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3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3
모래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나는 먼저 협곡으로 들어가는 구릉 쪽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덩치가 크고 입에서 독가스를 분사하는 지네 녀석이 이쪽으로 다니는 걸 봤거든.
놈은 덩치가 평범한 개체보다 다섯 배는 큰 것 같다. 단순 부피로 따지면 내 두 배 정도? 물론 내 상대는 아니었다.
독가시로 약점을 쑤셔주자 트림하듯 독가스를 흘리며 죽었다. 약점을 어떻게 알았는가 물으면 지네들을 하도 잡다 보니 알 게 되었다고 하겠다.
어떤 놈은 독가시를 세 방 맞고도 움직이는데 어떤 놈은 한 방에 죽으면 연구해보기 마련이잖아?
지네들의 약점은 입에서부터 다섯 번째 갑각, 식도가 있는 위치다. 물론 왜 거기에 손상을 입으면 죽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꼭 알아야 되나?
독지네로 진화한 놈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녀석들은 대개 덩치를 키우는데 집중한다. 아니면 먹이를 씹는 이빨을 강화하거나.
뭐 어느 쪽이든 나를 힘들게 하는 녀석은 없었다. 내가 진화를 한 번 더 하고 나니 이쪽 입구로 나오는 놈들이 사라졌다.
나는 잠시 쉬고 협곡 안으로 이동했다. 드문드문 보이는 집게 놈들은 멀리서 저격해주었다. 독가시를 관통력이 강한 걸로 바꿨더니 갑각을 깨고 박히는 게 보인다.
조준이 빗나가서 몇 마리를 놓쳤더니 아래쪽에서 수백이나 되는 놈들이 몰려와서 다시 입구로 도망치고 말았다. 젠장.
몇 번 입구와 초입부분을 왕복하고 나면서 파악한 정보들이 있다.
1.협곡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깊다.
2.지네들이랑 집게들이 위 아래로 영역을 양분하고 있다.
3.언뜻 봤던 겁나 큰 놈이 저 아래에 버티고 있다. 대장인 것 같다.
4.협곡 안쪽에는 사마귀처럼 진화한 녀석이 거꾸로 매달린 채 가만히 있었다. 덩치가 내 열 배는 된다. 미친놈인가;
5.제일 만만한 건 지네들이지만 숫자가 장난 아니다. 순간 벽 한쪽이 아예 초록색으로 보일 정도라 하면 믿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잡았던 개체들은 대개 열등한 개체였거나 갓 태어난 놈들이었단 게 밝혀졌다.
진국들은 저 멀리서 부하들이 가져오는 먹이를 먹으면서 진화하고 있다. 1대1로 붙었을 때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줄 리가 있나.
그래서 나는 녀석들을 집게 놈들과 싸우게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준비가 꽤 필요했다.
먼저 무리 바깥쪽에서 움직이는 놈들을 자극한다. 멍청한 녀석들이 튀어나오면 사로잡아 집게들 쪽으로 던진다. 그러면 집게들이 옳다구나 하면서 잡아먹으러 온다.
그걸 반복하면 영역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진다. 지금까지는 서로 침범하지 않았기에 유지되던 평화에 금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행동대장 같은 놈들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놈들이 혹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저 안쪽에 있는 사마귀 놈을 데려오기로 했다.
크퀴퀵-!(X발!)
사마귀는 진짜 미친놈이었다. 독가시가 아예 안 박히는 거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가시 한 번 발사했다고 팔을 휘두르며 덤비는 데 낫 같은 발톱에 스쳤음에도 내 팔 하나가 날아갔다. 아니 무슨 검기를 쓰는 건가?
어쨌든 목표를 달성하기는 했다. 내 팔 하나를 희생해서 놈을 무너진 영역 경계로 데려왔으니까. 사마귀가 등장하자 근처에 있던 집게들과 지네들이 황급히 도망친다.
주변을 호위하던 부하들이 물러나면 진국 놈들은 어떻게 될까? 같이 도망친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다른 쪽으로 도망친 부하들이 다른 진국 놈에게 먹히고 있었으니까. 같은 동족끼리도 영역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 이제 서로 죽여라!
가만히 있던 진국들이 움직였다. 장구벌레들처럼 벽 속에 몸을 박은 채 거세게 포효를 터트린다.
크라랑-!
크웍크웍!
오오······ 지금까지 꿈틀거리는 것처럼만 보였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응전태세를 취하니 불현듯 섬뜩해졌다. 도망쳐!
내가 잽싸게 자리를 비우는 순간 협곡 지하에서는 이세계판 관도대전이 벌어졌다.
영역에 한번 균열이 벌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게 보인다. 사마귀 놈은 잠시 동안 그 강대한 위용을 뽐냈지만 조금 있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뭐했냐고? 놈들이 싸우는 사이 옆에서 조금씩 가시를 쏘고 물어뜯으며 사냥했다.
