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36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36
무언가를 짓뭉개는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내 발톱이 군단 놈들을 마구 짓누르는 소리였다.
나는 거대화시킨 두 팔을 휘둘러 근처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며 천천히 놈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 힘은 소형, 대형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짓이겨 놓았다.
카르르!
드래곤에게서 갈취한 입자에는 육체를 순식간에 변형시킬 수 있는 성질이 있다.
에너지만 충분하면 이제 나도 페이즈 2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양팔만 경계하면서 등 쪽으로 달려들던 프레데터 머리 고릴라놈들은 순간 부풀어 오른 내 갑각에 얻어맞고 튕겨나갔다.
놈들이 뒤쪽에서 골골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갑각을 원 상태로 되돌렸다. 그 와중에도 걸음을 멈추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았다.
흠. 나약하군······ 정말 나약해!
***
오늘은 보스 뮤츠를 잡고 공간이동 테크를 갈취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공간 장악으로 터널 만들고 날아가기 귀찮다고.
에너지야 어차피 무한정 뽑아낼 수 있으니 능력만 얻으면 더 쉽고 간단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위산에서 쭉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협곡을 지나 군단 놈들의 본거지를 기습했다.
외곽에서 보는 풍경은 징징이가 군단을 키워내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쪽의 건물 테크가 좀 더 다양하고 수준이 높아 보인다는 정도였다.
저 멀리 벌집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건물들에서 튀어나온 초록빛 에너지 줄기가 다른 건물들로 연결되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과 연결된 건물들은 쉴 새 없이 꿈틀대며 하늘로 연기를 뿜어냈다.
츽츽츽!
그런 광경이 어느 한군데가 아니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펼쳐지는 중이었다.
연기들이 뭉쳐 생성된 안개가 대협곡 너머에서 봤을 때 지평선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넓은 영역이 놈들에게 점령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질척하게 변한 땅 위로 자라난 가시 촉수를 박살내는 것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가시의 잔해는 그대로 내 몸에 흡수되어 내 왼팔을 거대하게 변형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러자 바닥에 숭숭 뚫려있던 구멍에서 놈들이 뛰쳐나왔다.
눈 깜짝할 새 온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지난번 나와 싸우고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그 중에는 갑각 위로 초록 에너지를 내뿜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시험 삼아 입자광선포를 쏴보니 초록 에너지가 먼저 흩어지고 그 다음에 갑각이 피해를 받는 모습이 나왔다.
광역기를 묶어두고 싸워보자는 말이지?
발상은 좋았으나 내겐 가소로운 수준에 불과했다. 간섭력도 못 쓰는 잔챙이 따위는 수백만이 몰려와도 내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용솟음치는 보랏빛 에너지가 상시 내 몸을 감싸고 있기에 소형 개체 따위는 내가 지나가는 것만으로 짜부라졌다.
키긱! 기기긱-!
이제는 굳이 따로 에너지를 모아서 내쏠 필요 없이 내 자신이 광역기였다.
잔챙이들이 내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슬슬 내 주변은 나와 비슷한 크기의 대형 개체들로 채워져 갔다.
나무늘보 같은 몸에 장수풍뎅이처럼 앞으로 솟은 거대한 뿔이 인상적인 놈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조여 왔다.
놈들은 내 에너지를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을 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뿔과 두꺼운 장갑을 앞세워 돌격해오는 놈들을 상대로 나는 양 팔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날렵하던 팔이 수십 배로 부풀어 올라 가볍게 적들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놈들의 뿔은 내 팔에 부딪힌 뒤 한껏 뒤로 밀려났다.
나는 양 손에 그 머리통을 하나씩 움켜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푸른 케첩이 솟아 올랐다.
궈억!
압도적인 질량은 육체의 단단함, 힘으로 승부를 보려고 섣불리 달려든 녀석들에게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내가 지나간 길은 놈들이 흩뿌린 체액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빈자리는 순식간에 메워졌지만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형태 변형의 성질을 가진 입자들이 온 사방으로 퍼져 놈들을 잠식하고 있었으니까.
죽이고 그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걸 다시 새로운 에너지로 만들어 내뿜는다.
놈들이 뭉칠수록 입자들은 더 빠르게 뻗어나갔다.
입자들의 성질은 단순했다. 내가 명령한대로 놈들의 신체 일부를 변형시키는 것.
곧 신체 일부분이 커져서 그 무게를 감당 못하고 쓰러지는 녀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입자는 놈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변형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내 광역기를 막으려고 두른 초록 에너지는 이제 놈들에게 독이 되었다.
속속들이 비명을 지르며 널브러지는 놈들 사이로 나는 가볍게 에너지 소드를 휘둘러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압축되었던 에너지가 폭발하자 초록 에너지를 상실한 군단 놈들은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 모든 에너지는 다시 내게 흡수되어 다시 놈들을 죽이는데 일조했다.
열심히 준비한 게 무용지물이 되자 지휘관 놈은 당황했는지 부하들을 마구잡이로 돌격시켰다.
그럴수록 내 육체는 점점 더 커져 나중에는 놈들의 건물을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주먹 한 방에 부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쿠파들이 쓰는 웅크린 채 돌격하는 기술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한 번 쓰면 앞으로만 쭉 돌격만 하는 형식이라 에너지 소모에 비해 비효율적이라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능력이었다.
하지만 에너지가 넘쳐나는 지금, 어디로 가든 적들만 있는 상황에서 이 능력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오직 파괴만을 위한 형태로 탈바꿈한 나는 그대로 놈들을 밀어버렸다.
이마의 갑각 위로 솟은 두 개의 뿔에 들이받힌 개체들은 팔자에 없는 비행을 강제로 겪었다.
