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51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51 >
코론 행성에는 앤트워프와 달리 제법 자유분방하게 지어진 도시가 있었다.
앤트워프는 안쪽으로 갈수록 건물의 높이가 올라가지만 코론은 오히려 도시 외곽이 높은 형태였다.
로저스는 그것을 안쪽의 불법 시설들을 감추기 위한 수작이라고 말했다.
[해적들이 그렇게 말한 거냐?] [저희 일행과 해적들은 별 교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골목들의 안쪽이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제 예상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로저스는 자기가 이끄는 탐험대원들이 불법개조시술을 받은 곳 역시 이와 비슷한 환경이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개조시술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해적들은 내 의문을 그대로 전달한 로저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 불법 시설은 다른 행성으로 흩어져 혹시 모를 발각에 대비하는데 불법개조시술을 하는 장소는 이 행성에 모여 있기로 유명했다.
코론은 각종 기계부품을 생산하고 거래하는 도시다 보니 개조시술에 사용되는 장치도 마련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라프가 언급한 재료들을 구하려면 도시 중심부에 있는 전문 거래인을 찾아가야 한다는군요. 마침 페퍼가 구하려는 부품이 있었는데 거기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로저스 일행과 해적들을 태운 차량들은 지상에 박혀 있는 터널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길게 이어지는 주황빛 공간 속에서 나는 드웨인이 아래쪽의 터널이 더 오래 걸린다고 말한 이유를 깨달았다.
교차로가 많은 구간에 걸리면 모든 차들이 강제로 앞의 차들이 그 구간을 빠져나갈 때까지 정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에서 겪었던 교통 정체처럼 짜증날 정도로 조금씩 움직이는 경우는 없었다.
교차로 구간만 벗어나면 다시 시원하게 달릴 수 있고, 제한 속도만 지킨다면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었다.
터널을 벗어난 차량은 아래쪽으로 경사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패트릭의 만물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플랑드르 분들이시군요?”
자주 이용하는 건지 해적들은 천천히 주차 공간에 진입하고 있는 차량들을 자연스럽게 지나쳤다.
대놓고 새치기를 하는 거였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일처리가 빨라서 좋군. 역시 해적 놈들이 부려먹기에는 편해.
주차장에 차를 대는 즉시 직원이 마중 나와 안내하는 것까지 완벽하다.
“사장님은 현재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중입니다. 항상 가시던 곳으로 안내해드릴까요?”
“어?”
안내인의 말에 해적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서로 눈짓을 나누는 것을 보니 그다지 질 좋은 곳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마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좁히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해적들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사타구니를 보호하듯 다리를 오므렸다.
“한 번 가보세. 항상 가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뒤에서 재밌어하는 페퍼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그 말에 해적들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장을 만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어디로 가기는 해야 할 텐데, 그게 로저스 일행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가시겠습니다.”
해적들의 필사적인 눈짓에도 안내인은 무심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스무 명이 탄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하강을 거듭하다 멈춘 곳은 퇴폐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거대한 파티장이었다.
콜로세움처럼 탁 트인 공간이 중앙에 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튀어나온 원형 복도에는 눈이 반쯤 풀렸거나 그 상태에 도달하기 직전인 인간들로 가득했다.
뭐하는 곳인지 짐작이 가는군.
로저스가 내린 복도는 여덟 층으로 나눠진 복도 중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일행을 이끌고 복도의 난간 쪽으로 걸어간 로저스는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인간 하나를 밀치며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와아아아-!
“죽여 버려!”
“덩치 값 좀 해라, 이 돼지 같은 놈아! 저딴 멸치는 한 주먹감이라고!”
난간마다 기대어 있는 인간들은 가장 아래층의 원형 공간을 바라보며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곳에서는 폭력과 피로 휩싸인 무대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불법 격투장이군요.] [싸우는 것들이 아무리 봐도 인간 같지는 않은데.] [식민 행성에서 끌고 온 외계 종족들입니다. 한쪽은 비엘라노프라는 종족이고 다른 한쪽은 오르그군요.]비엘라노프라는 종족은 축축한 검푸른 색 피부에 도마뱀 같은 머리를 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세 개뿐인 손가락 사이로 얇은 피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중에서 살던 녀석 같은데, 몸집은 인간보다도 작았다.
