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02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02 >
그것은 굳게 잠겨 있던 빗장이 강한 충격에 의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을 제일 빠르게 깨달은 것은 당연하게도 함선을 조종하고 있는 리케였다.
[좌측 선체에 정체불명의 오르그 침입! 측면의 보조 엔진 쪽으로 돌진하고 있습니다!]나는 다급하게 울려 퍼지는 보고를 들으며 테티스로부터 검은 장막에 대해 들었을 때 바로 떠올렸어야 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외부에서 이곳을 발견할 수 없다고는 했지만 이미 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을.
심지어 그 안으로 들어온 이쪽도 검은 장막 속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음을 말이다.
검은 장막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을 가하는 오르그들의 생김새는 제법 낮이 익었다.
진짜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스펙과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숫자와 진화를 통한 빠른 능력 교체로 그 간격을 메우는 양산형 넘버링.
티탄들이 속속들이 함선에 달라붙고 있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진짜로 군단 놈들이랑 만나게 될 줄이야.] [3-10 구역을 분리하겠습니다. 엔진이 과부하가 걸리겠지만 급가속으로 녀석들을 따돌려 보도록 하지요.] [좌측 선체에 대한 권한을 내게 넘겨. 내가 로키랑 같이 가서 녀석들을 몰아내 볼 테니까.] [로키······? 아, 나이트메어 말이군요. 좋습니다.]리케는 흔쾌히 선체에 대한 권한을 테티스에게 넘겨주었다.
녀석이 내게 복종을 맹세한 뒤로 경계를 많이 푼 기색이었다.
여차하면 내가 바로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겠지.
권한을 넘겨받은 테티스는 이러나저러나 군단의 정보를 총괄하던 위치에 있던 녀석답게 티탄들의 약점을 들이치며 함선 안쪽으로 파고든 티탄들을 주살했다.
녀석은 그저 바깥으로 밀어낼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그 손발이 되어 직접 티탄들과 맞서게 된 나이트메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저 녀석 설마 화났나?]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가둬놓고 터트리기라니, 정신 연결 없이 싸우면 나도 위험하겠는데.]최근에 뭔가 깨달음이라도 있었는지 나이트메어의 공격은 전보다 훨씬 까다롭게 변해있었다.
녀석이 가늘게 뽑아낸 촉수로 만들어진 감옥은 1, 2차 장갑을 가볍게 깨부수고 들어온 티탄들을 상대로 뚫리지 않았다.
마치 고대의 결정처럼 티탄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상당수 흡수해버리니 녀석들은 꼼짝없이 갇힌 채 충격 입자 세례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트메어의 폭주도 잠시, 맞상대하던 티탄들이 어느 순간 마치 서로 짠 것처럼 슥 하고 뒤로 물러나면서 싸움이 끝나버렸다.
언제 기습했냐는 듯이 줄줄이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위화감이 드는 모습이었다.
[뭐야. 테티스 녀석이 뭔가 했나?]다른 넘버링들과 다르게 오직 명령에만 충실한 녀석들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물러났을 리는 없을 터.
따라서 당장 떠오르는 것은 퀸의 분체인 테티스가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테티스는 자기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티탄들에 대한 온전한 명령권은 퀸만이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당신들이 티탄이라고 부르는 저것들은 가이아의 호위대로 계획되어서 만들어진 존재야. 아무리 내가 가이아의 분체라고 하지만 왕의 호위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럼 갑자기 녀석들이 물러난 이유는?] [그야 당연히 명령에 따라서겠지? 그 명령이 뭔지는 저 앞에서 알려주고 있네.]나는 그 말에 곧장 전방 카메라가 촬영하는 것이 송출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리케가 앞을 가로막고 있던 티탄들을 확대하고 있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인류 함대입니다. 소형 전함 다수와······ 하인리히도 있군요.]소형 전함이라 함은, 내가 헨젤 성계에서 그레텔 성계로 넘어가기 전에 만났던 노리에급 신형 전함을 말하는 것이겠지.
우주로 도망친 나이트메어를 추격하다 마주친 그 함선들은 보호막까지 달고 있는 현 인류 문명의 기술이 집적된 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주모함이 날리는 요격기처럼 보이게 하는 압도적인 덩치의 하인리히까지.
[그림 자치령의 주요 전력은 다 끌고 온 듯합니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호위대가 노리는 게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라는 거지.]왜 티탄들이 쳐들어왔다가 맥없이 물러났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전달받은 명령 중에 오르그와 교전하라는 지시가 없었기에 나이트메어와 조우하고 나서 이 함선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해 후퇴한 것이다.
그 증거로 인간들을 공격하는 티탄들은 벌써 노리에급 전함을 여럿 분해시키고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명령이 이상하게 내려진 걸 봐서는······ 연구소를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군?] [인간들이 이쪽으로 올 걸 알고 미리 와서 매복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요.]티탄들의 진형을 보면 완전히 인류 함대가 있는 방향을 포위하고 있는 형세라 내 목적지였던 1연구소는 그보다 한참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떠있었다.
마더 쉽이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이니 애초에 티탄들의 목표는 인간들이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바로 행성 궤도에 진입하면 저 둘이 싸우는 동안에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노리에급 전함도 인간들이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전함이다 보니 티탄들을 상대로도 뭉쳐서 잘 버티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 중심에 있는 하인리히의 포격이 막강해서 티탄들이 쉽게 화망을 뚫지 못한다는 점도 컸다.
하인리히가 보여주는 예상외의 활약에 나는 조금 놀랐다.
