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84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84 >
넘버링들이 상당히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염소 대가리나 나이트메어의 경우만 봐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으니까.
저번에 보았던 낼름이의 기억에 따르자면 오르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고 오히려 고대의 오르그들이 지능이 낮으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그 지능에 따른 판단 능력이 현격하게 저하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
내가 예상치 못한 능력을 발휘해 녀석들의 일격을 손쉽게 막아냈다고 해도 저렇게 당황할 리가 없다.
보통의 경우에는 놀랐을 수야 있겠지만 더 많은 전력을 동원해 나를 처치하려 들었겠지.
[수상하군.] [무엇이 말입니까?] [저 녀석들, 지금 누군가의 지시에만 따라서 움직이고 있어. 넘버링에게 일방적인 복종을 얻어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퀸인가?] […(그건아니다)] [워, 씨. 깜짝이야.]나와 리케, 세라프만 공유하는 대화 채널에서 불쑥 튀어나온 불청객의 메시지를 받은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그 누군가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있었지만 예상외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낼름이가 정신 연결로 붙잡고 있을 텐데 어떻게 능력을 쓰는 거지?] […(그낼름이라는생명체가네명령으로인해다른개체와정신을연결했다는사실을잊고있는것같다)] [소리로 들었을 때는 못 느꼈는데 글자로 읽으니 네 녀석이 말하는 방식, 굉장히 불편하네.] […(지금하고있던이야기의요점은그게아니었다고생각한다)]나이트메어는 불쾌하다는 듯 신경질적인 파장을 내보내면서도 연결을 끊지는 않았다.
낼름이가 하이드의 정신을 붙잡고 있는 사이에 속박에서 벗어난 듯한데, 왜 지금까지 도망치거나 이쪽의 일을 방해하지 않은 걸까?
세라프로부터 긴급 경보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도 철창 안에 얌전히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나저나 낼름이는 어떻게 됐기에 이 녀석이 이 채널에 들어온 거지.
설마······?
[…(네가걱정하는그생명체는다른개체와의정신연결에서에너지를과다하게사용했다)] [죽은 건가?] […(그생명체는혹독한환경에서도충분히적응할수있게끈질긴생명력을가지도록진화했다그저에너지를아끼기위해강제적인수면에들어갔을뿐이다)] [그러면 너는 왜 가만히 있는 거냐. 철창 안이 마음에 들어서는 아닐 테고. 군단이랑 적대하는 것도 아닐 테니 웜홀을 통해서 충분히 아데카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저런나약한인간들과어울려지내다보니뇌가딱딱하게변한게틀림없다내가왜고향바깥을떠돌게되었는지떠올려보면답이나올것이다)]나이트메어의 대답에 내 머릿속에 흘려보냈던 기억이 되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루카스 그 아저씨를 쫓고 있었지.
내가 그 인간과 알고 있는 듯하니 이쪽과 같이 행동하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나는 군단의 주의를 인간들에게 돌려놓고 아데카로 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나나 여기 로저스 녀석을 따라다녀 봐야 네가 원하는 인간을 찾는 건 불가능할 걸.] […(너는지금착각을하고있다나는이미그인간에대한것을포기한상태다)] [뭐?]그러면 대체 왜 나를 따라다니려는 거지?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나이트메어는 굳이 나를 이해시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녀석은 그 주제에 대해서 더 말하지 않고 자신이 이 채널에 끼어들게 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되돌렸다.
[…(이시점에서네가명심해야할것은우리같은오르그들에게숫자를붙이고군단과방랑이라는기준을세워나눈것이인간들이라는사실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군단 놈들이 퀸의 명령에 복종하는 건 사실 아닌가?] […(오르그들은애초에그런방식으로설계되지않았다본래군단이라는이름은오르그전체를뜻하는단어였다)]나이트메어는 군단과 방랑 개체를 나누게 된 것은 대전쟁 이후라고 말했다.
인간들이 극적으로 승리하여 오르그들이 와해된 이후에 여러 성계로 숨어든 군단의 잔당을 처치하던 와중 생존 방식과 행동 패턴이 다른 것으로 분류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퀸은 오르그의 탄생에 깊은 관여를 했지만 초창기의 오르그들은 강한 통제를 받는 집단이 아니었다.
동족끼리 싸우거나 잡아먹기도 했으며 그렇게 해서 강해진 개체들이 넘버링으로 꼽히게 되었을 뿐이다.
인간들은 오르그들이 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인간 세계를 침공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한번 태동한 오르그의 무리가 세력을 불려가다 인간들과 마주쳤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퀸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오르그들을 뽑아내 숫자를 늘리고 계획적으로 인류를 말살하려 든 전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이트메어는 그것이 순전히 퀸의 독단이라고 주장했다.
[…(퀸과뜻을함께한초창기오르그들이있으나그들조차완전한복종을맹세한것은아니었다)]결국 녀석의 말은 넘버링은 군단이나 방랑으로 나뉘지도 않으며 어단가에 매인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놈들이 저렇게 멈춰있는 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라기보다는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왜 멈춘 거지?] […(인간들은문제가생기면모여서회의를하곤한다)] [저놈들이 지금 회의를 하고 있다고?]우주에 둥둥 떠 있던 게 서로 대화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니.
나는 또 나를 처치하라는 명령에 실패해서 혹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혼란에 빠진 줄 알았더니 실상은 크게 김이 새는 이유였다.
하긴 에너지가 넘쳐나는 놈들이 고작 포격 한 방 쏜 걸 막았다고 포기할 리가 없지.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조금 있으면 웜홀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오르그들을 데리고 통과하려 한다면 인류 측에서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글쎄. 거부만 하지는 않을 거다.] [*······뭔가 꾸미고 있었습니까.]나와 리케가 짠 계획을 모르고 있던 세라프는 조금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자니 내 계획에 말려드는 꼴이고 그렇다고 멈추거나 되돌아가자니 사방이 지뢰밭이다.
