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74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74 >
에너지 중계기. 관측용 드론, 도로 등등.
내 입장에서 파괴해야 할 것은 아직 수도 없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의 도로야 당장 급한 게 아니긴 했다.
연구소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도시 중심부에 있던 탓에 인간들의 군대가 지상에서 영 힘을 못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노리려다 심각한 물적, 인적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앞의 두 개는 놈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노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므로 우선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류를 조작해 강제로 전자기파(EMP)를 발생시키자 공중을 날고 있던 드론 수십 대가 단숨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제법 정교하게 날아오던 미사일과 빔 형태의 포탄들이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은 내가 보호막에 써야 할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나는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입자광선포를 사용해 에너지 중계기들을 터트려 버렸다.
지상에서 나를 공격하던 전차들은 강력한 플라즈마 탄환을 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그게 중간에 끊어지니 순간적으로 바보가 되어버렸다.
괜히 정규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곧바로 무기체계를 정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전차들이었지만 그조차도 상당히 늦은 반응이었다.
내가 미리 퍼트려놓은 충격입자에 닿은 포탄들은 막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리고 공간장악능력에 붙잡힌 대기는 내 손짓에 따라 그 파동을 모조리 내가 서있는 곳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구구궁!
충격파에 당한 것은 저 멀리서 포탄을 발사한 전차들이 아니었다.
내 쪽으로 오는데 방해되는 건물들을 분해하며 빠르게 전진하던 전투 로봇들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어 심각한 파손을 겪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이 부숴냈던 건물의 잔해와 함께 튕겨져 날아가는 로봇들을 보고 있자니 아데카에서 짝퉁 이그드라실과 싸웠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리케의 로봇이 비슷하게 당했었지.
당시 리케가 조종하던 로봇은 2대였지만 지금은 수십 대라는 게 다른 점이다.
씨유웅!
지상 공격으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높이 솟구친 로켓들이 내 머리 위로 빠르게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내 몸에 닿기 전에 알아서 폭발했고, 그 잔해 속에서 별의별 화학물질이 구름처럼 피어났다.
물질에 닿은 갑각이 무르게 변하는 것으로 봐서는 예전에도 겪어봤었던 오르그들에게 효과적인 물질을 사용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약점도 포함해서 막을 수 있게 만든 갑각이라 완전히 녹이지는 못했지만.
[이 물질은 대체 뭐로 만드는데 갑각을 부수는 것으로 모자라 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는 거지?]어지간한 포탄에는 금도 안 갈 정도로 단단하고 탄력성이 있는 게 내 갑각이다.
그걸 이렇게 간단히 변형시키려면 특수한 물질이 들어갔을 터.
주요 물질 자체를 다윈사 계열 군수산업체에서 공급하다보니 리케조차 그 제작원리를 모르고 있었다.
[다윈사의 연구소에 쳐들어가지 않고서야 알아낼 방도가 없지요, 그곳에 가려면 여기서 다시 수백 광년 떨어진 성계로 이동해야 합니다.]인공지능 제우스를 비롯해 혁신적인 공학제품들을 만든 다윈사는 기밀 유지를 위해 대부분이 비밀에 싸여 있었다.
공장 하나조차 외부에서 침입하기 힘들게 하기 위해 관계자가 아니면 자신들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만들어놨다는 것이 리케의 설명이었다.
녀석이 아는 것도 연구소의 대략적인 위치일 뿐, 정확히 그곳에 어떤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꽁꽁 숨어있으면 야식은 절대 못 먹겠는데.] [예?]배달이 안 되니까······ 라는 뻘소리는 그냥 내 가슴 속에 묻어두었다.
이 세계는 로봇이 요리와 청소같은 집안일부터 서류작업까지 기계가 다 하는 세상이다.
배달 문화 자체가 없어진 시대에서 그것에 대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 물론 배달을 시키는 사람이 없다 뿐이지 배달 자체는 가능할 수 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허공에 피자, 아니 둥근 원판이 일곱 개나 떠있는 것처럼.
그건 당연히 장난감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무기였다.
