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66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66 >
죽여··· 죽여서··· 먹는다···
남을 부추기는 듯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한,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서늘하게 낮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낼름이는 그 목소리를 자세히 들으려고 잠시 멈춰 섰다.
그러자 개구리의 발 같은 손을 놓고 앞서 문 밖으로 걸어 나간 여자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바쁘게 손짓했다.
“아직도 눈이 빛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거니? 조명을 조금 어둡게 바꿀까?”
낼름이는 곧바로 눈을 좌우로 흔들어 여자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곤 심신이 완전히 지친 복역수마냥 발을 조금씩 끌며 여자의 뒤를 따랐다.
죽여라···
빛이 가득한 공간으로 나오자 그것이 경계라도 되는 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빠르게 사그라졌다.
나는 계속 그 목소리들에 대해 생각했지만 낼름이는 그것을 금세 잊었는지 여자를 따라 폴짝거리는 걸음으로 거대한 유리관 앞으로 다가섰다.
인간으로 치면 사오십 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듯한 관 속에는 푸른색 액체가 넘실거렸고, 그 사이에서 촉수들이 벽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낼름이는 자기 몸집만한 촉수들을 앞에 두고도 무섭지 않은지 유리관에 눈을 바싹 붙였다.
“벌써 들어가 있네요?”
“낼름이가 준비를 너무 늦게 해서 담당 선생님이 친구들 먼저 훈련을 진행하셨나보다. 낼름이는 저 친구들이 훈련하는 동안 좀 더 심화된 방식으로 훈련을 해볼까?”
“심화?”
“조금 어렵다는 말이야.”
여자는 내 앞에서 작게 윙크를 해보였다.
이윽고 낼름이는 여자의 인도에 따라 십자형태의 디딤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판 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낼름이는 원형판 위가 차갑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기에 그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 괴리감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한 점으로 모았다.
아, 이건 낼름이의 기억 속인 건가.
낼름이의 신체 일부를 먹고 얻게 된 것 같은데 다른 오르그들에게선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그렇다면 원래 내 몸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분명 죽은 것은 아닐 텐데.
죽었으면 내가 인간이었다가 오르그가 된 것처럼 또 다른 환생을 하든 아니면 완전히 의식이 사라지든 했을 테니까.
어쩌면 죽기 직전에 무의식의 영역 속으로 들어온 걸지도 모르지.
당장 정신을 차리면 나이트메어가 광선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자 이 버튼을 누르면 낼름이 앞에 여러 화면이 지나갈 거야. 낼름이는 그 중에서 내가 말하는 화면에 정신을 연결해야 해. 할 수 있겠니?”
“열심히 해볼게요!”
낼름이의 머리 위쪽에는 사각형의 금속판이 웅웅거리고 있었다.
여자가 어떤 버튼을 누르기 그곳에서 빛이 번쩍하고 튀어나와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였다.
순백으로 가득 찬 공간에는 여자가 말한 대로 흐릿하게 보이는 화면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그것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동 방향이 아주 정직하다는 정도였다.
낼름이의 시선은 그것들을 따라 쭉 움직였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낼름아. 숲 위쪽으로 높은 산이 있는 화면으로 들어가 볼까?”
“······.”
여자는 숲과 산이라는 유추해내기 쉬운 키워드를 말해주었지만 낼름이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화면들이 죄다 물감을 아무렇게나 문질러놓은 것처럼 지저분했기 때문이었다.
낼름이가 멍하니 화면들만 계속 바라보고 있자 여자는 바로 화면을 치워버렸다.
“무슨 문제가 있었구나? 뭐였니?”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조금 많이 흐릿했어여!”
“이런. 그렇구나.”
여자는 낼름이의 말을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은 곤란한 듯이 내뱉었지만 정작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낼름이는 혹시 여자가 실망했을까봐 눈치를 보았고, 여자는 그것을 깨닫고는 환하게 웃으며 녀석을 격려했다.
