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as Obsessed With Me After I Became the Youngest Princess Favourite RAW novel - Chapter (200)
막내 공녀의 총애를 독차지했더니, 모두 내게 집착한다 (200)화(200/247)
할아버지가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하셨을 리 없다.
백작 부인이 저지른 잘못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할아버지의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 얼마나 힘든 결정을 하셨는지, 그리고 내게 얼마나 미안해하고 계시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루치오가 조용히 손을 잡아 왔다.
“동정할 필요 없어. 스스로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뿐이니까.”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물론 백작 부인이 맞이할 비참한 말로를 속 시원해하거나, 잘됐다며 고소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착하지 않다고 정정해 주려던 순간이었다.
“가끔 생각했어. 네가 만일 납치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처음부터 벨루스 대공녀와 엘라드 소공작으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루치오의 말에 눈이 크게 뜨였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가정이었다.
라에즐에게 나와 악마에게 얽힌 전생의 악연을 들은 이후로는, 내가 납치당하지 않는 상황을 그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전혀 상상이 안 가요.”
그러자 루치오가 피식 웃었다.
“사실 나도 그래.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아니라. 그저 떨어져 있는 동안 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조금 궁금해져서. 뭐…… 우리 관계는 지금과 똑같아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더 일찍 약혼했을지도 모르지.”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다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늘어놓는 루치오를 보니 살짝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자주 생각한 거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도, 나는 루치오의 상상이 너무 본인에게 이로운 쪽으로만 흘러간 것이 아닌가 냉정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두 가문의 사이가 가깝고, 실제로 내가 납치당하기 전만 해도 서로의 가족이 공국과 공작저를 자주 왕래하며 지냈다지만…….
지금도 루치오와는 연애만 하라며 펄쩍 뛰는 가족들이 약혼을 받아들였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서로 아이를 맺어 주자는 약속을 한 것도 아닐 테고.’
그래도 말을 듣고 보니 조금 궁금하긴 했다.
과연 보육원에서 처음 만나지 않았어도 다이애나는 지금처럼 나를 따랐을지, 그리고 루치오가 자신만만해하는 것처럼 나는 그를 또 좋아하게 되었을지.
모두 의미 없는 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지끈거렸다.
‘정말 내게 그런 삶을 살 기회가 있었다면…….’
루치오의 말대로 나도, 내 가족도 상처받는 일 없이 마냥 행복했을 텐데.
순식간에 가라앉으려는 마음을 애써 다독인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보다 공작님께는 말씀드렸어요?”
밤새 앓으면서도, 황제와의 종속 계약이 끊어지고 악마의 유물 역시 파괴되었다는 것을 들은 엘라드 공작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내내 궁금했다.
내가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들뜬 눈빛으로 쳐다보자 루치오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께는 어제 바로 말씀드렸지.”
“뭐라고 하셨어요? 좋아하세요?”
“물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
“어떠셨는데요?”
“처음에는 내 말을 잘 믿지 못하셨어. 내심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셨던 모양이야. 하지만 리아, 네가 나섰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시더라.”
그리 말한 루치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나도, 아버지도 네가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몰라. 하지만 너니까. 지금까지 몇 번이나 우리를 구원해 준 너니까 믿을 수밖에.”
굳건한 신뢰의 눈빛에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믿어 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뭐가요?”
“위험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어제 황궁에서 기절한 게 혹시…….”
말끝을 흐리며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루치오의 모습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직전에 나를 믿는다고 해 놓고, 왜 내가 괜찮다는 말은 못 믿는 거지?
물론 그의 의심은 몹시 합당했지만, 나는 어젯밤의 고통을 모른 체하며 말을 돌렸다.
“참, 공작님께 그동안 당신이 애쓴 건 말하지 않았어요?”
니콜라스를 차기 황제로 만들기 위해 그와 손을 잡고, 정보 길드를 세우고. 심지어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막막했을 악마의 유물과 관련된 정보를 찾으며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했을 마음고생까지.
나는 루치오가 한 헌신을 엘라드 공작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대로.
“굳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루치오는 자신이 한 모든 일을 밝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속상함에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 의미 없지 않아요. 당신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번 일을 이리 쉽게 해결할 수 없었을 테니까.”
단순히 그를 치켜세워 주려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 루치오가 다렐을 만들지 않았다면, 예전에 판매했던 마력석을 핑계로 그리 쉽게 황제의 보물고에 들어설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루치오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이렇게 말해 주는 거로 충분해.”
아무래도 고집을 꺾기는 그른 것 같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다렐이랑 니콜라스 황자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미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야지.”
루치오는 니콜라스가 황제가 되면 적어도 황실에 피바람이 불 일은 없을 거라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하긴, 니콜라스가 아니면 세르핀이 황위에 오를 텐데…….’
