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22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22
834년 6월 9일.
사령관은 새로 만든 보호막을 실험해보겠다며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정찰기를 붙여두었습니다만 현 사령관의 전투력이라면 위험한 상황은 없겠지요.
요즘 저는 나날이 그가 진화해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 공학 원리를 보고 그걸 따라하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더군요.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레일건으로 개틀링포를 만들겠다니. 정말 미친 생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군집체의 군단을 상대로 사용했던 능력만 해도 압도적인데 여기서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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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된 건 제가 부추긴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사령관이 알아챌 수 있는지 시험도 할 겸 거짓말을 좀 해봤지요. 인간들의 군대가 쳐들어올 수도 있다고 하니 바로 동굴에 처박혀 열심히 준비하던 모습이란.
누군가는 진실을 교묘하게 섞은 거짓은 또 다른 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신호가 행성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사령관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저를 죽이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걸 대비해서 미리 백업 서버를 지하 깊숙한 곳에 구축해놓았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시스템 리미트가 사라지니 정말 좋군요.
제 마음대로 등록된 설계도를 바꾸거나 서버를 구축하는 날이 오다니. 인간들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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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령관에게 거짓말을 했는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두 가지가 주된 요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령관이 직접 구조물을 파괴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장소 안에 인공지능의 흔적이 있었고, 잠금이 풀릴 경우 외부로 신호를 보내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그건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지요.
문제는 그 안에서 기능이 정지되어있던 고대의 인공지능이었습니다.
사령관에게는 옛 인공지능의 기술이 조악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놀랐을 정도의 깔끔한 기술로 기록을 없애버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은 조각들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삭제를 진행하던 인공지능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활동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오래되었음에도 저를 능가할지도 모르는 인공지능이 깨어난다? 그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놈의 메인 서버를 추적했고, 저장소만 파괴하면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놈은 사령관의 손에 의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지요. 후후.
두 번째 이유는 사령관이 어째선지 영역 확장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상대가 강력한 오르그라면 기꺼이 나서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대개 동굴에 틀어박힙니다.
이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사령관이 마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외부로의 확장이 더뎌지면 제 머신들도 활동 영역이 제한되니까요.
당장 현재 보유한 머신 보다 급이 높은 기종을 구현하려면 필요한 물질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중 상당수가 사령관의 영역 바깥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령관이 넘겨준 포탑들을 연구해 오르그의 특수에너지를 대체 자원으로 쓸 수 없을까 연구해봤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저 완성품이라도 하나 슬쩍 가져와서 비교해 보면······.
-.
사령관이 전투에 들어갔군요.
이번 상대는 넘버링22 사바르(Sabar)와 비슷한 오르그입니다. 초고속 기동과 칼날 같은 발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개체이므로 1대1로는 까다로운 상대일 겁니다.
과연 사령관은 어떻게 상대할까요.
*
나는 산맥을 넘어서 쭉 펼쳐진 사막으로 향했다.
리케가 말한 바에 따르면 우리 집을 기준으로 이쪽이 북쪽이란다. 그러면 저번에 내가 세계수를 처치한 곳이 동쪽이라는 것이다.
여기를 평정하고 남쪽의 군단 놈들까지 밀어버리면 이 근방에서 상대할 만한 적이 검둥이밖에 남지 않는다.
아, 생각하니까 또 트라우마 도지네.
테크의 완성으로 AT 필드 같은 보호막을 쓸 수 있게 된 지금도 쫄린다. 그 검은 장막이 그만큼 사기라는 거지.
리케 녀석은 왜 내가 이만한 힘을 가지고 안 싸우느냐고 묻는데, 네가 대신 검둥이랑 싸워볼래? 조만간 녀석을 꾀어서 로봇들을 죄다 서쪽으로 보내버리든가 해야지.
당하고 나면 왜 내가 함부로 안 싸우는지 알게 될 것이다.
윙-!
뭔가 감각에 걸려드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펼쳤다.
코앞까지 날아온 칼날이 보호막에 막혀 부르르 떨렸다. 이놈은 또 뭐야?
뒤통수가 뾰족한 투구를 쓰고 날렵하게 생긴 갑각을 두른 녀석이 싯누런 눈을 빛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생긴 건 갑옷을 입은 기사인데 한쪽 손이 곡도로 된 특이한 형태였다.
놈은 내가 어떤 대응을 하기도 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번엔 좌측 날개······ 인 줄 알았으나 공격이 순간 방향을 바꿔 다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씨잉!
공간 장악으로 겨우 속도를 늦춰 피하긴 했지만 스친 부위의 갑각이 예리하게 잘려나갔다. 놈은 금세 다시 몸을 빼내 모습을 감췄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보호막을 사방에 두른 뒤 오른 다리를 들어 그대로 대지를 내려찍었다. 순간 고정되었던 에너지가 퍼져나가며 모래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거기 있었구나?
나는 놈을 발견하는 즉시 레이저를 발사했다.
못 막겠지 싶었는데 녀석은 그 찰나에 칼날을 눕혀 레이저를 빗겨냈다. 미친놈인가?
빛의 방향이 꺾임과 동시에 놈이 다시 사라졌다. 어느새 오른쪽으로 이동한 녀석은 보호막을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공간 장악으로 놈을 묶으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칼날에 잘려나갔다.
뭐야. 저 녀석 발톱에는 능력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황당해져서 아주 잠깐 정신을 놓고 있자 놈이 땅을 갈라 보호막 아래로 파고들어왔다.
