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71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71 >
반동이 그렇게까지 셌나 싶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이트메어의 분신이 합체하던 중에 위기를 느끼고 충격 입자를 있는 대로 압축해놓았던 것이다.
결국 내 다리는 날아갔지만 그 반동으로 순양함급보다 큰 이 함선은 반으로 쪼개진 뒤였다.
다리야 에너지를 소모해 복구하면 끝이었기에 나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만족했다.
나야 이게 충격입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보기에는 내가 발차기 한 방에 이만한 우주선을 날려버린 것처럼 보일 테니까.
나이트메어가 함선 안쪽에서 변태하고 있었던 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러나 나는 곧 인간들을 위압감을 심어주어 겁에 질리게 만든다는 게 꼭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장님! 여기 있는 인간들이 전부 도망가려 하고 있습니다!]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는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함선 하나가 냅다 줄행랑을 놓자 다른 함선들도 크게 동요했다.
포격이 듬성듬성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는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 같았다.
하나가 등을 돌리고, 둘이 그에 동조하자 칼 같던 규율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 그리고 나이트메어의 분신들과 싸우는 와중에도 유지되고 있던 함대의 진형은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붕괴를 맞이했다.
기함으로 보이는 전함은 끝까지 맞서 싸울 기색으로 앞으로 나왔지만 내가 부서진 함선의 잔해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움찔하더니 결국 등을 보였다.
그런데 저 녀석들 아직 갑판 위에 나이트메어가 올라타 있는데 그건 잊어버린 건가······?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저 상태로 웜홀로 들어가 버리면 나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만다.
웜홀을 지났을 때 나이트메어가 빠져나가버릴지도 모르니까.
나는 밀려오는 황당함을 억누르고 멀어지는 함선들을 황급히 쫓았다.
여차하면 함대와 같이 웜홀에 진입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지금 우주선의 상태는 어떻지? 당장 웜홀에 탈 수 있겠냐?]나는 리케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녀석에게선 아무것도 송신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결을 공유하고 있는 세라프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이블 원. 갑작스런 말이지만 리케는 여기에 없습니다.] [뭐?]우주선에 없으면 어디 있다는 거야?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가는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저 앞에서 도망가는 기함의 갑판에 로봇 하나가 올라타 있는 게 보였다.
다른 함선들이 다 도망가는 와중에 기함만 툭 하고 튀어나오니 기회다 싶어서 냅다 해킹하려고 달려든 모양이었다.
[미친놈아!]세라프가 모는 우주선이 따라붙고는 있었지만 상대의 공격을 경계할 수밖에 없기에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저 기함과 같이 리케 녀석을 보내버리고 싶은 유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생각하면 저대로 끌려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다.
기계에 무지한 오르그에게 빼앗기는 것과 인간 문명에 넘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 것이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으로 날아 고대의 우주선 위로 올라탔다.
[세라프. 날아오는 공격은 전부 내가 보호막으로 막을 테니 저 뒤쪽으로 우주선을 붙여라.] [*괜찮겠습니까? 상대는 기함이기 때문에 적들은 저희가 달라붙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방금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은, 엄폐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그런 걸 걱정할 시간에 가속이나 하도록.]나이트메어의 기생체와 분신들을 흡수하면서 얻은 테크들을 체화시키지는 못했지만 그게 어떤 영역에 있는지는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검둥이가 쓰던 입자의 [성질 변형]에 더불어 [결합]을 통한 재생산까지.
단순히 진화에너지의 영역에서만 머물러 있던 내 기술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줄 그 테크들은 지금까지 습득했던 테크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주변의 다른 입자들을 부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재생산할 수 있으니 녀석의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진화에너지도 자기가 원할 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나중에 그 테크들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는 가정 하에 더 이상 에너지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위 보호막에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쏟아 붓자 전함의 주포도 충분히 감당해 낼 정도의 내구력이 만들어졌다.
세라프의 말대로 고대의 우주선이 속력을 붙여 기함 근처로 따라붙자 앞서 나가던 함대의 호위함들이 황급히 선체를 돌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이쪽으로 향한 채 돌진해오는 폼이 육탄으로 돌격해서라도 내가 기함에 접근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속도를 더 붙여!]저 거대한 질량 덩어리가 와서 부딪히는 것 자체는 위협적인 일이지만 그 전에 충격을 줄여놓으면 그만이다.
