 있을까?”
“어디 한번 해 보시죠. 당신이 폴짝폴짝 뛰고 있으면 우리 눈은 즐겁겠군요.”
욕심이 수그러들 줄 모르는 아르밀카의 말에 허번트가 비웃듯이 말했다.
다시 눈싸움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놔두고 기준이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쉬었다 떠나도록 하지. 부인, 부엌을 잠시 빌릴 수 있나?”
“네? 부엌이요?”
의아함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부인.
기준은 답답한 투구를 벗어 버리며 씩 웃었다.
“그래, 어쩌면 내 요리가 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둥근 보름달을 본뜬 떡갈비다.
사실 햄버그스테이크로 할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고 조리 과정에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지만, 모처럼 많은 이를 대상으로 요리를 선보이는 만큼 저들도 모르게끔 은밀하고 음험하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그들이 먹는 것이 한국 요리임을 어필하고 싶었다.
그래서 떡갈비를 만들고자 마음먹고 나니 이번엔 기껏 떡갈비를 만드는 김에 돼지고기나 다른 야채와 섞지 않고 고급스럽게 만드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결과 담양식 떡갈비를 만들기로 최종 결론이 나, 그 비싼 소갈비를 일일이 손질해 살만 발라 내고 다지는 귀찮은 작업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
원정길에 언제 먹게 될지 모른다며 소를 한 마리 통째로 사 온 것이 다행이었다.
“우와아…… 칼을 정말 잘 다루세요, 준 님.”
“음.”
요리를 하려니 어쩔 수 없이 건틀릿은 벗었지만 다른 부분에선 타협하지 않은 기준이 기어이 갑옷 위로 앞치마를 두르고, 양손에 든 식칼을 현란하게 휘둘러 갈빗살을 다지고 있는 모습에 로라가 순진하게 박수를 쳤다.
안에만 박혀 있기 심심했던 다른 멤버들이 이 좁은 마을을 둘러보고 사람들에게 인사나 하고 오겠다며 나간 탓에, 지금 그의 파티 멤버 중에 남은 이는 로라뿐.
사실은 아르밀카도 로라 곁에 붙어 있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본 허번트와 인이 함께 끌고 나갔다.
“무기로 검을 다룰 생각은 해 보신 적이 없나요?”
“식칼과 검은 달라.”
“죄, 죄송해요. 전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괜찮아.”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수시로 비굴해지고 마는 로라가 재차 고개를 숙여 사죄하려는 것을 막아 내고.
적당히 다진 고기에 설탕과 꿀, 투리스의 수입상에서 구한 간장을 뿌려 양념하며 기준이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기 싫어 방패를 들었어. 다른 무기도 들어 봤지만―― 결국 방패가 제일 손에 익더군. 그래서 결국 스승의 도움을 받아 방패로 싸우는 법을 익혔지.”
―그 악마와의 수련을 굉장히 그럴듯하게 포장하는구나, 계약자.
루시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손으로 떡갈비를 반죽하기 시작한다.
고기를 한참 치대는데도 로라의 말이 없어 슬쩍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그의 새빨간 거짓말에 감동한 듯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기준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컨셉을 잡는 것도 잊고 중얼거렸다.
“뭐야, 왜 우는데.”
“준 님의 숭고한 결의가 느껴져서요……! 역시 준 님은 뿌리부터 영웅이시구나, 싶어서……!”
이 녀석, 혹시 기준이 무슨 짓을 했다고 한들 멋대로 그 의도를 곡해해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놓을 셈이 아닐까?
하지만 그녀의 맹목적인 존경심이 부담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제법 도움이 되었다.
‘마침 둘밖에 없기도 하고……. 로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지금 말해 두는 게 좋겠지.’
이탈리아 출생의 성직자로 위대한 신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토머스 아퀴나스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비록 아퀴나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믿음의 대상은 신이지만, 로라가 기준에게 품은 믿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
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로라는 뚜렷한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 그를 믿고 따를 터다.
“로라, 할 말이 있다.”
“네, 넵?! 뭐든지 말씀하세욧! 각오…… 준비됐습니닷!”
갑옷 위로 앞치마를 두르고 떡갈비를 반죽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가면 쓴 남자.
기준이라면 이런 사람은 딱 질색일 텐데 로라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
―벌써 결계 쳤어.
로라도 눈치채지 못하게 정령력을 활용한 방음 결계를 친다.
그녀가 무슨 말을 기대하든 그 이상으로 놀라운 말이 되겠지, 기준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는 적이다.”
“네……?”
그의 말을 듣지 못해서가 아닌, 그 내용이 너무 놀라워서 하는 반문.
