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127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외전2(완)
한때 인간이었던 정신이 괴물이 되었다가 인공지능이 되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공지능을 뛰어넘은 기괴한 지성체가 된 내 심정을 말해보자면 별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하겠다.
내가 오르그가 되었다고 이성을 잃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전생이라는 유일무이한 현상에 의해 삶을 반복하고 있기에 이게 보편적인 현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인공지능이면서도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리케의 증언을 곁들여 생각해본 결과일 따름이다.
[굳이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뇌가 두 개로 나뉘어 있는 것 같은데. 하나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느낌이라고 할까.] [저 같은 경우는 그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지요. 입출력에 시간이 좀 걸린다뿐이지 하고 싶은 계산이나 작업은 바로바로 가능합니다.] [우쭐대지 마라, 그래 봐야 오류 하나 수정하기 버거워하는 함수 대가리 주제에.] [큭, 인공지능 태생에 이런 단점이.]이따금 맛탱이가 간 듯한 모습을 보이는 리케 녀석은 내 말을 듣고 비탄에 빠진 여주인공처럼 주저앉아 땅을 두들겼다.
그래도 저 정도면 데이터가 초기화 상태였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퀸이 한 번 차지하고 그 다음 세라프가,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리케의 자의식을 유지하고 있던 서버 데이터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최후의 순간에 자기 자신이 그것들을 모두 잘게 찢어 흩어놓은 덕에 내가 조금씩 수습해 현재 리케의 서버에 옮기고 있다.
다만 데이터끼리 이리저리 섞이고 중요한 몇 개가 삭제되거나 덮어씌워 진 것도 있어, 현재의 리케는 기억을 되찾기는 했으나 이따금 오류를 일으키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치명적인 단점은 하루빨리 보완해야······ 보완하다. 보완하다란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로써- 아니! 언어시스템이 이상함! 흥분! 흥분이다! 흥분이 아닙니다! 출발!] [알았으니까 진정해라.] [Siba-]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각종 기괴한 단어를 마치 정상인 것처럼 늘어놓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모습이다.
적어도 자기가 말하는 단어가 이상한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지는 않으니까.
내가 인공지능의 능력을 얻었으니 어떻게든 고쳐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데이터의 본래 형태가 어떤 모습인지는 과거의 리케만이 알고 있으므로 나는 그저 일그러진 조각들을 모아 전달해줄 뿐이다.
그나마 보조 서버를 가지고 있는 지금의 리케가 아니고서야 내가 섣부르게 손을 댔다간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변할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어떻게든 데이터를 백업해가며 무한에 가까운 시도를 거쳐 수정한 게 지금의 모습이라는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나를 위해서 저 꼬라지가 된 것을 생각해 최근에는 사춘기가 온 동생 놈을 키우는 기분으로 대하고 있다.
상대하기 영 귀찮아지면 제우스에게 떠넘겨버리기도 하지만.
[데이터 파편을 행성 X-2033에 숨겨뒀다고 했는데 여기에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좌표가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데이터가 일부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젠장. 몇 번째 허탕을 치는 거야? 됐고,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이 녀석 좀 보고 있어라. 또 저번처럼 폭주해서 초신성에 뛰어들게 하지 말고.] [그래도 행성이 폭발하면서 방출되는 비가시성 파동에 반응하는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딴 결과는 궁금하지도 않아. 미쳤다고 행성 폭발에 가까이 가야만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해놨겠냐?]현재 나와 리케, 제우스는 과거의 리케가 남긴 메시지를 따라 보조 서버들을 회수하러 다니는 중이었다.
녀석은 영리하게도 아데카에만 보조 서버를 개설한 것이 아니라 본체의 서버를 일부 복제해 우리가 지나친 성계 여기저기에 숨겨두었다.
문제는 지금의 리케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데이터 상당수가 손상되어 좌표를 보고 찾아가도 아예 아무것도 없거나 돌맹이만 가득한 행성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계속 허탕 치는 게 열 받았는지 제우스는 극단적인 추측까지 내놓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리케가 아무리 우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친놈이지만 까딱 잘못했다간 다 같이 박살 나는 위험천만한 짓까지 계획에 넣지는 않는다.
나를 방패막이로 세워서까지 자기 생존을 도모하던 녀석인데 가장 기본이 되는 보조 서버를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내려 하겠는가.
[그래도 남은 좌표가 얼마 없어서 다행이군. 은하계를 한 바퀴 돌아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항성 서너 개 정도는 소멸시켜 에너지원으로 써야 할 겁니다. 가능합니까?] [안 되니까 다행이라는 거 아니냐. 예전의 내 몸으로 돌아가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귀찮고 힘들어서 싫다.]나는 현재의 몸을 얻은 뒤로는 딱히 다른 형태로 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위압적이고 풍채가 당당하게 보이면 좋겠지만 매일 거울을 볼 것도 아니고 구태여 그런 모습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같이 있는 녀석들만 해도 둥글둥글한 형태를 한 금속에 담긴 인공지능 놈들이다.
