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as Obsessed With Me After I Became the Youngest Princess Favourite RAW novel - Chapter (22)
막내 공녀의 총애를 독차지했더니, 모두 내게 집착한다 (22)화(2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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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전의 날.
나는 평소 인적이 드문 공작성 뒤편에 방치된 정원에 나와 있었다.
안 그래도 추운 공작령의 한겨울이다.
정원사들은 유리온실과 정문 쪽에만 신경을 쓰느라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음, 이 정도면 경을 치기 딱 좋은 장소란 말이지.’
황폐한 풍경을 흡족하게 보던 나는 무릎을 굽혀 얼어붙은 땅과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 잎을 바라보았다.
공작가에 머문 지 그리 오래는 안 되었지만, 보육원에서 지낼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만큼 생활이 달라 그런지 체력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물론 겉보기에는 여전히 빼빼 마른 몸이지만, 조금만 걸어도 숨이 달리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마나 훈련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비앙카는 내게 폭주의 위험이 있으니 좀 더 성장하기 전까진 억지로 힘을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내가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아이일 때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 나는 길드의 간부, 테드 영감과 함께 마나 컨트롤을 연습하기 위해 약초밭을 키운 적이 있어 땅에 마나를 주입하는 것은 아주 친숙했다.
지금도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하자 식물의 뿌리까지 마력이 전달되며 초록색 잎들이 천천히 영역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내가 효율적으로 마나를 운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갑자기 많아진 마나를 잘 제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꽃을 피우면 다이애나한테 가져다줘야지.”
오늘도 아이를 떼어 놓고 와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며칠 전, 하루 종일 내 머리를 빗었다가 묶었다가를 반복하며 놀던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는지 오늘은 순순히 방에서 놀기로 해 다행이었다.
“내일부턴 매일매일 같이 놀아 줄 거야.”
나는 사랑스러운 다이애나를 생각해서라도 의지를 불태웠다.
비록 시드 발레리가 아니었다면 나와 다이애나가 만나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 아이가 납치당해 고초를 겪은 것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초록 잎의 영역을 넓혀 가던 중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어? 이거 설마…….”
“넌 뭐지.”
동시에 내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그가 오는 것쯤은 오래전에 눈치채고 있었기에, 나는 담담히 몸을 돌렸다가 인상을 구겼다.
‘저 뱀 같은 인상.’
처음 만났을 때도 인상이 별로였는데, 실체를 알고 보니 더 비열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렇다. 내가 알렌에게 빈 소원은 바로 시드 발레리와의 독대였다.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로 부단장을 보내 달라는 것.’
내 소원을 들은 알렌은 뚱딴지같은 내용에 의아해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하, 설마 네깟 게 도련님을 이용해 나를 여기까지 불러낸 것이냐?”
인적 드문 후원까지 와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시드 발레리가 나를 보며 씨근덕거렸다.
“어린 것이 간교하긴. 그러니 아가씨께 찰싹 달라붙어 염치없이 여기까지 따라왔겠지. 어린 아가씨를 네 입맛대로 살살 굴리며 호의호식하니 좋으냐. 너는 평생 아가씨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거다.”
그는 나를 향해 침을 퉤 뱉고 상종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렸다.
이에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아저씨 말대로면 저는 아가씨가 아니라 아저씨께 감사해야겠네요.”
“뭐?”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겠어요. 안 그래요?”
“그게 무슨…….”
“다 들었어요. 아저씨가 일부러 세이디안 경한테 호위 임무가 바뀌었다고 거짓말한 거요.”
내 말에 시드 발레리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렉시온 기사단의 부단장 자리에 오를 만큼 나름 실력은 있는지, 내 몸에 쏟아지는 살기가 몹시 따가웠다.
하지만 나는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무리 세이디안 경을 쫓아내고 싶어도 그렇지, 모시는 아가씨의 안위를 두고 도박을…….”
“미친 소리! 천박한 것이, 거짓말도 잘 지어내는구나.”
시드 발레리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위협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보니 순간 겁이 났지만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겁내지 마. 괜찮아.’
나는 이미 발레리 백작가의 말로를 알고 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날뛰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증거도 없이 날 협박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지?”
“그래서 제 말이 다 거짓이라고요?”
“그래! 그리고 설사 맞다고 한들 너나 테이즈 놈의 말 따위 누가 믿을 것 같으냐!”
“믿고 안 믿고는 공작님이 판단하실 문제죠.”
