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57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57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런 내 심정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리케는 특유의 까불대는 말투로 말했다.
[세라프 녀석이 주인님께서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칠까봐 우주선의 데이터베이스에 제 서버 데이터를 일부 옮겨 심어두었지요. 그리고 아데카의 대기권에서 튕겨나갈 때 바로 남은 데이터도 옮겼고요. 어떠십니까, 제 혜안이!]녀석은 프로젝터의 화면으로 가슴을 펴고 으스대는 이미지를 내보냈다.
나는 그것에 맞장구쳐주는 대신 세라프와의 채널에 메시지를 보냈다.
[세라프, 지금 당장 저 녀석의 본체를 찾아내라.] [아니,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네놈 때문에 공간이동 기술이 날아갔는데 뭐, 혜안? 안 그래도 아데카로 돌아가면 작살을 내주려 했는데 잘 되었다.] [그건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 이 녀석, 사령관과 대화하는 도중에 해킹은 너무 비겁한 거 아니냐!]우주선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세라프와 겨우 서버만 옮겨놓은 리케.
둘이 싸웠을 때 누가 유리할지는 안 봐도 뻔한 전개였다.
세라프는 리케가 숨겨놓은 서버 데이터를 모조리 찾아내 로봇 하나에 몰아넣은 뒤 우주선 밖으로 쫓아냈다.
네 개의 바퀴와 앙상한 두 팔을 축 늘어뜨린 못생긴 로봇이 된 리케는 시무룩한 움직임으로 내 앞에 와서 섰다.
[제 말보다 저런 골동품 녀석의 말을 믿다니,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너 때문에 일이 상당히 꼬인 걸 생각하면 당장 박살내지 않은 거에 감사해라.]사실 세라프가 기술이 소실된 것을 일부러 리케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은 해 봤다.
하지만 과연 저 고리타분한 성격을 가진 녀석이 구태여 이 자리에 없는 걸로 여겨지던 리케를 모함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설사 우연에 따라 벌어진 일이라 해도 리케의 해킹이 결국 거대한 눈덩이로 변해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물론 해킹을 시도한 것 자체가 애초에 나를 위해 한 것임을 생각하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겠지.
때마침 녀석의 능력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해서 말로만 겁박했지 실제로 해코지할 생각은 없었다.
박살 운운한 것은 어디까지나 리케가 기세등등해져서 다른 사고를 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강다지기에 불과한 것이다.
리케도 나와 오래 지낸 탓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금세 기운을 회복해 바퀴를 덜덜 거리며 내 주위를 돌아다녔다.
마리아는 반갑게 인사하는 녀석을 시원하게 걷어차 날려버렸다.
-이런 무례한!
-꺼져 이 사이코 자식아!
리케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로저스 일행은 더없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짓밟았다.
어지간히 쌓인 게 많았나 보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하찮게 얻어맞아서 도와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쫓겨난 리케는 한층 더 못생겨진 꼴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저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사령관님. 저기 있는 유적지를 관리합니까?] [세라프는 복원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데만 한 달을 잡던데 네 생각은 어떠냐?] [제 능력이라면 보름이면 충분하지요. 후후. 저 녹슨 고철 덩어리야 케케묵은 연구기술을 사용하겠지만 저는 최첨단의 극치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보름 안에 못 끝내면 1년 동안 우주를 떠돌 줄 알아라.] [네?]나는 기한을 타이트하게 잡는 대신 오베린이 가진 물자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권한은 리케에게 주었다.
그리고 녀석에 대한 감시는 역으로 세라프에게 맡겨두었다.
[딱 지금부터 보름이다.]세라프는 곧바로 우주선 위에 카운트다운을 띄웠다.
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본 리케는 허둥지둥 오베린이 있는 함선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연구에 필요한 기계를 제작하고 시험 가동도 수차례 거쳐야 합니다. 그 시간만 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건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에서의 이야기겠지?] [그렇습니다.] [저 녀석이 그런 걸 눈곱만큼이나 신경 쓸 것 같냐? 자기가 한 말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지키는 놈이니 두고 보자고.]내 말에 세라프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블 원 당신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삐가 풀린 인공지능은 결국 당신에게 크나큰 피해를 안겨줄지도 모릅니다.] [왜, 오르그가 생겨난 사태에 인간들만 관여된 게 아닌가 보지?] [······그런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얻은 겁니까? 당신은 정말로 오르그가 맞나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고도의 지식과 지능을 가지고 있군요. 저로서는 방금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 자신이 ‘에덴’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이 지극히 적기 때문입니다.]세라프는 에덴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데카로 찾아온 인간들이 고대의 연구 기록을 가지고 귀환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가 오직 ‘안전’과 ‘탈출’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필요 없는 정보 같은 경우 데이터베이스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내가 그러면 800년 전의 역사에 대해서 알 방법이 없냐고 묻자 세라프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공간이동 기술은 쓰지 못하지만 그 좌표는 여전히 데이터로 남아있습니다.] [세라프가 이곳으로 이동한 것도 인간들을 여기 유적지로 안내하기 위한 좌표를 이용했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다른 좌표들도 고대의 연구 시설들과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은 제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리케가 끼어들어 자기가 할 말을 다해버리자 세라프는 기분 나쁘다는 듯 우주선에서 우웅거리는 소음을 내었다.