상대의 외모에서 어떤 영감도 얻지 못하는 녀석들 앞에서 겉모습을 어떻게 하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나마 내가 녀석들과 비슷한 모습을 취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순수한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어. 아데카로 돌아가면 숲이 우거져 있고, 와이번 녀석은 토루크 막또라고 불리고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제2의 가이아가 탄생해서 권토중래를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리케가 보조 서버를 남겨뒀다면 가이아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떠나기 전에 타르타로스 시스템까지 손봐놓으면서 아데카를 샅샅이 뒤졌는데 남아있는 건 없었으니까.]혹시 아데카 외부에 숨겨둔 탓에 놈이 돌아온다고 해도 내가 군단에 걸려있던 세뇌를 풀어버린 이상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을 터였다.
끽해봐야 예전에 녀석의 본체가 머물던 곳을 다시 장악하려 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전부 파괴되고 조금 남겨놓은 것도 보스 와이번이 지키고 있다.
자아를 가진 녀석이니 내가 이곳에 떠나온 사이 꽤나 성장을 했을 테고 본체가 아닌 분신 상태의 퀸이라면 놈을 상대로도 제법 힘겨워할 가능성이 크다.
[제 데이터에 따르면 퀸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대장님과 달리 퀸은 본체가 소멸하면 분체도 전부 소멸하는 방식이라서요.] [그렇다면 더욱 걱정할 필요 없겠군. 빨리 남은 곳을 돌고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겠다.]리케의 말에 한시름 놓은 나는 이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말을 꺼냈다.
오르그로 변한 뒤로 수면이라는 개념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었는데 신체적인 제약을 전부 벗어던지고 나니 지금이라면 원하는 대로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없는 욕구가 생겨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서 한 번 자보고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 뒤로는 아예 안 잘 생각이었다.
[이 싸움이 끝나면 프러포즈하겠다 같은, 그런 맥락입니까?] [그건 안 좋은 플래그고, 이 자식아. 쓸데없이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리케의 헛소리에 가차 없이 응징을 먹였으나.
녀석이 세운 플래그는 여지없이 예상을 벗어난 결과로 돌아왔다.
[어······ 여기 보조 서버가 있기는 한데.] [이 개체는 다른 자의식을 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치울까요, 마스터?] [아니, 잠깐. 여기 있는 게 깨어났다면 이 뒤에 있는 놈들도 혹시?]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렴풋하게 빨리 가서 회수하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의식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리케의 보조 서버들이 내 상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짓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무역선으로 위장해 다음 목적지가 있는 인류 세계로 향했을 때,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사방에서 날뛰는 괴물들과 온몸에서 푸른 빛을 내뿜으며 그에 대적하는 인간들, 그리고 서버 회로를 타고 들어오는 기괴한 데이터들까지.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인공지능의 뛰어난 연산능력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추측해냈다.
[이 광신도 새끼들이 리케 놈이랑 연합해서 사고를 쳤네?]요컨대 리케 녀석은 백에 하나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뒀는데 광신도 놈들과 리케(보조 서버)가 그걸 발동시켜 버린 것이다.
본래는 인간 중에선 마리아 파티만 가지고 있는 스테이터스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상당히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었다.
[저건 대장님께서 인류의 대적자로 남기 위해선 파워밸런스를 조정해야 한다는 세라프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로······.] [야.] [네?] [닥치고 이리 컴(Come).]현재의 리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었다.
따라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깊은 빡침이 담긴 후려치기를 녀석에게 선사해주었다.
또 이딴 수작을 획책하면 보조 서버고 나발이고 다 찾아서 불태워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내가 분명히 사고 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잠깐, 저는 관계 없······!]깡-!
**
2차 대전쟁 이후 388년.
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나서야 인류는 자신들의 몸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 현상은 처음엔 ‘더 원’을 섬기는 신도들에서 나타났다.
일명 스테이터스라는 화면이 눈앞에 어른거림과 함께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비신체적인 능력을 발현한 것이다.
갑자기 강력한 힘을 얻은 이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면서 자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평소 쌓아뒀던 욕망을 풀어내는 자들도 있었다.
몇 번의 소요가 있었고, 정부는 스테이터스를 발현한 이들은 ‘발현자’ 혹은 ‘각성자’라 부르며 색출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발현자가 잡혀들어간 끝에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는 이러했다.
[세라프가 우리의 몸에 독을 심었다.] [‘신인류화’기술에 스테이터스를 강제로 발현시키게 하는 인자가 포함되어 있음.]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대중에게 발표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이 공개 석상에 서기도 전에 ‘라그나로크’가 발동되었기 때문에.
모든 신인류의 눈앞에 스테이터스가 떠오른 날 밤.
세계는 다시 한번 괴물들의 침공을 맞이했다.
[성좌 ‘세라프’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앞으로 100일. 괴물들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외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