나이트메어를 공격할 때 썼던 것처럼 에너지 덩어리를 원반 형태로 가다듬어 돌리자 허공에 거대한 원형 톱날이 생겨났다.
그것을 앞세워 계속 돌진하자 달려오던 호위함들이 급격하게 속도를 줄이며 멈칫거렸다.
아무리 기함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대로 개죽음 당할 짓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원반을 해체한 뒤 그 에너지를 그대로 뒤로 분사시켰다.
가속이 더 붙은 고대의 우주선은 지휘관의 독촉을 받았는지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호위함 사이를 빠르게 지나쳤다.
녀석들은 내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구 포탄을 날려 왔다.
금속으로 이뤄진 탄환은 우주선의 장갑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고 고열 덩어리인 빔 탄환은 내 보호막이 전부 흘려냈다.
잘 보면 보호막에 부딪혀 흘러나간 힘이 오히려 우주선의 가속을 붙여주는 꼴이었다.
[*앞으로 10초 뒤면 상대의 기함과 부딪칩니다.]리케가 뛰어내리면 우주선이 바로 그 위치로 날아갈 테니 충분히 이쪽의 갑판 위에 안착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이블 원, 웜홀이 가까이에 있습니다.]아까까지만 해도 멀리 보이던 웜홀은 어느새 코앞까지 와있었다.
거대한 힘이 앞서 나가던 함선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목격한 나는 더 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을 느꼈다.
리케도 그것을 알았는지 곧바로 기함을 해킹하던 것을 멈추고 잽싸게 이쪽으로 날아왔지만 이미 우주선은 웜홀의 영역에 들어간 후였다.
[*웜홀에 진입했습니다. 다들 충격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젠장, 결국 이렇게 되다니.]헨젤 성계로 오면서 몇 차례 웜홀을 지나치긴 했지만 함선 바깥에서 직접 느끼는 감각은 또 달랐다.
공간이동이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이 휙휙 바뀌는 거였다면 웜홀은 몸이 나선으로 접혔다가 뿅 하고 다시 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 접히는 순간이 굉장히 길다는 것이고, 웜홀 중심부로 갈수록 천천히 접혔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오면 다시 천천히 펴지는 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내가 사고치지 말랬지, 이 자식아!] [죄송합니닷!]리케의 코어를 붙들고 전류를 방출하자 녀석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나부꼈다.
이 방법은 세라프가 내게 알려준 것으로 연산회로의 일부만 태워버리면 복구하기 전까진 강제로 반쯤 멍청이가 되기 때문에 리케가 질색하는 고문이었다.
연산회로가 반쯤 불타서 맹하니 늘어진 녀석을 우주선 창고에 처박아둔 나는 수많은 행성들로 빛나는 거대한 성계와 마주했다.
[여긴 어디지.] [*오베린의 말에 따르면 그림 자치령의 본거지, 그레텔 성계라고 합니다.] [저 웜홀이 바로 본거지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본거지라고는 해도 다른 성계에 비해 훨씬 넓은 것 같으니 바로 인간들이 사는 곳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성계를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도 충분히 갖춰져 있을 겁니다.]세라프는 방금까지 상대하던 전력 이상의 군대가 몰려올 가능성을 시사했다.
도망치던 함대는 자신만만하게 방향을 선회하는 것으로 그게 사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제는 내 존재가 전혀 두렵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 때였다.
호위함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던 기함 위에서 갑자기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울끈불끈한 근육질의 몸에 문어괴물의 머리를 단 그것은 긴 송곳처럼 변한 손가락을 함선에 강하게 찔러 넣고는 그 안에서 화려한 견장을 달고 있는 인간 하나를 잡아챘다.
꿀꺽!
소리가 들렸다면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합체 및 변태를 마친 나이트메어의 분신1은 주저하지도 않고 곧바로 그 인간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
그 광경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나를 상대로 위풍당당하게 진형을 갖추던 함대는 곧바로 녀석을 향해 미친 듯이 주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분신1은 빨판으로 기함의 전면부를 둘러싼 큼직한 장갑을 잡더니 갓 태어난 아기를 들어 올리는 의사처럼 촉수를 번쩍 치켜들었다.
