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
나 빼고 다 회귀자-7화(7/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7)
Chapter 2. 나만 보이나 봐 – 2
부모님이 그의 이름을 준이라 붙인 것은, 무슨 일을 하든 남들을 따라가기보단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스스로의 정의에 맞게 행동하라는 뜻에서였다.
타인이 닮고자 하는 모범, 상징이 되는 하나의 기준이 되라는 뜻 또한 있었다.
그야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어쩌면 준이라는 외자 이름이 예뻐서 붙였다가 나중에 그럴싸한 썰을 하나 덧붙이신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준은 부모님이 자신의 이름에 담아 준 뜻이 무척 감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멋들어지게 살기에 세상은 너무 힘겨웠다.
타인의 기준이 되기는커녕, 남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을 따라가기만도 벅찼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행동하기엔 역풍이 너무 거셌다.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에게 맞춰 주는 법을 터득하고서야 간신히 그는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그건 이세계로 끌려와서도 마찬가지.
남들에게 맞춰 주기 위해 뾰족하게 튀는 무기가 아닌 둥글고 넓적한 방패를 골랐다.
자신에게 전투의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흥분했지만, 또 역풍에 맞을까 지레 겁을 먹고 송곳처럼 튀는 것을 경계했다.
두루두루 맞춰 주기만 할 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두려워 피했다.
표준에 맞추려 급급할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개성, 기준.
특별함.
그게 자신에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더는 괴롭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충분히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마왕과 단둘이 남게 되면서, 그는 싫어도 홀로 설 수밖에 없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
그의 길었던 정신적 도피는 비로소 완전히 끝이 났다.
―조심히, 조심히 만져 줘…….
“이게…… 폭주한 정령이라서 목소리가 들리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너 바보야? 그게 영감이라는 거야. 곧 부가 스테이터스를 개화하겠는데?”
와, 이게 이런 데서 당첨이 되네―― 하고 마왕이 스스로도 신기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태도가 역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해 주는 듯해 실감이 확 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특별함.
정령사로서의 재능.
그게 나한테 있다고?
“참, 지구도 버릴 문명은 아녔구나. 가뜩이나 다른 재능도 뛰어난데 정령술의 소질까지 있다니.”
“마왕…….”
정말 가능할까?
영감만 있고 나머지 재능이 꽝이라 결국 정령을 다룰 수 없는 것 아닐까?
이제 와서 정령과 계약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따위의 생각을 떠올린 기준이었으나,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왕을 보며 그런 생각을 꾹 눌렀다.
자신을 응원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런 나약한 마음가짐은 버려야 했다.
기준을 세우자.
굳이 스스로를 깎아 내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마왕, 나 정령술 좀 가르쳐 줘.”
“부탁하는 거 뭐야, 낯설게.”
마왕은 킥킥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미안, 정령술은 나도 못 다루는 거라. 그래도 마침 잘됐잖아. 여기 정령도 있겠다, 폭주한 정령을 진정시켜서 계약할 수 있게 된다면 정령술은 굳이 남한테 배울 것도 없지 않을까?”
“그게 쉽냐?”
“그럼 정령술이 쉽겠니?”
―아아악! 뿔 달린 여자! 저 여자 싫어!
괜히 손가락을 뻗어 큐브를 툭 건드린 마왕이, 재차 발광하는 정령과 그런 정령을 달래려 애쓰는 기준을 바라보며 재차 선언했다.
“그래도 선후를 헷갈리지는 마. 일단은 재주의 등급 업부터. 정령술은 그다음에 따로 시간을 내서 익히는 거야.”
“알겠어, 후딱 끝내 주지.”
“하, 명색이 튜토리얼 최종 던전의 함정인데 함정 해체도 없는 네가 후딱 끝내 봤자…….”
진지해진 분위기를 완전히 풀어 버릴 겸 농담하던 마왕은, 기준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루빅큐브를 맞추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정령술을 수련하지 않은 지금 정령의 폭주를 막을 방법도 없을 텐데, 지극히 대담하지만 섬세한 손놀림으로 정령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며 큐브를 맞추고 있었던 것.
물론 정령을 보고 듣는 재능이 영향을 끼치기야 했겠지만, 이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혹시 얘…… 원래 재능은 재주 쪽에 있었던 건가?’
그리고 굉장히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건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기준은 원래 파티의 전열을 담당하던 탱커.
