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95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95 >
나는 팍 인상을 구겼다.
이 자식이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내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리케는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사실 의지가 있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이라 약간의 충격만 줘도 되는 수준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렇게 좋은 공간에 밀어 넣고 파동을 통해 일정한 반응을 유도하는 게 가능하지요.]구체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푸른색 물질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반응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건 고도의 지능에 따른 판단이 아닌 학습의 결과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물질을 개발한 인간은 저런 방식으로 다룰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내 추측대로라면 저것은 진화에너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다만 먼젓번의 실패를 최대한 보완한 것이겠지.
진화에너지는 인간의 의사를 무시하고 진화 테크를 마음대로 강요하며 그것을 발현시킬 주체를 세뇌하기까지 한다.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자기 자신만 위하는 극도로 이기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 점을 보완했다면 저 물질은 고대의 결정화 기술과 결합했을 때 주인의 의사에 따라 더 많은 가능성을 부여해 줄 터였다.
[결국 인간은 진화에 대한 연구를 성공시켰던 건가.]인간이 온전히 자신의 판단으로 진화 테크를 선택하고 다른 의지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진짜 진화가 아닐까.
그러나 리케는 그런 내 추측을 바로 부정해왔다.
[아니오. 그들은 끝내 실패했습니다. 저 안에 들어있는 물질은 거하게 말아먹고 남은 찌꺼기에 불과하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저번에 코어 유물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인간들의 오만함을 비웃으셨잖습니까. 저 물질은 그 코어 유물을 제작하면서 나온 부산물입니다. 구조를 살폈을 때 그 유사성이 합치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게 그 증거지요.]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조금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면 그걸 가지고 이곳으로 온 인간은?] [다윈이 내부에서 분열할 때 탈출한 생존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코어 유물을 통해 신인류를 지배하려 했던 인간들 중 하나겠지요. 프로젝트 ‘에덴’을 부활시켜 세계를 지배할 꿈을 꾸고 있었지 않았을까요?]본의 아니게도 인간들의 진화 프로젝트 이름까지 들어버린 나는 씁쓸해진 입맛을 다셨다.
이것 참, 나도 모르게 인간들이 성공하지 않았을까 기대하고 만 것이었을까.
넘버링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그 와중에 퀸과 군단이 실종되면서 목표가 희미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대로 퀸과 군단이 몰락하고 내가 최강이 되고 나면?
인간들의 세계로 가서 작은 마리아처럼 광신에 빠진 미친 인간들을 혼내준 다음에는?
리케와 같이 오르그들의 왕 노릇이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게 되는 것인가.
그런 걱정이 무의식중에 내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만약 인간들이 진화에 성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다면.
그렇게 강해진 인류가 내게 도전해온다면, 자칫 무료해질 수 있는 일상에 활력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말이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품었던 악당도 그게 성공하고 나면 맥이 빠지기 마련이니까.
결국 대적자가 필요해지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야기 속 마왕이 공주를 납치하는 것도 용사를 불러들여 일상에 변화를 주려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내가 내심 혀를 차며 실망감을 감추고 있자 리케는 그것을 무언의 압박으로 받아들였는지 재촉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저 무기의 성능은 뭐냐고 물으실 수 있겠습니다. 방금 제가 저 물질이 코어 유물의 역할을 알아서 해준다고 했지요? 코어 유물의 역할은 다른 유물의 이루는 입자에 간섭하여 그 작용을 강제하는 것. 이렇게 명령을 내리면 그 역할을 빔 형태로 쏘아 보낼 수 있게 됩니다.]진화입자의 구조를 분석해 적용시키면 그 한정으로 능력의 작용을 분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요컨대 내가 에너지를 압축시킨 곳에 저 무기로 빔을 쏘아 보내면 흩어버릴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 맞출 수 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지만 빔 공격의 속도가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방어막까지 부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위협적인 무기였다.
그리고 그 위협은 진화에너지를 통한 초능력을 사용하는 모든 오르그에게 해당되는 것일 테고.
[무한정으로 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충전도 필요할 것 같은데.] [한 번 쏘는데 들어가는 특수 자원이 상당합니다. 충전 시간도 보름 가까이 걸리고요. 물론 소형화 시켜서 나누면 좀 더 가볍게 쓸 수 있겠지만 저 물질을 나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구체 안의 물질은 딱 저만큼이 한 덩이로 뭉쳐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리케가 따로 연구를 진행해 양산할 방법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기습으로 한 번 쏘는 정도가 끝이겠군.] [지금 상황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번에 발견했던 괴물 상대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겠지.]리케의 물음에 나는 빠르게 수긍했다.
몸 대부분이 실체가 없는 그 괴물이라면 맞는 즉시 치명타로 들어갈 테니까.
물론 그 이전에 알아채고 입자 단위로 흩어지게 되면 의미가 없게 되겠지만 일단 맞고 나면 입자의 성질이 변해서 도망도 못 칠 것이다.
