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8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8
버프를 받는 녀석들을 죽이려면 한 방에 치명상을 입혀야 했다.
가시촉수에 꿰뚫린 녀석들이 바로 상처를 메우고 달려오는 걸 보고 있자니 토하고 싶은 기분이다.
밑에서 난리치는 놈들 중에서 폭탄벌레를 짊어지고 있는 놈도 있어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거 갖고 올라오지 마!
나는 발견하는 족족 개틀링을 쏴서 벌레들을 폭파시켰다. 인간들도 내 의도를 알고 벌레만 보이면 집중사격으로 없애버렸다.
벌레가 놈들이 뭉쳐있는 데서 터지니 괜히 그 주변에 있던 애꿎은 놈들만 피해를 입었다.
안 그래도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데 회복까지 겹치니 답이 없다.
진짜 광역기가 절실하다. 개틀링 말고 저번에 본 대빵 장어가 쏘던 레이저 같은 것만 돼도 시원하게 지져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저 버프쟁이를 찢어버릴 초 장거리 저격 무기라던가. 아, 인간님들아 저격 총 없어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오징어의 버프는 나를 힘겹게 만들었을 뿐 끝끝내 코너에 밀어 넣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개조를 거친 내 개틀링포의 파괴력은 놈들의 회복력을 근소하게나마 능가해냈다. 높은 위치에서 휘두르는 촉수로 갑각을 찢어발기면 인간들이 사격으로 처리했다.
다들 여기 보세요! 인간과 괴물의 합심이 저 더러운 버프쟁이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벙커는 이미 놈들로 가득 차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슬아슬한 우위였지만 그 차이가 진지를 지켜냈다.
*
꿍!
꾸역꾸역 올라오는 녀석들로 시체의 산을 쌓고 있으니 오징어도 느끼는 바가 있었나 보다.
마침내 작은 개체 수천 마리를 모으더니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닌 놈을 탄생시켰다.
질량으로 눌러버리겠다는 건가? 코뿔소의 뿔 같은 충각을 앞세운 그것은 촉수를 이용해 지형을 무시하며 올라왔다.
너네는 내가 장님으로 보이냐?
나는 성벽을 만들고 남은 광물로 포탄을 만들어 그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내 팔 힘을 그대로 받고 날아간 포탄은 덩치만 컸지 상대적으로 갑각은 약한 놈의 머리와 다리를 그대로 뚫어버렸다.
덩치만 무식하게 키우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러나.
꾸어엉-
빌어먹게도 놈이 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널찍한 길이 생겨나고 말았다. ······엿 됐다.
케르르륵!
아니나 다를까, 오징어가 지시를 내리자 작은 개체들이 그 위로 올라타는 게 보였다.
쓰읍, 저거 어떻게 못하나? 이렇게 되면 좁은 길목을 차지한 이점이 완전히 사라지잖아. 섣부르게 놈을 넘어뜨린 내 어리석음이 원망스러워진다.
배드, 새드 엔딩이 벌써부터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간들이 뭔가를 가지고 달려왔다. 생긴 걸 봐서는 엔진 부품인 것 같은데 뭘 하려는 거지?
“내려가서 이걸 설치할 사람이 필요하다.”
“기폭 장치가 작동 안 하면 수동으로 터트려야 하니······.”
“제, 제가 하겠습니다!”
“넌 가만히 있어, 포드.”
“그래 포드 일병. 이건 숙련자가 가야 한다고.”
그들은 벽 위에 서서 옥신각신하다 그 중 한 명이 부품을 들고 밑으로 내려가려했다. 나는 그때 저 부품의 용도를 깨달았다.
아항, 폭발시켜서 저 길을 끊어버리자는 거구나?
나는 촉수를 뻗어 간신히 바닥에 착지한 인간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안타깝지만 당신들 계획은 취소야.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쒜엑- 쾅!
빼앗은 부품을 저 멀리 던지자 아래쪽에서 성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새로 생긴 길은 살짝 더 아래로 기울었을 뿐 멀쩡했다. 뒤에서 인간들이 웅성댔다.
당황하지 마라! 이것은 공명의 함정······ 아니 내 계획대로다! 호쾌하게 한 방으로 쓸어버릴 기회랑 수단이 없어서 답답했는데 저쪽이 그 중 하나를 알아서 만들어 줬잖아?
여기는 상당히 높은 지대다. 그리고 지금 바로 경사가 높은 길이 만들어졌고. 마지막으로 나는 조합을 통해 거대한 벙커를 만든 경력이 있다.
답은? 로드롤러다!
*
벙커가 해제되었다.
