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7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7
3시간 전.
아데카 행성 북부. 섹터 미상.
특수전투여단 임시기지.
루카스는 평지와 구릉을 가득 메운 오르그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오르그들이 쳐들어오기 힘든 지형에 자리 잡고 진지를 세운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혹시 방랑 개체 중 군집을 이룬 게 아닌가 싶었지만 관측반이 ‘군단병’이라고 확인해주었다.
“빌어먹을!”
탕!
오르그들 중 독립성이 강하고 상위 개체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종족을 ‘방랑 개체’로 명명한다.
그 외의 오르그는 ‘정주 개체’로써 군집체라고도 불리며 강력한 모체인 ‘퀸’을 중심으로 거대한 무리를 이룬다.
방랑과 정주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다. 다수가 포진해 있을 경우 개체 간의 생김새가 똑같으면 정주 아니면 방랑이다.
일반적으로 정주 개체가 같은 생김새를 유지하는 것은 효율적인 지휘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마치 인간처럼 놈들은 지휘 개체가 있고 그에 따른 확고한 명령체계가 존재한다.
하위종은 상위종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는 방식이며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선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방랑 개체에 비해 현저히 약하지만 숫자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 몰려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숫자는?”
“근방에 모인 것만 6만에서 8만 사이로 판명됩니다. 특수 개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주공은 다른 곳이라는 말인가?”
“예. 아직까지 공격하지 않고 기회를 살피는 모습만 봐도 우리 쪽은 조공입니다.”
루카스는 화면을 열어 맵핑된 지도를 살폈다.
그의 손가락이 녹색으로 표시된 곳을 따라 올라가다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여기서 우리가 ‘그 놈’과 마주쳤었지.”
“아, 이블 원 말씀이시군요.”
같은 오르그는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정작 인간인 그들은 살려 보내준 네임드 개체.
네임드는 발견한 자들이 이름 붙이도록 되어있으므로 루카스는 놈에게 ‘Evil O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악마라는 뜻이다.
흔히 쓰는 데몬(Demon)보다 강하게 묘사할 때 쓰는 표현인데 그는 꼭 그 단어를 쓰고 싶었다.
본디 지옥의 악마라는 것들이 무작정 인간을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롭게 해주다 그 대가로 욕망을 철저히 비틀어 파멸시키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그는 철수하면서 본 놈의 식사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먹는 것 그 자체에 환희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 언뜻 경건해보이기까지 한 그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는 순간 놈이 자신과 같은 이성을 지녔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럴 리 없지만······ 놈이 우릴 보내준 것은 단순한 변덕,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기적의 산물일 터! 이곳에 온 뒤로 내 정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야?’
그는 대원들이 자신을 미쳤다고 여길까봐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가 놈의 이름을 이블 원이라 붙였을 때 그들도 납득하며 동의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시계는 자정이 넘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루카스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그는 언젠가 보았던 푸른 언덕에서 사랑하는 아내, 자식들과 누워있었다.
아내가 샌드위치와 주스가 담긴 바구니를 열어 아들 레질, 딸 나미라에게 나눠주었다.
“천천히 먹으렴.”
접시를 받은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더 많이 먹겠다며 싸운다.
아내는 웃으며 그걸 지켜보고 그는 딸의 머리 위에 묻은 낙엽 조각을 가만히 떼어냈다.
손에 잡힌 그것이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바람이 불었다.
레질의 손 위에 있던 샌드위치를 감싸고 있던 종이껍질이 날아가 풀밭 위에 내려앉았다. 그가 주우러 가려하자 아내가 붙잡았다.
“그냥 내버려둬요. 청소로봇이 치울 텐데, 뭘.”
“로봇에만 너무 의지하는 것도 문제야, 여보. 가까이에 있는 건 치워야지.”
아내가 놓아주자 그는 천천히 신발을 신고 껍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시 바람이 불어 그것을 좀 더 멀리 날려 보냈다. 그는 한숨을 쉬고 다시 걸었다.
마침내 발로 끝자락을 고정한 그는 허리를 구부렸다.
깔끔하게 접힌 그것을 잡는 순간, 종이는 한 자루 총으로 변모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묵직한 촉감에 그는 섬뜩함을 느꼈다.
“여보?”
아내의 부름에 그는 빠르게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뭐가 있긴 했다. 그게 그 자신의 가족이 아닌 거대한 신장을 지닌 무언가였을 뿐.
이제 그는 황량한 둔덕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찬란하게 빛나는 그것과 마주하고 있었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그것은 아주 천천히 모래바람 사이로 사라졌다.
그가 어떤 의문을 품기도 전에 총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로 흘러들었다.
‘총소리라니. 여긴 엘랑스라고. 말도 안 되지.’
그는 피식 웃었다.
바로 그 순간 강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렸다. 모래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헬멧이 코앞에 있었다.
“대령님!”
“뭐, 뭐야?”
“놈들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밖에서 대원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총을 쏴대는 소리가 그를 완전히 일깨웠다.
그는 황급히 총을 잡아채려다가 흠칫 총열에 박힌 이니셜을 보았다.
MP1121-PS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총이다. 문제는 그게 자신이 쓰던 게 아니라는 거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 총은 누구 거지?”
“예? 대령님 것이 망가져서 수리한다고 창고에서 가져오신 것 아닙니까?”
“난 이것을 가져온 적이 없어. 내가 강화 매그넘탄 쓰는 것 봤나?”
머틀 대신 부관이 된 에레야 소위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총을 살폈다.
애초에 그들 부대는 매그넘탄 자체를 생산하지 않는다. 구식일뿐더러 오르그 갑각에 제대로 타격을 주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총은 무려 강화 매그넘탄 전용이었다.
