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08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08 >
테티스는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평소였다면 가차 없이 응징했을 테지만 녀석의 심정이 전혀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웜홀을 동시에 여는 건 보통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만 두 배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웜홀을 열 수 있는 조건이 한 곳에 맞춰져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한 지점에서 다른 두 지점에 연결하는 걸 불가능하므로 당연히 1대1에 상응하는 웜홀을 각각 다른 곳에서 열어야 한다.
그나마 내가 지금 있는 성계가 절묘하게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성계 둘과 이어질 수 있는 위치라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다른 성계까지 가서 이곳과 동시에 웜홀을 연다는 불가능한 일을 해야만 했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 성계에서 두 성계에 웜홀을 연다는 게 쉬워지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할 건데? 당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는 저 멀리 떨어진 공간에 개입할 수 없을 텐데?] [마더쉽과 내가 최근에 개발한 능력을 이용하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열 배는 늘겠지만.] [열 배-?]당장 웜홀 하나 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떠올렸는지 작은 테티스의 입이 0모양으로 벌어졌다.
놀란 건 리케도 마찬가지였는지 마더쉽은 당장 그만한 에너지를 전개할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며 극구 말리기 시작했다.
[설령 대장님 말처럼 아슬하게 성공한다고 해도 엔진이 과부화로 인해 공간 도약 과정에서 폭발할 겁니다. 저희가 부르고뉴 성계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된다는 말입니다.] [알고 있어.]그 외에도 문제는 산더미처럼 있었다.
개중에 가장 큰 것을 꼽자면 결국 두 개의 웜홀 중 하나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퀸이 그걸 비틀어버리면 두 개를 연 보람도 없이 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다는 점이다.
가진 에너지를 여기에 거의 다 쏟게 될 거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퀸 녀석이 내 웜홀을 비튼 사례를 살피면 무언가가 웜홀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일을 벌이는 것 같더군.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더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어디로 가든 그것만 알아채서 비틀어버릴 텐데요.] [아니지. 먼저 웜홀 하나에 속임수를 던지고 녀석이 반응하면 다른 웜홀을 이용해 이동하는 거다. 녀석은 이미 웜홀 하나에 개입하고 있으니 이쪽이 이동한 웜홀에는 관여하지 못할 터.]이른바 성동격서라는 작전이다.
웜홀이 두 개가 동시에 열리면 녀석도 처음에는 경계하겠지.
그리고 어느 쪽으로 올 건지 신경을 곤두세울 게 분명하다.
녀석의 대응은 항상 우리가 웜홀에 진입하고 비슷한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을 계산해 움직이면 충분히 혼선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리케는 화면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미지를 띄웠다.
[퀸을 속이려면 마더쉽과 비슷한 질량의 물체를 이동시켜야 할 텐데 그만한 것이 있을까요? 어설프게 운석이나 날려봐야 금방 들통날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냐? 마더쉽을 그대로 날릴 거다.] [네?]***
뉴올림포스.
인류 최후의 희망, 최종 거점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소돔에 잠식되어 몰락해버린 그 성계는 이제 괴물들의 전진기지가 되어 거꾸로 인세의 지옥이 되어있었다.
퀸의 숙주가 되어 행성 뉴엘랑스를 깔고 앉은 웨일은 매일 같이 생산되는 수백만의 오르그를 통제하면서 성계 바깥에서 들어오는 에너지의 흐름에 집중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몇 차례의 웜홀이 열렸고, 그때마다 그가 경고를 울리면 퀸은 군단을 유지하고 진두지휘하는 와중에도 꼭 웜홀의 경로를 비틀어냈다.
한 번 생성된 거대한 흐름에 간섭한다는 건 어설픈 재주나 힘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인간들에게 악몽 취급을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웨일조차도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더라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힘겨운 일까지 벌여가면서 경계한다는 것은 상대가 그만큼 강적이라는 뜻.
올림포스를 쳐부수며 인류를 완전히 멸망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던 퀸을 기억하는 웨일은 지금의 상황이 정말 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윈의 일개 경비원에 불과했던 그로선 머리를 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퀸으로 모시는 가이아가 하라는 대로 움직여왔고, 그걸 후회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바로 이블 원의 존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퀸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 그를 삼촌이라 불러주는 테티스 같은 경우는 그가 그녀 자신의 부탁으로 이블 원에 대한 것을 조용히 넘겼다고 여기고 있겠지.
하지만 그가 이블 원의 존재감을 느낀 것은 그보다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
그가 가이아로부터 받은 명령은 아데카의 궤도를 순찰하고 혹시 모를 우주에서의 공격을 빠르게 감지해내는 것이다.
강력한 개체 수십만을 뱃속에 품고 다니며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를 격퇴하는 것 또한 그의 의무 중 하나였다.
아데카로부터 조금 떨어진 행성에서 열 대의 우주 함선이 아데카로 진입했을 때 그는 지시받은 대로 그것들을 모조리 격추했다.
기적적으로 부하들 사이를 뚫고 탈출한 함선이 두어 개 정도 되었지만 그건 밑에 주둔하고 있는 지휘관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함선에 탑승해있던 인간들은 끈질기게 생존해 결국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일로 인해 그는 동료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
그나마 외부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실험체였던 존재가 대신 추격에 나섰기에 다시 그런 실수를 저지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정도로 넘어간 것이었다.
그는 반성하기에 앞서 떠오른 궁금증을 해결하기로 했다.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았을까.
