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89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89 >
[넘버링······ 은 아닌 것 같은데.]800년 전의 대전쟁 당시에 소멸한 개체를 제외하면 인류 측에서 확보한 넘버링에 대한 정보는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또한 리케의 서버에 마음대로 접촉할 수 있기에 설령 잊었다고 해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저 멀리 보이는 괴물과 비슷하게나마 묘사된 존재는 없었다.
청소기마냥 오르그들만 쏙쏙 빨아들여 지하로 끌고 내려가는 녀석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았겠지.
고대의 인류는 군단에게 철저히 밀리는 상태였다고 하니 지금의 나처럼 광신적으로 추종하는 인간들이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다.
[정보가 없다는 건, 저 녀석이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말인데.]갑자기 허공을 뚫고 나와 열심히 포자를 퍼뜨리며 영역을 넓히던 군단 오르그들을 입자 단위로 잘게 부순 뒤 빨아들이는 모습은 나조차도 순간 경계심이 강하게 일 정도였다.
행동 원리는 단순히 오르그들을 발견하면 다가가 이상한 느낌의 파장을 내뿜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단단하기 짝이 없는 오르그의 육체가 분쇄되었다.
나이트메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게 뭔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확실히 표출했다.
이런 사태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당연히 그 원흉으로 추정되는 저 존재도 본 적이 없겠지.
테티스의 위치도 모르는 것까지 더하면 사실상 녀석이 아는 것에 중요한 게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역할이 스피드 뭐시기건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낼름이가 없으면 녀석이 작정하고 도망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워서 내버려두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즉에 철창행이다.
[어떻게 딱 오르그들만 분해시킬 수 있는 거지? 네가 가서 한 번 실험해봐라.] […(?!)]내가 코끼리 코 같은 촉수를 부지런히 놀리며 한 때 오르그였던 입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괴물을 가리키자 2등신 나이트메어는 진짜냐고 묻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야 녀석이 기생체를 만들어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린 지시였지만 녀석은 그것이 하등 쓸모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해할수없다내기생체로는정확한관측이불가능-0] [닥치고 빨리 기생체나 만들어라. 옆에서 가만히 스카우터나 하면서 농땡이 피우는 게 꼴 뵈기 싫어서 그런 거니. 아니면 네가 직접 갈래?] […(최선을다해서결과를내보도록하겠다)]반항하면 저쪽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내 으름장에 밀린 나이트메어는 그 작은 몸에서 꾸역꾸역 에너지를 뽑아 기생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놈을 완전히 제압할 수는 없어도 순간적으로 묶어서 날리는 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고분고분해진 기색이었다.
지렁이 같은 형태가 녀석의 머리통 근처에서 자라나는 걸 보고 있던 나는 지금까지 궁금하게 여겼던 걸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떻게 해도 기생체를 만들 수 없는데 이건 무슨 이유 때문이지?]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물음은 아니었다.
굳이 나이트메어의 테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넘버링들을 쓰러뜨리고 그 테크를 흡수할 때마다 일부만 흡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물을 찾기 위해 도시를 습격할 때 나이트메어의 테크를 흡수했었는데 그 때 느꼈던 위화감은 하이드를 해치우고 나서 확실하게 느껴졌다.
너무 상위 테크라 그런가 싶다가도 지금까지는 하위 테크가 없어도 잘만 흡수한 상위 테크를 써왔던 기억이 있다.
[…(역량의한계치에도달하면그렇게된다오르그의육체에도받아들일수있는데이터에한계가있기때문이다)]나이트메어는 꾸밈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육체가 되었든 모든 테크, 가능성을 다룰 수는 없다고.
육체를 구성하는 건 세포이며 그 안의 신체를 구성하는 정보가 담기는데 현재 내가 흡수한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서 포화상태라는 말이었다.
괜히 넘버링 오르그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최상위 테크를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닌 듯했다.
물론 진화에너지의 세뇌로 그렇게 된 까닭도 있겠지만 나처럼 마구잡이로 흡수하다간 포화되는 걸 우려해서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우려조차 진화에너지가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포화상태면 아예 흡수자체가 안돼야 정상 아닌가?] […(모든데이터는유기적으로연계되어있다네가지금까지흡수했던데이터에서또다른가능성이나올수있는것이다)]요컨대 내가 테크를 흡수를 했는데 이미 포화상태라 받아들일 수 없으니 기존에 있던 하위 테크들이 결합해 거기에 대응한 것이었다.
내가 흡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능력들은 지금까지 흡수하지 못한 하위 테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내가 테크를 분해하고 결합해서 새로운 테크를 만들어내던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과연.]깔끔하게 설명을 마친 나이트메어는 다수 생산된 기생체들을 조종해 군단에 침투시켰다.
이미 태반이 분해되어 저 괴물에게 빨려 들어간 뒤였지만 부화장을 통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개체들이 있어 기생체들이 들어갈 만한 숫자는 넘치도록 있었다.
나이트메어의 기생체들은 숙주의 몸을 장악하는 즉시 근처의 잔챙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너지를 마구 축적해 몸집을 불리자 금세 네임드급 오르그로 변모하는 모습이었다.
괴물은 녀석들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는지 기이하게 뒤틀린 나무처럼 생긴 거대한 몸통 한가운데에 박힌 붉은 눈을 움직였다.
