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Else is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1)
나 빼고 다 회귀자-71화(71/356)
◈ 나 빼고 다 회귀자 (71)
Chapter 14. 상봉의 오류 – 1
눈을 뜬다.
감았다가 다시 뜬다.
눈앞이 검어 밤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카르밀라의 검은 눈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로――라, 내게로 올 준비가 됐어?
감히 도망칠 수도 없게 자신만을 똑바로 주시하는 매혹적인 눈이 점차로 붉게 물들어 간다.
붉은 루비 같은 그 눈을 톡 찌르면 피가 흘러나올 것만 같아, 압도된 로라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탐닉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뒤늦게 깨달았다.
―도망치지도 않고, 착하다.
그녀가 요염하게 웃는다.
황금이 섞인 밤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로라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자신의 머리칼과 함께 엮으면 폭신한 이불이 될 것 같다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로――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 나와 같이 되길 원했던 거야…….
그녀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오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이지만.
어딘가 선명하지 않은, 둥실둥실 뜨는 감각 속에 로라는 그랬던가―― 하고 납득하고 말았다.
카르밀라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벌려 비죽 솟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빨리 다시 만나고 싶어. 우리 하나가 되자――.
푹, 섬뜩한 소리를 내며 목에 꽂히는 그녀의 송곳니.
아주 약간의 고통, 그리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강렬한 쾌감이 함께 찾아오는 것을 느끼며 로라는 전율했다.
아아, 흡혈귀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몰라――.
거기서 완전히 눈을 떴다.
“…….”
낯선 천장이다.
잠시간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로라는 이윽고 이불을 들어 올리고 안을 확인했다.
안심하며 이불을 내리고 고개를 들자 그곳에 이복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무척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를 보며 로라는 정색했다.
“오빠, 실망했어요.”
“아니, 아니다, 로라.”
하프오크 봉술사 인이 다급히 변명했다.
“네가 계속 깨어나지 않고 있어서 상황을 보러 온 것뿐이야!”
“제가? 분명히 아까 일어났…… 아아.”
일어나자마자 코앞에 있는 기준의 얼굴을 보고 바로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났다.
그 굴욕적인 기억을 떠올리곤 곧장 일어나 벽에 이마를 쿵쿵 박으려는 그녀를 인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
“여긴 준의 집이다! 무너트리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날 거다!”
“준 님의 집?!”
다행히도 로라는 그 말에 완전히 얌전해졌다.
정확히는 자신이 그의 집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닫곤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을 뿐이지만.
하지만 설마…… 설마 준 님이 매일 이 침대에서?
내가 그 침대에서!
“진정했나?”
“잠깐만요, 시간을 좀 주세요……!”
로라는 마악 부풀어 오르려던 망상을 애써 가라앉혔다.
준 님과 관련된 생각을 지워 내는 것이다, 모조리!
……덤으로 카르밀라에 대한 생각도 지워 냈다.
“좋아요, 이제 얘기해 봐요.”
“그럼 지금 네 상태에 대해 얘기하겠다.”
이어지는 인의 설명을 로라는 제법 침착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게 되리라는 것은 흡혈을 당하는 순간 각오했던 바였고, 눈을 뜨고 일어나는 순간 몸이 묘하게 가볍고 힘이 넘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으니까.
순수한 흡혈귀가 아니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으니,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자신의 체내에 흐르고 있는 이슈타르의 신성력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제가…… 자아를 잃으려던 순간에, 준 님이 저를 지탱해 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흡혈귀가 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음, 그럴 수 있다. 나도 가끔 아버지의 기척을 느낄 때가 있지.”
“준 님이 죽은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 말아욧!”
인의 설명은 그 뒤로도 조금 더 이어졌다.
일단 투리스로 복귀하긴 했으나 외부 도시로부터 유입된 두 명이 고스란히 죽어 나가는 바람에 길드에 설명이 불가피했던 것.
준은 우니카와 함께 영주를 만나 함께 용병 길드로 향했고, 파티원들은 우선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끔 조치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일행 중 한 명은 늑대 인간이었고, 한 명은 흡혈귀에 물렸으니 이대로 해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늑대 인간이라면 그 소년…… 긴인가요?”
“다른 늑대 인간은 모조리 죽고 그 혼자 살아남았어. ……아마 앞으로 준과 함께하게 될 것 같다. 은의 특질을 얻어 늑대 인간만이 아니라 흡혈귀를 상대로도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같으니.”
“그런가요…….”
로라는 하필이면 이 시기에 자신과 비슷하게 종족이 변이된 그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둘 다 흡혈귀를 상대로 활약할 수 있으니.
어쩌면 이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로라와 긴, 두 명이 힘을 합쳐 준을 보좌하라는 이슈타르 님의 계시가 아닐까.
“만나 보고 싶네요.”
