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66)
나 빼고 다 회귀자-66화(66/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66)
Chapter 14. 이레귤러 변이 – 1
전장에 거대한, 아주 거대한 늑대가 나타나 달을 먹어 치우는 것을 로라도 보았다.
염인 특유의 환수, 홍염수라고 불리는 거대한 고양잇과 짐승을 타고 뛰어오른 준이 전장에 있는 모든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끌어 모으는 것도 물론 마찬가지.
그녀는 기겁하며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도우러…… 도우러 가야 해요! 준 님 혼자서는 절대 못 이긴다구요……!”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아무 망설임 없이 제 목숨을 걸고 괴물을 막으려 들다니.
그의 영웅심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 사람일 줄이야.
로라는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태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결코 이런 곳에서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반드시 구해 내야만 했다.
로라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흐음, 글쎄 어쩔까?”
그러나 아르밀카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로라를 업은 채로도 그녀의 준족은 여전했고, 한 손으로 로라를 받쳐 든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길쭉한 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데도 늑대 인간들은 마치 자석에 끌려오기라도 하는 듯 연달아 목이 베여 쓰러졌다.
달이 사라지고 늑대 인간들이 일제히 약화되었기 때문일까, 아르밀카의 전투는 이미 단순한 살육이라고 불러야 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늑대 인간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달이 없으면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잖아? 열등해, 아주.”
“아르밀카, 지금 다른 늑대 인간들은 어찌 되든 좋아요. 준 님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요!”
“에엥, 굳이? 딱 봐도 우리보다 급수가 높잖아. 위험해 보이는데 그냥 우리끼리 도망치자아.”
같은 파티원으로서 파티 리더를 돕는 것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
아르밀카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는 배신 행위였다.
“어떻게…… 같은 파티잖아요!”
“아, 그러네. 취소, 취소――.”
자신의 말을 취소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파티 상태로 준과 묶여 있는 것을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직후 정말로 그녀가 파티를 탈퇴한 것인지 파티 가입 상태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파티창에서 그녀의 이름이 빠지고 없었다.
파티원의 임의 탈퇴는 전투 상황에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행동으로, 시스템상으로도 한 달간 새로운 파티를 가입할 수 없는 페널티가 주어질뿐더러 용병 길드에 속한 용병이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 활동 정지, 심하게는 추방이나 척살까지도 당할 수 있었다.
로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신.”
“아하하, 길드에서 혼날까 봐 언니 걱정하는 거니? 괜찮아, 어차피 저들은 여기서 다 죽을 텐데. 증언 같은 걸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로――라도 빨리 그 파티에서 나와.”
“아르밀카!”
“아니면 네가 죽을까 봐? 그건 더더욱 걱정할 필요 없어. 언니가 널 죽게 놔둘 생각이 없거든. 저―엉―말 반해 버렸으니까. 임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을 만큼, 후후.”
얘, 로――라.
그녀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늘여 부르며, 아르밀카가 입 꼬리를 늘려 섬뜩하게 웃었다.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듯 날카롭게 뻗어 나온 송곳니가 어둠 속에서 붉게 번뜩였다.
“혹시 내 정체를 눈치챘니?”
“읏――!”
그 순간.
로라는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미리 뽑아 두고 있던 종이를 아르밀카의 등에 붙였다.
빛이 화려하게 폭발하며 그 반동으로 로라를 허공으로 튕겨 내―― 그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오던 인이 무사히 그녀를 받아 안았다.
“로라, 괜찮나!”
“괜찮아, 오빠……. 고마워요.”
“오빠? 오――빠――?”
제 어깨에 붙어 타오르던 종이를 벗겨 내 간신히 소멸시킨 흡혈귀가.
아르밀카가 인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인이 쭉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두 사람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너 뭐야? 설마…… 나의 로――라한테 손을 댔어?”
“로라는 내 동생이다.”
만약 로라를 건드렸다면 결코 얌전히 죽이지는 않을 것 같은 살벌한 기세로 묻는 아르밀카에게 인이 묵묵히 대꾸했다.
품에 안긴 로라를 조심히 내려 주고는 봉을 사방에 휘둘러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며, 아르밀카는 멍청히 반문했다.
“동생……?”
“무슨 문제가 있나?”
“푸, 푸핫!”
