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23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23
[-새끼.]나는 다시 해보라면 못할 정도의 기민한 속도로 칼날을 손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칼날은 그대로 내 오른손을 관통했지만 그 반동에 밀려 왼쪽 어깨에 꽂혔다. 떨어져 나갈듯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깨와 팔이 정말로 반쯤 갈라져 체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나는 왼쪽 팔을 못 쓰게 됐고, 녀석은 칼날 하나를 잃었다.
사바르에서 시발로 변하며 팔이 여섯 개로 불어났으므로 이제 놈에게 남은 칼날은 다섯 개였다.
한쪽 손에만 있던 사바르 때와 달리 놈은 모든 손에 칼날을 장착한 상태였다. 너 그 손으로 밥은 먹을 수 있겠냐?
시발은 걱정 말라는 듯이 갈라진 보호막을 천천히 찢어발겼다. 리케의 로봇들이 발사해대는 포격은 완전히 적응했는지 꽃잎 갑각들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모여 그쪽을 막고 있었다.
저거 딱 봐도 공방 일체가 가능한 타입인데.
나는 칼날 다섯 개에 저것들까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간장악으로 저걸 막는 사이 칼날이 내 몸을 유린하겠지.
후우-
나보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칼날만큼은 월등한 강도를 자랑하는 녀석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놈이 갈라진 공간을 넘으려는 그 찰나의 순간, 내가 도출해낸 정답은 한 가지였다.
나는 그 즉시 보호막을 취소하며 더 높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놈은 칼날을 던지고 그것을 밟아 점프하는 방식으로 따라왔지만 올라가는 속도는 내가 훨씬 빨랐다.
높이, 더 높이.
나는 산맥 꼭대기가 한참 내려다보일 정도까지 날아올랐다.
녀석이 작은 점처럼 보일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나는 명령을 내렸다.
[타겟팅 해!] [조준점을 설정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내 머릿속에 빨간 원이 그려졌다.
그 안에서 놈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리케의 미사일이 놈의 상승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모습이었다.
만족스럽군. 이제 좀 1인분을 하잖아?
이건 검둥이를 상대할 때 쓰려고 했는데 네가 실험대상이 되어줘야겠다.
나는 날개를 접고 뒤쪽에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내 몸은 지상을 향해 빛살같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빨랐는지 주변의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저 뒤쪽에서 들려올 정도였다.
놈은 칼날 하나에 의지해 허공에 떠있었다. 그 위에 탄 채로 이동하는 재주는 없었는지, 다른 칼날로 옮겨갈 새도 없이 고속열차처럼 날아든 나에게 치여 땅으로 추락했다.
놈과 충돌한 내 손에는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압축되어있었고, 그것이 놈을 거쳐 대지와 부딪히자 사막 한가운데에 싱크홀이 생겨났다.
그 사이에 낀 시발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나 같은 경우는 그 충격을 해소하는데 성공했지만 놈이 마지막으로 저항하면서 남긴 칼날이 몸 여기저기에 박혀있었다.
열혈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악착같이 덤벼드는 건 또 뭐냐.
그 끈질김에 살짝 질렸지만 곧 안도와 뿌듯함이 찾아왔다. 결국 이긴 것은 나였으니까.
그날 나는 다시 한 번 진화했다.
*
[이제 남쪽으로 가시는 겁니까.]저번에 몰아냈던 군단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며 리케가 그렇게 물었다.
내가 검둥이가 있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남쪽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지.
[아니. 서쪽으로 간다.]이번에 사바르, 시발 녀석들과 싸우면서 보호막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괴물들이 사용하는 진화에너지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시발을 먹고 습득한 에너지 변환은 그쪽 계열 테크 중 최상위에 있었다.
그러면 검둥이의 검은 장막, 그 사기 기술은 어디쯤에 있는 테크일까.
최상위 테크 여러 개를 섞어놓은 느낌이니 당연히 그 위쪽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못 싸워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이곳의 괴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 한 군데가 하자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발 같은 경우는 에너지 변환으로 내 보호막을 뚫고 공간장악마저 제한적으로 무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능력이 오직 칼날 같은 발톱에 몰려있다는 점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지. 내 광역기에 가진 능력도 다 못 써본 채 허무하게 당한 것을 보면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에 비해 나는 잡다하게 테크를 올리기는 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몇 가지 능력으로 귀결되도록 조합할 수 있었다.
저쪽이 아주 강력한 카드 하나 혹은 둘이라면 나는 적당히 센 카드가 수십이다.
결국 나를 한 방에 눕히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이쪽이라는 것이다.
적은 벌써 카드 한 장을 소모했고, 시발을 처치한 내 손의 카드는 더 늘어났다.
식물 군집 위를 날아 녀석의 영역에 도달하자 음습한 기운이 나를 맞아주었다.
느껴지는 역겨움이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은데.
그게 내 감각이 더 날카로워져서인지 아니면 녀석이 더 강해진 건지 알아볼 차례다.
*
전투는 내 급강하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잿빛 대지 위에 멀뚱히 서있던 녀석은 내 고농축 에너지 폭탄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시이······.
군단을 상대할 때처럼, 사바르들을 무력화시켰을 때처럼.
모든 것을 부수고 녹여버릴 것처럼 날아가던 에너지들은 놈이 쳐다보는 것만으로 나타난 검은 장막에 덮였다.