녀석은 금속 만들어진 꼬챙이 같은 창을 앞으로 겨눈 채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쿠파보다는 약해보이지만 단단한 암석질의 갑각을 가진 오르그는 비엘라노프가 가까이 접근할 때마다 팔을 휘둘렀지만 번번이 헛손질을 했다.
비엘라노프가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지만 쿠파 계열이 다 그렇다시피 움직임이 굼뜬 탓이 컸다.
몇 번 갑각 사이로 찌르기를 성공시킨 비엘라노프는 약 올리듯 창을 빙글빙글 돌리는 퍼포먼스를 취했다.
상처 입은 오르그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방심한 듯한 모습이었다.
[죽겠군.]퍽!
내 선고가 내려지기 무섭게 비엘라노프는 빛살 같은 오르그의 돌진에 적중당해 나가떨어졌다.
기동력은 좋지만 약한 육체를 가지고 피하지 못한 시점에서 녀석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원형 경기장의 벽과 오르그 사이에 낀 녀석은 로드킬에 당한 개구리처럼 처참한 상태가 되었다.
“드디어 승자가 나왔군요. 벌써 4연승을 달리고 있는 ‘거북이’의 승리입니다!”
“그럼 그렇지. 믿고 있었다고!”
“젠장! 멍청한 도마뱀 자식!”
승리한 오르그는 비엘라노프의 시체를 물어뜯으려다 로봇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시체는 수거반이 와서 빠르게 치워냈다.
2층과 3층, 5층과 6층 복도 사이에 설치된 화면에서 다음 대진 정보와 대기 시간이 떠오르자 난간에 매달려있던 인간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장인 패트릭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플랑드르 분들이 새로운 손님을 모시고 왔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왔네요. 저는 패트릭이라고 합니다.”
“로저스입니다.”
로저스는 패트릭이 내민 기계 팔을 스스럼없이 잡고 흔들었다.
몸의 절반 이상이 기계로 이루어진 페퍼처럼 사이보그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다른 부위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플랑드르 쪽에서 모시는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군요. 드웨인 회장이 직접 연락을 해왔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패트릭은 눈을 찡긋해 보이며 웃었다.
마리아가 ‘회장’이라는 소리에 코웃음 친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쩐지 안내인이 해적들을 무시하더라니 이미 드웨인에게 로저스 일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이곳은 사업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렴요. 대화를 나누기에는 부적합하지만 조용히 상품을 거래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지요.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패트릭은 난간에 기대어 로저스 쪽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마스터 오베린의 눈과 귀는 성계 전역에 펼쳐져 있고, 당신들이 구하려는 물질들은 굉장히 희귀한 것들이지요. 그것을 구매한 흔적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꼬리를 붙이고 다니는 게 편하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괜히 눈에 띄어서 감시당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확실히 오베린이 고대의 우주선에 대해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아마 군대를 이끌고 와서라도 가져가려고 들 것이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그래서 물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건은 여기에 없습니다. 제가 전해드릴 것은 사흘 뒤에 열리는 비밀 경매장의 티켓입니다.”
“예?”
패트릭은 품속에 손을 넣어 검은색 바탕에 가장자리를 금색으로 장식한 카드를 하나 꺼냈다.
로저스의 눈이 그 위에 새겨진 매 형태의 문양 위에 머물렀다.
“저 같은 일개 상인이 요청하신 희귀 광물을 마음대로 유출할 수는 없어서 말이지요. 옛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마스터 오베린의 가문이 주최하는 비밀 경매장에서 거래되면 그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로저스는 황망하게 패트릭이 건네는 카드를 받아 쥐었다.
패트릭은 씩 웃더니 검지로 로저스 일행의 슈트를 가리켰다.
“멋진 슈트군요. 하지만 경매장에는 벗고 가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러면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패트릭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그대로 뒤돌아 사라지려고 했다.