방패처럼 곧추세워진 그것에 주포가 내뿜는 굵은 빔 탄환이 쏟아졌다.
육체의 힘과 장갑의 방어력만으로 버티기에는 과할 수밖에 없는 화력의 집중이었기에 장갑은 금세 녹아내렸다.
그러나 분신1은 처음부터 버틸 생각이 없었는지 날듯이 움직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함의 중앙에 솟은 보조 포탑을 뜯어낸 녀석이 그것을 등 뒤로 넘기며 몸을 활처럼 팽팽하게 당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 지금 저걸 던지려는 건가?]금속 부위가 붉게 달아오른 끝에 원뿔형으로 변형되고 에너지가 그쪽으로 잔뜩 몰리는 것을 감지한 직감이 내 신경을 잡아당기며 강하게 경고했다.
나는 보호막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 정신 연결을 할 틈이 없었기에 낼름이가 녀석의 집중을 방해했지만 이미 모인 에너지는 흩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변태를 마친 나이트메어의 분신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기에 다수에게 정신 연결을 할 수 없는 낼름이의 효용성도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당장 낼름이와의 정신 연결로 에너지 사용을 방해받는 분신은 순수하게 팔 힘만 사용해 원뿔을 집어던졌다.
앗 하는 순간에 날아온 원뿔은 그대로 내 보호막과 충돌했다.
원뿔의 겉면이 보호막과 부딪혀 깨어지고 그 안에 있던 에너지는 밖으로 분출되어 보호막을 타고 흘렀다.
에너지를 내뿜는 변환입자가 달라붙자 진화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보호막이 결정화되어 모래알처럼 우수수 흩뿌려져 나갔다.
출력은 제대로 만든 것에 비하면 훨씬 부족했지만 안 그래도 포격을 받는 상황에서 보호막의 균형이 작게나마 무너진 것은 충격이 컸다.
어디선가 날아온 빔 탄환이 변환입자가 갉아먹은 부위를 찌르자 보호막은 접시에 금이 가듯 쩍쩍 갈라졌다.
나이트메어의 분신들은 그 장면을 보며 자신감이 붙었는지 각자 타고 있는 함선에서 같은 짓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들의 적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곧 혼란에서 벗어나 분노의 단계에 도달한 함선들의 집중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노리고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녀석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함선들이 완전히 나보다 나이트메어 녀석에 집중했다고 판단되는 순간, 나는 낼름이에게 내가 지정한 순번대로 정신을 연결할 것을 지시했다.
[왼쪽부터 2번, 3번, 4번 순이죠?] [6번부터는 다시 오른쪽으로 가면서다. 할 수 있겠지?] [녜!]낼름이는 부상 중에도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냈다.
나는 분신들이 에너지를 전부 모을 때까지 기다려 정신 연결을 시도했고, 그 뒤 냅다 입자광선포를 발사해 원뿔을 저격했다.
우주 공간에서 흩어지는 에너지가 제법 되었지만 정교한 조준이 뒷받침되자 광선은 사정없이 원뿔을 찢어발길 수 있었다.
원뿔에 담긴 입자는 생각 이상으로 다양했다.
따라서 입자광선포에 얻어맞은 원뿔은 각각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분신과 함께 터지는 원뿔이 있는가 하면 검은 입자처럼 그대로 주변에 있는 물체를 갉아먹는 것도 있었다.
번쩍-!
어느 쪽이든 얌전한 편은 아니었기에 폭발과 연기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수를 놓았다.
앞서 터지는 녀석들을 본 분신 몇몇은 곧장 원뿔을 던지고 피하려 했지만 세라프의 도움을 받아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내 입자광선포는 도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분신들은 나와 함선들의 협공에 그대로 일망타진 되었다.
그 사이 기함에 달라붙은 고대의 우주선에 뛰어오른 나는 마지막 남은 분신 녀석의 뒷덜미를 강하게 붙들었다.
폭발의 여파로 반쯤 일그러진 녀석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인간들과힘을합치다니나약한사고방식이다그런방식으론언젠가도태되기마련이다)”
[진 주제에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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