인간들을 오르그의 손아귀에서 탈출시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녀석으로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녀석이 말없이 엔진의 회전 속도를 줄여가며 웜홀에 접근했을 때.
빛을 빨아들이던 거대한 구멍 속에서 일단의 함대가 튀어나왔다.
구축함이 한 대, 두 대······.
잠시 후 구축함만 수천 대가 넘는 대함대가 그 진용을 드러내자 안에서 환호하는 인간들로 인해 우주선이 작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는 함선들을 보며 나는 괜시리 턱을 긁었다.
[계획대로 되기는 했는데 너무 잘 풀린 거 아닌가? 이 정도면 방어가 아니라 작정하고 싸우러 나온 느낌인데. 설마 나랑 싸우려고 온 건 아니겠지.] [흠. 아무래도 대장님까지 상대할 것을 가정한 듯한데요. 지금 제가 확인한 전함만 70대가 넘었습니다.]보통 전함이 함대의 최종 전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70대는 일개 자치령 수준을 초과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심지어 내가 목표로 하는 하인리히는 아직 등장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함대는 진형을 갖추기 무섭게 일제 사격을 통해 성계 외곽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보곤 지금까지 함선을 조금 얕잡아보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가 티탄들의 포위를 돌파해 로저스 일행이 있던 행성까지 가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수백만 정도를 죽였는데 방금 인간들은 단 1초 만에 백만 단위의 오르그들을 증발시켜버렸다.
[왜 인간들의 교전 수칙이 우주 전투에 맞춰져 있는지 잘 알 것 같다.] [인간의 함대는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지요. 특히 특수 에너지를 쓰지 못하는 개체들을 상대로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가 올라탄 우주선 뒤로 빽빽하게 늘어서 있던 오르그들이 어느 순간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미친 듯이 돌격해오던 오르그들이 한데 뭉치고 있었다.
[포격을 막아내기 위해 진화를 하려는 모양인데?]아데카에서 녀석들과 공성전을 벌였을 때도 군단 놈들이 내 쉘터와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잡아먹으며 진화를 한 전례가 있다.
저 많은 함선들이 쏘는 포격을 뚫고 전진하자면 피해가 너무 막심할 것 같으니 그때처럼 진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양이었다.
보통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진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해주는 게 순리인데.
여기 인간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나 보다.
[인류 함대가 돌격해옵니다!] [결단력 한 번 끝내주는군. 하인리히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전진! 정면의 함포는 포격을 지속하면서 전속 항해하라!”
“놈들이 변태를 마치기 전에 깨부숴라!”
부우우웅-!
구축함들의 엔진이 고속회전을 거듭하자 묵직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던 함대는 초승달 모양을 그리며 수십억에 달하는 오르그들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죽이고 또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었지만 지휘관들은 지휘부의 판단과 자신들 함선의 기량을 믿으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 놈들과 가까이 붙더라도 우리 함선은 지원군이 적들을 물리쳐줄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마르코 12호, 전진!”
“진형을 유지해! 우리는 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업적과 찬란한 번영을 구가할 수 있게 해준 기술력을 믿었다.
또한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총사령부가 믿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상한 에너지를 다루는 놈들을 저 괴물이 막아준다면 승산이 있다.’
‘이블 원이라고 했나. 어디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승리를 외쳐보자고.’
올림포스의 함대가 패배한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방어 체계가 보랏빛 에너지를 사용하는 네임드 오르그들에 의해 손쉽게 뚫렸기 때문이었다.
신기술인 플라즈마 쉴드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그들이 올림포스를 넘어 다른 성계까지 침략해 들어오자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운석 충돌까지 막아낼 수 있는 특급 전함이 괴물 단 네 마리에 의해 침몰하는 광경이 영상에 담겨 전송되었으니까.
하지만 저 이블 원이라는 괴수가 그런 괴물들을 개미처럼 밟아 죽이는 힘을 가지고 인간들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인간들은 승리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블 원이 그 이상한 괴물들만 상대해주면.
아니, 그 중 절반이라도 막아주면 남은 괴물들은 원거리 포격으로 밀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다 쓸어버렷!”
투투투퉁!
인간처럼 말을 하고 사고를 하며 심지어 인간에게 우호적인 오르그라니.
물론 그레텔 성계의 도시를 침공한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저기 날아오고 있는 우주선만 넘어가지 못하게 해놓으면 그 우주선 안의 인간들을 지키는 이블 원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저 우주선을 군단 오르그들 쪽으로 밀어내면 저 무지막지한 괴물을 강제로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도 가능할 터.
실제로 함대 지휘부 인사들은 우주선이 함대의 진형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합류하지 못한 우주선은 빽빽하게 늘어선 함선들 사이를 감히 통과할 수 없었기에 웜홀로 접근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듯 물러났다.
[여기에 시민들이 타고 있습니다! 왜 통과할 수 없다는 겁니까!] [지금은 오르그들과의 중요한 전투 중입니다. 당신들의 함선을 통과시키기 위한 조금의 진형 변경도 허가되지 않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 조금 비켜주는 게······!] [저희가 엄호하고 있으니 바깥쪽으로 돌아서 대피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연결은 마지막 통보를 끝으로 일방적으로 끊겼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쯤 해서 알아듣겠지.
곧 함선을 물려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저 치열한 전장으로 쫓겨 가리라.
그렇게 생각한 지휘부였으나 전황은 곧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이블 원이 함선을 버리고 이쪽으로 돌격해 옵니다!] [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