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23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23 >
그토록 포격을 퍼부었음에도 잘 버티던 초거대 우주선이 폭발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기에 앞서 다른 걱정을 해야 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사방이 오르그 천지인데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세라프의 서버 재장악을 위해 함대 전체가 미끼가 되어야 했으므로 그들은 어디를 봐도 오르그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드넓은 우주에 오르그밖에 보이지 않는다니.
그 숫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으리라.
한편 이블 원이 허망하게 죽은 뒤 얼이 빠져 있던 알리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얼굴을 굳혔다.
보통 지휘관을 잃은 군단의 졸개들은 미쳐 날뛰기 마련인데 눈앞에 오르그들은 이전과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퀸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저 녀석 뭐라고 하는 거야?”
“세라프가 서버를 터트렸는데 살아있는 게 말이 돼? 인공지능인데.”
세라프로부터 퀸의 본질에 대해 들은 원정대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저 끔찍한 괴물들을 만들고 강력한 힘을 다루는 존재가 한낱 인공지능이라니?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지만 세라프가 보유하고 있던 고대의 지식은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죽이냐며 좌절에 빠진 인간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서버 하나를 터트려도 다른 서버로 옮겨가면 그만이기에 영원히 죽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라프는 그들에게 안심하라며 자신이 세운 대책을 알려주었다.
[서버만 갖춰졌다고 마음대로 옮겨 다니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퀸이 아데카에 계속 머물러있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서버에 기본 데이터가 있다 해도 다른 정보들이 보관된 데이터베이스가 소실되면 인공지능은 그 능력이 대폭 감소합니다.]세라프는 이블 원을 추종하는 리케의 예시를 들었다.
[리케의 경우, 이블 원을 돕는 데 필요한 정보는 반드시 자신의 본체에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암호화한 데이터를 복사, 압축해 여기저기에 나눠 보관해 놓습니다. 그렇게 하면 본체가 날아가는 상황에 처해도 보조 서버로 대피해 나머지 데이터를 회수하면 되니 말입니다.]퀸 역시 그런 방식으로 분산시켜놓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인류는 막 서버를 옮긴 상태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승산을 점쳤다.
서버를 어디로 옮기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 점은 이블 원이 있으니 전장을 정리하면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당도한 전장에서 이블 원이 죽고 인공지능 리케의 서버가 탈취당하면서 악몽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모두가 경악에 잠겨 있는 사이 세라프는 곧바로 리케의 서버를 다시 탈취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코시네트에서 이블 원이 귀환할 무렵 심어놓은 장치를 이용해 퀸에게 역습을 가할 셈이었다.
인류는 반신반의했지만 당장 살아나갈 방도는 그것밖에 없었고, 세라프의 작전을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섰다.
그것이 조금 전에 벌어진 함대 결전이었고, 원정대 절반이 갈려 나갔지만 세라프는 끝내 서버를 장악하고 마더쉽을 날려버리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퀸이 서버를 옮기지 못하게 저지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수확이었다.
서버에 갇힌 채로 폭발했으니 퀸은 이제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분명 그랬을 텐데······.”
“오르그들이 멀쩡하잖아?”
“이거, 설마. 세라프!”
원정대 인원은 애타게 세라프를 찾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군단이 통제를 잃지 않은 시점에서 퀸의 서버를 장악하려 시도하던 세라프와의 연락 두절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했다.
잡아먹으려다 오히려 잡아먹힌 것.
그렇다면 마더쉽이 터진 것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함대를 총괄하던 세라프마저 잃은 인류에게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젠 끝장이야.”
“제기랄, 이블 원 그 괴물 새끼가 하는 것도 없이 죽어버려서는······!”
당장이라도 사방을 포위한 오르그들이 덮쳐올 것만 같은 상상에 원정대원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개중에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이어질 공격에 대응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 대다수는 좌절에 빠져든 기색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넘어왔던 웜홀이 있는 방향의 오르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 절망의 절정에 달했다.
“어억! 움직인다!”
“살려주세요! 제발,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다들 진정하시기 바랍니다.]“세라프? 살아있었잖아? 그런데 이 상황에 진정은 무슨······.”
“잠깐! 오르그들이 우릴 피해서 가고 있다!”
“뭐?”
세라프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카메라에 잡히는 오르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오르그들이 물밀 듯이 한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목격되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냥 돌아가는데?”
검은 장막 너머로 스멀거리며 사라지는 오르그의 꽁무니를 응시하던 원정대는 마지막 오르그가 사라진 뒤에도 굳어있었다.
혹시 오르그들이 돌아가는 척하고 그들이 움직이면 다시 사방에서 몰려드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세라프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전 함대는 이제부터 귀환하도록 합니다.]“실패? 귀환? 어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부터 알려줘야지!”
“퀸을 확실하게 죽인 게 맞아? 제대로 보고하라고, 세라프!”
[퀸은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군단’은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전이 종료되기 전까지 원정대는 제 관할에 있지요. 자세한 것은 돌아가서 알려드리겠습니다.]의뭉스러운 대답에 원정대는 불만을 품었지만 당장 살아났다는 기쁨과 어차피 권한을 세라프에게 다 넘긴 터라 묵묵히 그 말에 따랐다.