그녀는 끝내 지금 상황도 잊고 박장대소했다.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무식한 오크 새끼들이 인간 여자를 납치해 노리개로 삼는다는 얘기는 들어 봤는데! 푸흣, 설마 그렇게 태어난 하프오크가 인간을 가족으로 여긴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걸! 푸흐흐흣…….”
“아버지가 같다.”
“어?”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굳어 버리는 아르밀카.
하프오크, 인이 자신이 쥔 봉 위로 밝은 빛을 피워 내며 눈을 차갑게 빛냈다.
“내 어머니가 오크라는 뜻이다, 흡혈귀.”
몇 번 보아 익숙한, 하지만 결코 반갑지는 않은 기운.
오크가 빛의 신성력을 다루고 있었다!
아르밀카는 제 눈을 믿지 못했다.
파티에 사제가 둘이었다고?
……그것도 흡혈귀에게 강한 빛을 다루는 사제가?
“우리 아버진 이슈타르의 대사제셨어요. 우리 남매가 나란히 이슈타르의 신성력을 타고난 이유이기도 해요.”
신성력으로 가득 찬 책을 펼쳐, 그 안의 종이를 수십 장 동시에 해방해 거대한 성법을 시전하며 로라가 말을 이었다.
“준 님께는 제가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거짓말을 했죠. 죄송한 일이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 덕에 당신 같은 ‘적’도 같이 속일 수 있었으니까.”
“길드는 언제나 만약을 대비한다. 네가 흡혈귀라는 건 몰랐지만―― 투리스의 영웅을 해치려 누군가 잠입해 올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지.”
“하―― 완벽히 속인 줄 알았는데 내가 속고 있었다는 거야? 그거 코미디네…… 재미없는 코미디.”
돌연 정색한 아르밀카가 피가 맺힌 손가락을 들어 도신 위를 쭉 훑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가는 부분을 따라 그어지는 혈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문자를 형성했다.
그에 따라 도신이 함께 맥박 치며 그 안에 깃든 힘을―― 흡혈귀 고유의 능력인 ‘혈력’을 불려 갔다.
“이슈타르시여! 당신의 빛으로 더러운 어둠을 붙들어 녹이소서!”
“아――하!”
때마침 로라의 성법이 완성되어 나타난 황금의 고리가 일대를 둘러싸고 범위를 좁혀 오며 아르밀카의 움직임을 속박하려 들었으나, 놀랍게도 그녀는 성법에 절반 이상 저항해 냈다.
“내가 왜 인간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겠어? 로――라, 그건 내가 흡혈귀 중에서도 특히나 빛에 강하기 때문이야.”
서로 완전히 적대하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직 그녀는 로라에게만큼은 상냥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라는 그 점이 너무나 소름 끼쳤다.
“역시 우린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렇지?”
“…….”
로라가 대답하지 않고 추가로 몇 장의 종이를 더 불살라 성법을 강화해도, 아르밀카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어 보이곤 칼을 들어 인을 겨누었다.
어느덧 붉게 물든 그녀의 두 눈이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방해꾼들을 정리하고 나면 둘이서 진득하게 얘기하자. 그래, 우리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좋겠어. 너를 내 혈족으로 만들고 나면, 둘이 함께 영원을――.”
“닥쳐라, 흡혈귀!”
더는 그녀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 인이 봉을 앞세워 돌진했다.
―까아아앙!
빛을 가져오는 샛별의 여신, 이슈타르의 힘으로 강화된 강철봉과 흡혈귀의 혈력이 담겨 강화된 칼이 충돌하며 끔찍한 반발력을 일으켰다.
인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고, 아르밀카는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선 채 손아귀를 털었다.
대지를 단단히 딛고 다시 한 발짝 나서는 인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큭……!”
“너희가 준비해 봤자야.”
그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단숨에 꿰뚫어 본 아르밀카가 히죽 웃었다.
“너흰 늘 그래. 내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아채면 뭐 하겠어, 날 막아 내지도 못하는데. 안타깝지만 그게 한계야.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인지를 넘어서는 속도로 내쏘아진 칼끝이 인이 반사적으로 내민 강철봉을 기어이 동강 냈다.
그 안에 깃들었던 빛이 폭주하며 아르밀카를 덮쳤으나 그녀의 몸을 감싸듯이 일어난 피의 보호막이 빛을 막아 내며 증발했다.