“화면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니 걱정할 필요 없단다. 하지만 이 이상의 훈련은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여자는 기계를 조작해 훈련실의 모든 불빛을 차단했다.
어두컴컴해진 가운데 복도에서 흘러든 빛이 이정표처럼 오롯하게 누워있었다.
먹물에 적셔지는 것처럼 시야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낼름이는 여자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는 것을 잊었는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허공을 가른 녀석의 손은 여자가 서있던 곳 바로 옆에 있던 기계 하나를 건드리고 말았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빛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웅?”
이번에는 단 하나의 화면이 낼름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시꺼멓게 칠해진 가운데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낼름이 자신이었다.
낼름이는 분명 여기 있는데 저 화면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혹시 다른 이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 건가?
지금 같은 공간 속에서 어둠 속의 낼름이를 보고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낼름이의 의식이 다이빙하듯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변으로 오색 창연한 빛들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마침내 도달한 곳에는 한 쌍의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낼름아?”
눈앞에는 이제 기다란 눈을 꼿꼿이 세운 채 허공을 주시하는 낼름이와 그 위를 덮은 여자의 그림자만 남았다.
여자는 낼름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앞서 나가던 몸을 돌려 낼름이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디는 중이었다.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아, 정말. 매번 답답하게 왜 이렇게 굼뜬 거야? 분명 24번이랑 같은 걸 먹였는데. 쯧.
짜증으로 가득 찬 그 목소리에 낼름이는 화들짝 놀랐다.
이 여자가 지금까지 해왔던 태도와 정반대되는 것이기에, 매우 당황한 것 같았다.
집중이 깨어지자 시야는 마구 일그러졌다.
“낼름아!”
다시 돌아온 시야에는 여자가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서있었다.
방금 속내를 엿보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여겨질 만큼 자애로운 표정이었다.
낼름이는 그것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동요를 드러냈다.
“방금했던 훈련이 너무 강렬했나? 오늘은 쉴까?”
파르르 떨리던 시선은 여자가 머리에 손을 얹자 빠르게 진정되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자 낼름이는 바짝 굳어있던 몸을 풀고 여자의 옆으로 섰다.
다만 겉으로만 따랐을 뿐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낼름이는 자신의 피부에 맞게 조성된 축축한 환경 속에서 안정을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한 번 연결된 정신은 녀석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여자와의 연결은 미모사 같은 식물을 멍하니 보고 있던 도중 급작스러운 방식으로 재개되었다.
***
여자는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좌우로 번져가던 시야가 또렷한 형체를 갖추자 그것의 모습이 확연하게 들어왔다.
메뚜기 머리에 가면라이더 같은 형태의 갑각을 가진 오르그가 그곳에 서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이 과거의 나이트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모습과 크기나 형태가 많이 다르지만 저 무기질적인 눈은 평범한 오르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는 유리창에 부착된 기계를 통해 녀석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낼름이는 여전히 정신 연결에 미숙해. 왜 당신과 이렇게 차이가 나지?”
“…(무엇을바라고그것을나에게묻는것인지모르겠다마지막까지실험을진행한것은당신들이었다)”
“24번. 당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어. 좀 더 발전 가능한 방향이 있다며 낼름이를 추천했었잖아!”
“…(어린생명체는진화가능성을더많이내포할수있다는의미로제안했을뿐이다나는최종적인결정에관여하지않았다)”
“이 실험에 희생된 아이들의 숫자가 몇인 줄 알고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해! 여기 당신이 남긴 연구제안서가 떡하니 있는데 발뺌할 셈이야?”
“…(모든연구에는희생이따른다그오차를줄이는것은내가아니라연구자인당신들이해야할일이다)”
“쯧. 그러면 지금 있는 자료를 전부 가이아에게 넘기고 조언을 구하는 건 어때.”
여자의 말에 나이트메어는 정말로 그렇게 할 거냐는 듯이 고개를 삐뚜름하게 눕혔다.
“그렇게 쳐다만 보지 말고 말을 하라고!”