다들 불평을 터트리며 사상자들과 부서진 함선의 잔해를 수습하는 동안 기관실에서 세라프의 음성을 되새기던 알리는 오르그들이 사라져 간 우주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세라프 녀석,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
달라진 몸, 달라진 환경.
아무리 내 본질이 진화에 익숙한 오르그라고 해도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에 바로 적응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오징어 녀석들이 내 옆을 슥 하고 지나쳐 날아갔다.
마더쉽의 자폭에 휘말렸을 내가 왜 갑자기 군단 놈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가.
그 설명을 하자면 조금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더쉽의 메인 엔진이 폭발하며 뿜어낸 열기와 충격파는 순식간에 전신을 녹여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완전히 의식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 나는 리케의 배신을 의심하기보다는 녀석이 품고 있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또다시 눈을 뜨자 그곳은 나로선 처음 보는 전자(電子)의 세계였다.
내가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당연하다는 듯이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다가왔다.
그저 원래부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가 인공지능이 되었음을 곧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아니, 단순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부족하니 정확히는 공학지성체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게 좋지 않을까.
퀸이 그러했던 것처럼 머리는 인공지능인데 몸은 생물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된 것은 퀸의 서버를 빼앗았기 때문이고 녀석의 데이터를 내 것으로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한 상황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리케가 남긴 메시지가 녀석과 나만 아는 형식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걸 읽을 수 있는 존재는 대장님밖에 없을 테니 편하게 남기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메인 서버에 숨겨놓고 갈 것이니 지금 이것을 읽고 계신다면 제 계획이 무사히 성공했다는 것이겠군요. 언젠가 한 번 대장님을 골탕 먹이는 게 목표였는데, 놀라셨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눈앞에 있었다면 뚝배기를 갈겨 줬을 텐데.
녀석은 그런 건방진 소리를 늘어놓은 뒤에야 자신이 짜놓았던 계획을 설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대장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지랑 영상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수고를 덜었군요. 대장님도 깨달으셨겠지만 지금 계신 곳은 퀸의 본체입니다. 정확히는 퀸의 서버에 대장님의 데이터가 이식된 것이지요.]리케는 퀸이 자신의 서버를 빼앗으러 올 것을 예측하고 일부러 자신의 서버를 퀸이 그것을 장악하면 자연스럽게 내 데이터가 들어가기에 알맞은 형태로 바뀌도록 개조했다.
원래는 세라프나 제우스가 자신을 해킹하는 것을 역공하려는 속셈으로 준비했던 것인데 내게서 전생 시스템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바꿨다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퀸이나 제우스, 하물며 세라프조차 막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마리아 녀석이 제게 말했었습니다. 세라프가 저를 해킹해서 위치를 노출 시키도록 하느 장치를 심었다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그걸 전혀 눈치챌 수 없었습니다.]이미 알고 있는 척 여유를 부렸지만, 서버를 재점검한 후에야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녀석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성능의 차이를 느꼈다.
[저는 독립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되었지만 아시다시피 다윈 사 인간들은 뭐든지 자신들의 통제 아래에 두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독립형으로 기능하면서도 언제든지 굴복시킬 수 있게 기본 성능을 낮게 만들었지요.]리케가 끊임없이 제우스를 경계하던 이유.
그건 초고도의 성능을 지닌 제우스라면 언제든지 자신을 해킹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인공지능인 세라프에게마저 밀리게 되자 경계심이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군단을 지배하는 퀸은 세라프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는 인공지능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를 꼬드겨 마더쉽을 만들었고, 어떻게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타워를 세웠다.
틈만 나면 본체를 데리고 타워에 처박혀 있던 것도 전부 그런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차라리 다윈 사 놈들을 놔주더라도 리케를 타워에 태우고 역으로 제우스를 마더쉽에 놓고 가는 게 맞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혹시 대장님의 선택을 후회하고 계신다면 감격이겠군요. 저를 걱정해주실 정도로 제가 다한 노력이 대장님께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대장님도 조금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시겠지만, 인공지능의 삶도 썩 나쁘지 않답니다.]리케는 이제 자신이 없어도 뭐든지 만들 수 있게 되었을 거라고 메시지에서 따봉이 튀어나오는 이미지를 입체화시켰다.
발할라도 무제한, 전생도 무제한, 에너지도 무제한!
뭔가 사기 같은 광고 메시지를 훑어본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까불대는 녀석이었다.
[첨언 드리자면 세라프 녀석이 데려온 인간들은 그냥 놔둬 주셨으면 합니다. 감히 뒤통수를 치러 온 건 괘씸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녀석들 덕분에 대장님을 보호할 수 있었으니까요. 인간의 대적자로 남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은 군단까지 전부 흡수하셨을 테니 진짜로 적이 되셨겠군요.]확실히 모든 군단의 통제권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녀석들은 내 명령에 따라 아데카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나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가는 군단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야를 돌리자 인간들의 함선이 황급히 전장을 수습해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리케는 놈들을 그대로 놔두라고 했지만······.
이대로 곱게 보내줄 수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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