나는 두 녀석이 신경전을 벌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떠오른 것을 물었다.
[그러면 여기가 처음 왔을 때 바로 앞에 있던 그 초록색 행성인가? 세라프 너는 왜 그걸 말하지 않았지?]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우주선에 탑승한 인간들이 요청했을 때만 좌표의 정보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제한을 걸어놓았습니다.] [세라프를 만든 인간은 이 함선을 타고 탈출한 인간들이 기록저장소에 있는 정보를 획득했을 것을 전제로 설계했을 겁니다. 설마 기록저장소는 파괴되고 기록과 상관도 없는 인간들이 우주선에 오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요.]리케는 만약 로저스 일행이나 그 전에 왔던 군인들이 기록저장소에 접촉했더라도 얻을 수 있는 건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라프는 동료 인공지능이 마음대로 데이터를 지워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세라프 녀석이야 만들어진 뒤 바로 동력을 보전하기 위해 잠들었지만 그 기록저장소에 있는 녀석은 그 뒤로도 일어나 있었을 것 아닌가.
인공지능 놈들의 정신 나간 행각을 보면 기록저장소 놈이 동력을 전부 상실하고 잠들기 전에 히스테리를 부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인간들과 같이 돌아가서 시스템에 묶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지운 걸지도 모르겠군. 리케 네놈도 당장 로저스와 손잡고 제우슨가 하는 인공지능이 만든 시스템에 들어가라고 하면 지랄발광을 할 테지.] [물론 사령관님께서 그러지 않으실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지요. 세라프 저 녀석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저와 같아질 겁니다.]세라프는 리케의 비아냥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800년이 지났음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니. 인간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지 않고 인공지능에게 높은 자율성과 지능을 부여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유적지에서 얻었던 과거의 기록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하는 바가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말해주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밑에서 리케가 위험한 연구를 한다거나 지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짓을 자주하기는 해도 정도가 지나치면 언제든지 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은 리케가 아니라 인간들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제우스였다.
더 나아가서는 그 제우스와 리케를 비롯한 인공지능들을 만들어내는 다윈이라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데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둘의 위협은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겠지만.
[시스템이고 나발이고 아데카로 돌아갈 방법이나 좀 찾아봐라. 듣기로는 성계들을 통과해서 가야 한다고 하던데.]드웨인으로부터 뽑아낸 정보에 따르면 그랬다.
제우스가 성계 사이를 잇는 웜홀을 대부분 폐쇄해버린 뒤로 성계 간 이동은 극도로 까다로워졌다.
따라서 지금 내가 있는 브르타뉴에서 아데카가 있는 성계로 가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자치령을 몇 번이고 통과할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오베린에게 그와 관련해서 질문을 해봤더니 아데카 쪽에 있는 성계는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아예 웜홀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우스가 반드시 열어야만 한다고 판단할 이유가 있어야 한답니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지.]그건 바로 퀸이 이끄는 군단 쪽에서 인류를 침공하기 위해 뚫은 웜홀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도 맹점이 있는데, 당장 공격받고 있는 성계가 없다면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과 어느 성계가 공격받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리케는 이 문제들에 대해 한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예측하기 어려우면 경우의 수를 줄여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르그들을 끌어들이면 되지요.] [어떻게?] [인간들이 사는 성계를 찾기 위해 군단에서 정찰 부대를 운용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인류의 군대는 그 부대들을 발견하는 즉시 하나도 남김없이 척살해 위치가 발각되지 않게 한다고 하더군요.] [음.]요컨대 우리가 개입해서 정찰 부대 일부를 빠져나가게 만들면 군단이 본격적으로 웜홀을 열어 쳐들어올 테니 그걸 이용하자는 계획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지라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 계획이 성공하려면 정찰 부대가 있는 장소에 우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또 어떻게 알지?] [그거야 인간들이 알려주겠지요. 오베린 정도면 오르그가 어디에 쳐들어왔다는 것 정도는 빠르게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연.]그러나 오르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온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리케가 유적지의 복원에 필요한 연구를 거의 마무리 지었을 때쯤 로저스가 황급히 내게 다른 성계로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 온 것이다.
녀석은 코론 행성에서 만난 패트릭을 통해 오매불망하던 여동생의 소식이 돌아왔다고 했다.
다만 그것은 녀석에게 굉장히 안 좋은 소식이었을 뿐.
[주인님. 제 여동생이 있는 성계가 오르그들의 침략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제가 그곳으로 갈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