그것도 나를 직접 타격하는 게 아닌 현재 리케가 진행하고 있는 해킹 작업을 노리는.
[이런. 놈들이 데이터를 강제로 지우려고 하는군요! 다윈 사에서 손을 썼나봅니다.] [이제 어느 정도 버틴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이 남은 거냐?]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탈출 준비만 하면 됩니다.]인간들은 뒤늦게 나와 리케의 목적을 깨닫고 방해하려 한 모양이지만 리케의 해킹실력이 녀석들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던 것 같다.
나는 재빨리 유적지를 빠져나오는 리케의 몸통을 붙잡고 유적지 건물이 잠겨있는 구덩이에서 몸을 빼냈다.
체감한 바로는 제법 후다닥 일을 끝낸 것 같은데 어느새 주위는 인간들의 군대로 새까맣게 뒤덮여있었다.
파괴된 건물들 너머로 지평선을 가득 메운 채 포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전차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위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비행선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상태였다.
거대한 방패를 세운 인간형 로봇들이 차근차근 전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짜로 악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쯤에서 냅다 도망가면 인간의 위대한 승리를 장식하는 찌질한 악역이 되는 것 같아서 좀 싫은데······.
정확히는 내가 ‘물러가주는’ 거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는 우주로 향하기 전에 보여주기 식의 퍼포먼스 하나를 시연하기로 했다.
그 방법은 리케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후후, 이러면 인간들은 앞으로도 대장님을 두려워하겠습니다.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군요.]***
마이크는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떠올려 비상 탈출선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꽤 오랫동안 방치된 기종이라 굳어있는 엔진을 풀어내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작업까지 해야 했는데, 결국 혼자서 다 해낸 것이다.
밀려오는 뿌듯함을 애써 감추고 조종석에 앉은 그는 화면을 조작해 탈출선을 지상으로 유도했다.
탈출선을 밀어내는 추진체가 레일 위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자 마이크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불안과 기대로 가득 찼다.
‘설마 별 일 아니었고 내가 호들갑을 떤 거면 어떡하지? 이걸 마음대로 움직였다고 강하게 처벌받으려나?’
‘아냐, 저 괴물은 딱 봐도 군대로 쉽게 막을 수 있는 쪽이 아니야. 확실해. 지금 싸우느라 바빠서 내가 탈출하는 걸 눈치 채지도 못하겠지.’
지금까지 일평생 이 행성에 머무르며 국가 정부가 던져주는 일과 여가생활을 누리며 살아온 그에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일탈이자 모험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봤던 외계괴물의 침공과 그에 따른 탈출은 대개 주인공이 겪는 일이 아니던가.
주인공이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나만 살아남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는 인구 양성 계획의 일환으로 유전자 결합이라는 인공적인 수단을 통해 태어났기에 부모의 얼굴도 모르며, 자신이 살던 행성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혼자서 탈출할 계획을 실행시킨 것이고 말이다.
퓨융-!
마침내 흙더미를 밖으로 밀치며 거대한 해치에서 튀어나온 탈출선은 오징어 같은 몸통을 빙글빙글 돌리며 공중으로 튀어나갔다.
진공 상태의 통로에서 벗어나는 충격으로 잠시 눈을 감았던 마이크는 전방, 측후방 카메라를 통해 비치는 바깥의 풍경을 응시했다.
“어?”
불타는 도심과 그 속에서 날뛰는 괴물, 그것과 대치하고 있는 군대가 있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무저갱과 같은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끝도 없이 펼쳐진 먹색의 안개 속에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탈출선 내부에 산소가 적은 것도 아닐 텐데.
그가 타고 있는 소형 우주선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지만 풍경은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시꺼먼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그는 전등으로 밝게 비춰지는 조종실 내부까지 어두워진 느낌을 받았다.
“후우, 후우.”
심장이 격하게 움직이고, 좌석의 가장자리를 붙든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그가 로봇들을 조종해 엔진 부품을 교체하고 재점검까지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길어봐야 30분이다.
그 사이 그저 조금 불타는 정도에 불과했던 도시가 이렇게 바뀐다고?
