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33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33
새로운 테크를 흡수하고 땅으로 내려오니 마리아는 숨이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다.
큰 공을 세운 녀석을 그냥 죽일 수는 없으니 바로 회복 버프를 걸어 살려냈다.
몸을 완전히 회복한 마리아가 정신을 차리자 리케의 로봇이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장비를 가져다주었다.
[더 좋은 걸로 줘라. 1등급인가 그것도 만들 수 있다면서.] [그건 6구역을 돌파한 뒤에야 지급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공이 있으니 특별히 공들여 만든 걸로 지급하겠습니다.]리케는 로봇을 보내 마리아에게 1등급 장비의 카탈로그를 보여주었다. 목록 중간에 별 모양 표시가 되어있는 걸로 봐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도 있는 모양이다.
설명충으로 등판해서 직접 이것저것 설명하는지 마리아는 한참을 거기에 붙들려 있었다.
굳이 인간들의 슈트를 제작해 놓은 걸로 봐서는 싫어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엄청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그나저나 저게 뭔지는 분석해봤냐.]리케 녀석이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나중의 문제고, 지금은 검둥이의 오벨리스크 같은 저 구조물이 더 중요하다.
내 물음에 리케는 곧바로 홀로그램을 띄웠다. 구체의 입체 이미지를 따라 문자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성분 분석은 90퍼센트 정도 완료되었습니다. 외부 장갑은 대부분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물질로, 제가 합성,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더군요. 문제는 내부의 장치입니다만.] [장치? 역시 인간이 만든 건가.] [예. 인류의 과학 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술 자체는 현대와 별 다를 게 없지만 이것의 추정 제작 시기가 약 800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지요.]리케는 상식 바깥의 영역이라며 좀 더 연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이것의 중심회로는 오르그 본체와 연결되어 ‘무언가’를 하도록 설계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체에서 분리된 순간, 그 회로가 다 타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게 없군요. 그나마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이 구조물들이 전에 발견한 기록저장소를 중심으로 4방위에 뻗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만.]확실히 검둥이의 오벨리스크는 언덕 아래에 묻혀있던 원통형 구조물에서 남서쪽에 있었지. 그리고 여기는 남동쪽이다.
[그러고 보면 사바르 놈들은 북서쪽에 있었네.] [예. 그리고 여기 촉수 괴물과 비슷한 에너지를 썼었습니다.]내 초월 테크처럼 에너지에 대한 간섭력을 가진 보랏빛 에너지.
검둥이는 그걸 쓰지 않았지만 대신 뭐든지 부패시키는 검은 입자를 다뤘다. 중요한 건 보랏빛 에너지든 검은 입자든 진화에너지 자체에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놈들을 잡아먹어도 그 능력과 관련된 테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는 그 이유가 이 구조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손대중을 하며 구조물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고.
결과는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남동, 남서는 없어졌다고 치고, 사바르들이 있던 곳은······ 내가 다 날려버렸으니 거기도 제외하면. 북동쪽만 남았네.] [그쪽은 아직 정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영역입니다. 그쪽 방면에서 내려오는 오르그들이 없어서 버려진 땅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버려진 게 아니라 그쪽으로 가면 죄다 죽으니 아예 접근을 안 하는 거야. 당장 내 영역만 해도 쿠파들이 사는 곳 근처에 자리 잡는 녀석들이 없으니까.]쿠파들이 내 앞에서야 굽실거려도 다른 오르그들 앞에서는 깡패나 다름없다.
협곡에 사는 집게, 지네 녀석들 상대로 무쌍 찍던 시절의 내가 대장급 쿠파 하나랑 생사를 걸고 싸웠을 정도니까.
그나마 비벼볼 만한 녀석들이 몇 있지만 전부 제 영역이 확고해서 서로 부딪힐 일이 없다.
어떻게든 숨거나 피해가며 사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것도 강한 개체의 숫자가 적을 때의 이야기고.
