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as Obsessed With Me After I Became the Youngest Princess Favourite RAW novel - Chapter (214)
막내 공녀의 총애를 독차지했더니, 모두 내게 집착한다 (214)화(214/247)
“구두끈이 풀렸군요.”
그때 루치오가 세르핀의 손에 양산을 쥐여 주더니, 몸을 굽혔다.
그의 말대로 세르핀의 발목에 묶여 있던 구두끈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루치오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끈을 잡아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세르핀의 발목에 예쁜 리본을 만든 뒤,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세르핀의 뺨이 전보다 더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잔잔하게 부는 바람, 주변에 흐드러진 나무와 들꽃 사이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구두끈의 매듭을 짓던 루치오의 모습은 그야말로 동화 속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입술이 바짝 말라 왔다.
세르핀은 그녀의 손에서 다시 양산을 가져가는 루치오를 여전히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이 묘한 분위기가 금세 어떻게 흐를지 나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빌어먹게도 내 직감은 들어맞았다.
세르핀이 턱을 살짝 들더니 슬며시 눈을 감은 것이다.
그에, 루치오 역시 그녀의 의중을 읽은 듯 아주 천천히 고개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걸 지켜보았다.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는 마음인지, 아니면 루치오가 술법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세르핀을 밀어내길 바라는 마음인지…….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워지려는 찰나, 갑자기 루치오가 양산을 기울였다.
둘의 모습이 양산에 가려 보이지 않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다급히 손을 크게 휘둘렀다.
쏴아……!
동시에 후원에 미친 듯한 바람이 불며 두 사람을 가리고 있던 양산이 우지끈, 소리와 함께 그대로 뒤집혔다.
나는 볼썽사납게 망가진 양산 아래에 선 두 사람을 얼른 살폈다.
생각보다 루치오와 세르핀의 얼굴은 가깝지 않았다.
이미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 일인지 루치오가 양산을 들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낯빛이 창백했다.
그때 루치오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예민한 사람이니 아무리 기척을 지웠어도 내 존재를 눈치채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바로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쳐다볼 줄은 몰랐다.
루치오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오붓한 시간을 훼방 놓은 것에 분노라도 하듯.
그 모습을 보자 서운함과 억울함, 그리고 배신감 같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그를 마주 노려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오늘 아침, 나는 루치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공작저로 온 것이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니, 그를 위로하고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당신이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억하니까.
혹 영영 나를 떠올리지 못한다고 해도, 앞으로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 주려고 했는데.
‘설마 이런 장면을 보게 되리라곤…….’
이대로 후작저로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운 것을 들킬 것이 뻔해서, 나는 다이애나의 방으로 향했다.
다이애나와 루치오를 실컷 욕하고 나면 속상한 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이애나는 어리니까 둘이 입을 맞추려고 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지.’
어쩌면 그 말을 들은 다이애나는 루치오를 오빠는커녕 형부라고도 불러 주지 않을지 모른다.
실없는 생각을 해서인지, 서글픈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방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나는 다시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운 좋게 후원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사용인들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복도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들킬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어릴 때 내가 쓰던 방을 그대로 비워 두었다는 공작 부인의 말을 떠올리며 옆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정돈된 방을 둘러볼 새도 없이,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 꼭 부모님을 만나기 전, 스스로를 보잘것없다고 여기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 * *
“소공작?”
루치오는 황녀가 자신을 부르며 그의 팔에 손을 얹는 순간,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조금 전, 세르핀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다가가던 순간 치밀었던 토기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 내지 않으면 그가 지금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아서, 루치오가 망가진 양산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대공녀의 짓이 분명합니다. 마법사라고 하더니, 설마 몰래 쫓아왔을 줄은 몰랐군요.”
다행히 황녀와 함께 있는 동안 느낀 불쾌감과 역겨운 기분이 합쳐져 분노에 찬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러자 세르핀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 전에도 미로 정원에 들어가는 걸 막더니, 내가 소공작과 함께 있는 게 질투가 났나 봐요. 나이가 어리니 그냥 넘어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하와의 시간을 이리 방해한 것으로 모자라 물건까지 망가뜨리다니요. 당장 이 무례를 사과받아야겠습니다.”
“사과요?”
“예. 죄송합니다만, 전하. 이만 궁으로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뭐라고요? 하지만 오늘 오블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제가 다시 예약해 놓겠습니다. 지금 기분으로는 도저히 즐겁게 식사하지 못할 것 같군요. 전하께 좋은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은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공손한 어투로 말한 루치오는 미안하다는 듯 눈매를 휘며 세르핀과 눈을 맞췄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치오가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렸다.
* * *
“버트, 너는 황녀를 계속 감시해라. 누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그대로 보고해.”
후원을 벗어나자마자 루치오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버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곧바로 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가 된 루치오는 그제야 크라바트를 풀어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황녀와 멀어지는 것만으로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그는 오늘 새벽, 눈을 뜨자마자 출근 준비를 하며 버트에게 그의 말과 행동은 물론 세르핀과 그 주변을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다.
혹시 황녀와 있는 동안 제 상태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감안해 내린 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추측대로 세르핀과 마주한 그는 이지를 완전히 잃었다.
잠시 황녀와 떨어질 때마다 버트에게 보고를 받은 루치오는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르핀과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었다.
점차 경계심을 내려놓는 세르핀에게서 악마와의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르핀의 비위를 맞춰 주며 공작저에 들어섰을 때였다.
현관 앞으로 나온 다이애나와 리아를 본 루치오는 불현듯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지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이유가 신성력을 가진 여동생 때문인지, 아니면…… 세르핀과 함께 온 자신을 보고 안색이 창백해진 대공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처럼 이지가 있는 상태라면, 세르핀의 입에서 사건의 전말을 듣거나 해결에 관한 힌트를 얻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빠르게 판단 내린 루치오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알아차렸다.
바로 리아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세르핀은 그를 갖기 위해 악마와 손까지 잡았으니, 당연히 그의 연인인 대공녀를 미워하고 있으리라.
혹여라도 자신이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터.
그래서 루치오는 리아에게 일부러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 날이 선 태도로 대했다.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얼굴, 두 손이 새하얗게 되도록 깍지를 끼고 있는 모습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지만, 애써 외면해 낸 그는 리아와 멀어지고 나서야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루치오는 본능적으로 리아가 몰래 숨어든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쪽으로 신경이 쏠려 황녀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대공녀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렇게 기척을 숨길 수 있는지, 그게 마법으로 가능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루치오를 갖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았다는 세르핀은 그의 상태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입에 발린 말 몇 마디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거짓 웃음에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루치오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세르핀이 다정한 말과 행동 그 이상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겨우 야릇해진 분위기를 피하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끈질기게 눈까지 감는 세르핀을 보자 암담한 기분이 밀려왔다.
황녀에게 치솟는 거부감은 차치하더라도, 이 모습을 대공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무척 곤란했다.
솔직히 그녀를 제 연인이라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여자와 입을 맞추는 모습까지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알렌이 어젯밤 몇 번이나 반복했던,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는 말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양산으로 리아의 시야를 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치오는 애초에 리아가 보고 있든 그렇지 않았든, 세르핀에게 입 맞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 한 번 꼭 감고 해치우려고 했건만, 온몸에서 격렬한 거부 반응이 일다 못해 토기까지 밀려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천만다행히 세르핀이 눈을 뜨기 전에 리아가 일으킨 바람으로 그의 행동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더는 세르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리아에게 사과를 받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자리를 뜬 루치오가 제 방으로 향하던 때였다.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