즉 맞는 게 일이었고, 내구가 가장 잘 오르는 게 당연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개같이 굴러가며 키운 내구를 딱히 집중적인 수련도 하지 않은 재주가 따라잡을 지경이었으니, 재주와 관련된 재능이 뛰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 생각해 보면 요리나 도축도 재주에 영향을 받는 스킬이지. 이 정도면 정말 괜찮네. 재주가 태생적으로 언커먼 등급이나 그 이상이었더라면 좀 더 빨리 알아봤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스테이터스는 후천적인 환경 변화나 감정 요인에 따라 잠재력이 줄어들기도 하는 만큼 기준의 재능이 부족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또 그런 식으로 줄어든 잠재력은 적절한 환경을 갖춰 주면 금세 다시 멋지게 피어나기도 하고.
기왕이면 기준이 이곳에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개화시켰으면 좋겠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마왕은 집중하고 있는 기준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났다.
기준이 큐브를 모두 맞추고, 재주의 등급을 언커먼으로 성장시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후의 일이었다.
―소중히 다뤄 줘서 고마워……!
“너도 고생했어, 정령아.”
그 두 시간 동안 기준은 정령과 제법 친해졌다.
큐브를 맞추는 동안 정령이 폭주하지 않도록 꾸준히 말을 걸어 주고 달래다 보니, 오랜 세월 큐브 안에 봉인되어 있던 정령도 기준에게 제법 마음을 허락한 것이다.
“뭐야, 진짜 끝났다고?”
마력으로 빚어낸 카드로 혼자 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던 마왕은 기준이 재주 등급 업을 마치고 정령과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곤 성을 무너트려 버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데.”
“스승이 훌륭한 것 아닐까.”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아부의 특징은 대개 그 속내가 빤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부를 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가.
그건 아부는 속이 빤히 보여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마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음은 뭐지? 뭘 성장시키는 게 좋을까.”
그러나 잔뜩 기분이 좋아진 마왕이 손뼉을 치며 스승 모드에 돌입한 순간, 기준은 자신이 지뢰를 밟았음을 깨달았다.
짧은 내적 갈등 직후 진실을 숨기기로 결심한 기준은 빛의 정령이 봉인된 루빅큐브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정령술을.”
“상태창하고 스킬창 열어 봐.”
“젠장…….”
―어어?
모든 것을 포기한 기준은 루빅큐브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는 얌전히 스킬창을 열었다.
끈질긴 재생이 99레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마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너 진짜 굴리는 맛이 나는구나. 처음엔 장기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유니크 스킬을 만들 수 있게 되다니.”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선배님.”
“아냐, 넌 이미 만들기 시작한 케이크야. 멋지게 구워 내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지.”
주먹을 내지를 준비를 하던 마왕이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재생을 키우는 거잖아? 그럼 재생을 더디게 하는 디버프를 걸어 주는 쪽이 도움이 될 것 같네.”
“효과적일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끈질긴 재생은 그의 명줄을 여기까지 지탱해 온 스킬.
그 스킬을 반쯤 봉인하겠다는 마왕의 말에 잔뜩 긴장하며 몸을 굳힌 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일어나 절로 마왕의 마력을 튕겨 내는 느낌이 들었다.
―레전더리 스킬 [고장 나지 않는 체내 시계]가 체내 재생력 간섭에 저항합니다.
―저항 대성공. 레어 스킬 [끈질긴 재생]에 긍정적인 보정이 주어집니다.
“어?”
“어라?”
기준과 마왕의 목소리가 겹쳤다.
물론 그는 자신이 타고난 스킬이 온갖 디버프에 저항하게 해 주는 스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설마 마왕이 직접 시전한 디버프를 튕겨 낼 줄이야.
그리고 그로 인해 끈질긴 재생에 보정이 주어질 줄이야.
설마 이게 레전더리 등급이 되며 추가된 효과일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평생 버프 없이 살아야 할 거라는 판단은 철회다.
“마왕, 지금 나 때려 봐. 평소보다 조금 세게.”
“아니 잠깐만, 용사. 너 방금 내 디버프 튕겼는데?”
“그리고 그만큼 재생에 보정이 더해졌어. 버프 같은데…… 일단 때려 봐.”
“그게 무슨 사기 스킬…… 아니, 사기 스킬 맞지 참.”
어쩌다 기준이 자신과 함께 이 세상에 남겨졌는지를 새삼 깨달으며, 마왕이 주먹을 내질러 그의 배를 꿰뚫었다.
힘 조절을 잘못한 탓에 완전히 뚫지 못하고 그의 복부에 주먹이 박혀 버렸다.
“너…….”
기준이 복부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게 더 아픈 거 알지……?”
“으아 미안, 근데 나도 이거 지금 느낌 엄청 이상해……!”
다급히 주먹을 빼낸 마왕이 찝찝함에 손을 털어 내는 사이 재생이 진행되었다.
