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2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2
늪지에 살기 시작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장구벌레 같은 녀석들을 먹으면서 진화에너지를 다 채웠을 때 다시금 깨달은 사실이 있다.
진화 테크는 내가 먹은 생물의 ‘가능성’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내가 첫 번째 진화 때 본 ‘가능성’들은 지네 놈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겠지.
이 장구벌레들은 무려 날개를 가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흥분해서 날개를 바로 돋아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이 약해빠진 몸에 날개를 단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잖아? 뭐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늘겠지만 땅에서 질주하는 게 더 쉽다.
게다가 구멍에 숨으려고 할 때 날개는 매우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달릴 때 방해되기도 하고.
나는 날개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가능성에 주목했다.
바로 땅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녀석들이 왜 몸을 땅바닥에 박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속에서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렇게 에너지를 모으다가 진화할 시기가 되면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걸까. 아직 그런 녀석은 본 적 없지만 그럴 징조가 보이면 바로 잡아먹어주겠다고 결심했다.
막 진화한 녀석은 좀 약하거든. 가능성! 가능성을 보자!
나는 벌써 네 번의 진화를 마쳤다.
육체를 키우고 갑각을 강화했다. 목표는 일단 X글링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이다. 여기에 원거리 무기까지 장착하면 제법 볼만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 구릉에 있던, 집게를 여섯 개나 장착한 놈들이 몰려왔다.
꽃게를 생각하면 안 된다. 사슴벌레 머리에 전갈 같은 꼬리, 네 개의 팔에 집게를 하나씩 장착한 놈들이다.
내가 여기서 꿀을 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놈들은 장구벌레들을 무시하고 내게 돌격해왔다.
그런데 너희들 뭔가 잊고 있는 게 있지 않니? 늪지대에서 그런 두꺼운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걸까. 지능이 단순한 놈들이 틀림없다.
나 같은 경우는 닷거미처럼 물 위를 미끄러질 수 있다. 이건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거라 딱히 진화가 필요 없는 경우였다.
집게 놈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신나게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가 늪 속에 가라앉았다. 이게 웬 개꿀이냐?
집게 놈 일곱을 먹어치웠더니 다시 진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독가시 발사가 가능해졌다. 한 번 발사하면 조금 있어야 재생성 되지만 그래도 6개 정도 모아놓을 수 있어 연사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장구벌레 녀석들에게 발사 테스트까지 마친 나는 슬슬 외부 지역으로 진출하기로 했다.
집게 놈들을 먹고 난 뒤에 든 생각이지만 역시 장구벌레들 가지고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괜히 모체가 형제들을 키워서 먹는 게 아니거든.
*
나를 비롯해서 주변에 서식하는 생물체들은 대부분 잠이 없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 소모가 크면 피곤해지는 느낌은 있지만 조금만 쉬면 바로 회복된다.
이 점은 내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 도망치기에 용이하지만 반대로 내가 기습하거나 쫓는 입장이 되면 정말 불편하다.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
나는 지네 놈 하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포착해 공격을 가했다. 제법 덩치가 큰 녀석이었다.
놈은 내 몸집이 작은 것을 보고 싸움에 응해왔다. 물론 나는 근접전을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슬쩍 뒤로 빠지면서 독가시로 쏘아주었다.
세 발을 발사해 두 발을 맞혔다. 과연 신궁의 후예, 대한민국 출신답군.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놈은 중독된 상태에서도 잽싸게 달아났다.
그때까지 나는 속도에 자신이 있었는데 놈이 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덩치로 나와 비슷한 스피드를 낸다고?
꾸엉!
도망치는 녀석의 엉덩이(?)에 한 발을 더 맞힌 덕에 잡을 수 있었지만 위기감을 느꼈다. 만약 녀석이 그대로 도망쳐서 무리에 합류했다면 저번처럼 물량공세에 쫓겨나야 했을 것이다.
이제 내 덩치도 커져서 모체의 먹이로 인식될 것이기에 유인할 수도 없다. 늪지대로 도망간들 저 지독한 놈들이 포기할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저놈들은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근처 구릉에 올라가서 살핀 바로는 지하에 나있는 벼랑 같은 곳에 수만 마리가 뭉쳐있었다.
으, 소름.
나는 편하게 사냥할 생각을 버리고 여기저기에 함정을 팠다.
내 장점이 무엇이겠나. 놈들보다 머리를 잘 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을 파고 독가시를 뽑아 아래에 박아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장구벌레로 만든 먹이를 미끼로 놔두면 끝.
멍청한 지네 놈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함정에 걸려들었다. 학습능력이 조금은 있는지 수십 마리가 당한 뒤에는 아예 뭉쳐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안 걸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두 마리가 같이 걸리기도 했다. 설마 뇌가 장구벌레에 환장하는 기생충에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내 정신도 기생충의 것일지도.
킈킉! 킥!
어쨌든 진화를 세 번이나 더하고 나자 기분이 좋아졌다.
덩치를 더 크게 하고 몸의 형태도 변화시켰다. 거미보다 내가 처음 생각한 X드라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나는 뒤쪽도 수월하게 살필 수 있고 공격 범위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아예 럴X 형태로 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진화에너지와 생체 정보가 엄청나게 필요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킉!(내가 바로 이 구역의 미친놈이다!)