‘카메라가 맛이 갔나봐. 이것도 점검을 했어야 했는데.’
급기야 그는 현실을 외면하고 모든 것을 기계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은 꿈이고 현실의 자신은 소파 위에 드러누워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되뇌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강제로 다시 현실에 데려다놓은 것은 화면 바로 옆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방송용 음성이었다.
[함선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외부 장갑의 손상률이 3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엔진의 부식이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속도가 50퍼센트 이하로 감소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주변에 날아다니는 투사체의 목표가 될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약 10미터 이내로 접근한 투사체 8개가 공중에서 소멸했습니다.]높낮이가 거의 없는 그 음성에서 마이크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실제 풍경이라는 것을 다시금 자각했다.
함선이 파고든 이 검은 안개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식시켜버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충격도 느끼지 못했는데 장갑이 파손되고 있다거나 어딘가에서 발사된 투사체가 소멸된다거나 하는 것은 자연적인 상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주까지 남은 거리는? 갈 수 있나?] [남은 거리 약 22KM. 지금 속도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함선 자체를 부스터로 삼아 조종실을 사출시킨다면 가능합니다.]“하······.”
마이크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 탈출선에는 인간이 우주로 나가서 약 3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과 갖가지 생활품들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조종실만 셔틀 형식으로 사출시키게 되면 그 많은 물품들을 버리게 되는 셈이고, 그건 이후에 그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었다.
‘우주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됐다면 대체 어디까지 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보통 행성의 대기권은 올라갈수록 중력의 영향을 덜 받으니 그는 어쩌면 이 안개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넓은 영역에 펼쳐져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긴장으로 마비될 것 같은 손을 마구 비빈 마이크는 곧 결단을 내렸는지 화면에 떠오른 비상 탈출 버튼은 강하게 눌렀다.
퓻!
***
[저 조그만 함선은 뭔데 아까부터 나를 따라오는 거지?] [저희 쪽을 감시하거나 공격하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군요. 당장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부식 입자에 녹으면서도 꿋꿋이 따라오는 걸 보면 뭔가 해보려는 것 같은데.]그냥 지금 부숴버릴까.
나는 통통한 오징어에서 순식간에 말린 오징어가 되어가는 소형 함선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내가 입자의 성질을 부식으로 변경해 만든 입자들이 우주로 향하는 나를 따라 도시 중심부에서부터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솟구치는 와중이었다.
내가 만든 부식 입자는 검둥이의 장막처럼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식해서 삼켜버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냥 도시에 있었으면 입자들이 알아서 소멸할 테니 살 수 있었을 텐데 꾸역꾸역 따라오는 놈이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손을 안 써도 몇 초 뒤면 완전히 박살날 것 같기는 하지만 또 뭔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있었다.
안 그래도 우주에 거의 다 오기도 했겠다, 당장 부셔버릴 생각으로 입자들을 생산해내는 것을 중단하고 손을 치켜드는데 별안간 함선 앞부분이 벌컥 열리며 유리관 하나가 튀어나왔다.
뿅 하고 튀어나온 그 속에는 인간 하나가 의자에 앉아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때마침 내가 만든 도시의 참극이 뉴스를 통해 방영되는 중이었다.
-현재 도시는 정체불명의 오르그의 습격을 받아 크나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도시 중심부는 검은 안개로 휩싸여 있어 안쪽과 통신을 연결하지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이에 관해 군 관계자는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현 정부의 내각에서는 대원수는 이런 사태가 벌어질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며 책임론이 대두······.
화면과 나를 번갈아보던 인간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는지 픽 하고 기절해버렸다.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잖아? 그런데 왜 쫓아온 거지?
[세라프가 신호를 보내고 있군요, 대장님.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제법 기특한 짓을 했군. 인간들이 쫓아오기 전에 얼른 가자고.]그 사이 제어를 잃은 유리관은 그 인간을 태운 채 잠시 그 자리에 멈췄던 나를 지나쳐 우주 저 너머로 날아갔다.
누군가 멈춰주지 않는 한 영원히 우주를 떠돌게 될 운명을 떠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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