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14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14 >
그것은 정말 본의가 아니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행성 자체에 충격을 줘서 때려 부술 생각은 했어도 지표면을 용암 바다로 만들 의도는 없었으니까.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분풀이 겸 다윈 놈들을 끌어내기 위해 존망이 위협받고 있다고 믿게 하려던 것뿐이다.
따라서 아직 새로운 몸에 익숙하지 않아 목구멍 부분에 해당하는 부위를 닫는다는 걸 열어버린 것도 실수고.
브레이크 대신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아 안쪽에 고여 있던 액체를 뿜어낸 것도 실수라는 말이다.
행성 위로 김치부침개처럼 퍼져나가는 토사물(?)을 바라본 나는 다윈이든 누구든 저 안에서 살아서 도망쳐 나오는 녀석이 있다면 칭찬해주기로 했다.
**
수도 행성에 지어진 도시들에는 전부 제우스가 구축한 보호막이 있다.
엘랑스에서 한 번 군단에 의해 뚫린 뒤로 더 발전시킨 기술로 만들어 어지간한 공격에는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이 수천 도에 달하는 열을 완벽하게 막아줄 수는 없었다.
보호막 안쪽의 좁은 공간에 열과 압력이 가득 차자 쉘터 위를 덮고 있던 땅과 장갑이 마구 녹아내렸다.
이블 원이 거대해지는 동안에도 제우스의 로봇들에게 막혀 도망가지도 못한 인간들은 실시간으로 울려 퍼지는 경고음에 절망을 금치 못했다.
기본적으로 쉘터는 상층부에 탈출용 함선과 경비 로봇들이 있고, 중앙에 생활 공간이 있으며 하층부에 동력원이 있는 구조다.
외부의 충격에서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순서대로 구성한 것인데, 그 말인즉슨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가장 필요한 우주 함선이 먼저 열과 맞닿는다는 뜻이다.
거친 우주 환경에도 견딜 수 있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함선들이지만 뭉치고 뭉친 열이 지속해서 온도를 높여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물론 그보다 먼저 중앙과 상층부를 나누는 벽이 녹아내리면 답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용융되어 상층부의 터널로 흘러드는 외부 장갑을 이루는 금속을 목격한 정부의 요원들도 이제는 상황이 긍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멍하니 서있었다.
“문 열어! 빨리 우주선에 타서 탈출해야 한다고!”
“지금 탑승하신다고 해도 개폐 장치가 손상된 이상 바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천장이 뚫리고 있는데, 못 나가긴 왜 못 나가! 어서 비켜!”
그렇게 쉘터 곳곳에서 소란이 일었으며, 어떤 요원들은 자발적으로 중앙 터널을 열고 시민들을 우주선에 탑승시켰다.
쉘터의 외부 장갑이 완전히 뚫렸을 때, 그나마 열에 저항력이 월등히 높은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안전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우주선을 발진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당장 바깥으로 나갔다가 이블 원의 손에 해코지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본인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지만 수도 행성에 있는 인간이라면 모두 지금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이블 원이 주도해 벌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인류는 이블 원의 그림자가 행성 한쪽을 어둠으로 뒤덮었을 때 이미 저항을 포기했다.
혼자서 별을 먹어치우는 괴물을 상대로 맞서보자며 만용을 부릴 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하늘과 땅을 펄펄 끓는 용암으로 뒤덮어버리기까지 했으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포기한 사람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위대한 신께서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려 하신다!”
“쉘터 문을 열고 나가 은총을 맞이하자!”
이블 원을 숭상하는 광신도들은 제우스에 의해 간단히 제압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이전처럼 백안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이블 원이 행한 압도적인 힘의 행사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들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빠, 무서워!”
무너지는 쉘터 속에서, 겨우 대피한 우주선 속에서 인류는 서로를 붙들었다.
그들에게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천천히 다가온 멸망의 불길이 그들의 이를 덮자 곧 그 미약한 부르짖음조차 사그라졌다.
