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as Obsessed With Me After I Became the Youngest Princess Favourite RAW novel - Chapter (52)
막내 공녀의 총애를 독차지했더니, 모두 내게 집착한다 (52)화(52/247)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루치오의 따뜻함을 전혀 알지 못하니까.
“내 정신도 참. 어린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불현듯 정신을 차린 공작 부인이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어찌 되었건 앞으로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도 읽고 공부하라고, 그 말을 하려고 불렀어.”
“……네.”
사실 하녀가 되어서 일을 하진 않고 책을 읽고 공부하라는 말이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조용히 공작 부인의 방에서 나온 리아는 숙소로 가는 대신 정원으로 향했다.
며칠 전처럼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피곤하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생각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작 부인이 시녀장에게 묘하게 예의를 더 갖춘다고 생각했는데.’
리아는 단순히 공작 부인이 반말이 익숙지 않아서나, 시녀장의 출신이 공작가의 가신 가문이라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치오가 관련되어 있어서였어.’
공작 부인은 곁에서 기르지 못한 루치오를 돌봐 주고, 자신이 없는 동안 수도의 공작저 살림을 도맡은 시녀장을 존중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루치오의 이야기를 할 때 공작 부인이 지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내가 수도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울적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공작에게 사교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하던 때보다 더.
“하아.”
그것이 못내 신경 쓰여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리아는 멈칫하며, 정원의 초입에 들어서기 전에 멈춰 섰다.
루치오가 평소에도 기척을 숨기고 다니는 것을 인지한 뒤부터 더 예민하게 기척을 읽은 탓에 알 수 있었다. 정원 안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예상대로, 키가 크고 날렵한 몸의 소년이 정원 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과거의 언젠가 다이애나의 생일 파티에 몰래 잠입했던 그날처럼.
달빛 아래 옷깃이 바람에 나부끼는, 한 폭의 명화 같은 모습으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리아는 아주 조용히 몸을 돌려 정원을 벗어났다.
그 사람의 고요한 산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의 평화를 위해.
“…….”
잠시 후, 루치오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 * *
“비가 오려나.”
나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흐릿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오전인데도, 우중충하고 습한 공기에 절로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본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지도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사이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시녀장에 의해 나를 골탕 먹이려 도서관에 보냈던 상급 하녀와 그 밑의 하녀들이 모두 물갈이되었다.
시녀장의 일 처리는 정말이지 가차 없었다. 그리고 그 처우에 대한 불만은 도리어 나에게 향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고까운 시선을 보내오거나 노골적으로 무시를 할지언정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루치오가 내린 명 덕분에 종일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본관 도서관에서만 지냈기 때문이다.
식사마저 사용인들이 아니라 다이애나와 함께하고 있으니 그들이 나를 괴롭히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관 도서관은 완벽한 피난처였다.
그래. 두 번째로 뚜렷한 변화는 바로 도서관이었다.
〈언니!〉
〈야, 못난이!〉
〈리아.〉
루치오가 오기 전까지는 불조차 꺼져 있던 본관 도서관은 더 이상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매번 수업이 끝나면 다이애나가 도서관으로 달려왔다.
평소 도서관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던 알렌 역시 훈련이 끝나면 놀러 왔고, 잭 또한 꾸준히 숙소로 데려다주겠다며 찾아왔다.
‘심지어 공작까지 왔었어…….’
책을 찾으러 왔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면 움직일 사람이 몇 명인데.
그렇다고 큰아들을 보러 왔다기엔, 루치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도리어 내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책을 정리하거나 사다리에 올라 책을 꺼낼 때마다 계속해서 아슬아슬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보고선 흐뭇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본관 도서관의 멀쩡한 사다리는 더 튼튼하고 거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 정도가 되자 나도 공작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객이 찾아오자, 자연스레 눈치가 보였다.
본관 도서관은 공식적으로는 직계만 드나들 수 있는 공용 공간이지만, 실질적으론 루치오의 개인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루치오는 조금의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게다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가 내게 시키는 일 역시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끔 그가 쪽지에 적어 준 책을 찾아 그 옆에 두거나, 그가 정리하라고 한 책을 다시 꽂아 넣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루치오가 일을 시키지 않을 때는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내 일과의 전부였다.
‘이번에야말로 유능한 사용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나는 속으로 아쉬움을 꾹 눌렀다. 사실 이건 내 온전한 욕심이었다.
