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25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125(완) >
반항할 틈도 주지 않고 빼냈기에 세라프는 하인리히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자신의 서버가 있는 본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고리타분 녀석이니 본체도 21세기의 슈퍼컴퓨터처럼 기계인 티를 팍팍 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리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사족 보행의 둥근 로봇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요즘 인공지능들 사이에선 그 형태가 유행이냐?] [부정. 수리 목적. $%#$% 함선.]내게 서버 데이터를 뭉텅이로 빼앗긴 녀석은 제대로 된 언어 체계를 구사하는 것에 무리가 왔는지 버벅거렸다.
나야 녀석이 보내는 신호를 바로 분석해서 연결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굳이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어서 일부 데이터를 돌려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냥 보내주시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신 겁니까? 여기 있는 인간들을 다 죽인다고 해도 인류는 끝까지 살아남을 겁니다.] [중간에 빼돌린 함선을 말하는 거면 안 됐지만 방금 전부 잡아 오는 길인데. 인간들이 뭐라고 안 하냐? 아니면 그냥 네 맘대로 결정한 건가?]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나 보다.
나보고는 시스템 리미트가 없는 인공지능을 경계하라고 해놓곤 본인이 제멋대로 움직이다니, 제2의 퀸이나 제우스가 되고 싶었나?
[함대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추방한 것이었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오호.]대규모 원정을 실패했으니 불만을 가진 녀석들이야 당연히 나왔겠지.
일부가 통제를 벗어나려고 시도한 뒤 그걸 진압한 세라프가 추방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세라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지 않았기에 녀석의 안배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원정을 나서기 전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준비를 하는 게 더 현실성이 높기도 하고.
다만 어차피 인류를 멸망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속아 넘어가 줄 셈이었다.
[뭐, 뒤에서 개수작을 부린 것에 대해서 벌도 줄 겸 못난이들을 보러 왔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못난이는 누굽니까?] [나이트메어랑 낼름이. 당연하겠지만 해코지하지는 않았겠지.] [그거야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군요. 저는 원정대 총괄이니까요. 의장을 불러드릴까요?] [쓸모없는 놈. 빨리 불러내.]그렇게 풀려난 세라프는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더니 한참 동안 옥신각신하는 듯했다.
도시 상공에는 괴물이 떠 있는데 의장 보고 나오라니 당연히 안 된다고 하고 있겠지.
그래도 설득이 된 건지 아니면 협박을 당했는지는 몰라도 세라프가 알려준 위치에서 셔틀 하나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레텔 성계를 지나며 몇 번 봤던 것 같은 얼굴과 마주한 나는 그때도 이렇게 생겼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좀 더 살이 붙고 옆머리가 풍성했던 것 같은데.
제일 큰 자치령의 지도자 중 하나라 외워뒀다가 여차할 때 인질로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리케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바람에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이 녀석이 정말로 의장이 맞나?] [그렇습니다. 막시밀리안 그림. 코시네트로 가는 길에 들린 자치령의 지도자였기도 하지요.] [겉모습이 다른데?] [스트레스로 일찍 늙고 살이 빠진 데다 탈모까지 왔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대로 확인해 보십시오.]세라프의 말처럼 인공지능의 눈으로 세밀하게 분석해보자 과연 지난날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눈에서 총기가 도는 것이 상태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녀석은 와이번과 같은 눈높이에서 멈춘 셔틀 밖으로 나와 허리를 숙여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이블 원. 저는 의회의 수장을 맡은 막시밀리안 그림입니다.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뭐지? 태도가 굉장히 비굴한데.] [당장 도시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아닙니까. 그리고 의회 내에서 이번 원정의 책임을 전부 그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중이어서 당신의 방문이 오히려 반가웠겠지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으니 나랑 협상을 하는 쪽으로 발버둥을 칠 생각이란 말이군. 참 단순한 녀석들이야.]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제 판단이지만 아마 이블 원 당신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겠지요. 다윈 사를 제압하기 위해 손을 잡았을 시절에 그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설마 광신도는 아니겠지.]여기서 갑자기 녀석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무릎을 꿇으면 껄끄러워지는 건 나다.
나는 그저 경고나 해주러 온 것인데 소설 속에 나오는 국왕을 세뇌해 굴복시킨 마왕 같은 포지션이 되는 건 내키지 않은 일이니까.