엘라드 공작에게 알린다는 말에 드디어 시드 발레리의 눈이 뒤집혔다.
“이 천한 계집애가 감히! 너희 같은 것들은 그저 벌레처럼 납작 엎드려서 우리가 주는 쓰레기나 받아먹으며……!”
“그만하세요, 발레리 경!”
“마, 마님……!”
막 시드 발레리가 내 멱살을 잡아 올렸을 때 들려온 목소리는 여인의 것이었다.
급하게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친 시드 발레리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이, 이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
“변명할 생각은 마라.”
뒤이어 공작까지 나타나자 시드 발레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리아, 괜찮은 거니?”
공작 부인은 다급히 내게 다가와 바닥에 넘어지며 쓸린 팔의 상처를 살폈다.
걱정 가득한 그녀의 표정에 나는 애써 시선을 내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내 계획이었기에.
〈마님, 제가 산책을 하다 봤는데요. 후원에 새싹이 나 있었어요.〉
〈어머, 그게 정말이니? 아직 땅이 꽁꽁 얼어 있을 텐데.〉
〈벌써 봄이 오려나 봐요.〉
아침 식사 후 디저트를 먹으며 이 말을 건넨 나는 오늘 오후에 공작 부인이 공작과 이곳으로 산책 올 것을 반쯤 확신했다.
공작 부인은 추위를 많이 타면서도, 밀려 있는 영지 업무를 처리하느라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는 공작을 위해 그를 데리고 매일 일정한 시각에 산책을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얘기에 흥미를 보였으니, 십중팔구 이쪽으로 오겠지.’
물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나는 정말 공작을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치부를 알게 되어 협박당했다고 고해 시드 발레리를 끝장내려고 했다.
하지만 귀찮은 연극을 할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아닙니다, 각하! 이 모든 것은 다…… 테이즈! 그 녀석이 저 아이를 이용해 저를 모함하려 함정을 판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나를 향해 고압적으로 굴던 시드 발레리가 단박에 무릎을 꿇고 엘라드 공작에게 애걸했다.
공작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다.
곧 조사에 들어가면 명명백백히 죄가 밝혀지겠지만, 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발레리 백작가까지 끝장내려 소리쳤다.
“이게 함정이라면, 페리온 광산도 세이디안 경이 시켜서 매입한 건가요? 세이디안 경은 렉시온 기사단의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텐데요!”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내 말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두 눈을 부릅뜬 채 묻던 시드 발레리가 곧 멍청한 소리를 내며 엘라드 공작을 올려다봤다.
공작은 아주 기가 찬 표정이었다.
* * *
알렌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몸이 딱딱하게 굳었고, 숨이 잘 쉬어지지도 않았다.
처음에 그 터무니없는 내기로 리아의 소원을 들어주게 된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리아가 어려서 뭘 잘 모르기 때문에, 겁도 없이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견습 기사조차 되지 못했다 해도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아이들을 상대로 이겨 보겠다고 나서다니.
사실 알렌은 리아가 걱정되면서도 얄미운 마음에 혼쭐이 나 겁을 먹기를 바랐다.
하지만 작은 날다람쥐 같은 아이는 무척이나 재빠르고, 절제되었으며 매서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르나, 알렌은 똑똑히 보았다.
‘마지막에는 빗이 아니라 단도를 든 줄 알았어.’
그것도 날이 바짝 선.
눈을 믿을 수 없었으나 결과는 확실했다.
가만히 있다 소원을 들어주게 된 알렌은 이상하게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무슨 소원을 빌지 기대까지 되었다.
〈부단장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하지만 리아의 소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들어준다 약속했기에, 알렌은 제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의 스승을 따로 불러냈다.
그리고 몸을 숨긴 채 리아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지 확인하려고 한 것뿐인데.
‘다이애나를 위험에 빠뜨린 게 스승님이라니…….’
리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평소 존경하던 스승이 낯선 야차 같은 얼굴을 하고 리아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에겐 단 한 번도 저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저절로 몸이 떨리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머리로는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며 나서고 싶었는데, 몸이 딱딱하게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아버지와 어머니.
“일단 저는 아이를 데리고 갈게요. 더는 이 남자와 한자리에 있고 싶지 않네요.”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애걸하는 시드를 차갑게 보며 아이를 일으켰다.
어머니와 후원을 나서는 리아가 제 옆을 스쳐 지나가자, 알렌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며 숨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인 알렌은 문득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디 그것이 착각이길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