이제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솔직히 지금이라면 모체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진화는 그녀가 더 많이 했겠지만 나처럼 효율적으로 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제 지네들은 원 샷 쓰리 킬은 기본이고 낫 같은 양 팔로 덤비는 놈들을 학살할 수도 있다.
혼자서 수십 마리의 군집과 싸울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이 근방에 내 적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담하게도 모체의 둥지를 공격하기로 했다.
아귀와 싸우고 누가 이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긴 쪽은 상대를 먹어서 더 강해졌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모체가 이겼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지네들을 학살하는데 놈들과 싸우면서 다치기까지 한 아귀에게 모체가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체가 사냥하는 시간을 노려 접근해보니 과연 내 생각이 맞았다. 둥지 안에는 최근에 모체가 낳은 것 같은 알이 있었다.
크릉!
전투는 기습적으로 쏘아진 내 독가시에 모체가 등을 쏘이면서 시작되었다. 모체는 맞는 즉시 곧바로 몸을 튕겨 나를 공격해왔다.
나는 피하지 않고 양 팔을 ㅅ자로 휘두르며 맞섰다. 모체의 이빨과 내 발톱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정면에 독가시를 쏘아주었다.
입 속에 그대로 명중!
칵!
불의의 일격을 받은 모체는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나는 그 위로 올라타 마구 팔을 휘두르고 독침을 쐈다.
모체도 이 구역을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쌓은 내성이 있어서 꽤 오랫동안 버텼지만 나는 강제로 그녀의 갑각을 벗겨내며 그 속에 독을 주입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모체는 중독과 출혈을 이기지 못하고 잔뜩 오그라든 채 움직임을 멈췄다.
포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
나는 두 번의 진화를 끝마쳤다.
등허리에 방패 같은 갑각을 하나 구비했고 독가시의 연사력을 강화했다. 이제 열 발 까지 쌓아놓고 두발을 한꺼번에 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게 쓸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지만 그 습성은 그대로 있는지 이 새로운 육체와 무기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벌레들의 협곡’
내가 이렇게 이름 붙인 그 장소는 지네들뿐만 아니라 별 괴상한 놈들이 어마어마한 군집을 이룬 채 살아가는 공간이다.
나는 그곳으로 사냥을 가기로 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진격로와 도주로를 짰다.
협곡이 꽤 복잡한 지형이라 안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바깥에서 보이는 부분은 전부 파악해두었다.
나중에 저런 지형도 스캔해서 기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미래를 상상하던 나는 새로운 놈들을 만나게 되는 게 기대되었다.
아, 먹고 싶다! 생각할수록 갈증이 인다. 잡아먹고 더 진화하고 싶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지는구나.
*
루카스 대령은 날렵한 기체의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안전벨트를 맨 그는 옆에 앉은 대원들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전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제부터 그들이 가야할 곳은 저 끔찍한 괴물들이 우글대는 곳이다.
놈들의 발톱은 강철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뿜어내는 독과 가스는 인간 따위는 단숨에 녹여버릴 터.
그것들이 사는 환경은 보호 장비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고열과 가스로 가득 차있다.
이들은 신체강화시술을 받고 실전까지 거친 정예들이지만 그런 지옥과도 같은 곳이 달가울 리 없다.
루카스는 옆에 앉은 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막심 터너 중사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가 보내는 신뢰의 눈빛에 루카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륙합니다.”
“안전장비를 재점검해라! 지금부터 제군들이 실행할 작전은 속도가 필요한 것이다. 도착한 뒤에는 여유가 거의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점검을 게을리 하지 마라!”
“예!”
수송선은 대원들의 함성을 남기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천천히 가속하던 엔진은 곧 힘차게 추진을 거듭하며 기체를 밀어냈다.
대원들은 장비 너머로 전해지는 진동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총 10개 소대, 550명을 태운 여덟 척의 셔틀은 곧장 아틀라스 행성의 대기권을 돌파해 아데카로 날아갔다.
“신께서 우리를 보우하사······.”
*
아데카 행성. 고도 700킬로미터.
하늘에서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진하는 물체를 응시하는 존재가 있었다.
돔형의 갑각을 머리 위에 얹은 그는 메뚜기 같이 생긴 얼굴 밑으로 기다란 촉수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흔들거리며 우주선들의 경로를 빤히 보았다.
옅은 무지개 색의 빛이 긴 꼬리를 남기며 그것들이 앞으로 향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입, 아니 부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흔들리며 소음을 만들어냈다.
“…(직립보행하는생물체다지성을가지고있다)”
“…(잡아서분해한다맛을분석한다)”
“…(저들이궁금하다)”
무수히 많은 전진기지를 부수고 위성거점을 침략해 인류를 학살한 네임드 개체.
넘버링2 나이트메어.
아데카에 서식하는 오르그 중 포악한 개체들조차 기피하는 희대의 괴물이 그들을 목격하고야 만 것이다.
그는 때때로 인간처럼 웃었다. 인간이라는 생물을 먹고 또 먹으며 진화한 개체의 특징이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군집 개체들은 가질 수 없는 특징이기도 했다.
즐거움을 느낀다. 분노를 느낀다. 그것이 다음 행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생각하고, 사고하고, 사유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다시 진화한다.
그가 겹눈을 흥분으로 마구 떨었다.
조만간 다가올 만찬을 고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