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61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61 >
리케는 사지를 분해당해 함교 꼭대기에 매달렸다.
죄목은 괘씸죄였다.
로저스 일행이 사슬에 묶여 대롱거리는 녀석을 다트의 표적으로 삼아 노는 동안 나는 낼름이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낼름이는 굳이 두들길 필요도 없이 펑라이후라는 흑십자회의 간부가 장난처럼 입에 담았던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놓았다.
[펑라이후는 가장 가까운 사냥터인 옵저버스 행성을 차지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곳엔 질이 좋은 오르그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질이 좋다니? 그 기준이 뭐냐.] [그들은 고된 실험을 잘 버틸 수 있는 친구들을 질 좋은 오르그라고 불렀어요.]녀석들이 어떤 실험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낼름이의 반응을 봐서는 오르그의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인 듯했다.
그걸 잘 버틴다는 것은 쿠파 정도는 되는 걸까?
그 이상은 낼름이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나는 직접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세라프. 옵저버스라는 행성이 헨젤이라는 성계에 있다는데 어디쯤이지?] [*헨젤 성계는 본래 저희가 가던 방향에 있는 약 6광년 크기의 성계입니다.] [옳거니. 그럼 가면서 들리면 되겠군.]카페에 디저트를 먹으러 가는 느낌으로 말하자 오베린이 기겁했다.
헨젤 성계는 상당히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자치령 ‘그림’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거기서 문제를 일으켰다간 곱게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르그를 잡아먹어준다는데 그걸 문제 삼는다고?
[군단에게 본진이 날아갔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학습능력이 없는 건가?]-그게 아니오라, 행성 하나를 몰래 점유해서 관리할 정도면 그쪽 자치령 정부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뒷돈을 받아먹은 공무원이 안 좋은 보고를 올릴 수가 있다, 오베린은 내 추궁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변명했다.
자기네도 늘 하던 짓이라 그런지 그리 당당하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어딜 가나 썩어빠진 인간들이 문제로군.
어쩌면 퀸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렇게 더 방심하도록 일부러 강하게 압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쨌든 일러바치지 못하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군.]-예?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한 오베린을 뒤로 하고 함교를 떠났다.
세라프가 흑십자회의 함선들을 분해해 이쪽의 우주선을 수리하는 동안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너머로 사라지는데,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리케의 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보였다.
[오랜만에 실력 좀 발휘하시겠군요.]***
옵저버스 행성. ‘사냥터’.
흑십자회의 졸개1은 높게 세워진 탑 위에서 초록색 화면 안으로 점점이 비치는 오르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선 악어처럼 납작한 생김새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각을 가시처럼 세운 괴물, 일명 ‘크로시스’들이 무리를 지어 한 곳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흠.”
크로시스들이 선호하는 광물을 온몸에 매단 인간 여러 명이 그 앞에서 달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졸개1은 이내 콧구멍을 파면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숨 막히는 추격전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하도 많이 봐서 별 감흥도 일지 않았다.
그래도 수십 개의 드론으로 촬영되는 ‘인간 vs 몬스터(인몬)’시리즈의 영상은 특정 마니아층에게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에 그는 인간들이 도망가기 쉽게 환경을 주기적으로 바꿔주었다.
“아, 형님! 교대 언제 합니까?”
“기다려라, 좀! 클라이막스까지는 찍고 넘겨줄 테니까. 너 같은 초짜한테 맡겼다가 기껏 찍어놓은 영상 날아가는 거 한두 번 겪을 줄 아니?”
“저는 잘할 자신 있다니까요?”
“입으로는 똥으로 국수를 만들 수도 있지.”
졸개1은 최근 부사수로 들어온 졸개2가 귀찮았다.
이전에 있던 부사수 녀석이 오르그의 입속에 머리를 넣다 빼는 미친 짓을 하다가 죽어버린 뒤에 들어온 녀석인데, 자신을 인몬의 광팬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첫날에 촬영 현장을 주의 깊게 보더니 그 다음날부터 자기도 찍게 해달라고 주구장창 조르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튀어나온 거야?’
CG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르그들이 생으로 인간을 찢어발기는 꼴을 보면 보통 초짜들은 대부분 질겁하기 마련이다.
내장이 줄줄 흘러나오는 몸으로 땅을 기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구역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졸개2는 이쪽 영상을 하도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히려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옆으로 와서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졸개2를 밀쳐낸 졸개1은 마침내 인간들이 궁지에 몰려 발악하는 장면에 드론을 집중시켰다.
조금 있으면 벌어질 일방적인 살육에 옆에 있는 정신병자가 또 발광을 하리라고 예측하면서.
그러나.
두 졸개들이 기다리던 학살극은 펼쳐지지 않았다.
B구역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 오르그 하나가 갑자기 땅 속에서 튀어나와 난입한 것이다.
“뭐야!”
“어라, 이런 전개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건데.”
졸개1은 돌발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난입한 오르그는 그의 눈앞에서 대뜸 근처에 있는 크로시스들을 물어뜯으며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B구역의 담당자에게 통신을 걸었다.
그러나 기계 위로 떠오른 화면에는 통신 불가 안내만 떠오를 뿐 저쪽에서 돌아오는 신호가 없었다.
“이런, 씨발! 나미드 이 새끼, 또 뭘 잘못 건들었는데 서펜트가 여기까지 와!”
“쟤들 싸우는 사이에 인간들이 도망가는데요, 형님? 저기로 가면 C구역 아니에요?”
“뭘 구경하고 있어! 가서 다 잡아와!”