그녀가 니콜라스를 비롯해 별궁에 유폐된 황녀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황후의 처우로 황녀들이 그나마 부족함 없이 지낸다지만, 세르핀이 황제가 되면 지금의 생활도 끝일 것이다.
“니콜라스가 좀 가벼운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수단은 나쁘지 않아. 성품 역시 악보다는 선에 가깝고. 옆에서 조율만 잘 한다면 좋은 황제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때 루치오가 니콜라스에 대한 평을 덧붙였다.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왜?”
“생각보다 그를 신뢰하는 것 같아서요. 하긴, 당신이 차기 황제로 아무나 고르지는 않았겠죠.”
“네 말대로, 만일 니콜라스에게 장래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 봤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나는 니콜라스와 차기 황권에 관한 문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공작님 반응은 그게 다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 오랜 종속 관계를 끊어 냈으니 소회가 남달랐을 텐데!
생색을 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내가 눈을 반짝이자 루치오가 조금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음, 네가 해결했다는 말을 들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끄덕이시더니?”
“어머니께 달려가셨어.”
“공작 부인께요?”
설마 이 일을 공작 부인도 알고 있었나?
아니면 이제 모두 해결됐으니 털어놓으시려고?
“신혼 방을 제대로 꾸미려면 지금부터 공사에 들어가야 하니 상의를 하신다고 하더군.”
“……신혼 방?”
잠시 당황해 굳어 있던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결혼해요? 아! 혹시 알렌 경이 결국 사고를…… 잠깐! 그렇게 보지 말아요. 눈치 못 챈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거니까!”
루치오가 또 나를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기에, 나는 얼른 소리치며 그를 노려보았다.
“솔직하게 말해요. 공작님께 뭐라고 했길래 그런 말이 나와요?”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하! 그런데 왜…….”
“우리가 입맞춤한 걸 들킨 것 외엔.”
“……?!”
순간 얼이 빠져 나는 눈을 끔뻑였다.
“뭐라고요?”
“……후작저에 널 데리고 왔을 때, 네 가족들만 있었던 게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계셨어.”
“허억!”
또다시 소리를 지를 뻔한 나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가족들이 아는 것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니!
“어떡해! 공작님이 분명 공작 부인께 말했을 거예요. 어쩌면 다이애나한테도……!”
지금은 다행히 알렌과 잭이 훈련을 떠난 상태지만, 돌아오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흐윽, 첫 키스가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이 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자, 루치오가 작게 “나도 있어.” 하고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어서 홱, 고개를 들어 노려보자 그가 흘러내린 내 머리를 뒤로 넘겨 주며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건데.”
“됐어요. 이미 들킨 거 되돌릴 수도 없고.”
한숨을 내쉬며 자조적으로 말하니 “그럼…….” 하고 그가 몸을 바짝 붙여 왔다.
위로를 해 주려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든 나는 멈칫했다.
눈이 마주친 루치오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우리 이왕 들킨 거, 한 번 더 할까?”
“……뭐라고요?”
황당함에 되묻자, 루치오가 내 귓바퀴를 살살 어루만지며 꾀어내듯 말했다.
“이번엔 기절 안 하도록 노력해 볼게.”
“어머, 미쳤나 봐!”
잠시 귀를 의심한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루치오는 내가 물러선 만큼 더 바짝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눈빛이 좀 이상했다.
어쩐지 새로운 뭔가에 눈을 뜬 것도 같고, 아예 눈이 홱 뒤집힌 것 같기도…….
‘저, 정말 미친 거 아니야?’
* *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루치오는 미쳤다.
그리고 나도…… 미친 게 틀림없다.
“자…… 잠깐만, 하아!”
나는 견디다 못해 고개를 틀어 간신히 입술을 떼어 냈다.
귓가에 내 것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달뜬 숨소리가 들렸다.
“으, 흐읍!”
하지만 루치오는 그 짧은 틈을 못 참고 다시 입술을 맞붙여 왔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는 듯 조금 전보다 더 깊이 파고들어 와 여린 점막을 탐하는 탓에, 나는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다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내겐 루치오를 탓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네가 싫다면 안 할게. 비록 첫 키스는 그리 해 버렸지만…….〉
당장이라도 입을 맞출 듯 저돌적으로 다가오던 루치오는 내가 주춤거리자 그리 말하곤 산뜻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막상 그가 그렇게 물러서고 나니…… 아쉬워진 사람은 나였다.
〈그럼…… 조금만.〉
나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붙잡으며 말하자, 루치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 미소를 보자 내 심장도 두근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그를 붙잡기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와 루치오의 ‘조금’의 기준이 이리도 다를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