로저스가 그 앞길을 슬쩍 막기 전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패트릭 당신 정도면 어느 성계까지 연락을 할 수 있죠?”
녀석은 패트릭이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바짝 붙은 상태에서 워치를 조작해 그에게 들이밀었다.
“혹시 여기로 연락할 수 있습니까?”
“이쪽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안 되겠는데요. 마스터 오베린이나 가능할 겁니다.”
“으음.”
패트릭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로저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패트릭이 물었다.
“가족 분이 계신 곳입니까?”
“예.”
“제가 그쪽으로 향하는 수송 함대 쪽에 연줄이 있으니 괜찮으시면 소식 정도는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패트릭은 다시 치솟은 로저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멀리 돌아가야 돼서 시간이 걸리니 답장은 한참 뒤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지 로저스는 패트릭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 참.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
***
경매가 열리기까지 사흘.
그동안 로저스는 패트릭이 소개한 호텔에서 체류하게 되었다.
주변의 특급 호텔과 비슷한 외관이었지만 오베린의 가문이 주최한다는 비밀 경매가 그 호텔의 지하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경매 참가자들은 대부분 미리 그곳에 방을 잡는 편이라고 한다.
로저스 같은 경우는 최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혼자서 방을 잡은 뒤 바깥과 연락하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리고 마침내, 경매 당일.
로저스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는 지하의 경매장으로 향했다.
경매장으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티켓을 찍고 내려가니 문이 열림과 동시에 위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266번 고객님. 4번 경매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경매장 내부는 영화관처럼 나뉘어져 1번부터 8번까지 따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로저스는 복도를 지나며 다른 경매장의 문을 열어보려고 했지만 이 역시 티켓을 찍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장물들도 많이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보안이 철저합니다.] [원래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일수록 그런 법이지. 들어가라.]로저스는 내 지시에 따라 4번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문 뒤쪽에 펼쳐진 진홍색 암막을 걷어내자 작은 방이 나왔다.
그곳에서 다시 티켓을 인증하고 가면과 로브를 착용한 뒤에야 본 경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깥의 어둡고 텁텁한 분위기와 달리 문 안쪽은 휘황찬란한 빛으로 가득했다.
입장한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좌석 수는 대극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많았다.
로저스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 들어갔다.
-이번에 보여드릴 상품은 아다만티스 행성에서만 추출되는 물질······.
-26억 나왔습니다.
-27억.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경매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어떤 물질은 순양함 한 대 가격까지 치솟기도 했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인간들은 이를 갈며 다음 상품에 목을 매달았다.
드웨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로저스였지만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때마다 진정이 안 되는지 다리를 덜덜 떨었다.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상품이 없군요.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물질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과연 녀석의 예측대로 내가 손에 넣어야 할 물질의 차례가 되자 가격을 올리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돈은 신경 쓰지 말고 가져와.] [알겠습니다.]로저스는 거침없이 의자에 부착된 패널을 연타했다.
끝까지 따라붙는 인간이 있었지만 금액이 2천억까지 올라가자 포기했는지 조용해졌다.
-낙찰되었습니다.
총 7천억을 들여 다섯 가지 물질을 낙찰받기까지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물질의 배송 장소를 수송선 트로이로 등록을 한 로저스가 호텔을 나왔을 때였다.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는 일체형 배틀 슈트를 착용한 괴한들이 로저스의 주변을 둘러싼 것이다.
녀석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분위기를 감지한 로저스가 삐딱하게 대응했다.
“뭐야, 너희들은?”
“너를 보자고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얌전히 따라오도록.”
“내가 니들 애완견이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게?”
“매를 버는군.”
괴한들은 사전 동작도 없이 로저스에게 달려들었다.
몸놀림이 딱 봐도 로저스와 같이 불법개조시술을 받은 인간들이었다.
로저스는 타고난 감각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숫자의 차이는 당해낼 수 없는지 결국 몸 여기저기를 두들겨 맞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강제로 녀석과 정신 연결이 끊긴 나는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나를 태운 트로이가 도시 상공 한복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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