보호막이 사라지고 드러난 아르밀카의 모습은 지나치게 멀쩡해서, 과연 그녀가 흡혈귀가 맞기나 한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바로 어둠으로 오는 거야. 물론 이건 우리 로――라 얘기. 너 같이 더러운 오크에게는 기회를 줄 생각도 없어――!”
마치 펜싱이라도 하듯이 칼끝을 세워 재차 그것을 쏘아 내는 아르밀카.
로라가 성법으로 빛의 방패를 만들어 냈으나 그것은 아주 잠깐 아르밀카의 칼날을 붙들어 멈추는 데 그쳤다.
인의 목을 꿰뚫으려던 칼이 그의 팔에 구멍을 내놓는 것으로 끝났으니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 능력, 잊었어?”
“잊지…… 않았다……!”
비죽 웃으며 자신을 비웃는 아르밀카에게 인이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칼에 꿰뚫린 그 순간, 상처 부위에서부터 피가 급속도로 썩어 그의 심장을 향해 역류했으나―― 인은 자신의 신성력을 끌어 올려 그것을 모조리 정화해 냈다.
그리곤 오히려 아르밀카에게 한 발짝 더 나아가며 자신의 팔을 관통한 칼날을 강하게 잡아 쥐는 것이 아닌가.
“잡았, 다……!”
“무식한 오크. 역시 우리 로――라를 위해서도 넌 빨리 죽는 게 낫겠어.”
그의 끈질긴 저항에 질린 것일까,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리며 칼을 쥔 손에 힘을 더하는 아르밀카.
“죽어 줘, 어서. 로――라가 나를 기다리잖아.”
“죽는 건 당신이야!”
로라의 뾰족한 목소리.
그것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까르르 웃던 아르밀카는 문득 달이 사라져 까맣게 물든 하늘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하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 해도 어느덧 칼을 넘어 그녀의 팔을 움켜쥔 인이 강하게 그녀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놔……!”
“사랑의 여신인 이슈타르여, 나를 거부하는 여인이 마음을 바꾸어 내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사랑?! 웃기지 마, 오크 따위의 사랑을 받아 봤자 기쁘지 않아! 놔――!”
인의 신성력은 아르밀카의 상상 이상으로 끈질겼다.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가는 피를 정화하기만도 바쁠 터인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슈타르의 성법을 발해 그녀의 움직임을 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녀는 인의 얼굴이 꺼멓게 물들어 가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하프오크는 지금 자신의 피를 정화하는 것조차 포기하고 그녀를 붙드는 데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너…… 죽으려고?”
“동생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인이 히죽 웃은 다음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빛의 창이 아르밀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했다.
“카학――!”
아르밀카가 대량의 피를 토했다.
피는 흡혈귀의 힘의 원천.
본디 인과 로라가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던 상대인 그녀가 피를 잃고 급속도로 약화되어 갔다.
사실, 아무리 상성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는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빌어먹을 남자……! 그 망할 요리 때문에……!’
기준이 만들어 낸 빛의 힘이 잔뜩 담겨 있던 요리를 떠올린 아르밀카가 이를 박박 갈며 그를 저주했다.
위험성을 눈치채고 최대한 피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먹어야 했고, 그 결과 빛 저항력이 약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의 요리를 모조리 먹어 치운 인과 로라는 반대로 빛을 다루는 능력이 증폭되어 있는 상황.
“죽어!”
로라의 새된 외침과 동시에 재차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저것에 당하면 이 육신은 소멸할 것이라고 아르밀카는 확신했다.
인에게 붙들린 칼을 미친 듯이 흔들고 익숙하지 않은 혈 마법까지 구사해 어떻게든 그를 떼어 놓으려고 해도 그는 태산처럼 꿈쩍도 않고 버텨 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빛의 창이 떨어지기 직전에―― 눈을 부릅뜬 인이 다급히 그녀를 놓고 몸을 내던졌다.
이제 와 죽음이 두려워지기라도 한 것일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로라!”
“꺅?!”
인이 로라를 껴안고 자리를 피한 직후, 그녀가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한 명의 늑대 인간이 쾅! 소리를 내며 착지한 것이다.
