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97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97 >
[이번 실험을 통해 얻을 데이터는?]노인의 걸걸한 목소리가 어둑해진 공간 사이를 갈랐다.
[폭발성, 강한 산성을 띤 소듐을 포함한 18가지 물질로 이뤄진 공간에서 오르그들이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지에 대한 상세 정보입니다. 불완전 행성 번호 1128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투입된 오르그의 숫자는 12마리입니다.]뚜렷하지만 경직된 목소리에 유리벽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의미심장한 뜻을 품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대부분이 침묵을 지켰지만 몇몇은 그러지 못했다.
[저번보다 숫자가 확 줄었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연구소 말고도 따로 오르그를 데려가는 곳이 한둘인가?]그들은 숫자가 한정된 오르그들을 실험체로 분별없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남은 오르그의 숫자를 걱정하기보단 눈앞에 보이는 실험 결과에 집중했다.
[허허, 순간적으로 109마리까지 숫자를 불려서 적응에 필요한 개체를 늘리는 군요. 몇 번을 봐도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번식 능력입니다.] [저것들이 본래 서식하고 있던 행성의 환경을 생각해도 놀랍네요. 벌써 완벽히 적응해서 돌아다니는 개체도 있어요.]신체에 해로운 물질이 공기 중에 가득하기에 투입된 태반이 숨이 끊어졌지만 유리벽 너머의 괴물들은 그 시체까지 뜯어먹으며 진화를 이뤄냈다.
끝까지 살아남은 오르그는 실험 전보다 갑각이 훨씬 두꺼웠고 강한 내열성을 가지고 있었다.
최후의 개체가 유리벽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던 노인은 들고 있던 태블릿에 뭔가를 적어 나갔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결과를 얻은 셈이군. 미하일!] [알겠습니다. 3초 뒤, 실험체를 회수하겠습니다.]하늘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끊기자 방 안의 불빛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에 맞춰 내 시선도 유리벽 너머에서 바쁘게 화면을 두드리던 노인에게로 돌아갔다.
[회수된 오르그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음? 살아남은 녀석 말이냐? 아마 폐기되겠지. 우리 실험에 필요한 것은 특수한 개체가 아니라 그런 특수한 개체로 진화할 수 있는 평범한 개체니까.] [폐기······. 그냥 죽이는 건가요?] [뭐, 그렇지. 어차피 저렇게 급속도로 진화한 녀석은 전보다 훨씬 난폭해져서 위험하단다. 처분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노인은 테티스의 물음에 어물거리며 이쪽의 등을 두드렸다.
과거의 테티스는 그 말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노인은 처음부터 거짓으로 점철된 말만 흘리는 것으로 보였다.
굳이 오르그로 살면서 얻은 직감이 아니더라도 전생의 내가 현대(이 시대 기준으로는 과거겠지만) 사회를 살아가며 체득한 경험이라는 게 있다.
그 데이터에 따르면 노인이 보이는 반응은 상대가 어린 아이이기에 대놓고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거짓말.
그 때, 테티스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바깥 현실에 있는 녀석이 말을 걸었나 싶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것이 당시의 테티스가 품었던 속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엄마도 그런 식으로 꾀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잖아. 위선자!
속은 적개심이 가득했지만 과거의 테티스에겐 어떤 힘도 없었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노인의 허황된 변명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원들의 신발이 한차례 뭉개고 간 타일 위를 걸어 반대편 문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테티스가 다음으로 간 곳은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온통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으로 둘러싸인 방이었다.
거대한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내실에는 한 여자가 온 몸에 전극과 연결된 선을 꼽은 채 유리관 안에 누워있었다.
테티스는 천천히 그 앞으로 걸어가 시체처럼 꼼짝도 않고 있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마.]녀석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동요했다.
엄마라니. 저게 퀸이라고? 몸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선만 꽂혀 있다 뿐이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인간이 아닌가.
나는 의문 가득한 시선을 보내다 불현듯 유리관에 비친 테티스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각으로 뒤덮인 갈색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평범한 인간들과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작은 여자아이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치하는 것은 짙은 녹음을 품은 눈동자 색 정도가 아닐까.
테티스는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앙증맞은 손가락을 뻗어 유리관 중앙에 박힌 금속판 위를 더듬었다.
양각된 글자를 더듬자 희미한 빛이 그 위에 머물렀다.
[가이아.]위이이잉.
속삭이듯 튀어나간 한 마디는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냈다.
유리관 안의 여자에게 꽂혀있던 전극들이 움찔거리더니 방의 중앙 천장 근처에 달려있던 거대한 화면이 빛을 토해낸 것이다.
[인공지능 가이아가 인사드립니다. 요구 사항을 말씀해주십시오.]-테티스. 엄마는 인류를 위해 잠깐 잠드는 거야. 그동안에는 보로스 아저씨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화면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회상처럼 머릿속에 울린 음성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었다.
전자는 인공지능의 목소리고 후자는 테티스가 기억하는 엄마의 목소리지만 그 둘은 아무리 들어도 같은 소리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하나 뿐.
그것은 테티스가 내게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이유와도 직결되겠지.
과거의 테티스가 눈물을 머금었던 듯 시야가 흐릿해지는 순간, 나는 어느새 다른 곳에 와있었다.