“들어오라고 할까?”
“미쳤어요?! 옷 입고 제가 만나러 나갈 거예요, 이제 오빠도 방에서 나가요!”
“어릴 땐 내가 기저귀도 갈아입혀 줬는데…….”
“나가욧!”
투덜거리는 하프오크를 쫓아낸 로라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보곤 기겁했다.
원래 그녀는 선천적으로 레어 등급으로 타고나 지금은 유니크 등급에 이른 신성력과 레어 등급의 매력을 제외하면 나머지 스테이터스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로라 니르(18년 차): 샤무-레타 혼혈 2세] [칭호 ― 성녀 후보(Rare), 자애의 치유사(Rare), 모순의 종자(Rare), 엘더의 혈족(Unique)] [혼몽인(R) 이슈타르의 사제(R) Lv54] [근력(R) ― 13+5] [재주(R) ― 8+5] [내구(R) ― 11+5] [신성력(U) ― 1+15] [매력(R) ― 66+15] [혈력(R) ― 25+25]근력과 재주 내구가 모두 레어 등급까지 끌어 올려진 것은 물론이고 새로이 혈력이란 레어 등급의 스테이터스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그 반대급부로 신성력은 유니크 등급의 최저 수치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그녀가 얻은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지나치게 적은 대가였다.
‘인간들은 스테이터스 등급을 올리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흡혈귀는 이렇게 간단하게.’
분명 자신의 스테이터스임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그것을 보며 허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러니 빛의 진영이 어둠의 진영을 숫자로 완전히 압도해도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밀리기까지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기엔 그녀의 착각이 다소 섞여 있었는데, 흡혈귀가 된다고 아무나 이렇게 강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카르밀라라는 고위 흡혈귀가, 쉽게 만들어 낼 수 없는 분신의 피를 모조리 소모해 가면서까지 그녀를 자신의 직계 혈족으로 만들고자 했기에 이런 기적적인 성장이 가능했던 것.
카르밀라는 로라의 생각보다, 아마 그 누구의 생각보다도 훨씬 고위에 해당하는 흡혈귀였다.
그 증거가 바로 이번에 로라가 얻은 ‘엘더(Elder)의 혈족’이라는 유니크 등급의 칭호였으나, 그녀는 워낙 신경을 쓸 데가 많아 그 칭호까진 차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족도…… 바뀌었어.’
혼몽(昏懜)인이라.
흡혈귀에게 물리는 꿈을 꾸다 깨어난 로라로선 감히 뭐라 토를 달 수도 없는 이름이다.
그나마 이슈타르의 사제직을 박탈당하지 않은 데 감사해야 할까.
그녀는 종족의 이름값을 하려는지 아직까지 혼탁한 사고를 부여잡으려 애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게 와. 영원히 함께하는 거야.
“시끄러워!”
꿈을 떠올린 탓일까,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카르밀라의 목소리에 악을 지르던 로라는 이곳이 준의 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곤 정신을 번쩍 차렸다.
‘휘둘리면 안 돼, 침착하자. 흥분할 필요 없어, 준 님이 나를 지켜 주실 거야……. 그때 그랬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 로라는 후우, 깊은숨을 토해 내곤 인벤토리 안에 있던 새로운 사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던 중 침대맡에 놓인 고급스러운 비단 주머니를 발견하곤 움찔했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카르밀라가 자신에게 남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대로 버려야 할까, 망설이다 결국 주머니를 열어 본다.
역시나 고위의 공간 마법이 걸려 있어 내부가 크게 확장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카르밀라가 식사를 남기는 와중에도 줄곧 입에 달고 있던 초콜릿이었다.
섀도 스토커, 루스벤과 이걸 사이좋게 나눠 먹는 모습을 보곤 역시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설마 둘이 나란히 흡혈귀였다니.
‘아…… 이거.’
흡혈귀의 피를 얻어 종족이 변한 지금에서야 로라는 이것이 단순한 초콜릿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 그것도 사람의 피를 섭취하기 편하게 초콜릿과 섞어 가공한 것이다.
“우욱!”
그걸 깨달은 순간 치미는 구역질에 잠시 웩웩거리던 로라는 곧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초콜릿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 초콜릿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보다 먼저, 이것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자기 자신에게 역겨움이 치밀었다.
흡혈귀가 되지 않았다며 내심 안도하던 자신에게 억지로 현실을 들이미는 초콜릿의 존재가, 자신에게 이것이 필요할 줄 알고 친절하게 주머니를 남기고 떠난 카르밀라가 밉다.
그러나 이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차마 다른 누군가의, 무언가의 피를 빨아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 그녀에게는, 당장 이 초콜릿만이 구원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이것은 기만이다.
사람의 피를 직접 빨아먹든, 피를 뽑아내 초콜릿으로 만들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고 고통스러워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데.
