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11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11 >
마더쉽이 아데카처럼 시뻘겋게 물든 행성 앞에 도달한 것을 본 뒤에야 나는 리케가 제법 쓸만한 연구 결과를 가져왔음을 인정했다.
그 워프의 최대 거리를 늘리고 안정성을 높인 장본인은 토라진 채 타워 안에서 구시렁대는 중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마더쉽 앞을 가로막고 선 인간들의 함대가 뭘 하고 싶은 건지가 신경 쓰였다.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뭐지?]이미 공격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저들이 나를 보고 보일 반응은 제한적이어야 했다.
도망가던가, 아니면 맞서 싸우던가.
저렇게 마치 내가 이곳에 올지 몰랐다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아직도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이블 원 당신이 1연구소에서 저쪽 함대를 살려서 보내줬잖아.]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걸지도 몰라요.]테티스의 말에 진짜로 인간들이 정신이 나간 건가 싶었던 나는 뒤이은 작은 마리아의 추측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퀸과 싸우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일 텐데 나와도 싸워야 한다는 말을 하면 사기가 떨어질까 봐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차피 나야 퀸이 아예 주둔하던 성계 바깥으로 사라졌다는 걸 확인하고 그 뒤를 추격할 생각이어서 딱히 인간들에게 볼일이 없기는 했다.
굳이 이쪽으로 온 것은 내가 만든 웜홀고리 바깥으로 새로운 웜홀을 만들어서 퀸이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를 앞질러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거리 워프 기술은 필수였는데, 리케가 기존 기술을 개량해 이번에 직접 시험 가동해본 바로는 가능할 것도 같았다.
[됐으니까, 앞에서 꺼지라고 신호를 보내라.]인간으로 변한 낼름이와 작은 마리아를 내려주고 나면 잽싸게 추격을 개시할 계획이었다.
아, 참고로 나이트메어 녀석도 시스템 운운하는 게 짜증나서 강제로 제압한 뒤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낼름이의 후견인 역할로 따라가게 되었다.
녀석은 거칠게 반항했지만 리케가 만들어낸 능력 무효화 빔탄환에 얻어맞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저번에 같이 보고도 당하다니 넌 멍청이냐?]“······.”
[퀸을 잡고 나면 네가 궁금해하는 것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니 그동안 낼름이나 잘 보호하고 있어라. 식인은 하지 말고.]나는 단단히 화가 난 녀석을 타일렀다.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결정화 기술로 만들어져 무기가 안 통하는 몸이라, 마음먹고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소란이 일겠지.
그러면 옆에 있는 낼름이나 작은 마리아도 피해를 볼 테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닥치는대로잡아먹어서이녀석들을곤란하게만들것이다.”
[그 말투도 좀 고치고.]변하기 전에 소량의 마비 브레스를 맞은 탓에 마더쉽의 이동용 셔틀에 누워서 탑승하게 된 녀석의 눈에는 ‘씨’와 ‘발’ 두 글자가 아롱거리고 있었다.
함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 중 셋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괜히 양손을 부딪치며 털어냈다.
[오르그가 지나가겠다고 비키라는데 그걸 또 인간들이 순순히 따르는 광경을 보다니. 80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네.]마더쉽이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구축함들 사이를 지나쳐 성계 안쪽으로 향하는 걸 지켜보던 테티스는 웃긴다는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녀석은 인간으로 돌아온 오르그들을 상대로 사회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굉장히 냉소적으로 변해있었다.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 살펴봤다가 10~16살 정도 되는 인간들이 방안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나는 그 뒤로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저 짐승 같은 놈들도 저렇게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는데.]가엽고 불쌍한 아이들 -> 짐승으로 평가가 격하되기까지 수개월이나 걸렸다는 점에서 테티스 녀석의 인내심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결정화된 인간’이라 강압적인 교육을 택할 수도 없으니 무조건 말로서 가르쳐야 하는데 수백 년 동안 오르그로 살았던 녀석들에게 그게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물론 내가 직접 관여하면 달라지겠지만 나는 저 귀찮은 작업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허망한 표정으로 인생을 되돌아보는 녀석에게 다가간 리케의 로봇이 코코아를 건네며 위로했다.
[힘내시죠. 그래도 요즘은 똥은 안 만지더라고요. 변기 물을 마시는 건 그대로지만.] [아악! 정신 나갈 거 같아!]아니 그냥 약 올리는 거였군.
쨍그랑!
***
섬세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금속 병이 창문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바깥의 더운 공기가 확 안으로 밀려오며 막시밀리안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는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화가 났는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탁자를 몇 번이고 내리치고 있었다.
차분함과 냉철함의 대명사로 꼽히는 마스터라고 보기에는 손색이 있는 행동.
그러나 그의 부관은 그걸 눈앞에서 빤히 보면서도 그를 나무랄 수 없었다.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합 의회는 대변인을 통해 긴급히 회의를 열어 현 연합의장 막시밀리안 그림의 국가반역 의혹에 대하여 처리할 것을 결의······.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오직 최상층부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영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풀어버렸다.
이블 원이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것을 깨닫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벌인 짓이겠지.
만약 막시밀리안 자신이 의장이 아니고 일개 의원이었다면 써먹었을 수도 있는 방법이다.