이 전쟁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끝나기 전에 저 진국들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니까.
크퀴퀴!
진화하고 또 진화했다.
이제 몇 번의 진화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어마어마한 양의 적들을 먹어치웠고, 그 중에는 상처 입은 진국들도 몇 있었다.
나는 이전의 나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의 육체를 손에 넣었다.
단단하고 두꺼운 머리 갑각과 그 아래쪽에 난 한꺼번에 독가시를 4개씩 발사할 수 있는 구멍. 아래턱 쪽에는 단번에 적을 토막 낼 수 있는 집게를 달았다.
발톱의 예리함과 강도는 이제 다이아몬드 커터를 능가한다고 자신한다. 운 좋게도 사마귀의 시체를 구해서 진화한 결과다.
몸의 전체적인 외형도 바뀌었다. 도안은 모 외계생물들을 참고했다. 왜 그거 있잖은가. 뒤통수 길쭉한 녀석들.
후, 조금 인간 같아졌나?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최종전의 때가 다가왔다.
내 존재를 인지한 놈들의 보스들이 싸움을 멈추게 만들었다. 협공해서 나를 친다는 생각은 못했는지 양쪽 다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자기들 영역으로 돌아갔다.
소강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집게들을 먼저 친다.
두 번째, 지네들을 먼저 친다.
세 번째, 그냥 무시하고 다른 데로 간다.
나는 첫 번째를 선택했다. 왜냐. 지네들이 더 약하니까 나중에 처리하는 게 좋거든.
어중간한 녀석들은 이제 내게 상처를 입힐 수조차 없다. 나는 집게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놈들의 보스에게로 나아갔다.
달려드는 중간 보스 같은 놈의 머리를 움켜쥐고 사방의 적들을 난도질하는 내 모습은 가히 신화적이었을 것이라 자평한다.
가늘게 킈킈 거리던 내 울음소리는 이제 더 거칠고 위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포효를 터트리며 집게 보스와 맞붙었다.
크허-!
놈과 내 싸움은 육탄전에 더해 서로에게 각종 투사체와 화학물질을 뿌려대는 난투였다.
만약 거리를 두고 싸웠다면 독가시로 놈을 약화시킨 뒤 접근해서 싸웠겠지만 놈의 부하들이 사방에서 덤비는 와중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날렵한 신체를 이용해 놈의 집게발 사이로 파고들어 그대로 엎어치기를 선사했다.
뒤이어 점프해서 덤비는 잔챙이들을 아래턱의 집게로 토막내버리고 발톱으로 놈의 다리를 날려버렸다. 놈이 뿌린 산성이 짙은 가스에 내 갑각도 녹아내렸지만 미안하게도 내 갑각은 이중으로 개조된 상태였다.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나는 끝내 놈의 목을 잘라버린 뒤 다시 포효를 내질렀다. 수장을 잃은 집게들은 그것만으로 수적 우위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덕분에 나는 느긋하게 앉아 보스 놈의 시체를 먹을 수 있었다.
크크, 이것은 최고급 랍스터 맛이로구나! 뭐, 먹어본 적은 없지만.
*
나는 협곡 밖으로 나왔다.
지네 보스까지 해치우니 더 이상 그곳에는 내 적수가 없었다. 잔챙이들을 사냥하는 것도 귀찮아서 나중에 자기들끼리 먹고 먹혀서 큰 놈이 나올 때까지 아껴두기로 했다.
더 안쪽 깊숙한 곳으로 가면 다른 종족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좀 피곤했다. 솔직히 거기에 있는 녀석들이 나보다 더 강할 것 같지는 않아.
가장 높은 구릉 위에 오르니 근방의 전경이 전부 시야에 들어왔다.
왼쪽에는 식물 군집, 오른쪽에는 비탈진 암석 산맥이 있다.
시야를 확대해서 본 오른쪽에선 거대한 개체 하나와 그보다 훨씬 작은 개체 수천이 싸우고 있었다.
두꺼운 등껍질을 이고 있는 녀석은 덩치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구르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 같다. 중간 중간 바위처럼 보이는 뭔가를 등에서 쏘는데 대포처럼 보여서 멋있었다.
······다음 사냥감은 저놈이 되겠군.
목표를 정하고 구릉을 내려오니 반가운 늪지가 나를 맞아주었다.
그곳에 살던 장구벌레들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진화해서 날아갔나?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꾸?”
이제는 귀엽게 보이는 녀석이다. 흔들흔들 거리는 모습이 정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이름은 뭘로 지을까, 꾸? 아니면 흔들이?
그렇게 애완용으로 놔둘까 생각하던 중.
콱!
하늘에서 빠르게 날아온 괴상하게 생긴 놈이 흔들이의 머리를 삼켜버렸다.
안 돼, 흔들아!
내 몸집의 반도 안 되는 녀석은 뒤늦게 내 존재를 알아차리곤 황급히 도망가려다 내 발톱에 걸려 토막이 났다. 젠장, 이 놈의 세상은 잠시의 평화도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군.
