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83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83 >
어린 소녀의 작은 몸에서 수증기처럼 피어오른 푸른빛은 하늘로 높게 솟구쳤다.
그 빛은 누군가의 기원을 담은 것처럼, 천천히 피어오르다 어느 순간 확 하고 펼쳐져 거대한 방패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오르그라는 빗물에게서 인간들을 지키는 우산이라고 외쳤다.
보호막 위로 계속 떨어져 내려 흘러내리는 오르그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주 얇은 피막 같은 형태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모습이 인류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저 보호막이 유지되고 있는 사이에 우주선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런 희망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작은 마리아의 입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알리가 정확히 그녀만 찍고 있었기에 그 장면은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주륵.
작은 마리아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코와 입에서 흘러내린 선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육체는 외부의 충격에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지만 에너지의 무리한 사용으로 몸 안쪽에 있던 균열이 조금씩 커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피를 보는 일은 이미 익숙했다.
사람 구실을 거의 못할 때도 있었고, 완치는 불가능해도 증상을 완화하는 약의 개발 덕분에 몸이 조금 호전되었을 때도 심심찮게 토해내던 게 그녀 자신의 피였으니까.
오히려 최근 며칠 간 멀쩡하던 게 적응이 안 되던 차라 묘하게 그리운 느낌까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당장 오빠인 로저스부터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고, 그녀가 에너지로 보호하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도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지금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그로 인해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아, 천사님!”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마리아, 괜찮아? 때려줄까?”
마지막 로저스의 속삭임을 제외하면 거의 그녀를 숭배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다들 그녀의 숭고한 희생과 용기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마리아가 바라는 것은 그들의 감명도 숭배도 아니었다.
에너지 보호막 위로 오르그들이 달려들어 충격을 가할 때마다 날개가 마구 요동치며 그녀의 몸에서 에너지를 쑥쑥 뽑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중력을 유지하느라 입을 여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녀에게는 응원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차라리 나 혼자였으면 그냥 공격에 맞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했을 텐데.’
오빠 로저스로부터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들었던 그녀다.
외부의 충격을 받아야 건강해지고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방법도 그것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러면 그녀가 보호막 밖으로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싶겠지만 불행하게도 보호막은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만 펼칠 수 있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뭘 망설여, 마리아가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보호막 덕에 오르그들과 싸우는 데서 벗어나 여유가 생긴 마리아가 냅다 칼을 휘둘러 작은 마리아를 두들겨 패려 했지만 페퍼의 제지로 인해 무산되었다.
“잠깐 기다리게. 꼭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필요가 있나? 자네들이 에너지를 무기에 입힌 것처럼 작은 마리아에게 불어넣어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더 보기 좋을 것 같긴 하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마리아는 냉큼 칼을 치켜든 손을 거둬들였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보호막을 펼치고 있는 작은 마리아를 두들겨 패는 것보다는 에너지를 밀어 넣는 게 그녀를 돕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테니까.
마리아 파티가 4방위를 점하고 그 중앙에 선 작은 마리아에게 에너지를 쏘아 보내기 시작하자 보호막의 중심은 다섯이서 뿜어내는 빛으로 가득찼다.
조금씩 붕괴되던 마리아의 몸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으며 흔들리던 보호막도 겨우내 버텨냈다.
그 사이 사람들은 많이 대피해서 이젠 알리를 비롯한 몇 명만이 지상에 남아있었다.
“어서 우주선 안으로 가세요!”
“슬슬 나도 에너지가 딸리는데. 이 안에서는 오르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마리아······ 지금 에너지 보충이 문제냐?”
괴물들이 보호막 위를 완전히 뒤덮어 갉아대는 모습은 가히 종말의 일편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을 우주선에 전부 태웠다고 해도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바글대고 있는 것이다.
세라프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그들을 향해 경고를 보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넘버링 마운틴이 이쪽을 겨냥해 공격을 가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비하십시오!]“마운틴······?”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넘버링의 존재가 크게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넘버링 오르그들이 인간들을 절멸 직전으로 몰아넣은 것이 벌써 800년 전이고, 대전쟁에 대한 정보가 제우스에 의해 상당수 은폐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이드 같은 경우는 옛날에 이런 괴물이 있었다고 카더라 식으로 괴담으로 발전한 경우이며 대부분 우주 함대와의 싸움에서 활약한 마운틴 정도가 되면 위압감이 덜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인물 중 하나인 알리는 세라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카메라에 마리아 파티의 전투를 담기에 바빴지 저 위에서 날아오는 포격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빗겨 맞은 것만으로 보호막이 박살나며 아직 우주선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쓸려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꽈앙!
“켁!”
“아악!”
보호막이 깨진 충격으로 작은 마리아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고, 마리아 파티 사이에서도 두 발을 제대로 바닥에 딛고 서있는 사람이 없었다.
마운틴의 에너지포는 보호막을 깨뜨린 것으로 모자라 마리아 파티의 저항마저 가볍게 짓누른 것이었다.
뒤이어 일어난 불꽃과 먼지구름을 동반한 폭풍은 일대를 뒤덮었다.
기지를 구성하는 금속과 암석재질의 타일은 순식간에 녹아내렸으며 보호막과 층돌하며 흩어진 에너지에 얻어맞은 시설의 구조물들이 마구 터져나갔다.
타닥타닥.
