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26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26(재수정)
이 행성에 갇힌 지 166일째.
잭을 비롯한 네 사람은 ‘1구역’이라 불리는 거대한 공간에 밀어 넣어졌다.
분명 몇 달 전에는 돌만 가득했던 산맥이 이렇게 바뀌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이 받은 명령은 부활 및 회복 3번을 조건으로 1구역을 통과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빽빽하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러나 적이 나타날 기미가 없자 잭은 일직선으로 쭉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지난 여섯 달 사이에 신체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상승한 그들이었기에 어지간한 위협은 빠르게 달려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패착이었다.
1시간 가까이 들어갔을 때, 그들은 예측할 수 없었던 기습을 받았다.
“헉!”
잭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가시를 피해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직감이 위험을 경고했다.
파팍!
가시들은 쉴 새 없이 솟아올랐다. 그 수효가 어찌나 많은지 잭은 그것들을 잘라낼 새도 없이 바닥을 굴렀다.
다른 동료들도 똑같은 상황인 듯 여기저기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구르는 와중에도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하던 잭은 어느 순간 그의 동선을 예측해 날아든 가시에 등이 찢어지고 말았다.
“악!”
척추가 드러날 정도로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녹색 연기가 피어오르자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어디서 이걸 지켜보고 있나 보군, 괴물 자식!’
한창 도망칠 궁리만 하던 시기였다면 끓어오르는 증오심에 몸부림쳤겠지만 현실에 순응한 지금은 별 감흥도 일지 않았다.
저 미친 인공지능이 보여준 화면에서 드러난 괴물의 힘은 그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릴 정도로 어마무시했으니까.
‘탈출해도 의미가 없어.’
음속을 가볍게 돌파해 비행하고 공격 한 번에 오르그 1개 군단을 쓸어버리는 존재다.
아무리 멀리 도망간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리라. 그들의 목 뒤에 달린 ‘스테이터스’가 위치를 훤히 알려줄 테니까.
그렇다고 스테이터스를 강제로 제거하려고 하면 그것이 목을 부러뜨려버린다. 로버트가 한 번 시도했다가 진짜로 죽을 뻔한 뒤로는 다들 포기한 분위기가 되었다.
잭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시만 날리는 오르그라니. 피하기만 해서는 전부 체력이 다하거나 부상으로 죽을 게 뻔했다.
“어이, 맞서지 말고 동쪽으로 움직여!”
“잭, 너는?”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너희들이 놈들의 위치를 찾아!”
“오케이!”
이들 중 가장 신체 능력이 뛰어난 이가 자신이었기에 잭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
그는 가시들을 마구 잘라내며 있는 힘을 다해 뛰었으나 공격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저항이 무색하게 온몸을 난자당했다.
실 끊긴 목각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그의 위로 다시 녹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커헉!”
뇌가 활성화되는 즉시 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활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죽음에서 벗어난 다음 상황을 파악하는데 딜레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자신을 노리는 가시를 칼등으로 깨부수며 소리쳤다.
“이 병신들아! 나를 공격해라! 이쪽을 보라고!”
그에 호응하듯 마리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가시들이 방향을 선회했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믿고 뛰었다. 곧 로버트의 외침이 들렸다.
“저쪽, 그리고 이쪽이다!”
투투투퉁!
대 오르그용으로 제작된 특수 총알이 무차별적으로 쏘아졌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바닥에 박히는 모습이었지만 그 밑에는 가시촉수 괴물들이 있었다.
한 번 위치가 포착되자 마리아를 비롯한 세 사람은 끝까지 놈들을 추적해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가시 오르그들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지상으로 나와 황급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방이 조용해지자 로버트는 잠시 헬멧을 벗고 집중하느라 이마에 가득히 흘러내린 땀을 닦아냈다.
“죽을 맛이군.”
오르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들은 잭이 합류한 뒤에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장비 점검을 마친 마리아가 워치를 작동시켰다.
“너무 직선으로 왔어. 이래서는 맵핑이 제대로 안 된다고.”
“그렇다고 무작정 시야가 제한된 숲으로 들어가? 잭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었어. 땅 밑을 지속적으로 살폈다면 함정에 걸릴 일도 없었겠지.”
“중간에 방향을 꺾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잖아. 그냥 방심했던 거 아냐?”
“방심은 우리 모두가 한 거잖아. 잭이 없었으면 지금쯤 우리 모두 다 죽었을 거라고!”
“글쎄. 부활이 없었으면 잭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저 악마가 없었으면, 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마리아, 너······!”
마리아와 소진, 로버트의 말다툼이 계속되자 잭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료들 간의 사소한 의견 차이가 이렇듯 다른 화제로 번져 싸우게 되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그는 양손을 들어 세 사람을 갈라놓았다.
“자자, 그만. 우리끼리 입씨름 해봐야 좋아하는 건 괴물들뿐이다. 이대로 무턱대고 나아갈 수도 없으니 마리아의 말대로 방향을 좀 바꿔보자고.”
그렇게 그들은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훨씬 주의 깊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앞장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잭은 묘하게 주변 풍경이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멈춰 서자 소진이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았다.
“여기 한번 왔던 곳 같은데.”
“뭐? 여기 맵에는 완전히 다른 위치인데?”