나는 혹시 녀석이 몸을 아래로 굽히려 하면 바로 일으켜 세울 생각을 하면서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내 밑에 있던 녀석들이 너희들 사이로 돌아간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지?”
“밑에 있던 이라시면······ 로저스 쪽은 아닌 것 같고. 아, 그 좀 미ㅊ··· 아니 정신이 이상, 크흠! 특이하신 분들 말씀이시군요.”
한 마디 안에서 대체 몇 번 말을 바꾸는지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녀석을 바라보자 그것을 을러대는 것으로 여겼는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대답하는 게 보였다.
“그들이라면 이곳 도시 동쪽에 있는 호텔에 숙박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희의 결정이 아니라 그들이 요청한 것인데.”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군. 그럼 알아서 이쪽으로 오겠어. 됐다. 이제 가 봐.”
“네······ 예?”
나야 인간들이 나이트메어와 낼름이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딱히 용건이 없는 셈이었으니 눈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인간과 더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녀석은 내가 설마 두 녀석의 안부나 물으러 자신을 불러낼 줄은 몰랐는지 계속해서 얼이 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와이번의 당당한 풍채가 도시 전체의 전광판에 흘러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트메어와 낼름이가 달려왔을 때까지도.
그새 뭔가를 만들어냈는지 영화에서나 보던 하늘을 나는 보드를 타고 날아온 나이트메어는 거칠게 뻗은 수염을 잡아당기며 못마땅한 눈으로 와이번을 훑어보았다.
“그새 허영심이 늘었나? 굳이 인간들의 취향에 맞췄다는 건, 설마 요즘 날뛰는 광신도놈들의 신이 되려고!”
“네가 보고 있는 건 내 부하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혀 차지도 마! 네놈이 그렇게 궁금하다고 해서 일부러 이곳까지 와줬거늘.”
“아, 그래. 결국 시. 스. 템의 비밀을 풀어냈나 보군.”
으득.
내 감정에 동화된 와이번이 이를 갈았지만 나이트메어는 우주 최고의 미친놈답게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과 정신을 연결해 자초지종을 간단히 말해주었고, 그것을 들은 나이트메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다아트라는 물질만으로 진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네 말대로 아주 공교롭게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야.”
녀석의 중얼거림에 어린 인간들을 이끌고 나오던 테티스가 움찔거렸다.
자기 덕분에 내가 고도의 사고력을 가지게 된 거니 고마워하라며 큰소릴 뻥뻥 쳤던 장본인이니 찔리는 게 있을 것이다.
큭 하고 수치스러움에 몸을 비틀고 있는 녀석에게 빨리 지상으로 꺼지라고 신호를 보낸 나는 이번에는 낼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소원 성취한 것치곤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인간들이 안 어울려주나?”
흠칫.
내 물음에 바로 옆에서 눈알만 굴리던 막시밀리안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낼름이의 대답을 부추겼다.
“괴롭히거나, 협박하거나 뭐 그런 게 있으면 말해도 좋다.”
아니면 단순하게 소원을 말해도 좋고.
인간들을 다 없애줬으면 좋겠다던가, 하고 말하니 이번에는 막시밀리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옆에서 인간 하나가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어가는 가운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낼름이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달! 달이요!”
“달을 떨궈서 이 행성을 폭파 시켜 달라고? 오랜만에 에너지 좀 쓰겠군.”
“아니요, 달을 만들어주세요!”
“엥?”
마지막의 의문은 막시밀리안이 낸 소리였다.
하지만 내 심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그 생뚱맞음에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세라프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저번에 이블 원 당신이 소멸시킨 위성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없어져서 인간이 살기 좋았던 행성의 환경이 매우 안 좋아져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지요. 사실 이 행성도 그렇게 살기 적합한 환경은 아닙니다.”
내가 용암 토사물 범벅으로 만든 곳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차피 그거 아니어도 행성 표면이 그 난리라서 편히 사는 건 힘들었을 텐데?
떠오르는 의구심은 있었지만 일단 그게 낼름이 녀석의 소원이라고 하니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 가기 전에 하나 만들어 두고 가도록 하지. 전에 있던 자리 그대로 놔둘 테니 그 이후에는 알아서 해.”