그 아비규환 속에서 전 인류가 보는 방송을 송출하고 있던 알리가 살아남은 것은 거의 천운에 가까웠다.
파티의 탱커를 담당하고 있는 소진이 공교롭게 그의 앞에 있었기에, 그리고 마운틴을 상대하던 무시무시한 괴물이 에너지포의 위력을 크게 줄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리는 경황 중에도 삐걱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옥문이 열려있었다.
“허억허억.”
알리는 마른 침을 수도 없이 삼키며 두근대는 심장을 붙들었다.
마구 밀려드는 오르그들에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이 왜곡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거대한 괴수들이 수십이나 떠있는 모습은 저절로 기가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간들은 그것이 양산형 넘버링인 ‘티탄’이라는 사실을 몰랐음에도 놈들의 강함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헉!”
사람들은 그것들 중 하나가 허공에서 만들어낸 검은색 창을 광신도들에 의해 ‘신’이라 불리는 괴물에게 던졌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긴장했다.
그러나 그 신은 그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손짓 한 번으로 그 공격을 가볍게 빗겨 내버렸다.
콰아앙-!
“악!”
일어서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알리는 창이 기지 바로 옆 크레이터에 처박히면서 생겨난 충격파에 휩쓸려 나동그라졌다.
한차례 녹아내렸던 바닥인지라 곧 살점이 익고 어깨가 비틀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덮쳤다.
알리는 참을성 없이 비명을 질렀지만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저만한 공격을 가볍게 물리친 괴물의 위용에 경악했다.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큰 충격을 만들어내는 공격이었는데 저걸?’
‘창이 날아오는 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뒤로도 거대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쏘아졌지만 괴물은 손가락을 흔드는 것만으로 그 모든 것을 허공에 멈춰 세웠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창이 날아오면서 생긴 공간의 일그러짐마저 멈춰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창들이 일제히 거꾸로 뒤집혀 그것을 만들어낸 티탄들에게 되쏘아졌을 때, 사람들은 전율했다.
키에에엑!
캬악!
잽싸게 피해내는 티탄들도 있었지만 창들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끝까지 쫓아갔다.
단단해 보이는 보호막도, 튼튼한 갑각도 어느새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창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창은 본래의 주인들을 꿰뚫는 것으로 모자라서 크게 폭발하며 근방에 있던 오르그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티탄들은 몸이 꿰뚫려 추락하면서도 분하다는 듯이 괴성을 내질렀다.
인류가 그 울음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또 다른 공포가 그 빈자리를 메웠다.
무시무시해 보였던 티탄들이 사라진 곳에 에너지를 한계까지 끌어 모은 거대 괴수 둘이 떠있었던 것이다.
영상 너머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지만 사람들은 저 포격이 시작되면 나약한 인간들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순양함급 우주선? 특급 전함이라도 견디지 못할 게 뻔하다.
그걸 우주선의 조종사도 깨달았는지 급히 발진을 거듭해 창의 폭발이 만들어낸 포위망의 구멍으로 날아갔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아주 조금 늦었다.
우주선이 포격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마운틴과 웨일이 에너지를 쏘아 보냈기 때문이었다.
화상으로 신음하면서도 우주선의 화면을 통해 바깥의 모습을 찍던 알리는 순간 뿜어져 나온 빛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화면을 보고 있던 건 우주선 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눈이 잠시 먼 사람들은 요동치는 우주선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마구 굴러다녔다.
그나마 알리의 화면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유로웠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블 원! 무사합니까?] [네가 싣고 있는 인간들이나 걱정해라.]오르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깔끔한 음성.
그것도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대답하는 괴물의 소리에 인류는 온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방금 저 괴물이······ 사람의 말을 한 거야?’
‘사실은 로봇이고 사람이 조종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신이시여.’
빛의 세례가 걷히고 드러난 지상의 모습은 그 경악에 더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행성의 표면이 우주에서 보일 정도로 짓이겨지고 깨진 와중에 방패를 든 괴물이 그 중심에서 우뚝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방패는 마치 과부화 된 엔진처럼 달아올라 그 가장자리로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고, 갑주 같은 괴물의 갑각 역시 붉은 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사용을 마친 일회용 젓가락을 던지듯 방패를 내던진 괴물은 조용히 날아올라 우주선의 뒤를 따랐다.
마치 지켜주려는 것처럼 마운틴과 웨일이 있는 방향에 선 괴물은 대기권을 완전히 돌파할 때까지 그 위치를 고수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을 수차례 맞이한 인류는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
[발할라의 출력 한계를 알 수 있었던 건 좋지만 좀 아까운데.] [순간적으로 대장님과 저희의 통신 채널이 끊길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에 의한 충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요. 저는 연산회로가 불타서 정신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요.] [점심은 안에서 먹고 빨리 발할라나 하나 더 만들어라.]나는 고대의 우주선 위에 걸터앉아 당황한 것처럼 멈칫거리는 군단 놈들을 지긋이 응시했다.
판단을 세뇌된 본능에만 맡기는 잔챙이들은 여전히 추격해오고 있었지만 지휘관이나 네임드 개체들은 여전히 기지가 있던 행성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저 녀석들도 좀 당황한 것 같지?] [있는 힘을 다해서 명치를 후려 갈겼는데 상대가 옷 속에서 철판을 꺼낸 느낌일 것 같군요.] [철판 정도는 콧바람으로 찢어버리는 놈들이지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