이전 생에서 나는 루치오에게 이런저런, 참으로 흉한 모습을 많이도 보였다.
언제 씻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꼬질꼬질 더러운 모습으로 처음 만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에게 빵이며, 약이며 이것저것 동냥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불법 침입에, 죽는 모습까지 보였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지난 과거는 모두 나만 아는 흑역사로 묻혔다고 생각해 내심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도, 자는 사람 얼굴 구경이나 하는 얼빠진 애로 보인 것이 조금 속상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그가 시키는 일을 멋지게 해내서, 다이애나의 옆에 두어도 괜찮은 쓸 만한 애로 보이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편해서 능력을 발휘할 틈이 없다…….’
다른 사용인이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뒤로 몸이 너무 편했다.
“에휴.”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을 맡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너무 불편해!’
루치오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정말로, 너무 불편했다.
물론 그는 아주 바쁜 사람이라서 도서관에만 있을 수 없었기에 이곳엔 나 혼자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매일, 단 몇 시간이라도 함께 있을 때는 공기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해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거대한 도서관이 어찌나 고요한지, 오직 책장을 넘기는 소리나 펜촉이 사각대는 소리만 들렸다.
책을 찾기 위해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내가 마나를 운용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아차릴까 봐 기척을 숨기지도 못하고 최대한 숨을 참고 움직여야 했다.
덕분에 희미한 숨소리나 옷이 스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아카데미에는 언제 가는 거람.’
분명 시험이 끝나 수업이 없어 잠시 머무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금방 돌아갈 줄 알았던 루치오는 벌써 며칠이 되도록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길게 느끼는 걸지도.’
한숨을 푹푹 내쉬던 나는 눈앞의 큰 문을 바라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노크를 했다.
똑똑.
“……도련님?”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워낙 기척을 잘 갈무리하고 다니는 사람이라, 지난번처럼 혹시 자고 있을까 싶어 다시 한번 살폈지만 역시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후우.”
역시 아무도 없었다.
긴장이 확 풀린 나는 요 며칠 내 지정석이 된 소파에 가 앉았다.
이 자리는 창가 앞에 있는 큰 책상이 잘 보여서, 루치오가 나를 찾을 때 바로 반응할 수 있어 좋았다.
잠시 책상을 멍하니 보던 나는 벌떡 일어나 책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들을 꺼내 왔다.
“뭐부터 읽지.”
욕심껏 책을 챙겨 온 나는 지난번에 읽다 만, 제국의 근교 왕국들을 소개한 책을 다시 읽기로 했다.
‘이건 왠지 눈치가 보이니까.’
며칠 전에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본 공작이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 보였던 것이 떠올랐다.
역시 황제의 검은 다른 것인지, 내가 제국의 역사서를 보고 있을 때는 그리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다른 왕국에 관심을 보이자 아주 심드렁한 얼굴을 했다.
‘아. 제국 지도를 펼쳐 보고 있을 때도 이상하게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뭐.’
그때는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겠지.
어쨌거나 그 이후로 괜히 눈치가 보여서 읽지 못했는데, 루치오도 없고 마침 잘 된 것 같았다.
얼른 책을 펼쳐 벨루스 공국 파트로 넘어갔다.
‘빨리 읽고 답장 써야지. 조만간 공작 부인에게 보내 달라 부탁하고.’
나는 흐뭇한 얼굴로 책의 활자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벨루스 공국이 제국에서 독립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꽤 쓸 만한 정보가 많았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비앙카가 편지에서 왜 그리 자랑을 늘어놓았는지 이해가 갔다.
공국의 주인인 벨루스 대공이 대마법사에 마탑주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공국은 마법사 육성에 어느 곳보다 적극적이었고 제국에서는 귀족이 아니면 보기 힘든 마도구들도 모든 사람들에게 상용화되어 있었다.
‘작은 나라지만, 대륙에서 유일무이한 마검사단까지 소유하고 있고.’
특히 삽화로 수록된, 푸른 바다를 끼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대공성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웅장했다.
“어쩐지 아쉽네.”
다이애나를 따라가기로 선택한 것에는 후회가 없지만, 비앙카의 제안은 조금 아쉬운…….
“무엇이?”
그때 불현듯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꺅!” 소리를 지르며 일어섰다.
동시에 들고 있던 책이 떨어져 펄럭거리다 내가 한참이나 보던 삽화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