***
사위는 어두웠고, 배수구처럼 생긴 두꺼운 호스들이 바닥과 벽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나는 그 호스들 하나에 기대어 있는 화면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방금 전에도 봤던 노인과 검은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복도를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뭔가 크게 마음이 상했는지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는 얼굴이었다.
[인간의 뇌를 맵핑해서 만든 인공지능이라서 그런지 영 말을 들어 처먹질 않는군. 자기 마음대로 오르그를 인간과 결합시키다니! 계속 이런 식이 반복되면 다 같이 죽는 것밖에 안 돼!] [테티스가 실험에 휘말린 뒤부터 그 경향이 심해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모태가······.] [연구원 가이아는 죽었고, 이제 남은 것은 인공지능 가이아뿐이네! 인공지능이 인간을 자기 자식처럼 여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노인의 호통에 금빛 휘장을 어깨에 매단 장교는 입술을 말며 침묵했다.
그런 장교를 노려보던 노인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좁혀진 미간을 검지와 중지로 마구 문질렀다.
[테티스는 지금 어디 있나.] [변동 사항이 없다면 여전히 3동 격리소에 있을 겁니다. 저······ 그 아이가 인체실험에 대해 알아버린 것 같더군요.]우뚝.
바쁘게 움직이던 노인의 다리가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반동인지 조금씩 흔들리던 그의 안경도 충격으로 콧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경테에 반쯤 가려졌지만 그 너머로 비치는 노인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2동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 같았나?] [그것까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입단속 철저히 하고 방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해. 테티스는 특별한 아이지. 선천적인 요인이든 후천적인 요인이든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음.]노인은 그대로 앞서 걸어가 버렸고 대열에서 이탈한 장교는 근처에 있던 태블릿을 통해 어딘가로 통신을 연결했다.
곧 삐 하는 소음과 함께 상대방의 얼굴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장. 지금 테티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 당연히······.]벌떡!
중후한 목소리를 듣는 즉시 나, 아니 테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화면이 작게 흔들리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테티스의 발이 슬쩍 모습을 보였다.
내가 보았던 것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는 갑각 피부.
인간의 피부 역시 많이 남아있지만 이 증세가 오르그화라면 이미 절반은 오르그로 변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타다닥!
시꺼먼 통로를 따라 질주하는 테티스의 몸놀림은 어딜 봐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있었다.
당장 시야에 스쳐가는 호스에 주름이 사라지고 맨들맨들하게 보이는 것만 봐도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을 익숙한 움직임으로 통과한 테티스는 환풍구를 통해 회색 재질의 완충 타일로 지어진 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툭.
바닥은 벽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흡수하는 재질인지 테티스의 몸이 내려앉으면서 발생한 소리까지 빨아들였다.
테티스가 황급히 옆에 있는 침상 위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즉시 방문이 열렸다.
직후, 들려온 것은 장교와 통화하던 상대의 중후한 목소리였다.
[테티스? 식사는······ 했구나. 네가 다시 마음을 여는 것 같아 아저씨는 기쁘단다.] [나가주세요.]오르그화의 영향인지 살짝 울리는 음성.
여리지만 냉정한 그 목소리에 사박거리며 다가오던 걸음이 멈추었다.
[테티스······ 알겠다. 식사와 약은 꼭 챙겨먹으렴.]안타까움을 담은 그 소리를 끝으로 다시 누군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홀로 방에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내 정신은 녀석의 몸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위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붉은 하늘을 보던 내가 눈을 천천히 내리자 정신을 빼앗기기 전과 다름없는 광경이 보였다.
[리케.] [네?] [방금 이 녀석이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을 끝으로 얼마나 지났지?]평소였다면 이 얼토당토 않는 물음에 나름의 건방진 소리를 늘어놓았을 리케지만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바로 내가 원하는 대답을 보냈다.
[5초 정도 흘렀지요.] [그런가.]테티스는 고작 5초 사이에 내가 겪었던 몇 시간을 집어넣었다는 말이다.
내가 눈을 뜨고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5초도 아닐 것이다.
정신 연결을 하는 것도 모자라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도 있다, 라······.
만약 다른 녀석들에게 시간을 물었다면 모르겠지만 정신 연결이 통하지 않는 리케에게 확인한 것이니 확실하겠지.
[하. 온전한 진화 어쩌고 하더니.]나는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테티스를 노려보았다.
마음대로 정신을 조작당한 것도 불쾌하지만 녀석이 날 찾아온 의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선에 노출된 테티스는 얼굴을 굳힌 채 움츠러들었다.
내 위협에 겁을 먹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내게 능력을 사용한 반향인 것으로 보였다.
녀석의 촉수를 따라 흐르던 에너지가 굉장히 불균형하게 움직이면서 안쪽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놔두면 자기 에너지에 잠식되어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몰랐다.
쯧.
나는 내심 못마땅하게 혀를 차면서도 발할라를 촉수 안쪽에 꽂아 폭발하듯 날뛰는 에너지를 흡수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오는 진동으로 보아 마운틴이 전력으로 쏜 에너지 포의 절반 가까이 되는 위력이었다.
이걸 그대로 품고 있으려고 했다니 미친놈인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가상하지만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은 녀석의 상태로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나는 엄지와 중지를 모아 그대로 녀석의 이마를 후려쳤다.
딱!
[아! 왜 때려!] [아직 물어볼 게 많은데 기절하거나 뒤지면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