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91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91 >
기본적으로 오르그들이 가지는 성질은 대부분 같다.
아데카라는 행성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를 먹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가.
데몬하트라는 기관으로 변형시킨 진화에너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영역에 있다.
진화에너지를 뿜어내는 입자 자체가 확 바뀌지는 않았지만 세뇌를 강요하는 일부 성질을 제거한 상황.
다른 진화입자들과 차별성이 있다는 것이고, 에너지에 다루는 데 최적화된 이 육체는 그것을 곧바로 잡아내는 게 가능했다.
만약 저 정체불명의 괴물 녀석이 내가 가진 특수한 에너지를 느끼고 그쪽으로 이동했다면 표적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직접 각성에 관여했으며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존재.
작은 마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죽지만 않게 하면 미끼로 써먹어도 되겠는데.]나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성질이 똑같다는 거니 저 괴물처럼 에너지에 집착하는 놈들 상대로는 최고의 미끼가 되리라.
나이트메어를 데리고 곧바로 보금자리 위쪽으로 공간이동을 발동시킨 나는 더 살펴볼 필요도 없이 동굴 속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에너지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걸로그쓸데없는궁금증이풀린것같다)] [그 끔찍한 파장에 맞고도 살아있었군. 결정화 된 육체는 진화에너지와 상관이 없다고 인식했나보지?]지금 동굴 속에서 부딪히는 두 부류의 에너지는 괴물과 작은 마리아가 싸우면서 방출된 것일 터.
넘버링 급 괴물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어쩌면 파장에 올인해서 다른 능력이 약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납득이 가기도 했다.
[마냥 짐짝이 될 줄 알았는데 하늘이 저 핏줄을 돕는 건가.]로저스도 완전히 오르그로 변하기 전에 겨우 인간으로 바뀐 뒤 세라프의 사령관이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 남매는 역대급으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
그 운이 내게도 이득을 가져다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동굴로 뛰어든 나는 자기도 모르게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그 안에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작은 마리아의 육체는 내가 보유한 에너지와 맞닿아 있지만 발할라를 구성하는 고대의 결정과도 밀접한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
고대의 결정을 만드는 기술을 개량한 끝에 만들어낸 신기술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발할라는 그보다 더 상위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비상시에 하위 기술로 만들어진 작은 마리아가 발할라의 부품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보는 작은 마리아가 발할라와 합체한 상태로 괴물과 싸우는 것만 봐도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진화에너지로 구성된 날개가 있던 자리에는 반으로 분해된 발할라가 연결되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으며 마리아는 그걸 수족처럼 다루며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양새였다.
합체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다루는 실력이 영 시원찮아 보였지만 물리적인 충격을 모조리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은 유효했기 때문에 멀쩡한 얼굴이었다.
[…(인간에게무기를빼앗기면어쩌자는거냐고묻고싶다)] [저 녀석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굳이 표현하자면······ 내 힘을 나눠받은 신인류 정도로 봐야겠지.]발할라가 저 녀석을 주인으로 인정한 것도 날개를 구성하고 있던 진화에너지 탓일 것이다.
고대의 결정 자체는 에너지를 인식하는 기능이 없지만 그 뼈대를 구성하는 것이 사바르의 고유무기 테크로 만들어진 것이라 내 에너지에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작은 마리아가 그걸 알고 유도했다기보다는 파장에 의해 날개가 소실되면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에 발할라가 알아서 반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내 무기를 마음대로 쓰는 건 좀 불편하긴 하군. 조만간 개량을 더 해야겠어.] [그렇게 구경만 하지 마시고 빨리 좀 도와주십시오!]유물을 통해 발할라의 조정을 맡고 있는 리케가 구원요청을 보내왔다.
발할라가 작은 마리아에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같이 싸우는 도중이었나 보다.
저 녀석이 있어야 흡수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둘 다 진화에너지로 이뤄지지 않은 육체를 가진 녀석들이니만큼 오르그만 골라 분해시키는 괴물을 상대하는데 제격이다.
나는 리케의 요청을 바로 받아들여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괴물이 내게 신경을 집중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정신연결은······ 역시 안 통하고.
에너지 분해 파장이 몸 주위로 상시 전개되어 있어서 간섭력도 안 먹힌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게 육탄전이라는 건데.
나는 나이트메어로부터 흡수한 입자 성질 변환을 이용해 육체를 순간적으로 진화에너지와 상관없는 것으로 바꿀 수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순수하게 신체 능력만 가지고 저 괴물과 싸워야한다는 것이다.
인간 하나를 못 잡고 있는 녀석이 뭐가 무섭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육체의 내구력은 발할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차라리 충격을 흡수하는 고대의 결정과 같은 성질로 바꾸면 낫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게 문제.
[이렇게 된 이상 저 녀석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겠군.]애초에 내가 육탄전에서 자신 있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발할라의 존재다.
육체의 내구력이 낮아졌다고? 안 맞으면 그만이지.
발할라가 있으면 못 피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당장 마리아가 발할라를 쓰고 있다고 해도 별 상관없다.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작은 마리아는 현재 발할라의 사용자임과 동시에 ‘일부’로써 기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 괴물을 해치울지에 대한 작전 구상을 마친 나는 곧바로 변신에 들어갔다.
츠츠츳!