마왕의 공격을 받아 내는 순간부터 피격 부위의 실시간 재생으로 데미지를 줄이는 것도 모자라 눈에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복부를 메꾸는 모습.
그것을 보며 마왕도 눈을 빛냈다.
“미안한데 지금 다시 간다?”
“와라.”
마왕의 디버프를 튕겨 내고 역으로 그의 재생에 보정이 걸린 지금, 재생 스킬이 하나의 벽을 넘어서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준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보정이 풀려 버리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극을 주어야만 했다.
그는 아예 눈을 질끈 감아 버렸고, 마왕은 예고 없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이번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실하게 복부를 관통했다.
“끄으으으윽――!”
―안 돼, 어떻게 해……!
기준이 이를 악물고 흘리는 신음에 바닥에 놓인 루빅큐브가 괜히 진동하며 발광했다.
기준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큐브 안에 봉인되어 있던 정령이 기준과 교감을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마왕은 기준의 고통에 격하게 반응하는 큐브를 보며 어쩌면 이게 정령술을 습득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한 번에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스승님이란 말인가!
“용사, 지금부터 연속으로 갈 테니까 죽을 것 같으면 손 들어야 한다?”
“그거 손 들어도 안 멈출 거잖아!”
“어떻게 알았지?”
“치과에서 들었어! 아아악!”
―퍼버버버벅!
의사 선생님이 양손을 구사해 기준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재생 하나만 믿고 버틸 상황이 아니라 요차불피, 금속화까지 동원해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내려 애썼지만 저항이 허무하게 몸에 뻥뻥 구멍이 뚫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상처를 입을 때마다 끈질긴 재생 스킬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상처를 수복했으나 그것을 모르는 정령은 루빅큐브를 아예 폭발시킬 기세로 발광했다.
―그러지 마! 그 사람 때리지 마!
“이러다 진짜 죽겠는데? 용사, 괜찮아?”
“끄아아아아아아!”
아무리 상처가 재생되고 있어도 고통마저 지워 낼 수는 없다.
그 와중에 재생의 피로감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으니 이게 지옥이 아니면 뭐가 지옥이겠는가.
―안 돼…… 안 돼! 그 사람 괴롭히지 말라니까!
큐브는 점점 거세게 반응하더니 이젠 아예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고, 마왕은 그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한계를 넘어 고통스러워하는 기준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기는 했지만…… 이것도 전부 그를 위해서라는 생각에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악역은…… 익숙하니까……!
“용사 이러다 진짜 죽는다. 진짜로……!”
“으아아아아아!”
기준이 그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절규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버티고 선 그 순간.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끈질긴 재생] 스킬이 강한 의지에 반응해 기적을 이뤄 냅니다. 모든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끈질긴 재생] 스킬이 한계를 초월해 유니크 스킬 [급속 재생]으로 성장했습니다!
첫째는 마왕의 공격에 파열되었던 기준의 전신이, 마치 시간을 되감기라도 한 듯 한순간에 원상태로 복구된 것.
비단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의 재생 스킬이 벽을 완전히 넘어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나와 계약해서 저 사악한 악마를 물리치자!
둘째는 큐브가 산산조각 터져 나가, 그 틈에서 찬란한 빛에 감싸인 정령이 모습을 드러낸 것.
마왕에게는 그게 커다란 빛 덩어리로 보였지만 기준은 흰 비단 드레스로 몸을 감싼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게 폭주한 정령이라고? 대체 어딜 봐서?
―어서 내 손을 잡아! 부탁이야……!
절실한 목소리로 외치는 빛의 정령.
이쯤 되니 기준도 그녀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마왕이 만들어 낸 이 거대한 흐름에 망설임 없이 올라탈 때였다.
―좋아, 잡았어!
그가 내민 손이 정령의 손을 단단히 붙든 그 순간.
사람과 정령의 영혼이 끈끈하게 결속되며, 기준 안에 잠들어 있던 하나의 가능성이 완전히 눈을 떴다.
―레어 등급의 스테이터스 [영력]을 각성했습니다! 영력은 영적인 존재와 소통하며 상호 간에 영향을 끼치게 해 주는 힘으로, 영력이 높을수록 그들과 보다 깊이 교류하며 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영력(R)이 10이 되었습니다.
―빛의 정령과 계약하여 레어 등급 스킬 [빛의 정령술]을 얻었습니다! 폭주한 정령을 달래고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하여 빛의 정령술 스킬에 보정이 크게 주어집니다. [빛의 정령술] 스킬의 레벨이 19 올라 20레벨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