하늘에는 방금 내가 죽인 놈과 같은 녀석들이 한 무더기로 날고 있었다.
위협적으로 날개를 붕붕 거리는 꼴이 싸워보자는 것 같다.
그라라락!
아귀도, 모체도, 협곡 안의 놈들도 전부 평정한 내게 덤벼?
나는 놈들에게 신무기를 맛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벌 떼처럼 쏟아져오는 놈들에게 나는 가슴을 활짝 펴 보여주었다. 가슴 자랑이냐고? 내가 F컵이긴 하지만 당연히 아니다.
아아, 이것은 개틀링 건이라는 것이다!
투타타타타-!
소형화되었지만 더 단단하고 관통력 있게 바뀐 가시 수백 개가 놈들에게 날아갔다.
무려 분당 200발 이상 쏘는 게 가능하다!
가까이 오면 점프해서 물러나고 다시 보충된 가시들로 사격. 구름처럼 모였던 녀석들은 순식간에 전멸을 면치 못했다.
장갑이 강력한 놈들에게는 안 먹히지만. 뭐, 양학용으로는 충분하다.
과부하도 없으니 숫자를 좀 줄여서 쏘면 무한 발사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에너지를 회복하면서 쏴야 한다.
기동 타격 모드와 공성 모드라고 할까.
깨끗해진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얀색 빛이 여러 개 땅으로 떨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 유성인가? 돈 많이 벌게······ 아니지. 더 좋은 진화 테크를 얻게 해주세요!
그렇게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뭐지?
슬며시 눈을 뜨자 하늘이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무슨 징조일까.
검은색과 회색이 섞여있던 하늘이 저렇게 완전히 까맣게 바뀐 건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곳도 그런 걸까 시선을 쭉 돌리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원래의 하늘색이 보였다.
······이거 설마.
나는 고개를 더 위로 빼서 검은색 부분을 살폈다.
그리고 나는 겨우내 깨달았다.
X발, 저거 살아있는 놈이잖아.
*
아데카 북부 상공.
미확인 섹터.
삐잉삐잉-!
수송선 안은 긴급을 알리는 경고음과 인간의 고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몇몇은 다급히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고, 다른 몇몇은 그대로 굳어서 창밖으로 비치는 바깥세상을 응시했다.
루카스 대령은 신음했다.
“이럴 수가.”
하늘을 가득 덮은, 셀 수 없이 많은 오르그들.
그리고 그것들이 둥지로 삼을 만큼 거대한 오르그 하나.
‘웨일’은 그들이 관측했던, 아니 관측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직경 수십 킬로미터는 될 것 같은 그 위용에 대원들은 그대로 패닉에 빠졌다.
“대령님! 오르그 놈들이 보조 엔진을 파괴했습니다!”
“세 척이 이탈합니다! 원인은 동력 상실!”
“머틀 중위님이 탄 기체가! 대령님!”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을까.
‘마운틴’과 대치 중이던 웨일이 그대로 얌전히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놈의 뱃속에 있는 오르그들을 관측하지 못했던 관측반의 탓?
말도 안 된다.
가스층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괴물들의 세계를 어떻게 제대로 살피고 대비할 수 있단 말이냐.
루카스는 이를 악물며 레이저 커터를 이용해 꽉 묶인 벨트를 잘라냈다.
“대령님!”
“레닐이 죽었다! 누가 조종간을 수습해!”
그들을 이곳으로 안내하던 인공지능은 가스층을 뚫고 들어서기 무섭게 맛이 가버렸다.
루카스는 조종간을 잡은 채 가슴에 큼지막한 가시 파편을 박혀 쓰러진 레닐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
“전부 자리에 앉아. 당장!”
그가 윽박지르자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대원들의 눈에 빛이 조금씩 돌아왔다.
“놈들을 돌파해서 이곳을 빠져나간다! 미라, 불시착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라!”
“예!”
“말버트, 정면의 포를 맡아라. 링거는 뒤로 가서 보조 엔진을 떼어내!”
“예, 대령님!”
그의 지휘 아래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수송선의 유일한 무기인 포탑이 불을 뿜었다. 오르그들은 멋도 모르고 그 앞으로 달려들다 산산조각이 났다.
포탄을 피해 오르그들이 잠시 물러난 사이 루카스는 보조 엔진을 떼어내어 가벼워진 기체를 발진시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주황색과 암녹색의 전경이 보이자 한순간 안도했던 그는 뒤에서 들이닥친 충격에 눈앞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후방의 주 엔진이 공격받았습니다! 엔진 효율 23, 22, 21······ 멈췄습니다.”
“포탑 엔진을 이쪽으로 돌린다. 충격에 대비하라!”
급히 포탑에 쓰는 동력을 가져왔지만 거대한 수송선을 커버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들이 탄 기체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