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60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60 >
푸른 피부가 처맞으면 검게 물드는구나.
온몸이 시꺼먼 멍으로 가득한 달팽이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반신반의했지만 진짜로 말을 할 줄 알다니.
달팽이 녀석은 무려 입으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텔레파시를 통해 나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보통 이렇게 약한 개체는 하나 이상의 능력을 가지기 어려운데 놈은 벌써 오르그 감지와 텔레파시라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진 상태였다.
-뭐야, 이 녀석 말을 할 줄 알잖아?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거 아니야?
-끼익!
로저스와 마리아가 안쪽을 확인해보겠답시고 달팽이를 잡아당기자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푸르죽죽한 피부에서 체액이 마구 흘러나오자 인간들은 황급히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으억. 더러워!
달팽이는 그 틈을 타 떨어져나간 체액을 황급히 주워 모았다.
이쪽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눈치를 열심히 보는 이중적인 태도에 나는 녀석이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게 수도 없이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부려졌던 쿠파들조차 저렇게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베린에게 저것과 비슷한 오르그를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근처에 서식하는 포획 가능한 오르그들은 대개 엇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데 저렇게 인간과 양서류를 섞어놓은 것 같은 모습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그 개구리 같은 손을 살피던 오베린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나를 대신해 녀석을 심문했다.
-넌 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어떻게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지?
-······제 이름은 낼름이예요.
-그리고?
-인간들이 말을 가르쳤어요. 못하면 마구 괴롭혔구요! 그래서 낼름이는 말을 할 수 있게 진화되었어요!
-흑십자회가 그런 연구도 했단 말인가? 오르그를 강제로 진화시키다니 이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겠는데.
오베린은 경악하더니 곧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나와 리케가 아데카에서 진행했었던 오르그들의 진화의 방향성을 강제로 바꾸는 것에 대한 연구를 인간들도 하고 있었나 보다.
리케는 저 말이 사실이라면 흑십자회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할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한 존재가 진화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하려면 평범한 환경 변화로는 어림도 없지요. 그건 군단 소속이 아니고서야 진화에 용이한 오르그일지라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방랑 개체를 저렇게 만들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자원을 요구하는 실험이 필요했을 텐데 그런 집단의 규모가 작을 리가 없습니다.] [그만한 놈들이 왜 함선은 저렇게 작은 것들만 데리고 다니지?] [민간에서 운용한다고 했을 때 호위함급 정도면 큰 것입니다. 순양함급을 몰고 다닌 플랑드르 해적이 비범할 뿐. 오히려 오르그들을 포획하러 다니는 부대에 호위함급만 열한 대가 있을 정도면 나름 대단하다고 봐야지요.] [일개 부대에 그 정도 투자를 했다는 말이지······. 혹시 다른 부대도 있나? 네가 말한 대로의 규모라면 포획 부대를 하나만 운용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낼름이 녀석이 나를 너무 두려워하는 탓에 나는 리케가 물어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녀석은 리케가 접근해 말을 걸자마자 곧장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다들 어안이 벙벙해있는 사이에 잽싸게 구석으로 후다닥 달아났다.
녀석에게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던 리케는 이런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지 로봇 팔 한쪽을 들어 올린 채 굳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아가 킬킬대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도 본능적으로 사이코를 알아본 거지. 더러운 성격이 로봇에서도 드러나잖아?
-입 조심해라, 인간!
-응, 싫어.
[*그럼 제가 한번 말을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복도의 로봇에게는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으니까요.]나와 리케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세라프가 나섰다.
낼름이가 로봇을 무서워하는 건지 아니면 인공지능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지 확인해볼 생각인 듯했다.
그 결과는 리케에게 보였던 반응과 대동소이했다.
-봐라! 세라프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이잖아!
-그래도 세라프한테는 좀 덜한 것 같은데. 그리고 사실 세라프도 제정신은 아니지. 안 그래?
-*저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나는 리케와 인간들이 투닥거리는 사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인공지능을 무서워하는 오르그라.
흑십자회 놈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고 가정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던가?
리케는 단독으로 자신을 소유하고 있던 루카스의 부대는 최전방에서 구르는 특수부대라는 특별한 위치였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것은 모두 통합인공지능 제우스의 데이터베이스이며 독립인공지능의 숫자는 다 합해야 열을 넘지 않는 것도.
그리고 그 독립인공지능들은 오베린이 세라프를 탐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자치령의 마스터들조차 구할 수 없는 희귀자원이었다.
더불어 인공지능의 시스템 자체가 연합정부의 통제에 따라 굴러간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흑십자회가 오르그 실험을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리미트가 풀린 인공지능을 흑십자회가 보유하고 있을 경우.
아데카 바깥의 우주에 800년 전의 유물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는 어딘가의 유적지에서 세라프 같은 고대의 인공지능을 얻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른 하나는 낼름이를 만든 게 흑십자회가 아닐 경우.
낼름이는 흑십자회가 그런 것도 만들었냐는 오베린의 중얼거림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혹독한 처사를 받았으면 흑십자회라는 단어만 나와도 입에 거품을 물만도 한데 말이다.
[어이.] [녜!]내가 직접 말을 걸자 낼름이는 잔뜩 경계하는 시선으로 리케를 바라보다 황급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길게 뻗어 나온 눈이 불안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리케와 세라프가 말을 걸었을 때보다는 나은 모습이었다.
