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26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외전1
라스트포트 성계.
오르그들의 침공으로 인해 인류가 벼랑 끝으로 몰렸을 무렵,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행성 트와일라잇.
한때 지표면의 30퍼센트 이상이 암석질로 변해 인간이 거주하기 힘들었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러 다시금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을 때에 이르러서는 성계 간 무역 주요 거점으로서 천만에 달하는 시민이 거주할 지경이 된 것이다.
구 연합 정부의 수도인 엘랑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
그리고 수도가 있는 뉴올림포스 성계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풍족한 삶을 누리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이었다.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에 관광객들도 상당히 많이 방문하는 편이었는데, 뉴엘랑스에 거주하는 13살 소녀 마리아 헤밍턴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구국의 성녀로 통하는 마리아 요한슨의 이름을 딴 그녀는 예비 장교 육성 시스템에서 만점을 받은 인재로, 현재는 국군 정보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트와일라잇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무역로의 감찰이라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임무의 연장선에 불과했는데, 그녀 자신이 대전쟁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까닭도 있었다.
여객용 셔틀이 대기권 안으로 진입한다는 안내와 함께 거대한 화면에 펼쳐진 트와일라잇의 정경에 마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한때 용암이 굳어 암석질로 변했다는 곳이 저기구나.’
건축물들이 내는 빛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이 트와일라잇의 중심지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게 찬란히 빛나는 지점이 있었다.
아직 우주의 어둠이 주변을 지배하는 가운데 회오리 모양으로 지어진 거대한 도시 집단이 내뿜는 황금빛의 향연은 승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에 다들 탄성과 감탄사를 토해냈지만 군 관계자인 마리아는 저 도시들의 형태가 단순히 미관적인 것에 중점을 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디언’ 대책······.”
무심코 입 밖으로 낸 그 이름은 대전쟁 이후로 발족한 정부가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는 연합의 어둠 중 하나였다.
마리아는 점점 가까워지는 지표면 너머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푸른빛을 바라보았다.
“엄마! 저기 보이는 건 뭐야?”
“응, 어디? 아, 저 푸른 별?”
“별이야?”
“그럼. 트와일라잇의 하나뿐인 위성인 ‘옵저버’야. 신기하게 다른 별들이랑 다르게 혼자서 빛을 내뿜는 것으로 유명하지.”
“정말? 짱이다!”
마리아는 옆에서 들려오는 한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입맛을 다셨다.
빛을 내뿜는다는 사실만 언급한 것으로 보아 옵저버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이들이었다.
저 위성의 역사가 불과 수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과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그냥 일반인.
“그럼, 나중에 저기도 가보면 안 돼?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음··· 헨델, 미안하지만 저곳은 접근 금지라 안 돼. 나라에서 가지 말라고 막아놓은 곳이니까, 가까이 가면 엄마가 잡혀간단다.”
“우웅. 엄마가 잡혀가는 건 싫어. 그래두 궁금하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트와일라잇에도 재밌고 신기한 게 엄청 많이 있으니까 저기는 포기하자. 알겠지?”
엄마의 말에 응! 하고 활기차게 대답하는 아이였지만 마리아는 그 눈에서 아직 꺾이지 않은 호기심을 엿보았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마리아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흠칫거렸다.
“아, 안녕.”
“그래, 안녕.”
이 인사성이 밝은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는 게 좋을까.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은 마리아지만 사회에 먼저 발을 내디딘 선구자로서, 그리고 정부 산하 집단의 일원으로서 아이의 불필요한 호기심을 식혀줄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진실을 조금 섞어 아이를 겁주기로 했다.
“그거 아니? 저 옵저버라는 별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사는 거.”
“응? 괴물?!”
“그래. 사람을 잡아먹는 아주 커다랗고 흉측한 괴물이야. 힘이 무지막지하게 세서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걸 먹어치워 버리지. 나라에서도 그 힘을 겨우 억눌러 놓은 거라 사람들 보고 가까이 말라고 하는 거야. 너 같은 작은 애는 그 괴물이 숨만 내쉬어도 통구이로 변해버릴걸?”
“토, 통구이.”
아이의 눈에 두려운 기색이 깃든 것을 확인한 마리아는 괜찮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이의 엄마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그 신호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동조했다.
“그래. 우리 헨델은 통구이 먹는 좋아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되는 건 싫지?”
“으, 응. 싫어.”
“그러면 트와일라잇에서만 안전하게 놀다 가는 거다? 엄마 옆에서.”
마리아의 말만으로는 신뢰하지 못했겠지만, 엄마까지 거들고 나니 아이는 옵저버에 산다는 괴물에 대해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조금 움츠러들었다가 엄마의 화제 전환에 다시 밝아지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은 마리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이제는 도시의 빛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 푸른빛을 응시했다.
‘가디언이라······ 대전쟁의 잔재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이지. ’더 원‘의 마지막 흔적이기도 하고.’
2차 대전쟁 이후 연합 의장 막시밀리안이 최종적으로 정국을 휘어잡으면서 그와 충돌을 일으켰던 다윈 사가 은폐하고 있던 정보들이 풀려났다.
오르그의 탄생 비화나 1차 대전쟁 당시의 기록들은 인류를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지만, 그와 동시에 다윈 사의 최첨단 기술의 공개는 인류의 재번영을 빠르게 앞당겼다.