“마,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위성을?”
아, 인제 그만 가라니까 그러네.
나는 옆에서 쫑알대는 막시밀리안을 무시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테티스도 이쪽에 시선이 팔린 사이 무사히 내려갔겠다.
내가 언제든 쳐들어올 수 있다는 인식도 심어주는 데 성공했으니 용무는 전부 해결한 셈이었다.
나는 밑에서 낼름이가 다음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드는 걸 뒤로하고 뉴올림포스를 떠났다.
[이렇게 보니 또 나쁘지 않네.]그렇게 도착한 인접 성계.
나는 한쪽이 죽음의 땅처럼 시꺼멓게 변한 행성을 보며 감상을 늘어놓았다.
[살지도 못하게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얼씨구? 네 녀석도 이제 시스템 리미트가 풀렸다고 슬슬 입 좀 털어보겠다는 거냐? 닥치고 구경이나 해라.]사리에 맞지 않는 존재라며 구시렁거리는 제우스를 구박한 나는 그 자리에서 위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행성 표면에 붙어있던 검은 조각들이 뜯어져 올라가는 것을 목격한 인간들은 입을 쩍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뭉치고 퍼뜨리고 다시 뭉치고.
무한의 힘과 인공지능의 지능을 가지게 된 내게 불가능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위성의 모습은 썩 괜찮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나는 궤도에 안착한 위성을 둘러보다 번뜩 좋은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내가 만들었다고 표식을 하나 해놔야겠어.
그러면 인간들이 내 존재감을 항상 느낄 수 있겠지.
[무웅.]마무리를 마친 나는 홀가분하게 와이번에게 아데카로의 귀환을 명령했다.
뒤에서 원망스러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
붉은 안개 사이로 벼락이 몰아치는 하늘.
보자마자 그리운 느낌이 확 하고 다가오는 아데카의 지상에 내려앉은 나는 지표면을 가득 메운 채 대기하고 있던 오르그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녀석들에게 나름의 자유를 부여했으니 앞으로는 이전과 달리 알아서 다투고 성장하며 살아가겠지.
군단의 처리를 자연의 섭리에 떠맡기고 나니 남은 것은 보금자리를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북쪽으로 쭉 올라가 익숙한 대협곡을 지나치자 눈에 익은 바위산이 보였다.
그 앞에는 내 방문을 듣고 모인 쿠파 녀석들이 공손하게 시립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제일 듬직해 보이는 녀석을 새로운 보스로 임명했다.
뭉!
날 듯이 기뻐하며 곧바로 근처에 있던 녀석들을 착취하기 시작하는 뉴 보스 쿠파를 보며 나는 누군지 몰라도 교육을 개판으로 시켰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설마 비교적 점잖아 보이는 이 와이번 녀석도 내가 안 보는 사이에 그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바위산을 지나쳐 올라간 평원의 끝에는 두 번째로 떠났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요새와 기지가 있었다.
아데카로 돌아간 퀸이 다 때려 부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럴 가치를 못 느꼈었는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와이번에서 내린 나는 녀석을 돌려보내고 일부러 촉수로 만든 다리를 움직여 암석을 깎아 만든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 입구에 도달하니 세밀하게 조각된 용의 눈이 시퍼렇게 타올랐다.
대충 만들라고 해도 리케 녀석이 공들여 만든 작품 중 하나라 괜스레 헛웃음이 나왔다.
계단 끝에 털썩하고 주저앉자 오랫동안 쌓인 흙먼지가 확 하고 피어올랐다.
아니.
그건 뭔가가 땅속에서 솟아 나오며 생긴 것이었다.
옆을 내려다보자 작은 텔레비전 형태의 로봇이 팔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공지능 리케라고 합니다. 제 사령관으로 등록되어 계시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끝.
작가의 말
완결입니다.
이블 원이 떠나고 난 뒤의 삶을 외전으로 가볍게 써 볼 계획입니다만 일단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정말 준비가 많이 미흡했음을 통감했습니다.
체력도 받쳐주지 않았고, 짜놓은 플롯에 집착하다보니 시원시원한 전개도 보여드리지 못했네요ㅠㅜ
따라와주신 독자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인사 올리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