[네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진화시킨 집단의 이름이 정확히 뭐지? 지금까지 너를 데리고 있던 흑십자회인가?] [아니에요.]낼름이는 눈을 좌우로 흔들며 내 추측을 바로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는 모양새가 그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설마 다윈이냐?] [히익!]낼름이는 리케에게 보였던 반응을 보임으로써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나와 낼름이의 대화를 듣지 못한 리케는 그것을 보고 내가 쳐다보는 것만으로 낼름이를 질리게 만들었으니 자기보다 성질이 더 더러운 게 아니냐는 소리를 지껄여댔다.
깡!
그런데 이놈의 다윈이라는 집단은 대체 일을 어디까지 벌려놓은 거지?
오르그라는 종족을 만들고 나서 바로 전쟁이라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테니 그 이후로 뭔가 실험을 더 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결국 이 녀석은 실패작 중 하나인 건가?
나는 녀석에 대해서 더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오르그를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오르그가 더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녀석이 만들어진 연구소를 찾아가 볼 셈이었다.
다윈이라는 이름을 듣고 혼란에 빠졌던 녀석은 내가 툭 하고 건드리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네 능력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 멀리 있던 나를 감지한 것이 너냐?] [헉! ······녜.] [그것도 진화하면서 얻은 능력인가?]낼름이는 아니라는 듯 눈을 좌우로 흔들었다.
목이 거의 없고 머리와 몸통이 바짝 붙어있어 눈으로 제스쳐를 취하는 것 같다.
[인간들은 낼름이가 다른 친구들과 정신적으로 연결되기를 바랐어요! 그러기 위해서 낼름이는 가장 먼저 누군가를 탐지할 필요가 있었구요. 하지만 실패하고 말았어요.]낼름이는 탐지 능력을 나중에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 자체는 실험의 영향을 받았을 터.
녀석은 연구소에서 나온 뒤 그곳에 같이 갇혀있던 친구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연구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 [낼름이와 같은 실험을 받던 친구 하나가 연구소를 무너뜨렸어요. 낼름이보다 한참도 전에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았던 친구였어요. 그래서 인간들에게 예쁨을 받았었는데 그 친구는 연구소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전부 죽여 버렸어요.] [그 친구는 어디에 있지? 아니, 그 전에 연구소를 어떤 방식으로 무너뜨린 거냐.] [그거는 낼름이도 잘 몰라요. 친구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게 힘을 기르고 있었어요. 인간들의 통제장치는 오래 전에 무용지물이 되었구요. 그 친구는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다니며 실험을 진행하던 인간들 몇을 사고로 위장해 죽인 다음 몰래 먹어치우기도 했어요.]혼자서 연구소 하나를 작살내려면 강력한 힘과 더불어 머리가 상당히 영리했을 것이다.
낼름이의 말을 들어보니 연구소에 오래 있었던 듯하니 내부 구조에도 빠삭했을 테고.
그 정도의 오르그라면 자신을 가지고 실험하던 인간들을 역으로 농락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죽인 인간을 왜 먹은 거지?
사고로 위장했으면 인간들이 그렇게 알기를 바랐다는 것인데 굳이 잡아먹을 필요가 있을까?
내 의문에 낼름이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 친구는 인간들이 참 맛있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인간들은 그들이 원했던 대로 불타지 못했어요.] [미친 녀석이었군.]단순히 미식을 위해 화장되려던 인간의 시체를 몰래 훔쳐먹었다는 말이다.
진화에너지가 인간을 먹고 맛보는데 집착하도록 방향성을 잡은 것 같은데,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야 그렇게 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녀석에게 따로 낼름이와 다른 실험을 진행해 그런 결과가 나온 거라면 연구소가 멸망한 것은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그 녀석과는 언제 헤어졌지?] [낼름이가 다른 친구들을 찾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사라졌어요.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낼름이는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씩 고향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고향이라.]인간들이 오르그를 만들었는데 고향이라는 게 있을까?
아니면 고향이라는 게 또 다른 연구소이고 복수를 위해 떠난 건가.
낼름이는 내 생각대로 연구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 의문에 확실한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연구소를 멸망시킨 녀석이 떠나고 낼름이는 친구들을 열심히 찾는 도중에 탐지 능력을 각성했다고 한다.
그 능력을 통해 연구소의 잔해에 묻혀있던 녀석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고.
친구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졌지만 낼름이 자신은 연구소 근처를 전전하다 흑십자회 놈들에게 잡혔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대로라면 적어도 수백 년을 혼자서 살아왔다는 이야기인데 진화에너지도 없는 공간에서 그만큼 버틴 것이 용할 정도다.
흑십자회에 잡힌 뒤로 또 여러 가지 실험을 당했고 살기 위해 탐지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그 결과가 안테나 역할을 하는 긴 눈이었다.
[그러면 너처럼 탐지 능력을 가진 오르그는 더 없다는 이야기군. 적어도 흑십자회 내에서는 말이야.] [펑라이후는 저를 잡은 뒤로 내보내주지 않아서 잘은 몰라요, 하지만 다른 간부들은 오르그들이 모여 있는 사냥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며 불평하는 것을 들었어요.]나는 그 말을 듣고 흥분해서 당장 리케와 세라프에게 나포한 함선들에서 사냥터의 좌표를 알아내라고 지시했지만 둘 다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 함선들에는 별다른 정보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기함이 모든 항로와 정보를 통제하는 방식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 기함은 저렇게.]리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함교 앞부분이 통째로 날아간 기함을 가리켰다.
내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날려버린 탓에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낙심하는 내 옆으로 다가온 리케는 악의로 가득 찬 속삭임을 던졌다.
[저 달팽이 녀석이 아직 덜 맞아서 말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더 두들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