녹아내린 잔해 사이로 보인 바깥세상이 여전히 깜깜한 어둠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블 원은 여전히 재앙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군단이 물러간 뒤, 짧은 기간 동안 평온을 맞이했던 수도 행성은 이제는 다른 의미로 적막을 맞이했다.
**
똑똑.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고요를 깨뜨린 것은 작은 노크 소리였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우주선의 내부의 빛 대부분이 꺼진 상태였기에 어둠 속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던 사람들은 움찔하며 눈을 떴다.
얼핏 들리는 것으론 바깥에서 누군가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지만 착각이라는 가능성이 무수히 존재했다.
장갑이나 엔진이 녹으며 나는 소리일 수도 있고, 선내의 무언가가 외부의 압력에 찌그러지는 소리일 수도 있다.
게다가 밖에 열 폭풍이 몰아치는데 누가 노크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잠시 후, 사람들은 다시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바깥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저기, 안에 아무도 없나요?”
“누구십니까! 지금 밖은 안전한 건가요?”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상황에서 재빨리 나선 것은 젊은 청년 하나였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가 젊은 여성의 것이었으며 제법 평온하다는 사실 하나에 급히 반응한 것이었다.
“앗. 역시 있었네요. 용암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전부 식어서 굳었어요. 이거 파내느라 힘든데 문이 어디에 있나요?”
“······괜찮은 건가? 사람이 돌아다녀도 될 만큼?”
“만세! 우린 살았어!”
지옥 같던 시간 끝에 찾아온 희소식을 마주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물을 분리해 산소를 만들고는 있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긴급 탈출용으로 쓰이는 우주선이라 식량과 생활용품 같은 물자도 많은 인원이 소모하기에 충분하지 않기도 했고.
꼼짝없이 갇힌 채 죽는 건가 싶었는데 활로가 트이니 그나마 이성적이던 사람들조차 흥분해서 바삐 움직였다.
지상으로 나가 자신들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통로에 쌓인 너저분한 상자들을 치워낸 그들은 출구 쪽으로 모여 바깥에서 입구 쪽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워냈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밖에서 보낸 신호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서로를 쳐다보며 혹시 자신들이 환각에 시달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너무 간절해서 단체로 환청을 들은 건가?”
“동시에 똑같은 소리를 듣는 현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다만 자신들이 버려진 것이 아닐까, 혹은 바깥에 있던 사람이 해를 입은 것은 아닐까 불안해서 환각 탓으로 돌리려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불안감이 한껏 고조되던 순간, 바깥에서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왔다.
드륵. 드르륵-!
이번에는 수줍은 노크가 아닌 기계로 무언가를 강하게 갈아내는 소리였다.
복도의 천장 쪽에서 느껴지는 작은 충격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저 소리는 출구까지 덮은 용암 덩어리를 치워내는 것일까?
얼마나 강한 힘으로 부수고 있으면 우주선이 떨릴 정도인 걸까.
그에 대한 대답은 우주선에 설치된 스피커가 대신해주었다.
깜깜하던 복도는 돌연 환해짐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긴급 경보. 충격으로 외부 장갑이 손상되었습니다. 손상률 88퍼센트! 현재 시스템의 메인 서버가 해킹당하고 있습니다!
“뭐야?”
드르르륵!
이제는 모두가 무언가를 갈아내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함교.
그들이 탄 우주선을 조종하는 공간의 바로 위였다!
-경고. 서버를 일시적으로 다운시킵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쿵!
“으악!”
“억!”
황급히 함교를 향해 뛰어가던 사람들은 우주선을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충격이 있었고, 잠시 후 머리를 가리고 웅크린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있는 복도는 적막을 맞이했다.
“끝난, 건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바깥이 안전해졌나 싶더니 갑자기 함선이 공격을 당하고 서버 해킹까지 일어나다니.
너무 급격한 상황 변화에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잠시 후.
이번에는 다시 노크 소리가 찾아왔다.