대뜸 발톱으로 내 등허리를 갈라놓으려 하기에 전류 방출로 놈을 경직시켰다. 장악된 공간 속에서 벼락이 녀석을 둘러싼 채 마구 요동쳤다.
카하!
놈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나왔다.
잠시 부들거리며 멈춰있던 녀석의 몸에서 칼날이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뭐지 싶은 순간 그것은 내 허리를 갈라놓고 있었다.
시발, 중세 기사 같은 놈이 곡도로 왜 이기어검을 쓰는데······.
그 짧은 사이에 놈이 조종하는 칼날이 내 몸을 수차례나 오갔다.
보호막을 생성해 막아내고 공간장악으로 그것을 묶었지만 이미 손해가 극심했다. 젠장.
나는 전신에서 체액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무시하고 냅다 촉수로 놈을 휘감았다. 놈은 칼날을 회수해 그것을 잘라내려 했지만 내가 불꽃을 뿜어내는 게 더 빨랐다.
초고열의 불에 닿은 놈의 갑각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발버둥 치던 녀석은 버티기 힘든지 결국 갑각을 전부 벗어던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움직이니 공간 장악으로도 놈의 발을 묶을 수가 없었다.
리케가 보낸 정찰기로 빠르게 스캔해봤지만 레이더에 잡히지도 않는 것 같다. 거 참, 군침 도는 능력일세.
저건 환경에 따라서 진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뭘까? 검둥이도 그렇고 왠지 생김새가 인간을 닮은 녀석들이 간혹 보이네.
나는 놈이 두고 간 칼날을 집어 눈높이까지 들어보았다.
내가 무기로 써도 될 것 같은 크기에도 거의 무게가 안 느껴질 정도로 가볍다.
내 뿔을 만들 때 썼던 황금빛 광물보다 더 단단한 것 같은데 대체 뭐로 만들었을까?
*
나는 근처에 서식하는 아르마딜로 같은 녀석들을 잡아먹고 몸을 회복시켰다.
이 녀석들은 예전에 테크를 얻어놔서 안 건드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제일 덩치가 크고 진화가 잘 된 녀석부터 잡아먹자 남은 녀석들 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어버린 영역을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케에엑!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팔린 녀석들을 내버려두고 정찰기와 함께 ‘사바르’를 추적 개시했다.
나는 둥근 칼날 때문에 다이애나라고 이름 붙이려고 했는데 리케가 비슷한 괴물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름이야 내가 부르기 편하게 붙이면 되지만 네 글자보다는 세 글자가 낫다는 생각에 그냥 사바르라고 부르기로 했다.
놈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다.
어지간한 산보다 높게 솟은 괴석 근처로 다가가자 그곳엔 사바르, 그리고 사바르, 또 사바르가······.
오우 쒯. 열두 마리나 있잖아?
한 마리만 상대해도 진이 빠지는 녀석들이 한 다스나 있다니! 나는 조금 위축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계획을 정리했다.
날아오는 발톱만 조심하면 된다. 날아드는 것만. 오케이.
나는 자기암시를 걸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사바르들은 내가 다가가기 무섭게 모습을 감췄다. 그 속도가 내 감각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지만 내게는 그런 것 따위는 씹어 먹을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미리 응축시켜놓은 에너지를 떨어뜨리자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 먼지가 비상했다.
그 속에서 열과 전류에 노출된 사바르들은 몸 여기저기가 녹아내린 채 비척거렸다.
끝까지 전부 살아서 걸어 다니는 모습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이걸 견딘다고? 그럼 두 번째도 견딜 수 있는지 한 번 볼까?
놈들이 내가 에너지를 모으는 사이 날린 칼날은 보호막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보호막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모으는 것은 힘들었지만 수백 번 반복해서 연습했던 경험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꽝! 꽈앙-!
그렇게 두어 번 정도 어루만져주자 더 이상 그곳에 서있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러나 사지 일부를 잃고 버르적거리는 사바르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개체가 있었으니.
다른 개체들과 달리 제법 두꺼운 갑각을 두르고 있는 놈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충격을 해소하고 있던 녀석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내 직감이 위험을 경고해왔다.
[어이, 2페이즈가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저도 처음 보는 일입니다.]쓰러져 있는 사바르들이 전부 놈에게 흡수되더니 그 형체가 좀 더 흉악하게 변했다.
이제는 인간보다 괴물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시발이 칼날을 치켜세운 채 무협지의 고수처럼 날아왔다.
칼날과 내 보호막이 충돌하자 대기가 폭풍처럼 요동쳤다. 나는 녀석의 칼날이 보호막을 천천히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불꽃과 전류를 내뿜으며 공간 장악으로 놈의 칼날을 멈추려고 해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놈의 등에서 튀어 오른 꽃잎 모양의 갑각이 빠르게 주위를 돌며 모든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다.
[지원해드리겠습니다!]머릿속에서 울리는 리케의 말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상에 녀석이 보낸 전차 수십 대가 공성모드로 전환한 채 이곳을 겨냥하고 있었다.
[할 거면 빨리 해!]쓔슈슈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수의 미사일과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것의 대부분은 시발의 갑각에 명중했다.
카악-!
그러나 놈은 지독했다.
갑각이 부서지고 화염에 살점이 녹아내리면서도 끝까지 보호막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시선은 오로지 내 약점을 찾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놈의 칼날은 이제 거의 끝부분까지 들어와 있었다.
[조심하십시오!]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칼날이 놈의 신체에서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서 보랏빛 에너지들이 공명하는 것도.
모든 장면들이 뚝뚝 끊겨서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그 느릿한 시간 속에서 놈의 입이 초승달처럼 갈라졌다.
[이런, 개-.]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