그렇게 살피고 또 살피다 발견한 것이 이블 원이었다.
그가 지닌 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거침없는 포효를 내지르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저절로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녀석은 몰라보게 강해져 있었고, 어느 순간에는 그조차 섬뜩할 정도로 위협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더 크기 전에 제거하도록.
만약 그에 대해 보고하게 된다면 이런 말이 돌아올 테지.
한창 인간들과 싸우던 예전이었다면 강한 개체가 태어난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인간들이 소위 넘버링이라 부르며 경외하는 존재들은 하나하나가 군단의 전력 핵심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퀸이 절반의 넘버링을 숙청하고 그들을 잡아먹은 뒤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가이아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부화장에서 튀어나오는 잡졸들처럼 넘버링조차 양산하길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탄생한 호위대는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뭉쳤을 때 얼마나 무서워지는가는 몇 번의 실험을 봐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호위대를 가볍게 박살내는 존재.
그게 바로 이블 원이다.
시작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고, 중반에 이르러서도 크게 신경 쓸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끝에 가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블 원의 무서운 점은 단순히 강력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결국엔 그 자신이 진화해가며 능동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조건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싸운다면 이쪽이 이기겠지만 만약 단번에 죽이지 못한다면 후일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이 되어 군단을 집어삼키리라.
가이아가 우려하는 바가 거기에 있음을 알고 있는 웨일은 아데카에서의 반란 이후 가이아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다른 넘버링들과 달리 묵묵히 그녀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와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기 시작했고, 진화입자를 통한 잠식도 잘 먹히지 않게 되었지.
손바닥도 맞닿아야 소리가 나는 법.
인류가 저렇게 미친 듯이 도망만 다니는데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수단이라 한들 먹힐 리가 없는 것이다.
기나긴 교전에서 이렇다 할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블 원의 위협은 시시각각 가까이 붙어오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웜홀이······ 두 개 동시에?
지금까지는 하나씩 생성되던 웜홀이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성계 두 곳에 동시에 열렸다.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웜홀을 어떻게 두 개나 열었는지는 둘째 치고 그 의도가 명백히 보이는지라 웨일은 지체하지 않고 가이아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뻔한 수작이로군. 놈은 자기가 타고 있던 함선을 미끼로 보낼 거다. 내가 그걸 감지해서 경로를 비틀어버리면 녀석은 다른 웜홀을 타고 이동하겠지. 어차피 미끼로 보낸 함선도 본대가 없는 다른 성계로 이동할 테니 다시 회수할 수 있을 테고.
-그냥 단순하게 함선에 탑승한 상태로 오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녀석은 교활하지. 심리를 읽고 머리를 잘 굴린단 말이다. 내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어느 정도 파악을 했을 테니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거다.
어쩌면 가이아에게 혼란을 줘서 그 상황을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웜홀을 통해 무언가가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포착한 가이아는 비죽 웃었다.
그녀의 손끝에 강대한 힘이 머물자 웨일의 거체가 자기도 모르게 바르르 떨렸다.
-내가 웜홀 하나에만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헛물만 들이키게 되겠군. 멍청한 녀석.
***
[웜홀을 계속 열겠다니, 정말 미친 짓이군요. 이게 실패하면 대장님은 에너지를 거의 다 잃은 상태로 적 한가운데에 돌진하는 셈입니다.] [맨몸으로 가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퀸이랑 곧바로 1대1 대치 상황이 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낼름이도 있고.]내가 바닥에서 뭉그적대며 테티스의 청소를 돕던 낼름이를 가리키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녀석의 더듬이 눈이 모양 좋게 휘어졌다.
정신연결을 통한 제압에 약한 넘버링이면 당황하는 사이에 낼름이를 통해 빠르게 처치하고 잡아먹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내게 당한 게 있으니 녀석들도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는 않겠지만.
물론 그런 상황이 안 벌어지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하기도 했고.
리케를 통해 퀸이 웜홀의 경로를 비틀어 향하게 할 성계의 위치를 전부 파악했고, 녀석이 웜홀 두 개에 간섭하는 경우까지 계산했다.
마침내 내 손안에 들어온 정보를 취합하면 웜홀에서 갈라져 도착할 수 있는 성계의 수는 총 6곳.
공교롭게도 그 성계 모두가 내가 향하고자 하는 성계와 다시 연결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곳 모두에 웜홀을 열어버리면 퀸이 백날 웜홀을 비틀어도 무한궤도처럼 돌아온다는 뜻이다.
테티스와 리케는 내게 미친 발상이라고 했지만 나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위한 연구를 어느 정도 마치기도 했고.
생각이 끝나는 순간, 리케의 메시지가 머릿속을 울렸다.
[퀸이 웜홀의 궤도를 비틀고 있습니다.]드디어 시작인가.
이제부터 나는 녀석이 비튼 궤도의 끝에 도착하기 직전에 다시 웜홀을 열 것이다.
6곳을 모두 경유하게 될 때까지 계속.
데몬하트가 과부하 될 때까지 에너지를 밀어 넣자 곧 엄청난 에너지 폭풍이 내가 앉아 있는 곳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팔의 갑각 위로 빛을 발하는 거대한 회로들이 문신처럼 떠올랐다.
압축된 에너지들이 회로를 휘젓자 시꺼멓게 죽어가던 눈앞에 비틀림이 끝나가는 지점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고, 내 손에서 창조된 거대한 터널이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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