2차 대전쟁으로부터 약 480년이 지난 현재, 인류는 전성기 시절의 오르그가 쳐들어와도 무리 없이 물리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느냐 하고 묻는다면 정부 인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최강이자 최후의 오르그.
넘버링0 ‘더 원’의 존재 때문이었다.
한때 이블 원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와 오르그 전체를 동시에 나락으로 밀어냈던 더 원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더 원 자신이 그렇게 대놓고 활동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와 같이 여정을 했던 ‘라스트 맨’ 그룹이 자세한 언급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요한슨 가문의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그를 그저 압도적인 힘을 가진 불가사의한 괴물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 연합 초기에는 더 원을 그렇게 포장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구국의 성녀인 마리아 요한슨이 나서서 극렬히 반대하며 무산되었다.
‘기술의 시대에 성녀라니······. 그녀로 인해 더 원이 오컬트적인 영역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하지는 않지만.’
인류는 인공지능 세라프에 의해 ‘신인류화’ 기술을 받아들여 우주의 각종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신체를 얻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편안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처럼 어마어마한 자원을 들여 인간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이 기술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마리아 요한슨이 스스로 만인 앞에서 그 신체 능력을 증명해 보임으로서 여론을 돌린 케이스였다.
오르그 군단을 막아내는 데 일조하고 최종적으로 더 원의 인류침공을 무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성녀라 불리는 그녀가 직접 나서자 그녀 밑의 신도들이 그 뒤를 따랐다.
대전쟁 후 살아남은 이들 중 상당수가 더 원을 숭배하는 신도들이었기에 그 파장은 인류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기에 충분했다.
극도로 높아진 환경 대응력으로 인해 인류는 빠르게 숫자를 불려 나갈 수 있었고, 불과 400년도 흐르지 않은 지금은 1차 대전쟁 이후 시기의 인류보다 훨씬 번성해 있었다.
그리고 마리아 헤밍턴은 그 모든 것의 시작이 더 원한테서 나왔음을 알기에 착잡함을 느꼈다.
‘눈앞에서 별을 부수고 만드는 것까지 보여주면 신으로 모셔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현 인류의 기술로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많은 이들이 망각한 사실 중 하나가 있다.
바로 트와일라잇의 위성 옵저버는 더 원이 ‘창조’한 별이라는 것이다.
망각된 지도 시간이 꽤 흘러 이제는 말해봤자 미친 인간 취급당하는 시대가 왔다.
마리아 역시 그 진실을 처음 접했을 때 웃기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으니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별을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인류의 종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리는 기술까지 만들었으니 그 능력 만큼은 ‘신’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그리고 그 증거가 저 별에 떡하니 남아 살아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디언’이다.
온몸이 암석질로 되어있다는 그 괴물은 더 원의 수하라고 알려졌지만 옵저버가 생성된 후 떠난 더 원과는 달리 계속해서 위성 근처를 떠돌았다.
적극적으로 인간들을 공격하려는 낌새는 없었지만, 인간이 옵저버에 접근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 때문에 정부에서는 그 구역을 봉쇄하고 경계하는 중이었다.
하여 정부는 어쩌면 가디언이 더 원으로부터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신앙에 심취한 몇몇 인사들은 더 원이 돌아오는 날 가디언이 다시 움직이리라 추정하고 있었다.
‘이건 뭐 세기말 예언 판타지도 아니고, 말이나 되는 소리야?’
우등 교육을 받은 마리아 입장에서는 코웃음이 나오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섬뜩한 이야기였다.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더 원의 귀환을 바라고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최근 ‘스테이터스’ 어쩌고 하며 게임과 현실을 혼동해 난리를 피우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도 그와 거리가 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질 나쁜 무리들이 더 원을 명목으로 삼아 사람들을 현혹하고 세뇌해 국가 전복을 꾀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트와일라잇 포트입니다.
안내 방송을 들으며 안전벨트에 손을 올린 마리아는 화면에 비친 저녁 하늘이 이전보다 묘하게 푸르고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시야에 정체불명의 홀로그램 화면이 잡히고, 근처 승객들의 입에서 의문을 표하는 소리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
**
보스 쿠파.
아니 ‘가디언’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얼음 같은 수정 더미 위에 앉아 저 멀리서 점멸하는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자의식’을 부여한 존재가 떠나고 긴 세월이 흘렀지만, 가디언은 여전히 처음 명령받았던 대로 별을 지키고 있었다.
수백, 수천 번을 냅다 도망갈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혔으나 저 무시무시한 존재를 떠올리면 번번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그는 자신이 앉아있는 이 별이 자신의 정신을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이상한 소리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의 정체란.
-주인님께서 곧 돌아오신다.
이 하나뿐이었지만.
그만한 협박이 따로 없어서 수백 년 동안 이 작은 별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오롯이 가지게 된 자기만의 영역에 대한 애착으로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인간들의 구조물을 부수기는 했지만.
그건 순전히 자의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언제쯤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걸까.
자신과 자주 영역 다툼을 벌이곤 했던 비늘 대가리를 떠올린 가디언이 8351번째 탈출 욕구를 잠재웠을 때였다.
별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안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인류의 번성이 기준치에 도달했기에 ‘라그나로크’ 시스템 1단계를 발동합니다.] [‘보스 쿠파’를 성좌에 편입합니다.] [라스트포트가 9구역으로 개칭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