레이더가 보여주는 지도 위에서 그들은 처음 들어왔던 입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위치였다. 되돌아간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잭은 끝까지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빨간색 점박이 나무. 땅에서 무릎까지 떨어진 위치에 보라색 꽃. 전부 봤던 거야.”
로버트와 소진은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떨떠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랬나?”
“잘 모르겠는데.”
“마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마리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마리아는 집게 달린 촉수에 목을 잡혀 지하로 끌려가고 있었다.
얼마나 은밀한 기습이었는지 그녀는 동료들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도 못했다. 작게 꺼흑 하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동료들은 트림이라도 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녀가 자주 내는 소리 중 하나였으니까.
캉!
칼날을 휘두르며 반항했지만 집게발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도리어 쿠파를 제외하면 어떤 오르그도 쉽게 벨 수 있는 칼날이 부러져버렸다.
그것을 던져 비교적 약해보이는 촉수를 잘라내려 했지만 그 전에 흙 속에서 솟구친 가시들이 그녀의 하복부와 양 팔을 꿰뚫어버렸다.
“끄, 익!”
끔찍한 통증에 그녀는 입과 코로 피를 게워내며 부들거렸다.
신체가 잘려나가고, 짓뭉개진 끝에 몸이 반쯤 먹힌 적도 있었으나 통증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빨리 이 순간이 끝나길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정면으로 가시 하나가 날아들었다.
‘어?’
머리를 잃으면 완전히 죽는다. 그러니 어떤 수단을 써서든 보호해라.
그것이 그들 네 사람이 받은 절대적 지령이었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왔던 것이지만 이렇게 팔이 묶이고 목까지 졸리는 상황에 뭘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죽음의 코앞에서.
그녀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의 크기의 가시는 아주 천천히 날아왔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긴장상태에 들어간 그녀의 뇌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3초 전.
‘죽어? 여기서, 내가?’
지난 166일 동안의 지옥 같은 사냥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거라면 그 노력은 다 뭐였단 말인가.
2초 전.
‘내가 죽으면 지금까지 악착같이 모아놓은 돈은? 분명 원장 새끼가 가져가겠지!’
어쩌면 이미 빼돌렸을 수도.
유서에 그녀가 죽으면 자신이 자란 고아원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적어놨으니 연락이 끊긴 것을 이유로 날름 삼켰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니 저절로 머리에 피가 쏠렸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의 양이 더 많아졌다.
1초 전.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그건, 절대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마침내 그 감정만이 오롯이 그녀를 지배했다.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배신하고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고백도 하고 복수도 해야 하는데.
이딴 외계 행성에서 도대체 왜? 왜!
0초.
-!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푸른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
[오.] [저럴 수가.]나는 오르그들과 인간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르그들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다.
아직 인간들이 각성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지하를 통해 몰려드는 촉수괴물들의 숫자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인간 하나가 죽을 위기에 처하더니 기어이 진화 테크 하나를 뚫어버렸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저건 무슨 오러 블레이드냐?]인간의 머리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온 빛은 한곳에 뭉쳐 얼굴에 닿을락 말락한 거리까지 다가온 가시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인간은 빛을 양손에 두르고 자신을 속박하는 촉수들을 모조리 끊어냈다.
[괜찮겠습니까?]인간이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을 본 리케가 우려를 표시했다.
저 능력을 더 발전시켜서 강해진 다음 나를 적대하는 게 아니냐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걱정하기보다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저들과 내 사이에는 이미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고 나는 저들의 능력을 가져와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앞으로 그 간격은 더 벌어지겠지.
내가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테크의 진화는 극단적인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그 예시로 방금 능력을 한 번 쓰는 것으로 인간의 몸과 스테이터스에 있던 에너지가 대부분 소실되었다.
살려고 사용한 기술이 반대로 자신을 죽이는 꼴이다.
나는 공간장악으로 곧바로 그 인간을 끌어당겼다.
땅 위에 있던 인간들은 수풀 안쪽으로 커다랗게 난 구멍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다투다가 자기들의 동료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끌려온 인간은 죽어있었다.
한계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다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직접 에너지를 주입해 인간을 되살렸다.
처음으로 실험에 성공한 개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걸 보고 놀라서 뭐라고 하는 리케를 무시하고 치료한 인간에게서 스테이터스를 분리해 내 몸에 꽂았다. 그러자 인간이 축적했던 진화 데이터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오, 이건 상당히 쓸 만하겠는데.
당장 이걸 연구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원리로도 작용하다니 정말 신기해······.
그 사이 오르그들에게 공격받은 인간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리케가 그들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자 나는 회복 버프를 걸고 잠시 훈련을 중지시켰다.
[인간들은 휴식을 취하게 해라. 저 인간, 여자였던가? 저 여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능력을 각성했는지 조사해서 보고하고.]나는 만족스러운 감정이 되어 웃었다.
정말 생각도 못한 횡재를 했다.
내심 짜증나는 벌레 수준까지 격하되었던 인간이 귀찮은 애완동물 정도로 느껴졌다. 손이 많이 가지만 키우다 보면 기특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 말이다.
[상이라도 줘 볼까.] [어떤 것을 주실 생각입니까?]리케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목숨을 살려주도록 하지.] [이것 참, 관대한 처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