보통 쿠파들처럼 천 단위를 넘어가게 되면 생존 본능이 알아서 기피하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근처에 있는 오르그들까지 아예 씨가 마를 정도면 검둥이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말인데······. 그런 녀석이 지키고 있는 거면 준비 없이 들어가는 건 무리겠어.]구조물을 지키는 오르그를 살려놓은 상태에서 연구해야 할 테니 이번처럼 했다간 낭패를 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풀어놨던 에너지를 다시 꽉 조였다. 어차피 이 근방에는 내 목숨을 위협할 적수가 없으니 미리 대비할 필요도 없다.
[여기 온 김에 어디 인간들 우주선이나 구경해보자. 쟤들 불법탐사대라며. 그러면 군용이랑 다르게 생겼겠지?] [정찰기를 동원해서 같이 찾아보도록 하지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과연 리케의 호언장담대로 사방으로 날아간 드론들은 금방 우주선의 잔해를 찾아 보고했다. 암석지대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간 습지에 떨어진 것을 발견한 인간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들은 죽을 고생하면서 돌아다녔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찾아버리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겠지.
그들은 털레털레 움직여 잔해를 향해 차량을 몰았다.
아쉽게도 잔해는 원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포탑처럼 보이는 상단부 뿐이었다.
군용 셔틀도 폭발하고 나면 저기만 덩그러니 남았었지. 공격을 담당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부위에 비해 더 튼튼한 것 같다.
인간들은 그 속에서도 분주히 움직이며 잔해를 뒤지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장갑과 구조물을 치우고 나니 의외로 멀쩡한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로버트가 여자들의 눈치를 보며 작은 칩을 빼돌리는 것을 보았다.
이런 환경에서조차 인간들은 번뇌를 뿌리치지 못하는 것인가······.
한창 나눠져서 이것저것 꺼내던 와중 잭이 환성을 질렀다.
녀석은 양손에 뭔가를 소중하게 움켜쥔 채 하늘을 향해 흔들었다. 무슨 하드디스크 같은데 뭐하는 물건이지?
[좌표 수신기군요. 저게 있으면 송신기가 박힌 곳은 어디든 찾아갈 수 있지요.] [그냥 조종해서 날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넓은 우주에서 아무 방향으로 날다가 우연하게 원하는 목적지를 찾는 것은 굉장히 희박한 일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당장 이곳 아데카 행성이 있는 항성계만 해도 무수히 많은 행성이 있고 그 위치는 중구난방입니다.]설명을 들어보니 쭉 둘러보다가 발견하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과학 시간에 배운 지식만 알다보니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있는 것만 연상되는데 실제로는 다른가 보지?
[수신기마다 받을 수 있는 신호에 한계가 있는데 저건 제한이 없는 군용이군요. 아마 아틀라스 기지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군용 물품에 함부로 손댄 게 발각되면 감옥에서 10년은 썩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러길 바란다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이냐?]리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 녀석의 로봇이 로버트가 몰래 숨긴 칩을 다시 빼돌려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로봇을 통해 재생시키도록 명령했다.
곧 나와 리케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척이나 적나라한 영상이 떠올랐다.
꾸물꾸물.
[······그래. 취향이란 게 다양할 수 있지.] [흔한 취향은 아닙니다. 두족류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저놈은 오르그로 변하게 놔둘 걸 그랬군.]*
엘랑스 행성. 섹터7
카프 국제연합본부. 중앙 의회 대회의실.
오랜만에 모든 섹터의 의원들이 전부 모였음에도 회의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직 마리나가 토해내는 격정적인 음성만이 자리에 가득했다.
“어제, 그리고 오늘! 우리의 소중한 국민들이 사는 거점이 셋이나 소실되었습니다! 천만에 이르는 사람이 죽고 아직도 죽어나간다는 말이오! 그런데 빼앗긴 행성을 지키던 장군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
“끊임없이 군대 파견을 요청해도 도무지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요! 그것도 예산을 핑계로! 국방위원회의 상임위원들은 대체 뭘 했기에 돈이 없어서 지원군을 못 보낸다는 말이 나오는 건가! 대답을 해보시오!”