인류 최대의 위협이 다가왔는데 그걸 알았음에도 해결할 방도를 마련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이제 막 다윈 사를 제압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출격시키려던 막시밀리안의 계획을 다 망쳐버렸다.
그것도 그가 지극히 증오하는 인공지능 세라프의 도움까지 받아서 마련한 작전을!
“이 멍청한······!”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만 세라프의 능력은 대단했다.
다윈이 그렇게 꽁꽁 싸매 외부로부터 감추려고 했던 비밀 장소를 끝내 아슬아슬하게나마 들춰냈으며 그들을 제압하기 위한 전력을 계산해 작전을 입안하기도 했다.
다윈 사가 비밀리에 양성한 전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이걸 단숨에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블 원과 함께 움직이던 특수능력자들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개 인간이 전투 로봇과 전차들을 상대로 싸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수차례 진행된 실험에서 마리아를 비롯한 네 명의 특수능력자들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왜 이블 원을 숭상하는 광신도들이 그들을 사도라 부르며 떠받는지 저절로 이해가 될 정도로.
그들의 힘은 도저히 인간의 영역이라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퀸의 진격 이후 최전선에서 계속해서 전투를 벌인 뒤부터였다.
대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수상쩍은 인사들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은 공적도 있고 다윈 사를 제압하려면 그들의 능력이 필수적이라 허가를 내린 것이 바로 어제.
이른 새벽에 터진 폭로방송은 그 큰 결단을 단번에 무효로 돌려버렸다.
의장의 권한은 의회에 의해 정지.
벌써 출동한 공안 병력이 그의 집무실 바깥을 장악한 뒤였다.
아마 이미 이블 원의 선전포고에 대해 알고 있는 공안 총경이 사태가 막시밀리안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을 예측하고 뒤통수를 후린 것이리라.
참으로 쥐새끼 같은 비열함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가 실각하고 나면 이번 작전도 전부 들통날 것이고, 저 박쥐 같은 놈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움켜쥔 막시밀리안은 붉게 물든 눈을 번들거리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이대로 이블 원이 다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래······.”
[흑화는 좀 더 상황이 나빠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마스터 막시밀리안.]머릿속과 함께 안색이 시꺼멓게 물들어가던 와중, 갑작스레 흘러든 목소리에 막시밀리안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따로 확인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세라프인가? 통신이 전부 도청당하고 있을 텐데.”
[이건 루카스 대령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사용해 머릿속에 직접 통신을 연결한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물을 어떻게 사용한 건지 궁금하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현재 대령과 저는 하인리히를 탈취한 상태입니다.]“뭐-?”
막시밀리안은 놀라서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뻔하다 황급히 눈을 주변으로 돌리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하인리히는 연합 소속으로 등재된 군선이다.
그걸 탈취했다는 건 진짜로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는 말이다.
심지어 제우스가 소돔으로 인해 모든 함대를 통제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다윈 사에 들통났다는 것까지 생각해야 했다.
“지금 밖에 공안요원들이 깔려있는데 내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는 걸 보고 싶었던 건가?”
공안 입장에서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 총알 한 방 날리는 것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장이라도 집무실 문이 열릴까 싶어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키며 경계하는 막시밀리안의 머릿속에 세라프의 음성이 다시 흘러들어왔다.
조금 웃는 것 같은 목소리가.
[안심하십시오. 바깥에 있는 병력은 전부 루카스 대령에 의해 제압되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특수부대의 능력이면 우리가 다윈 사의 병력을 제압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마치 보고하듯 딱딱한 어조였지만 그 속에는 드물게 당황한 그를 보고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절로 불쾌해지려는 심정을 다잡고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루카스 대령!”
벌컥!
부름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과연 낯이 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막시밀리안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두 가지 길밖에 남지 않았군.”
[그럼 작전을 실행하겠습니다.]막시밀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도시 상공에서 강렬한 폭음이 휘몰아쳤다.
쾅-!
**
[이건 또 뭔 상황이지?]셔틀에 탑승한 녀석들을 내려주려고 인간들이 모여있다는 행성으로 다가갔더니 아주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난리가 아니었다.
함대가 두 패로 나뉘어서 수만 대의 요격기로 포격을 퍼붓는 장면은 내가 한 예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일단 나야 함선 안에 있다지만 마더쉽의 덩치가 상당하니 모습을 보이면 외계인 침공 영화에 나오는 정도로 당황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궁지에 몰린 인간들이 결국 정신이 나가고 말았군요. 서로 책임을 미루다 내분이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적을 앞에 두고 저렇게 싸울 리가 없을 테니까요.] [저쪽에 있는 녀석들을 그냥 내버려 둬서 아직은 내가 공격 안 할 것으로 생각할 줄 알았더니. 대체 뭘 어떻게 오해하면 저렇게 세기말 상태가 되는 거냐?]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저놈들은 알아서 멸망하게 내버려 두고 퀸이나 쫓으러 가시죠.]리케는 언제 토라졌었냐는 듯이 신이 나서 소리쳤지만, 곧 녀석의 기분은 다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함대 간의 결전이 벌어지는 곳을 피해 이동하던 마더쉽의 셔틀이 갑자기 공격을 받아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 미친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