[기습으로 쏘려면 그 커다란 걸 숨겨야 할 텐데?] [일단은 저번에 주문하신 대장님 전용 슈트나 전함에 적용시키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장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 있으면 그쪽에 맞추겠지만 말입니다.] [아니, 그대로 진행해.]어차피 결정화 기술로 만든 슈트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 적어도 한 번 정도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에너지를 통한 초능력을 못 쓰게 되면 나는 덩치 큰 괴수에 불과해지므로 여차할 때의 대비는 많이 해두는 것이 좋다.
당장은 낼름이를 이용해 1대1은 무조건 내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니까.
[슈트를 제작할 때 항상 신속하게 입고 벗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슈트가 만능은 아니므로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일단 착용하게 되면 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능력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은 불가능해 질 테니 빠른 탈부착은 필수였다.
[마음에 드실만한 물건이 나오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의심만 하지 않아주신다면 말이죠.] [저런 위험한 무기를 숨겨놓고 불평하지 마라. 무슨 의도였는지는 이해는 간다만.]아마 슈트까지 만들어서 만족스러울 정도의 작품이 나오고 나면 뻐기듯 말해올 속셈이었겠지.
녀석의 자랑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생각해보면 아마 나를 배반하려고 뭔가를 꾸미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애초에 나는 녀석의 서버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어서 뭘 숨길 수도 없고.
다만 괜히 나이트메어의 말을 듣고 녀석을 추궁한 게 조금 미안해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게 다 세라프 녀석이 인공지능을 믿지 말라는 이상한 소리를 해서다.
여기서 또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우쭐해질 테니 사과는 안 하겠지만 녀석을 좀 더 믿어줄 필요성은 느꼈다.
[크흠. 퀸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어떻게 되었지?] [충분한 시간 동안 진행할 수 있어서 아데카 전체에 대한 스캔은 완료되었습니다. 인공위성을 띄워도 별다른 방해를 받지 못했으니 군단의 경계망은 사실상 와해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지요.]테크 분해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체감할 수는 없지만 리케의 말에서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한 시간이 흐를 동안 쳐들어온 녀석이 없는 걸 보니 저번의 그 괴물은 군단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녀석이었나 보군.
그럼 대체 뭐였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저 멀리서 몸을 완전히 회복시킨 낼름이와 작은 마리아가 사이좋게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것들은 또 언제 친해진 거지.
[일단 이 행성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으로 예상되는 군단의 99.98퍼센트는 소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넘버링으로 보이는 오르그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나마 보이는 건 죄다 잔챙이들뿐이라 낼름이와 마리아는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했습니다. 낼름이 같은 경우는 동족을 해치기 꺼려하는 면이 있어서 군단의 하급 개체를 잡아다 알약 형태로 가공해서 주었지요.] [인간한테 몰래 인육을 먹이는 것도 아니고 뭐냐 그건.]리케는 빠른 회복을 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더불어 쿠파나 와이번들의 개체도 다시 불어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그 괴물이 다시 활동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저번에 나와 싸우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된 걸까.
[그 괴물. 저는 분해자라고 이름 붙였습니다만, 그것이 나타나려면 일정 조건을 충족할 필요가 있더군요. 작은 부락 수준의 군단은 건드리지 않고 대규모로 번식하려고 하면 나타나 입자로 환원시켜버립니다. 현재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급 개체들은 그걸 알아서인지 더 이상 세력을 넓히지 않고 있지요.]리케는 분해자가 나타날 때마다 나이트메어와 협력해서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고 사라지는지를 연구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얻어낸 결과는 퀸이 사라졌어도 아데카 안쪽에 있는 에너지 통로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하지만 그 정도 사실은 대기 중에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나도 알 수 있었다.
리케는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상한 점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살아남은 군단 개체들이 방랑 개체화를 하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휘관의 명령 체계에서 벗어나 돌아다니는 개체도 다수 목격되었고요.]군단의 이탈화.
반란에 이어 퀸의 행방불명, 그리고 분해자라는 괴물의 등장만 놓고 봐도 그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사태였다.
애초에 군단의 개체들에게 걸린 세뇌는 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지휘관은 그 명령권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그 최종권을 가진 정점이 사라진 지금, 하급 개체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 설명으로 퀸이 이 행성을 완전히 떠났음을 확신했다.
어쩌면 죽었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 처했을 지도 모른다는 것도.
800년 전에도 퀸이 패퇴하자 군단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었는가.
그 테티스라는 녀석이 어떤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모르지만 퀸을 상당히 약화시켰다면 군단에 대한 통제력도 그만큼 줄어들었을 테지.
[아예 폭주하거나 지휘관들이 멀쩡한 걸 봐서는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위치를 모르니 답답하군 그래.]나이트메어는 멀쩡한 상태의 퀸이면 백이면 백 내가 진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말을 신뢰한다고 하면 약화된 퀸 정도는 역으로 쓰러뜨리고 잡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요소들을 재어보면 지금 상황은 내게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테티스라는 녀석만 잡아올 수 있으면 일이 쉽게 풀릴 텐데 말이야.]잡아다 심문하면 지금 벌어지는 사건들을 전부 풀어헤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오르그 대부분이 전멸한 세계에서 그걸 바라는 건 너무 요행이다.
바랄 걸 바래야지.
[주인님! 저희가 신기한 걸 발견했어여! 협곡에 자기를 테티스라고 불러달라는 이상한 꼬맹이가 떨어져 있었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