다시 봐도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나는 하늘을 완전히 뒤덮을 것처럼 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입자들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저번에 상대한 게 맛보기였다고?]놈의 모습은 어느새 장막에 가려진 뒤였다.
리케의 정찰기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장막에 닿아 순식간에 부식되어 추락하고 있었다. 녀석이 당황해서 마구 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다.
[저건 뭡니까, 대장님!] [글쎄? 이제부터 천천히 알아가자고.]지금쯤인가? 내가 만든 시한폭탄이 터질 때가.
꽝-!
단단하게 만든 표면을 뚫고 압축된 에너지가 뿜어지자 검은 장막 한가운데가 푹 하고 꺼져 들어갔다.
검은 입자들이 좁은 영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잡아먹고 소멸한 것이다. 크게 뚫린 구멍 사이에서 검둥이를 발견한 나는 곧장 레이저 상위 테크인 입자 광선포를 날렸다.
레이저가 과학 기술의 영역이라면 이것은 에네르기파 같은 초능력에 가까웠다.
검은 장막과 비슷하게 변형된 입자광선에 얻어맞은 검둥이는 한순간 몸통이 텅 비어버렸다.
그럼에도 놈은 가만히 선 채로 없어진 부분을 복구해나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위에서 아래로 스윽 하고 메워지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짜증나네.
장막은 계속해서 올라와 내 주변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나는 보호막으로 입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빠르게 물러났다. 놈에게 본체가 따로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야할 때였다.
검은 입자가 이동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에 감사하며 돌아온 나는 동굴 입구에 매달려 있는 리케 놈을 때려주었다.
[이곳은 저런 녀석들이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 곳이라고. 이 멍청한 함수 대가리야.] [인정하겠습니다.]*
여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우두머리들 중 하나.
대전쟁 당시 인간들에게 드레드(Dread)라 불렸던 오르그는 분노했다.
정찰 부대가 아무 것도 못하고 퇴각했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동쪽의 작은 군집체들을 집어삼키며 영역을 무난히 넓혀가던 그에게 그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는 거대한 덩치를 부르르 떨며 그의 군단에 명령했다.
-당장 지휘한 놈을 죽임!
병사들은 즉시 방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오르그에게 달려들었다. 지휘관은 숨소리도 못 낸 채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드레드는 자신이 내린 명령의 결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 얽힌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건방지고, 야만적인 놈들이 또 다시 준동함! 감히 겁도 없이 여왕의 행사에 반발하고 있음! 용납되지 않는 처사임!
여왕의 명령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실패는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임무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모조리 죽여야 함. 군단에 상처를 입힌 놈과 그와 같이 적대하는 놈들 모두!
출격의 나팔이 울려 퍼졌다.
굴속에서 잠들어있던 오르그들이 땅을 울리며 뛰쳐나왔다. 그 수효는 어림잡아 수백만, 인간들이 네임드로 구별할 정도의 상위 개체만 수천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
셔틀이 허공에서 미친 듯이 공회전을 반복했다.
기체는 여기저기 뜯어져 불타올랐고, 사방에서 날아든 촉수들이 선실 내부를 위협하고 있었다.
당장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로저스의 시선은 거꾸로 뒤집힌 창밖에 못박혀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셔틀 밑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오르그의 무리가 한쪽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미치겠네. 공포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야.”
“선장, 개자식아! 가만히 있지 말고 이 끔찍한 것들 치우는 것 좀 도우라고!”
잭의 외침에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함선은 글렀어. 탈출 준비나 하자.”
“뭐?”
이 함선 빌리는데 든 비용이 얼만데- 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저 압도적인 물량을 보고도 사태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여기 없었다.
로저스가 조종석에서 일어나 셔틀 후방으로 달리자 마리아와 페퍼 박사가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거대한 촉수가 셔틀을 반으로 찢어놓는 순간. 19명의 대원들은 비상 탈출구를 통해 가까스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살았다는 기쁨도 잠시, 윙 슈트를 펼치고 날아가던 그들에게 날개 달린 오르그들이 접근해왔다.
“이런 씨발!”
“진정해! 좌측으로 간다! 전부 따라와!”
로저스는 완만하게 나는 것보다 팔을 좁혀 다이빙하듯 움직였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그 다음부터 낮게 활공할 생각이었다.
뒤에서 잭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는 알아서 따라오겠거니 하며 오르그들의 움직임에 신경 썼다.
퍽!
뚝 떨어지던 그는 갑자기 날아온 촉수에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몸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작은 바위틈에서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순간 온몸이 욱신거려서 터지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팔을 바라보니 부러져있었다.
‘감각이 없어. 큰일인데.’
그는 삐걱거리는 오른팔을 움직여 허리춤을 더듬었다. 금속 포켓을 열자 주사기가 달린 앰플이 나왔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워치를 조작해 슈트의 팔 부위를 열었다. 시꺼멓게 죽은 피부가 드러나자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오, 하느님.”
팍!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바늘을 상처에 찔러 넣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통증에 그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끄윽!”
앰플에 담겨 있던 액체가 완전히 투여될 때까지 그는 울음 섞인 숨을 몰아쉬며 인내했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흐르고,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약효가 드는 건지 왼팔의 감각이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주사를 뽑아 던진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끝없이 이어진 황야, 그리고 그 위에서 기괴하게 깎여나간 암석들이 그를 반겼다. 동료들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잭? 마리아?”
혹시나 하고 눈앞을 가리는 거대한 바위를 돌아 동료의 이름을 불렀을 때, 머리 위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카르륵! 카륵!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