그러나 기준은 그 이상 설명하지 않고 떡갈비를 치대며, 이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그러니 주의해라.”
“넵…….”
그의 진지한 어조에 농담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들었는지, 로라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곤 요리로 돌아왔다.
‘떡갈비는 이제 양념하면서 굽기만 하면 되겠어. 남은 뼈와 고기로는 국물을 내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좋겠는데.’
―국수? 야호, 계약자가 최고야!
―키히…….
기준이 파티 멤버와 진지한 얘기를 하든 말든 루시는 그저 오늘 저녁에 면류를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 날뛰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꼴을 보일 때마다 우르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째렸지만, 정작 녀석 또한 기준이 해 준 요리를 눈앞에 두면 루시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기준은 굳이 말하지 않고 있었다.
* * *
기준의 떡갈비와 국수는 물론 대호평이었다.
선택적 소식주의자 아르밀카는 이번에도 조금만 먹고 남겼지만 긴과 허번트는 그녀가 남긴 것까지 해치우곤 떡갈비를 한 그릇씩 더 요청해 올 정도였다.
“아까 무슨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알겠어요. 이 요리엔…… 놀랍게도 삿된 존재를 부정하는 힘이 담겨 있네요.”
한편 긴의 어머니는 그의 요리를 먹으며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더구나 늑대 인간으로서의 힘을 위축시킬 뿐 큰 부작용은 느껴지지 않아……. 마치 더럽혀진 영혼이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 아아.”
“큽…….”
마치 평론가라도 된 것처럼 구체적으로 기준의 요리의 효능을 설명하는 그녀와 달리 긴의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국수 그릇을 비웠다.
기준은 그 모습에 자신이 익히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장기간 먹으면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몸이 안 좋아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힘의 크기만 논했을 때예요. 전 오히려 그동안 늑대 인간의 기운에 밀려나 있던 순수한 마력이 몸에서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는걸요.”
“정말…… 정말 대단한 요리요. 설마 어둠 속으로 쫓겨난 우리가 이렇게 빛의 기운이 잔뜩 담긴 요리를 대접받게 될 줄은.”
긴의 아버지는 모든 그릇을 깔끔히 비워 낸 후 기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감사하오. 우리도 언젠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는 요리였어.”
“기회가 온다면 또 요리를 대접하지.”
그 말이 기뻤는지 기준의 손을 붙든 사내의 솥뚜껑 같은 손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그는 두어 번 힘차게 기준의 손을 흔들고는 놓아 주었다.
“보답을 해야겠어. 그렇지, 혹시 총은 좀 쏠 줄 아시오?”
“아――! 그건 안 돼요, 아빠!”
두 그릇째의 떡갈비를 깔끔하게 비우고 입맛을 다시던 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그건 저한테 주셔야죠! 사격 연습도 열심히 했단 말이에요!”
“긴? 네가 그걸 어디에 쓰게.”
“그야 저도 이분들을 따라 달빛을 담은 은을 채취하러 갈 거니까요! 몸을 지킬 무기가 필요하다구요!”
긴의 폭탄선언에 기준은 어째 그렇게 나올 것 같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그의 부모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정색했다.
“안 된다.”
“안 돼, 긴. 한 번 실패하고도 모르겠니? 넌 저들을 감당할 수 없어.”
기준은 부인이 하는 말에 긴이 단순히 식량을 구하러 나왔던 것이 아니라 혼자 힘으로 달빛을 담은 은을 구하러 나왔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요? 저도 무기만 있으면 나름 싸울 수 있다고요! 은 도끼도 문제없이 휘두를 수 있고, 총도 마찬가지예요!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단 말이에요!”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이분들이 뭘 위해 은을 구하러 가시는 줄 알아?!”
“앉아라, 긴. 넌 약해 빠졌고, 난 아들이 자살하러 가는 걸 놔둘 수 없다.”
“나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라고요――! 날 무시하고 깔아뭉갰던 놈들한테 제대로 복수하고 싶단 말이에요!”
즉석에서 벌어지는 부모 자식 간의 다툼.
지구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기준은 어딘가 향수마저 느꼈다.
물론 결말도 드라마랑 비슷해서,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부모에게 잔뜩 화가 난 10대 청소년 긴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래, 늑대 인간이라서 여태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녀석은 아직 열아홉 살인 것이다.
“어릴 땐 다들 저렇죠. 자신에게 특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시기입니다. 한 번 쓴맛을 보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굉장히 뻘쭘해진 상황을 정리해 볼 의도로 허번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하는 투로 말했지만 애석하게도 별 효과는 없었다.