피를 마시는 것은 거부하면서, 단지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초콜릿을 먹는 것은 아주 뻔뻔하고 역겨운 짓이 아니겠는가.
“……맛있어.”
그것을 알면서도, 흡혈귀의 본능을 이겨 내지 못한 로라는 결국 초콜릿의 포장을 뜯어 작게 조각을 내어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걸리는 미소에 흠칫해 애써 무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결국 초콜릿 하나를 다 먹어 치우고 말았다.
‘그럼 나머지는…….’
초콜릿에 섞인 피를 섭취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맑아진 로라는 마음 한구석에 부채감과 죄악감을 안으면서도 한결 나아진 컨디션으로 주머니 속 내용물을 살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새빨간 드레스였는데, 풍성한 이브닝드레스가 아니라 입고 전투까지 벌일 수 있게끔 무릎 아래를 과감하게 잘라 내고 몸에 쫙 달라붙는 소재로 만들어 몸매를 강조하는…… 그야말로 카르밀라의 취향이 듬뿍 담긴 드레스였다.
하지만 유니크 등급이었고, 이것을 착용하는 것만으로 모든 근접 스테이터스와 더불어 혈력까지 오르는 굉장한 옵션이 달려 있었다.
“이, 이 변태 같은 여자가……!”
당장 이 요망한 옷을 찢어 버려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성능을 생각한다면 이건 지금의 자신에게 적절한 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갈아 떠오르며 로라를 번뇌에 빠트렸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생각은 뒤이어 나온 것을 확인하곤 씻은 듯이 사라졌다.
우선 빨간 드레스에 무척 잘 어울릴 듯한 망사 스타킹, 유니크 등급이나 세트로 착용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음.
‘세트?’
뒤이어 나온…… 그것과 한 세트로 구성된 가터벨트.
유니크 등급, 세트 구성.
“……파, 파렴치해.”
로라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그것을 보다가는 이윽고 가터벨트와 스타킹을 광속으로 주머니 안에 처박았다.
드레스까지는 어떻게 용납해도 저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평생 사제복을 두르고 살아온 자신에게는 너무나 허들이 높았다!
아무리 성능이 탁월해도, 혈력과 스테이터스를 증폭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로 민첩성을 더해 주는 스킬을 구사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해도!
이걸 입으면 준 님께 더욱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카르밀라아아……!”
감히 자신에게 이런 끔찍한 번뇌와 고통을 안겨 주다니!
반드시 직접 찾아가 찢어 죽이고 말 테다!
잠깐, 직접 찾아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생각에 이른 순간 로라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 보면 카르밀라는 로라를 흡혈하며 꾸준히 자신에게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오늘 꾼 꿈에서도, 심지어 깨어난 후에도 자신에게 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단순한 유혹의 속삭임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목소리가 자신을 카르밀라가 있는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지금 카르밀라가 있는 곳을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거, 이건 준 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만약 흡혈귀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놈들의 본거지를 직접 찾아내 소탕할 수 있다면.
물론 그곳엔 흡혈귀들이 득실거릴 테고, 놈들이 더 강한 환경일 테지만.
그럼에도 왕국이 습격을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조건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터였다!
준 님도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말씀드려야 해, 바로!’
마음이 급해진 로라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문 옆에 세워진 핏빛의 도를 발견하곤 멈칫했다.
카르밀라가 아르밀카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파티에서 활약하며 다루던 그 도는 무수한 격전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 나가지 않은 채 예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그녀의 피를 잔뜩 머금어 영구적으로 강화된 것처럼도 보였다.
‘……이제 나는 단순한 사제가 아냐.’
흡혈귀의 강건한 육체 능력을 얻었다.
혈력도 얻었다.
평생 다뤄 본 적 없는 힘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놀려 두는 것은 너무 멍청한 짓이었다.
결국 그녀는 도에 손을 뻗었다.
집어 드는 순간 손에 착 감겨 오는 듯한 느낌.
같은 흡혈귀의 피를 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 몸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무기술을 익히지 않은 자신이지만, 이 도라면 제법 멋지게 휘두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아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황홀감마저 느껴지는 도와의 일체감을 고개를 저어 털어 낸 그녀는 주위에 뒹굴던 도집을 주워 제법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칼을 납도(納刀)한 후,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방문을 열었다.
“깨어났구나.”
그곳에 기준이 서 있었다.
노크를 하려고 했는지 한 손을 들어 올린 어정쩡한 모습으로, 가면 밑으로 드러난 입가에는 애매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몸은 좀 어때.”
“……하아.”
“로라!”
로라는 다시 기절했다.
기절하기 직전, 기준의 매끄러운 목에 자신의 시선이 못 박혔던 것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떠한 음습하고도 강렬한 충동이 용솟음쳤던 것을.
그녀는 이번엔 잊지 않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