마리나의 일갈에 국방위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게 다 너희 탓이라는 다른 의원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식은땀이 그들의 등을 적셨다.
마리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의원들도 지목해 강하게 질타했다.
“섹터11의 하오룽 의원, 섹터19의 알라야 의원! 이 둘은 자기들과 몇몇 상류층을 위해서 입씨름을 하느라 회의 분위기를 전부 망쳐놓았지! 덕분에 전진기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이 안건으로 올라올 때마다 무시되기 일쑤였소!”
“의장, 그것은.”
“닥치시오! 당신이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저 밖에서 죽어나간 천만 명의 목숨에 비통해할 줄 안다면 어떻게 지금 여기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수가 있나?”
우우우-!
야유가 빗발쳤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하오룽은 살찐 목을 수그렸다. 하지만 그의 속에는 여전히 불만이 맴돌고 있었다.
자신과 알라야가 욕심을 채우려 다툰 것은 맞지만 의장도 방관하면서 자기 세력이나 불리지 않았던가? 지금 의장의 말에 박수치는 것들은 전부 두 파벌에 끼지 않고 눈치보다 사태가 안 좋게 흘러가니 의장 편에 붙은 박쥐같은 중도파 놈들이다.
엘랑스, 그리고 위성거점이 있는 행성들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들이 시청하는 가운데, 마리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민 여러분. 인류를 수호하고 이롭게 하기 위해 발탁된 자들이 교활한 혓바닥을 놀리며 제 잇속만 챙기는 걸 언제까지 두고 보실 겁니까! 역사 속의 오르그가 부활하고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영광이 하나둘씩 무너져 가는 데도 저 파렴치한들은 여전히 반성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존망의 위기 앞에서 과연 저들을 우리의 대표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가슴 위로 맹세를 뜻하는 왼손을 얹으며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 가진 것을 전부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아니면 끝끝내 삿된 마음으로 품었던 모든 것을 껴안은 채 다 같이 침몰할 것인가! 이에 나 마리나 안센 루즈벨트는 국민의 신성한 뜻에 따라 임명된 의장의 권한으로써 이 자리에 모인 중앙의회에 해산을 명령합니다!”
“뭐?”
“무슨 소리야?”
마리나측을 제외한 의원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마리나의 선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움켜쥔 주먹을 흔들며 부르짖었다.
“앞으로 60일 뒤, 우리는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며 국민의 심판에 따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인류의 영광과 번영을 위하여! 카프 국제연합 만세!”
“만세!”
와아아아-!
“자, 잠깐!”
“마리나! 마리나! 마리나!”
“저 미친 여자가!”
“이런 날치기 같은 명령이 어디 있어! 중지! 당장 중지시키시오!”
“카프 국제연합 만세! 마리나 의장 만세! 전부 뒤엎자!”
하오룽과 알라야의 파벌에 속한 의원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따지고 들었지만 그래봐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각자가 맡은 행정구역이었고, 이곳엔 홀로그램 장치만 놓여있을 뿐이니까.
하오룽은 벌써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후원자들의 통신 요청에 당황해서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마리나의 연설은 국민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고, 이대로 간다면 그의 파벌은 끝장이었다.
“다 틀렸어······ 빌어먹을 오르그 새끼들!”
그가 패배를 직감하며 머리를 감싸던 그 때, 통신을 받던 부관이 황급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뭐야? 날 내버려둬.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의원님! 밖을! 창밖을 보십시오!”
하오룽은 대체 뭔가 싶어 힘없이 손을 움직여 바깥에 설치된 카메라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그리곤 그는 정지한 것처럼 굳어버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고 푸르렀던 하늘이 시꺼먼 오르그들로 완전히 뒤덮여 가고 있었기에.
하오룽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속삭이듯 물었다.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