소식으로 아낀 칼로리를 초콜릿으로 전부 낭비하는 게 아닐까 싶은 아르밀카는 새로운 초콜릿을 꺼내 물며 킥킥 웃었다.
“우리랑 같이 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거 아녜요? 그 꼬맹이를 지키느라 우리 전력이 줄어들 뿐인데 말이야――.”
“아르밀카.”
“아뇨, 괜찮아요. 사실이니까요.”
부인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타일러야겠어요. 저 아이는 아직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먹잇감인지 알지 못해요…….”
“나도 가지.”
“저, 저도요!”
기준에 이어 로라까지 몸을 일으키자 아르밀카가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아, 그럼 나도 로――라랑 같이…….”
“앉으시오. 도움이 안 될 테니까.”
“당신이 소년을 찾아봤자 도발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러나 곧 양옆에서 내밀어진 두 사람의 손이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혀 놓았다.
실로 든든한 파티 멤버들이 아닐 수 없었다.
피식 웃으며 집 밖으로 나온 기준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긴을 발견했다.
다행히도 이 마을에 사는 여성이 먼저 긴을 발견해 붙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요, 아줌마.
―그래도……. 네 아버…….
긴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아까 마을 어귀에서 일행을 먼저 맞이했던 그 여성인 모양.
긴을 끌어안기도 하고, 등을 퍽퍽 때리기도 하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 것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어르고 달래는 모양이었다.
“아…… 톨로메아도 참.”
긴의 어머니는 그 광경을 보곤 순간적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윽고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기준은 아직까지 충격이 덜 가셨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라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우린 방해 안 하는 게 낫겠어.”
“저 여성분은…….”
그때 로라가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긴 씨에 대한 애착이 정말 크신 것 같네요.”
“마을 사람 모두의 아들 같은 존재라고 했으니까.”
“아들이요…….”
어째선지 그 말에 로라의 낯에 그늘이 졌다.
“정말 그렇다면 대단하네요. 단지 쌓인 세월만으로 완전히 남인 사람을 아들처럼 여길 수 있다니…… 아니, 오히려 완전히 남이라서 가능한 걸까요.”
그녀의 의문이 묘하게 생생하게 들렸다.
마치 그것과 관련된 경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기준은 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표정이 멍해 보였던 것이 아까 자신과 나눈 대화 탓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고민 상담이 필요하다면 말해라.”
그가 꺼낸 말에 로라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준 님이 제 고민을? 너무 과분해요.”
“그러면 더 신경 쓰이니까 그냥 말해.”
“……!”
기준의 허물없는 말투에 로라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가는, 이내 눈매가 가늘어지며 예쁘게 초승달을 그렸다.
“그럼 나중에 부탁드릴게요. 지금은 다른 일들 탓에 정신이 없으니까요.”
“그럼 그래라.”
“아휴, 그러게 왜 저한테만 그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셔서는……!”
기준의 위로 아닌 위로에 그래도 제법 기운이 났는지, 아니면 그의 허물없는 태도에서 친근감을 느꼈는지, 로라도 제법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를 탓하며 웃었다.
루시가 그것을 보며 판정했다.
―벌써 루트 들어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우르, 네 한 몸 희생해서 태워 줄래?
―킷!
―……후후.
다음 날, 자힐 파티는 거실 기둥에 둘둘 묶인 긴이 보내는 절실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마을을 출발해 은 광맥이 있는 산으로 출발했다.
* * *
[비체♥(차원 대기실): 아, 얘 또 잠수네.] [비체♥(차원 대기실): 쭌, 넌 정말 사치스러운 남자야. 알아?] [비체♥(차원 대기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비체♥(차원 대기실): 아직 유적 안이겠지? 나도 알아. 바쁘겠지, 파티 리더면 더 바쁠 테구.] [비체♥(차원 대기실): 그래도 섭섭하다. 아무리 바빠도 한 번씩 폰도 확인하고, 나한테 메시지라도 하나씩 보내 놓고, 그럴 여유는 있지 않아? 어떻게 하루 내내 연락이 없을 수가 있어?] [비체♥(차원 대기실): 이건 안 지울 거야, 나 화났으니까.] [비체♥(차원 대기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비체♥(차원 대기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비체♥(차원 대기실): 넌 내가 얼마나 심심해하는지 깨닫고 반성할 필요가 있어.] [비체♥(차원 대기실): 그냥 심심한 거야, 알지?] [비체♥(차원 대기실): 파티 멤버들은 어때? 내가 여자 조심하라고 한 말 안 잊었지?] [비체♥(차원 대기실): 맞다, 그리고 너 조심해야 될 거 하나 더 생각났어.] [비체♥(차원 대기실): 내부 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