갑각으로 둘러싸인 강건한 육체가 세포 단위부터 바뀌는 느낌은 아무리 잘 쳐줘도 그리 좋지 않다.
하물며 성능이 더 낮아지는 상황이니 기분부터 언짢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롭게 바뀐 육신은 갑각보다는 두꺼운 외피로 이뤄진, 기동성과 유연성에 특화된 형태였다.
외피 안쪽으로 가득 찬 근육을 조율하며 점검을 마친 나는 그 몸을 동굴 끝까지 작은 마리아를 몰아붙인 괴물의 파장 안쪽으로 불쑥 집어넣었다.
예상대로 진화에너지에 대응하지 않는 몸은 파장에 의해 분해되지 않았다.
괴물은 내 존재를 느꼈는지 빠르게 뒤로 돌아섰지만 나는 다리를 휘둘러 나보다 열 배는 거대한 녀석의 하체를 후려쳤다.
쿵!
흔히 말하는 하단 후려차기라는 기술이다.
다리 전체를 써서 그런지 넓은 면적에 퍼져 있던 녀석의 다리의 절반이 걷어 채여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놈이 몸의 중심을 잃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행여나 녀석이 도망갈 새라 나이트메어에게 공간이동을 방해하는 에너지 막을 주변에 씌우게 한 나는 몸의 중심을 바로 세우려고 비틀대는 녀석의 왼쪽 촉수를 한데 모아 잡았다.
마치 풍선을 잡는 듯한 감촉이었지만 녀석의 촉수는 내가 강하게 힘을 주어도 터지지 않았다.
반대편 촉수로 공격하려나 싶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때리는 건 해본 적이 없는지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촉수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녀석의 몸을 벽에다 내던져버렸다.
꽈앙-!
[이리 와라.]녀석이 기어이 파장을 넓게 퍼뜨려 나이트메어의 차단막을 깨부수고 탈출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나는 한쪽 구석에 끼어있던 작은 마리아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녀석의 등에 달려있던 발할라가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어어? 으앗!”
토르를 향해 날아가는 묠니르처럼 내 손아귀로 날아든 발할라에는 여전히 작은 마리아가 연결된 상태였다.
부속품 중 하나로 인식된 상태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오히려 녀석의 몸통을 손잡이처럼 붙들고 날개의 끝부분을 곧추세워 내찔렀다.
콰직.
작은 마리아의 몸에 맞춰 축소되어있던 발할라가 순간적으로 그 크기를 부풀려 괴물의 몸통에 틀어박히자 녀석이 공간이동을 위해 모았던 에너지가 단박에 흩어졌다.
녀석이 바깥으로 에너지를 모았다면 놓쳤겠지만 자기 자신이 내뿜는 파장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발할라가 꽂힌 부위는 녀석의 몸 전체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도 급소를 꿰뚫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나도 단숨에 녀석을 죽이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흔한 체액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걸 보고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된 거지? 안쪽이 텅 빈 것 같지는 않은데.] […(과연왜내가저존재의이동을바로감지하지못했는지알겠다저것은몸대부분이입자상태로존재하고있다)] [뭐라고?]나는 나이트메어의 말에 시선을 내려 발할라가 꽂혀있는 부분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체액 대신 탁한 공기 같은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저게 몸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이란 말이지······.
설마 몸 전체가 입자이겠냐는 생각에 발할라를 쥔 손에 힘을 실어 길게 갈라보니 정말로 몸 안쪽이 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뇌나 눈 같은 장기조차 없는 걸로 보이는데 이러면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바깥에 드러나 있는 빨간색 눈알이 있어서 섣부르게 평범한 오르그들 같은 몸일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게 잘못되었던 것 같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괴물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자로 완전히 치환되어 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견고하게 보이던 모래성이 손가락 하나 대는 순간 와르르 하고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다.
나를 비롯한 작은 마리아, 리케 등은 그 자리에 망연히 서서 괴물이 사라진 바닥을 노려보았다.
[죽일 수도 없고, 테크를 흡수하는 것도 안 되는 놈이라니. 진공청소기가 같은 거라고 만들어서 빨아들여야 하나?]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괴물입니다. 아, 진공청소기 아시는 군요! 구시대의 유물인데.] […(구시대적인사고방식을가져서는도태되기마련이다)] [전부 다 닥쳐.]깡! 깡!
깐족거리는 리케와 나이트메어를 땅 속에 묻어버리고 밖으로 나온 나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하늘인데 며칠 사이에 이상한 현상들을 겪고 나니 왠지 모르게 검게 물들어 보였다.
대체 여기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저런 괴물을 퀸이 만들어낸 거라면 왜 아직까지 나를 잡으러 오지 않는 거고.
반란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끝난 거지.
그런 의문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공회전하며 맴돌았다.
저 괴물과 마주칠 때마다 매번 몸을 변형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상태로 넘버링이랑 마주쳤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결국 재미로 상상만 했던 고대의 결정을 양산해서 내 전용 슈트나 전함 같은 걸 만드는 걸 현실로 이끌어 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폼은 좀 안 나겠지만 갑옷처럼 위에 두르면 저 파장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겠지.
여러 생각이 뒤엉키는 가운데 동굴 안쪽에서 누군가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상당히 작은 체구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작은 마리아임이 분명했다.
“저, 사용 후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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