“…(당신은지금가이아가그토록신봉했던연구의결과물을보고있다더설명이필요하지는않은것같다)”
“마치 당신은 신봉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얘기하네. 당신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이론에 기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않다진화입자는이론과결과모두완벽했지만그것이인간이라는종족이받아들이기쉽지않은방향성을가졌을뿐이다)”
“…(당신들은이론대로완벽하게만들어졌다고할지라도그결과는보이는것이상으로변수덩어리가될수있다는것을기억해야한다)”
“······그건 확실히 와 닿는 말이네. 에휴. 그러면 낼름이는 당신과 같은 케이스로 분류해야 하나?”
여자는 속으로 정말 귀찮게 되었다고 중얼거렸다.
나이트메어는 잠시 생각하더니 비쩍 마른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녀석을나와같은방에넣어보는것을추천한다)”
“낼름이를 당신한테?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게 있나?”
“…(정신의연결을인간의관점에서해석하고부여하려하기때문에실패하는것일수있다허락한다면내가다른시도를해보겠다)”
“흠.”
여자는 나이트메어가 혹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나 고민했지만 나도 읽을 수 없는 녀석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여자는 녀석의 제안을 허락했고 나이트메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연결이 끊겼다.
***
여자는 곧 돌아와 낼름이를 나이트메어의 방으로 데려갔다.
축축한 이끼와 식물로 가득했던 낼름이의 거주지와 다르게 그곳은 검은색과 흰색의 패턴으로 가득 차있었다.
거대한 구체에 손을 대고 뭔가를 하고 있던 나이트메어는 소심하게 몸을 움츠린 채 들어오는 낼름이를 슬쩍 본 뒤 사람처럼 손짓해 불렀다.
“…(13099번실험체의역할은막중하다따라서좀더강제적인시도를해볼필요가있다)”
“녜?”
“…(정신의상태는처음만났을때와별다를게없어보인다이것은실험에따른결과로보이지는않는다)”
“…(따라서이런추측이가능하다13099번실험체는그자신이성장을거부하는것이라고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죠?”
“…(13099번의나이는스물아홉이다진화입자가그에걸맞는정신을가지는것을거부했는가하면아니다)”
“…(진화에너지의유도에따른것이아니라면결국본인에의한것일가능성이크다지금확인해볼것은그부분이다)”
말을 마친 나이트메어는 손을 뻗어 낼름이의 두 눈 사이에 얹었다.
여자가 녀석을 진정시킬 때 했던 것과 같은 동작이지만 낼름이의 반응은 판이했다.
오히려 더 긴장한 듯 시야가 잔뜩 위축된 것이다.
나이트메어는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이 하고자 했던 것을 강행했다.
녀석의 손에서 번쩍이는 에너지가 튀어나오자 보랏빛의 우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그곳에는 낼름이가 무의식 속에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가득했고, 그것은 곧 홍수처럼 밀어닥쳤다.
작고 여린 팔이 점점 흐물거리는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
인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르그들을 빠르게 먹어치우는 모습.
온몸에 굵은 선들을 꽂고 비명을 지르던 순간의 모습까지.
잊어버리고자 했던 모든 삶의 과정들이 떠오르자 녀석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경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기억을 읽어가는 입장이었기에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 비명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이트메어는 오래된 앨범을 살피는 것처럼 차분하게 녀석의 과거를 들춰내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신적인 고통에 몸부림치던 녀석이 정신을 잃는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나이트메어와 낼름이의 정신이 연결된 것이었다.
“…(!)”
이 사태는 나이트메어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었는지 녀석의 당혹스러움이 낼름이의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흘러들었다.
낼름이는 경황 중에 나이트메어의 정신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나이트메어의 에너지가 그대로 역류해 그 자신을 완벽하게 얽어매었다.
에너지를 다루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영역이기에 그것을 침범 당하자 풀려버린 것이다.
거꾸로 뒤집힌 에너지 속에서 나이트메어는 낼름이와 같은 비명을 토해냈다.
키에에엑!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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