나를 상대로 맥없이 당했던 데다 장착된 유물들을 조종하는 코어 유물까지 빼앗겼으니 그대로 폐기 처분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코어 유물을 생산하는 유적지를 보유하고 있으니 다시 생산했을 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함선은 기본적으로 조종사와 함장의 기량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집니다.] [함장 차이라 이 말인가?] [인공지능이 조종하지 않는 한 그렇겠지요.]지금 하인리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기량이 상당하다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아군 전함들이 부서져 나가는데도 티탄들을 상대로 저렇게 제자리를 지키며 응전하는 부대는 굉장히 드물 테니까.
[일단 나랑 테티스만 들어가서 살펴볼 테니 리케 네가 대기하고 있다가 인간들이 밀릴 것 같으면 마더쉽으로 지원해라.] [저들이 시간을 더 오래 끌 수 있도록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Yes, your highness가 떠오르는 말투로 경례를 올린 리케는 마더쉽을 코앞까지 다가온 연구소에 도킹시켰다.
예전에 한바탕 싸움이 있었던 흔적인지 빠르게 행성 궤도를 돌던 잔해들이 마더쉽의 장갑을 두들겼지만 어느 샌가 복구된 1차 장갑은 그 충격을 흔들림조차 없이 흡수해버렸다.
티탄 정도 되는 괴물이 아니면 뚫을 수 없다는 게 증명이 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저 장갑을 여러 겹으로 해서 3, 4차로 늘리는 건 어떠냐?] [여기까지 가져온 자원을 전부 써도 좋으시다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젠장. 저기 부서져 있는 노리에급 전함이나 가져와서 연구해봐. 장갑 위로 쉴드라도 두르면 더 낫겠지.] [인간들이 좋게 보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해보도록 하지요.]***
연구소 안쪽은 모든 동력이 끊겼는지 시꺼먼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자체적으로 어둠 속의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내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벽을 따라 길게 그어진 흔적들과 액체가 말라붙은 자국들은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평소 설명충, 질문충 마냥 말이 많았던 테티스는 이 복도에 들어선 직후부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내 등에 매달려 있었다.
[제기랄, 아데카 밖으로 나와서 촉수를 못 쓴다니. 알아서 조심해라.] [뭐, 뭐를?] [여긴 천장이 굉장히 낮으니까.] [그게 무슨······ 악!]나를 중심으로 설계된 마더쉽은 통로 자체가 커다랗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오르그를 실험하던 곳이니만큼 크기는 하나 내 키와 비교하면 어림도 없었다.
따라서 쪼그려 걸을 생각이 없었던 나는 몸 주변에 에너지를 두르고 그대로 통로를 부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부서져서 떨어지는 잔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 테티스 입장에서는 그건 지옥이었겠지만.
[조금! 조금만 숙이면 되잖아!] [난 나보다 약한 녀석에게 숙이지 않는다.] [천장 같은 무생물이랑 싸우지 말라고!]테티스 녀석이 아데카를 벗어난 뒤로 통제를 잃고 축 늘어진 촉수들을 황급히 양 팔로 끌어 모으는 동안 입구 쪽의 통로는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우드득!
통로 막바지의 천장까지 부수고 나자 나는 내가 지금 여러 갈래로 향하는 교차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티스가 전달한 경로에 따르면 이쪽에서 우측으로 꺾어야 진화 연구가 이뤄졌던 연구동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좌측으로 꺾으면 테티스가 있던 격리소였다.
[격리소! 격리소부터 가야 해!]테티스는 촉수 위를 덮고 있는 잔해들을 낑낑거리고 치우며 내게 외쳤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일단 연구동이 먼저다. 리케가 만든 해킹 장치를 거기에 꽂아놔야 하니까.] [메인 시스템이 다운돼서 연구동 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게 아닌 이상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텐데?] [전력이야 내가 공급하면 된다.]이래봬도 전기와 레이저를 뿜어내는 장어 녀석을 먹고 전기 마스터가 된 몸이다.
전류를 조작해 기계들을 무력화시키는 간단한 전자기파까지 생성할 수 있다는 말이지.
에너지가 넘쳐나는 지금, 그것을 전력으로 치환해 연구동에 공급하는 것은 힘든 일도 아니다.
[연구동의 보안은 예상보다 뚫기 어려울 거라니까? 그 해킹 장치를 쓴다고 해도 여기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마스터 키가 없으면 쓸만한 건 못 건질 거야.] [그럼 마스터 키가 어디 있는지 불어라.] [이, 일단 격리소부터 가고······] [말 안하면 그 격리소인가 뭔가 하는 곳부터 날려주지. 내가 이 거리에서 건물 하나 파괴 못 시킬 정도로 약해 보이냐?]나는 이곳에 진입한 즉시 에너지를 퍼뜨려 내부 구조를 훑어낸 뒤였다.
사실 녀석이 가고 싶어 하는 건물이 어디에 있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이 끝났다는 말이다.
용량 제한 때문에 하이드의 모든 테크를 전부 흡수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최상위 공간 테크를 얻은 이상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물체에 간섭해 부수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진심으로 을러댄다고 느꼈는지 테티스는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불만을 토로했다.
[으으, 사실 마스터 키 같은 건 없어! 내가 진즉에 해체했으니까······ 대체 왜 그렇게 연구동에 집착하는 건데? 핵심 기술은 내가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잖아!] [이쪽 통로가 좁아서 부수는 맛이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이이! 바보 멍청아!] [자, 간다.]꽈드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