차라리 튕겨 날아간 녀석들은 다행이었다. 내 몸에 제대로 들이받힌 쪽은 원래의 형태조차 남지 않았으니까.
초록 에너지를 내뿜던 건물을 터트린 나는 멈춰서 내가 지나온 길에 깔린 푸른색 카펫을 감상했다.
단순히 몸통박치기를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참상이 그곳에 놓여있었다.
나름 보스 쿠파 정도 되는 녀석도 있었지만 그 몸은 케첩이 되고 목 위쪽만 남아 굴러다니는 것이다.
여전히 군단의 숫자는 넘쳐났지만 그 기세는 팍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수많은 충돌을 감내하느라 손상되었던 육체를 순식간에 회복시키고 날아올랐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어느 샌가 모인 뮤츠들이 공간을 열기 전까지는.
놈들은 저번에 도망쳤던 이마에 가시나무 관을 걸친 뮤츠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내가 신나게 다른 녀석들을 갈아버리는 동안 준비를 마쳤는지 그 위에는 나도 모르게 흠칫할 정도의 에너지가 모여 있었다.
그 에너지를 둘러싼 간섭력이 세상의 이치를 뒤흔들자 땅이 말 그대로 쫙 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솟아오른 놈은 근육질의 몸에 염소 같이 생긴 머리를 달고 있었다.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두 가지는 그 덩치가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과, 염소의 수염 대신 수백의 촉수가 그 턱에서 꿈틀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도 제법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얼굴을 직시하려면 머리를 최대한 치켜들어야 했다.
놈은 수십 개나 되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내 정신에 직접 언어를 박아 넣었다.
-제 발로 찾아옴. 죽고 싶음!
놈의 말에 나는 영혼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감각을 겪었다.
실제로 몸 안팎의 에너지가 흩어지려는 기색을 보였기에 나는 황급히 그것을 끌어 모아 안정시켰다.
내가 인간이라면 놈은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손목의 굵기가 내 신장만한 팔이 하늘을 가리키자 내 주변의 에너지가 놈을 두려워하듯 잦은 떨림을 보였다.
-나는 충성스런 ____. 너 야만족의 이름을 밝히······!
놈의 언어가 다시 내 머릿속으로 틀어박히려 하자 나는 초월 테크로 그것을 뿌리쳤다.
그러자 놈은 격노하여 이번에는 직접 육성을 토해냈다.
그 음성에 따라 대기에 섞인 에너지들이 춤을 추었다. 그것은 놈을 피하려 하거나, 아니면 놈의 의지에 따라 나를 공격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___!
나는 저 무지막지한 괴물 놈이 검둥이 이후로 만난 최대의 적수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겁먹고 물러나거나 쓸데없이 위축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에너지를 있는 대로 끌어 모아 놈에게 돌격했다.
이 놈을 죽여서 테크를 흡수하면 대체 뭘 줄 건지 그 호기심이 모든 감정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_!
오히려 당황한 것은 놈이었다.
놈은 분명히 에너지 총량부터 간섭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나보다 압도적이었지만 나를 단숨에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놈의 손짓에 따라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옥죄어왔지만 나는 그것조차 흡수하며 놈의 공격을 맞받았다.
끊임없이 파괴되고 복구되는 사이 육신의 상당수가 무너졌지만 어차피 저 밑의 군단 놈들을 상대하면서 부풀린 것에 불과했다.
내가 날렵한 형태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놈의 미간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놈의 수많은 눈에 순간적으로 혼란이 깃드는 것을 보았다.
__ __ __!
놈이 뭐라고 했지만 관심 없었다.
내게 새로운 에너지와 초월 테크가 있는 이상 놈의 에너지는 절대로 내 정신을 침입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방심은 죽음이다!
에너지 소드가 간섭력을 뚫고 폭발하며 그대로 널찍한 미간 사이를 갈라놓자 놈이 비명을 질렀다.
순간 놈의 눈에서 수천의 빔이 뿜어져 나와 내 육신을 날려버렸다.
__!
놈에게 그 상처 하나를 입히는 대가로 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닥 깊숙이 파묻히고 말았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직도 빔이 내가 묻힌 땅 위쪽을 불태우고 있었다.
어흐, 따뜻하다. 불꽃하면 또 난데, 그 정도로 내 갑각이나 녹이겠냐?
몸을 다시 회복한 나는 주변의 땅을 모조리 뒤집어엎으며 다시 돌격했다.
데몬 하트가 분출하는 에너지는 전부 거대한 검의 형태로 변해 놈의 사지를 향해 날아갔다.
자체적으로 간섭력을 띄고 있어 지금까지 누구도 막지 못했던 에너지 소드는 놈의 고함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나마 무사한 것은 내가 직접 컨트롤하고 있는 손 안의 한 자루 뿐이었다.
물론 내가 놈을 후려치는 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키아아악!
이번에는 놈의 수염을 자르고 턱을 반 쯤 날려버렸다.
촉수들이 뻗어와 속박하려 했지만 나는 입자로 변해 그것을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놈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 때 내 손에는 놈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만든 창 두 자루가 있었다.
__?
하나는 정수리, 다른 하나는 머리 한가운데의 가장 큰 눈에 꽂아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생각을 실행하기도 전에 직감이 좌우에서 날아드는 위협을 잡아냈다.
다시 입자로 변해 몸을 뒤로 빼자 내 에너지 소드와 비슷한 물체가 양쪽에서 내가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이놈은 또 뭐야.
저번에 메카 로봇 같이 생긴 녀석이 나왔을 때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염소 대가리 위에 떠있는 형체를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케의 경고가 뚝뚝 끊기며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넘버······ 사바, 입니다!]아, 그래.
내가 이놈을 잊어버릴 리가 있나. 네 짝퉁들은 만나봤는데 진짜는 이렇게 생겼구나?
반갑다 시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