열 받은 졸개1이 엉덩이를 걷어차자 졸개2는 넷 하는 소리와 함께 잽싸게 밖으로 튀어나갔다.
졸개1은 씩씩대며 본관 내부에 대기하고 있는 전투요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아. 현재 B구역에서 넘어온 서펜트 하나가 날뛰고 있다. 긴급히 인원을 파견해 제압하도록! 크로시스들이 넷 이상 죽으면 오늘 저녁은 오르그 고기로 때울 줄 알아라. 다시 한 번 말한다. 현재······.”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고 전투요원들을 태운 차량이 쏜살같이 기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서펜트와 크로시스의 싸움은 실시간으로 그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지하 통로를 통해 빠르게 달려 싸움 현장에 도착한 요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아악! 살려줘!
콰직-!
B구역에서도 달려왔는지 그곳에는 동료요원들이 제압용 장비를 장착한 상태로 서펜트와 대치 중이었다.
섣불리 탄환을 발사했다가 서펜트의 꼬리에 찍혀 하늘 높이 튕겨져 올라갔던 요원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머지 요원들은 그 슈트에서 핏물이 줄줄 새는 것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벌써 같은 방식으로 당한 요원만 일곱이었다.
-서펜트가 너무 흥분해서 제압하기가 힘듭니다!
-멍청아, 약점을 노려서 마취하면 될 거 아냐! 그 놈 하나 잡는데 얼마가 들었는지는 알고 있지? 서펜트 하나당 니들 연봉 40년 값이라고!
졸개1의 통신에 요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서펜트가 죽기라도 하면 그날로 종신 노역인 것이다.
하지만 서펜트가 몸을 바닥에 가깝게 하고 있는 탓에 약점 부위를 노릴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동인식기능이 달린 기계 장비조차 인식을 못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서펜트는 크로시스를 마구 공격해 강철보다 단단한 갑각을 이리저리 흩어놓고 있었다.
크로시스 하나가 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자 이제 요원들은 절박한 심정이 되어 서펜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
“에잇. 숫자로 밀어붙여!”
“이판사판이다. 죽으면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라!”
수많은 갈고리들이 길쭉한 몸통에 걸리고, 고성과 비명이 오갔다.
그렇게 몇몇 요원들이 죽어나가고 부상자가 속출한 끝에 그들은 어떻게든 서펜트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목숨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려든 결과였다.
분하다는 듯 눈을 반쯤 뜬 채 기절한 서펜트 옆에서 환호성을 지른 그들은 수송 차량을 부를 생각으로 졸개1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뭐야, 왜 그래?”
“통신이 연결이 안 되는데?”
모든 요원들이 기지로 통신을 시도했지만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한 그들은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떡하지? 우리가 가져온 차량으로 끌고 가야 하나?”
“그랬다가 어디 한군데 상하기라도 하면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잠깐, 쉿! 무슨 소리 안 들리나?”
“무슨 소리?”
워치를 확인하던 요원 하나의 되물음에 가장 먼저 소리를 감지했던 요원은 땅 밑으로 쑥 꺼지는 것으로 대답해주었다.
그 앞에는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서있던 동료의 두 팔뚝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르르륵!
서펜트가 내는 특유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임무 중이라는 사실을 손에 들고 있던 장비와 함께 내던지고 차량을 향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때리면 말을 듣는다. 언제 봐도 정말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입니다.] [*지성의 극단을 달리는 당신이 할 말입니까, 그게?]이것이 내 앞에서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하는 오르그 부대를 본 두 인공지능의 감상이었다.
나는 손에 든 촉수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던 오르그들을 마구 영역 바깥으로 몰아냈다.
영역이 붕괴되면 오르그들은 자연스럽게 다시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할 것이고 나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에너지만 쏙쏙 빼먹으면 그만이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오르그들이 아예 바깥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채찍과 채찍으로 조련한 정예 부대가 외곽을 돌며 이탈을 막았다.
촉수가 바닥을 내려칠 때마다 녀석들은 다른 오르그들에게 도망치면 죽을 줄 알라는 의미의 포효를 내질렀다.
쿠오오-!
캬우우!
안쪽에서 화답이 들려오고 나면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인간들이 넓은 행성에 적당히 구역을 정해줬을 때와 다르게 서로 잡아먹기 시작한 오르그들은 그 짧은 사이에 네임드급만 여럿 출현할 정도로 빠르게 진화했다.
모든 통신이 맛이 가버린 인간들은 어둠과 침묵 속에서 보다 강력해진 오르그들과 처절하게 맞서 싸웠다.
-과연. 이렇게 되면 오르그들이 알아서 난동을 부린 것이 될 테니 저놈들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겠군요.
오베린은 뱀 같이 생긴 오르그 하나가 기지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박수를 쳤다.
저번에 공격당한 뒤로 흑십자회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안 좋아졌는지 저쪽의 인간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입술을 씰룩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마스터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혹시 저 오르그들로 군대라도 만들 작정이신 건지······.
이곳에 온 목적이 진화에너지를 모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오베린은 흑십자회가 당하는 것에 통쾌해하면서도 내 목적에 의문을 품었다.
페퍼 같은 경우는 질 나쁜 놈들이라고 해도 오르그에게 당하고 있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며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의문에 대답해주는 대신, 직감이 따끔거리며 경고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보다 밝은 빛을 내는 물체가 팔십 이상.
그 전력을 분석한 리케가 담담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가 흑십자회와 정부의 유착관계를 너무 얕봤군요. 설마 방위군을 동원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전함급이 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