블록과 가시들이 분리되고 녹아내린 광물들을 전부 내 뱃속으로 향했다.
기존의 외벽도 모조리 부숴 삼켰다.
나는 천천히 인간들의 셔틀로 다가갔다. 크크, 요기 웬일로 딱 바퀴를 연결하기 좋은 구조물이 있네?
크웩웩! 웩!
꾸륵꾸륵-
세밀한 도안은 필요 없다. 저 징글징글한 새끼들을 깔아뭉갤 질량과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균형만 맞추면 되니까.
필요 없는 엔진 같은 건 다 버리고 내부 장갑과 연결부만 이용했다. 셔틀 두 개를 부숴서 재결합하니 거대한 바퀴를 장착한 기계가 완성되었다.
안에는 내가 잡고 밀 수 있는 투박한 손잡이가 있다. 전도율이 좋은 광물로 만든 그것에 에너지를 불어넣자 안쪽에 붙어있던 전등이 한꺼번에 빛을 발했다.
번쩍번쩍!
큐브를 찾았다. 디셉티콘, 집결하라!
겁나 무식하게도 무겁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뒤부터는 굴러가는 게 거의 자동이다. 솟아라 힘, 더블 썬 파워!
크가가가가-!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다. 몇몇 인간들이 총을 머리 위로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하하, 개판이네.
폭탄 때문에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고 올라오던 잔챙이 놈들이 마구 짓뭉개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콰직콰직! 콰콰콰콰!
나중에는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밖에 안 들리게 되었지만.
달리면서 아래를 보니 질척이는 체액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갑각이고 나발이고 전부 납작해진 채 땅에 박힌 모습을 보니 흐뭇해진다.
복수의 시간이다!
누구든 내 작은 보금자리를 뺏어 가면 X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아주 X되는 거야.
*
오르그가 떠났다.
벽 뒤에 몸을 박은 채 든든하게 버티던 놈이 사라지자 도리어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대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탄은 얼마나 남았나?”
“거의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각자 열 번 씩 돌리고 나면 천국으로 갈 티켓 한 장만 남겠군요.”
마지막 하나는 자살용이다. 그것을 돌려 말하는 막심의 말에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그래 자네들은 천국으로 가시게들. 내 끝은 이미 지옥으로 정해져 있으니.
“그런데 머틀 중위님을 보낸 걸 미리 말 안 해주신 건 너무했습니다, 대령님. 저희를 못 믿으셨던 겁니까?”
“음.”
이틀 전. 이블 원이 찾아온 날.
그날 정말 많은 대원들이 죽었다. 머틀 대신 부관을 맡고 있던 에레야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그의 부고를 접한 루카스는 머틀에게 신호를 보냈다.
머틀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라와 핸더슨을 데리고 진지를 빠져나갔다. 그 직후 이블 원이 벽 너머에서 날아들었다.
“그건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확신이 없었어.”
“하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냥 투정 한번 부려본 겁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대령님 탓해보겠습니까?”
나는 자네들이 모두 죽고 나면 이 기지와 함께 폭사할 예정이었네. 시체 하나라도 저 놈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말이야.
루카스는 마지막 두 마디를 삼키며 막심의 농담에 웃어주었다. 그들을 절망에 빠뜨렸던 상황은 저 아래에서 미친 듯이 굴러가는 바퀴가 해결해주고 있으니.
오르그들은 더 이상 그들을 노리기보다는 자기들의 지휘관을 향해 달려가는 바퀴를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는 중이었다.
멀리서 이블 원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것은 어딘가 들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한편, 머틀을 비롯하여 탈출한 세 명의 대원은 미친 듯이 습지를 질주했다.
이따금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갔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투타탕!
“니미럴,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오는군. 핸더슨 괜찮나! 일어설 수 있겠어?”
“예, 예! 돌아가면 의수부터 달긴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핫, 이 자식. 내가 아는 핸더슨보다 터프한데? 너 사실 오르그가 변장한 거지!”
“본국으로 돌아가면 테라포밍부터 할 테니까 각오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크흐흐.”
“미친 놈. 킥킥.”
물어뜯긴 절단면을 호쾌하게 의료용 장비로 찍어버리는 핸더슨을 보며 머틀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미라는 그런 두 사람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헉헉. 농담할, 헉, 시간 있으면 뛰기나 해요! 후우!”
“니예니예. 어서 갑시다, 아가씨!”
“한번만 더 그딴 식으로 부르면-! 꺄아악!”
“미라!”
조금 뒤쳐진 채 열심히 쫓아오던 미라는 별안간 늪 쪽에서 튀어나온 촉수에 묶인 채 끌려가기 시작했다. 머틀이 한 손으로 총을 쏘며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발작적으로 쫓으려는 그의 어깨를 핸더슨이 잡아챘다.