[바로 들통 났군. 보스 쿠파급 정도가 아니면 저래도 한 방일 것 같은데.] […(군단의가능성을얕보지않는게좋다단순한데이터를주입해생산한하급병사라도그이상의진화를꾀할가능성은충분하다)] [쉽게 풀어서 말해.] […(뭉치면활용가능성이높아진다는뜻이다)]그 뒤로 펼쳐진 광경은 한창 애니메이션이 유행할 당시에 봤던 합체 로봇이 나오는 만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네임드급 들이 각자 하나씩 특정한 형태로 변태하여 결합된 것이다.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변태한 그것들은 괴물이 내뿜는 파장에 1초 만에 부서지는 게 있는가 하면 3초까지 버티는 것도 있었다.
녀석들의 몸통 역할을 하는 기생체는 빠르게 물러나며 계속 동료 기생체들을 끌어들여 실험을 진행했다.
아무래도 몸통 녀석이 동료들이 분해되기까지의 데이터를 흡수해 저장하는 것 같았다.
[…(당장파악되는정보는진화에너지에대응하는입자를우선적으로분해시킨다는것이다)]기생체들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가져온 나이트메어의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오르그는 전부 진화에너지를 갖고 있으니 그냥 말살되는 게 아닌가?
[그럼 식물은? 저것들도 일단은 진화에너지를 빨아들이고는 있지 않나?]식물들은 괴물의 파장에 닿아도 멀쩡했다.
그러자 나이트메어는 그냥 대응만 한다고 분해시키는 게 아니라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동물만이 가지는 특징이라던가.
[결국 이 행성에 살아서 움직이는 건 다 없애는 것이라는 말인데······ 진화에너지로 밀어낼 수는 없나?]내 물음에 나이트메어는 에너지를 뭉쳐 날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파장에 닿은 에너지 탄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고대의 우주선이 에너지 봉인 기능을 작동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 미친놈아!]나이트메어의 공격으로 괴물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린 것을 확인한 즉시 나는 녀석을 걷어차고 공간이동 능력을 발동시켰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있던 공간에 나타나 주변을 파장으로 뒤덮는 녀석을 보니 정말 간발의 차였구나 싶었다.
나이트메어 녀석은 그 와중에 기생체를 방패로 삼아 무사히 도주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색의변화는없는것으로보인다흡수한에너지를능력의발현에사용했거나아니면다른곳으로전이시켰을가능성이높다)] [아무래도 저만한 능력이니 사용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겠지. 대체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싸워서는 안 되겠어.]공간이동을 쓰기 전에 간섭력으로 강화한 충격 입자를 남겨두고 왔는데도 그것조차 분해시킨 듯했다.
충격 입자는 기존의 입자의 성질을 변형시킨 것임에도 통하지 않았다는 건 나이트메어가 말한 특정한 조건에 동물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조건도 들어가 있음을 암시했다.
나를 놓친 괴물이 천천히 머리를 움직이고 있는 걸 높은 상공에서 관찰하던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로저스네 여동생 녀석이 저 파장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작은 마리아의 날개는 진화에너지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히 소멸되겠지.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은 결정화 기술로 만들어진 진화에너지와는 거리가 먼 입자로 구성되어있다.
능력의 발현 자체가 신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진화에너지에 대응한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날개만 사라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작은 마리아 녀석이 그때도 초능력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그게왜궁금한건지이해할수없다인간의힘은저존재에비하면한없이약하다)]나이트메어의 말대로 작은 마리아의 능력이 그대로 존재한다고 해도 당장 넘버링급 괴물에게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저 정도 되는 녀석이면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도 작은 마리아를 땅 속 깊숙이 처박아버릴 수 있을 테니까.
[그냥 단순한 의문이다.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나는 그쯤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발할라를 동원해 한 번 싸워볼까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보금자리에 놓고 온 참이었다.
리케 녀석이 급하게 하느라 개량을 충분하게 하지 못했다며 조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나이트메어에게 기생체를 더 뽑아서 괴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감시하도록 지시한 나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만약 이 근방을 다 둘러보고도 다른 넘버링이 없으면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리라.
어차피 저 괴물딱지 때문에 오지도 않을 것 같지만.
***
한편 그 시각.
작은 마리아는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을 폴짝폴짝 뛰어 거대한 탑처럼 솟아있는 돌산을 올랐다.
무언가에 깔린 것처럼 여기저기 부서진 모양이었지만 거대한 계단이 산 중턱에 있는 동굴까지 나있어 그녀로 하여금 마치 유적지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언니, 오빠들에게 들었던 것보다 더 웅장하네. 역시 직접 보는 건 다른가봐.’
그녀의 키보다 네 배는 커 보이는 포탑의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있고 그 위로 시꺼멓게 굳은 뼈다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동굴 근처에 다다라 아래쪽을 쭉 훑어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분명 마리 언니가 떠날 때 포탑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땅 속에 들어가 있나?’
원래 포탑들은 평소에는 딱 깊숙이 박혀 있다가 침입자가 다가오면 튀어나와 공격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포탑이 들어가 있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땅이랑 완전히 합체를 할 수 있지 않는 한 어떻게든 작은 틈이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작은 마리아는 이내 몸을 돌려 성장기 때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작은 발을 열심히 놀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블 원은 선언했던 대로 이곳에 도착하기 무섭게 그녀를 내버려두고 어딘가 바쁘게 날아다녔고, 리케도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동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심심하던 차에 리케의 로봇들이 그 안을 들락날락하던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들어가도 괜찮겠지? 이상한 것만 안 건드리면······.’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올 셈이었다.
오빠의 동료들이 한 말에 따르면 동굴 안에는 함정 같은 것도 없다고 하니 그냥 보는 것 정도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나 예상했던 것 밖에서 벌어지기 마련.
이제 막 동굴 입구로 들어선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심층부에서 마치 무언가와 공명하듯 빛을 발하는 발할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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