루카스는 꿈에서 나온 총이 갑자기 기존에 갖고 있던 총 대신 나타난 기현상을 겪었음에도 담담한 자신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설마 이게 그 네임드 때문인가?’
자신이 이름 붙이고도 그렇게 부르기 꺼려하는 그는 초조하게 총열을 잡아 엄지로 쓸어냈다.
꽝-!
그는 다시금 깨어났다.
미친 듯이 총을 갈기는 소리가 사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문을 쳐다보자 에레야가 박차고 들어왔다.
“대령님! 놈들이······ 깨어 계셨군요!”
루카스는 눈만 돌려 자신의 총을 보았다.
자신이 알던 이니셜이 맞다. 그는 바로 그것을 잡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에레야가 뒤에서 역시 존경할 만한 상사라고 내심 뿌듯해하는 것을 뒤로하고.
“포탑 가동해! 최대한 안쪽으로 끌어들여 싸운다!”
“놈들이 진지 벽 위로 올라오는 건 금방입니다!”
“특수 개체가 나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죽여 놔야 한다. 머틀 중위!”
그의 고함에 머틀이 돌아보았다.
꽤 수척해진 그의 얼굴에 루카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손을 뻗어 머틀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벽은 믿고 맡긴다. 함께 살아남자.”
“······예.”
루카스는 포탑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벽 위로 올라섰다. 대원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최소한의 저격만 하며 놈들을 끌어들이는 중이었다.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을 겪은 이들이지만 매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리적 작용이리라. 그들의 진지를 제외하고 죄다 시꺼멓게 변한 대지는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마침내 벽을 타고 가장 처음 올라온 오르그가 내지른 포효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루카스는 레이저 커터로 단숨에 놈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전원 발사-!”
와아아-!
*
투투투퉁-!
오르그 놈들은 정말로 쉴 새 없이 몰려왔다.
벌써 나흘이 흘렀고, 다시 새벽이 찾아왔다. 병사들은 절반이 넘게 죽거나 크게 다쳤고 나머지 반도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교대를 서가며 쪽잠을 자도 잠이 부족했다. 포탑 소리와 괴물들의 포효에 화들짝 놀라 깨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게 잠을 설친 이들 중 몇몇은 그 분노를 오르그들에게 풀다가 벽 너머로 끌려가기도 했다.
성난 멧돼지처럼 날뛰던 머틀도 겨우내 짜낸 체력으로 근근이 올라오는 적들을 사살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어제 저녁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놈들에게 다친 동료들을 넘겨줄 바에 그냥 전부 터트리고 산화합시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힘든 건 알겠지만 좀 더 냉정해지도록.”
“저는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합니다! 우리는 졌습니다. 탄을 생산할 자원도 다 떨어지고 장병들의 피로도가 너무 심각합니다. 갈 때 가더라도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게 인류에게 이롭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저놈들은 자기들이 얼마가 죽든 상관 안 해! 계속 뽑아낼 수 있으니까. 그보다 자네는 내일 진지가 함락될 것 같으면 뒤쪽 토굴로 미라, 핸더슨을 데리고 탈출하도록 해. 물자는 다 구비해놓았다.”
“대령님?”
“그 두 사람은 우리 부대······ 아니 사령부 휘하 장병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기술자지. 여기서 그들을 잃을 수는 없어. 토굴로 탈출해서 서쪽으로 쭉 가다보면 수송선 하나가 나올 거야.”
“대령님,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머틀의 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가 극도로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것을 외면하며 말을 이어갔다.
“남은 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수송선에는 비상 탈출 로켓이 작동할 연료만 남아있다. 지난 한 달 여간 미라, 핸더슨이 꾸준히 수리한 덕에 정확히 세 명만 탈출할 여유가 생겼다더군.”
“지금 저보고 동료들을 배신하라는 겁니까?”
“배신? 착각하지 마라! 우리는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자네들은 그 성과를 알리기 위해 기지로 돌아가는 거야.”
분을 이기지 못한 머틀이 루카스의 멱살을 그러쥐었다. 그는 거칠게 내쉰 숨으로 김이 서린 헬멧을 들이대며 윽박질렀다.
“그렇게 핑계대고 돌아가 봐야 뭐가 남습니까! 미라, 핸더슨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이게 중요한 일이라면 왜 대령 당신이 가지 않고 나한테 그 책임을 떠넘깁니까? 왜!”
“멍청한 자식. 수송선까지 가는 게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쉽지 않으니까 이러는 거다! 토굴은 끽 해봐야 1킬로미터 정도라고. 나머지는 산적해있는 괴물 놈들과 싸우면서 나아가야 해! 나보고 기술자 둘을 호위하라는 말이 잘도 나오는군!”
“······.”
루카스가 짓씹듯이 한 말에 머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그를 놓아주었다.
이 부대의 그 누가 되었든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루카스는 머틀 자신이 싸움을 포기하기도 전에 이렇게 될 거라고 확신한 눈빛이었다.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돌려봤겠지. 그리고 수송선에 가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가고 싶지만 그랬다간 대원들의 사기가 추락해 시간을 끌 미끼조차 되지 못할 것이기에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 분들께는,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작별인사를 담은 캡슐을 미라에게 전해두었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죽어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도록. 그렇게 된다면······ 루카스 대령은 조국과 인류를 위해, 아니 그냥 사랑한다고 전해줬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루카스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머틀은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 조용히 경례를 붙이곤 밖으로 나갔다.
퀙퀙!
“죽어라, 이 개자식들아. 죽엇!”
8시.
타이밍 좋게 잠시 물러나있던 오르그들이 몰려들었고, 최후의 항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