“미라는 죽었습니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요!”
“뭐, 뭐라고? 너!”
“정신 차리고 주변을 보십시오!”
핸더슨의 일갈에 머틀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렸다.
습지의 날카로운 수풀 사이에서 음산한 그림자들이 비치는 게 보였다. 오르그 무리가 당도한 것이다.
머틀은 이를 악물고 핸더슨의 등을 밀었다.
“엄호해줄 테니까 달려!”
“예!”
타타탕! 팅-!
“빌어먹을!”
마지막 남은 탄창이 떨어지자 머틀은 욕지거릴 내뱉었다. 호신용 권총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진짜 비상용으로 남겨야 한다.
‘티켓은 남겨야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그는 레이저 커터를 뽑았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성난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캬악!”
퍽!
기습해오는 오르그 하나를 턱부터 머리까지 꿰뚫자 시큰한 통증이 손목에 남았다. 머틀은 그걸 무시하며 핸더슨의 뒤를 따라 달렸다.
캭캭!
정면은 핸더슨이 총을 쏘며 뚫었고 나머지는 머틀이 때리고 자르며 막아냈다. 그렇게 장장 한 시간을 달리자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송선! 저, 저거 맞아?”
“네! 저흰 살았습니다!”
“씨, 씨팔!”
기체 옆으로 가자 포탑이 불을 뿜었다. 그들을 추격하던 오르그들이 순식간에 곤죽으로 변했다.
핸더슨은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수송선에 인증 카드를 갖다 대었다.
-삥! 사용자 인식. 확인되었습니다.
무사히 문이 열리고 계단이 내려오자 두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핸더슨은 그때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정들었던 동료들을 전부 버리고 온 것에 대한 자책일까. 머틀은 그 옆에서 끝끝내 눈물을 삼켰다.
“미, 미라가! 꺽꺽!”
“후우, 참아 이 자식아. 거길 빠져나오면서 각오했었잖아. 우리는 지금 임무 수행중이다! 알았지!”
핸더슨을 다독여 안으로 보낸 머틀은 계단에 발을 얹고 잠시 서있었다.
혹시 기다리면 미라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중위님?”
“······출발하자.”
탈출용 로켓의 정비를 마친 핸더슨이 나왔을 때 그는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살아남은 사람은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뒤에서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잠깐.”
“이제 가야 해요, 중위님!”
“아냐, 기다려.”
“머틀 중위님!”
핸더슨의 애타는 부름에도 머틀은 귀신들린 것처럼 수송선을 떠나 바위와 죽순같은 식물이 삐죽 솟은 곳으로 향했다.
방금 내가 뭘 들었지? 그건 분명히 사람이 내는 소리였어. 미라인가? 아니면 진지에 남아있던 대원들 중 생존자?
머틀은 조심스럽게 칼날을 가슴에 대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의 손에 식물의 몸통이 부서지며 뒤쪽의 공간이 드러났다.
“미라!”
거기에는 놀랍게도 오르그에게 끌려갔던 미라가 있었다. 그것도 살아 숨 쉬는 상태로!
*
오징어 녀석을 놓쳤다.
도망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 놓치고 말았다.
설마하니 이 많은 부하를 전부 버리고 달아날 줄은 상상도 못했지 뭐야.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포식할 수 있었다.
별 영양가는 없었지만 진화에너지는 충분히 모을 수 있었다.
에너지를 주는데 왜 영양가가 없냐고? 이놈들은 테크가 단순해서 진짜 쓸모가 없거든. 하물며 기본적인 육체 강화도 제한적이다.
애초에 이렇게 설계된 놈들 같은데 어떤 방식을 쓴 걸까?
의문은 많았지만 대답해줄 이가 없다.
나는 쓸모를 다한(제대로 박살난) 바퀴 기계를 버려두고 천천히 인간들의 진지로 복귀했다.
인간들 중 상당수는 남은 셔틀을 붙들고 낑낑대며 수리 중이었고, 나머지는 감회 깊은 표정으로 적들의 체액으로 가득한 벌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다가오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솔직히 나도 그래.
결과적으로는 같이 협력해서 싸우긴 했는데 그 와중에 저들의 셔틀을 두 개나 작살내고 힘들게 만든 외벽도 없애버렸다.
휑해진 그들의 기지를 보자니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일단 외벽이라도 만들어 줄까?
오징어가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잖아.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인간들 중 가장 지위가 높아보이던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당당히 걸어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의 귀감이었다.
······다리가 좀 후들거리는 걸 봐서 뒤의 말은 취소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