똑똑.
“어-.”
“쉿. 조용히 해. 아까 공격하던 쪽이면 어떡하려고.”
“그러면 노크할 필요 없이 여기 천장부터 뚫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계세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는 사람들에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들었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있습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아. 로봇들이 공격해서 때려눕히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데······ 혹시 거기에 타일러 데이비스 씨라고 계시나요?”
“······타일러?”
사람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바깥의 여성이 말한 사람은 확실히 이곳 안에 있었다.
가장 먼저 여성의 말에 대답했던 남자의 이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을 이 함선까지 안내한 정부 측의 요원이기도 했다.
대체 왜 그를 찾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불린 타일러 데이비스는 왜 그들과 같이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의뭉스러운 시선들은 점점이 모여들다가 끝내 한곳으로 귀결되었다.
붉은 전등에 비친 남자는 덥수룩한 수염 위로 불안을 감추려는 입술이 살짝 말려 들어가 있었다.
그가 사람들을 향해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바깥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없나요?”
“있습니다! 여기 있어요!”
이미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반응은 빨랐다.
많은 이들이 타일러의 존재를 바깥에 알리기 위해 목청을 놓였고, 그에 비례해 타일러의 얼굴은 짙은 음영으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던 부르짖음이 가라앉은 뒤에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타일러가 서 있는 벽의 반대편으로 모여 바깥의 여자가 들려줄 대답을 기다렸다.
“흠. 그래요.”
여성의 목소리는 살짝 서늘함과 짜증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에 불안해하면서도 행여 타일러가 도망칠까,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타일러는 긴장한 듯 손가락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갑자기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이상하겠지만 제 본래 신분은······.”
“다윈 사 제6 수석 연구원 타일러 데이비스씨. 동료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제 발로 나오실래요, 아니면 제가 거기로 들어갈까요?”
절묘한 순간에 끊고 들어오는 말에 타일러는 입을 다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들은 어느새 경악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윈 사의 수석 연구원이라 함은 무엇을 뜻하느냐.
인류 세계의 초거대 산업집단, 다윈의 최상층부라는 말이다.
애초에 수석 연구원이라는 자리는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여기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다윈 사 임원이 왜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는 둘째 치고 그를 붙잡아 바깥의 여성에게 넘길 것인지, 아니면 지키고 숨길 것인지 선택하기 껄끄러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눈치를 보던 타일러는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품에서 레이저 커터를 꺼내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한 발짝 앞서 천장을 뚫고 들어온 손이 번개같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챈 것은 모두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켁!
힘껏 당겨진 옷자락에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뒤로 나뒹군 타일러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놓인 작고 흰 발을 보며 몸을 움찔거렸다.
뻥 뚫린 천장엔 어둠이 걷히고 드러난 맑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든 빛은 타일러와 사람들 앞에 선 소녀의 날개를 찬란히 비추었다.
빛과 어우러져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날개와 정반대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소녀는 누워있는 타일러 앞에 쪼그려 앉아 싱긋 웃었다.
슥 하고 내밀어지는 가녀린 손에 타일러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맞잡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리아 요한슨이에요.”
“마리아··· 요한슨······.”
“덕분에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 뭐에요.”
“어, 아.”
몸을 살짝 굽힌 작은 마리아는 마치 축복이라도 내리듯 타일러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등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신비롭다며 탄성을 토했지만 타일러는 그 행동이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속삭이듯 흘러든 목소리는 그 감각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사실 우리 주인님이 화가 많이 나셨거든요. 그래서 은총을 베풀어 다윈 여러분을 데리고 오르그들을 무찌르러 가기로 하셨답니다.”
그의 의지는 싫다고 소리쳤지만 타일러는 그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작은 마리아가 머리에 얹은 뒤부터 타일러는 전혀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빛을 받아 드러났을 때, 타일러는 천사 같은 미소가 얼마나 소름 끼치게 느껴질 수 있는지 여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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