인이 떨어져 준 덕에 빛의 창을 피하고 육신을 지켜 낸 아르밀카가, 격전의 충격으로 머리가 풀려 산발이 된 채 가만히 놈을 응시했다.
이 유적에 들어와 보았던 어떤 늑대 인간보다도 거대한 덩치.
칠흑으로 물든 체모, 위협적인 근육질.
무엇보다도 흡혈귀인 자신이기에 느낄 수 있는, 무수한 생명을 취한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짙은 혈향――.
“너…….”
아르밀카는 바닥을 구르던 칼을 빠르게 주워 들고 놈을 겨누었다.
곁눈질로 로라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 빌어먹을 오크가 자신의 몸을 쿠션 삼아 지켜 냈는지, 다행히도 로라 본인은 멀쩡한 모습.
오크 본인은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죽어 줬다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고.
이대로 로라를 챙겨 도망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눈앞에 나타난 늑대 인간이 그렇게 놔둘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싸우는 수밖에.
“네가 퀴노돈이구나?”
―그래, 그리고 너흰 인질이지.
브리콜라카스에 복수하고자 하는 늑대 인간들의 우두머리, 퀴노돈이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위대한 복수를 위해, 새로운 진화를 위해. 너희가 희생해야겠다.
“쿠흐, 인질? 왜 인질이 필요한지는 몰라도오, 내가 우습게 보였나 본데――.”
아르밀카는 깔깔 웃으며 칼을 들어 바닥에 푹 꽂았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아르밀카의 피가 방울방울 솟구쳐 올라 그녀의 칼날에 흡수되며 이윽고 도신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수작을 부리게 놔둘 것 같나――!
“하!”
바닥을 박차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퀴노돈이 검고 음산한 기운을 뿌려 내는 손톱을 휘둘러 왔다.
아르밀카는 붉게 물든 칼날을 세워 그것을 막아 냈으나,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대항하기엔 터무니없이 무거운 일격에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금방 끝내 주마――!
“너…….”
흰자까지 싯누렇게 물든 늑대 인간의 더러운 눈을 마주하며 아르밀카는 조용히 속삭였다.
“여태 숨어 있던 거지? 정면에서 날 이길 자신이 없으니, 내가 죽기를 기다려 로라를 납치할 셈이었던 거잖아. 그치?”
―대업을 위한 인내였지.
“겁쟁이일 뿐이란 변명을 길게도 하네, 읏!”
―크르르르……!
그녀의 말에 찔리기라도 했는지 놈이 거세게 아르밀카를 찍어 눌렀다.
애써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지으면서도 아르밀카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태로 놈을 이기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로라를 버리고 혼자만 도망칠 생각은 결코,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함께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놈을 여기서 쓰러트려야만 한다.
어떻게?
―칵!
그 순간, 섬광처럼 날아든 빛의 창이 늑대 인간의 등에 꽂혔다.
흡혈귀에게 유효한 만큼이나 늑대 인간에게도 유효한 빛의 성법이 퀴노돈의 마력을 갉아먹고 놈을 약화시켰다.
아르밀카는 놈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타이밍을 노려 잽싸게 놈의 팔을 베어 내고는 뒤로 물러서며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로――라! 고마워, 사랑해――!”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손에 빛을 발하는 종이 몇 장을 뽑아 쥔 로라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을 보호하듯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는데, 다 죽어 가는 하프오크의 가슴팍에 신성력이 깃든 종이 한 장이 붙어 타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오빠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저 개새끼가 준 님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니까. 착각하지 말고 목숨 바쳐 싸워요, 흡혈귀!”
조금 전까지 목숨을 걸고 치고받던 상대와 힘을 합쳐야 한다니 이런 코미디가 또 있을까.
하물며 자신을 노리는 흡혈귀를 도와야 한다니!
하지만 아무리 냉정히 생각해도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오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준 님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로라는 이를 악물고 적과의 공투를 결심했다.
“하아, 물론이지.”
로라가 감정이 격해져 험한 말을 내뱉는 모습마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달뜬 숨을 토한 아르밀카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적을 마주했다.
“로――라를 내 혈족으로 만들기 전까진, 결코 죽을 수 없지만 말이야……!”
―크아아아아아!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 인류와 흡혈귀와 늑대 인간.
혼돈에 찬 전투가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