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how far had you reach? RAW novel - Chapter 99
진화, 어디까지 해봤니? – 99 >
사실 테티스 녀석의 말처럼 왜 나만 처음부터 온전한 사고를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생한 것도 이상하지만 전부 똑같은 조건인데 나만 특별한 것은 좀 수상쩍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단순하게 적을 죽이고 잡아먹어서 강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고 통쾌한지라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지만.
“끄아······.”
이번 건 제법 아팠는지 육성으로 낑낑대고 있는 테티스를 보고 있자니 들어도 별로 중요한 이유가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말이지······.
그래서 나는 그냥 무시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곧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야기를 쭉 나열해서 살펴보니 녀석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저 우주 어딘가에 있는 고대 연구소일 터.
그 빌어먹을 ‘온전한 진화’를 완성하기 위한 연구가 그곳에 남아있다면 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몸이 얼마나 약한지 알아? 방금 걸로 죽을 뻔했다고!] [방금 전까지 발할라에 손상이 갈 정도의 에너지를 견디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약한 척은 안 통한다.]테티스는 대놓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역시 꾀병이었군.
물론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던 건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확실히 아프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 속사정 같은 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아. 하지만 내게 복종을 맹세하면 관대하게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지.] [뭐, 뭐?]나는 녀석의 얼굴 앞에 손을 가까이 대고 을러대듯 말했다.
더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녀석이 순간 움찔하는 걸 봐서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것 같다.
[난 제멋대로 구는 녀석들을 제일 싫어한다고. 내 통제에 따르지 않겠다면 다시 협곡 아래로 추방시킬 수밖에.]아데카 내부 한정이고 일부에 불과하다지만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녀석이 상대라면 기를 꺾어놓는 것이 편하다.
오만에 가득 차 있던 나이트메어 녀석을 조금이나마 교정시킨 내 직감에 따르자면 말이다.
[먼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약속해. 당신에게는 별로 힘든 일도 아닐 거야.] [조건 같은 건 받지 않는다. 복종이냐 추방이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알았어.]결국 테티스는 항복을 선택했다.
아까부터 나이트메어를 힐끔거리는 걸로 봐서는 저만한 사이코 녀석이 내 밑에서 빌빌대는데 자신이 뻗대는 걸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물론 그것으로 나와 녀석이 바로 주종관계가 되는 일은 없었다.
자진해서 나를 따라다니는 녀석들과 달리 테티스는 반강제적으로 따르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넘버링 같은 녀석들과 싸울 때 내가 하이드에게 썼던 것처럼 정신 연결로 뒤통수를 치면 지극히 곤란해진다.
그래서 나는 전통에 따라 녀석에게 담보를 요구하기로 했다.
[내놔.] [뭐를?] [네 소중한 것.] [······!]***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테티스를 완전히 복종시킨 나는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성을 가지게 된 이유가 뭐라고?] [그런 짓을 해놓고선 당당히 말을 거시다니 역시 대장님이십니다.]그런 짓이라······ 누가 들으면 엄한 짓이라도 한 줄 알겠군.
나는 그저 리케의 전철을 따라 녀석의 일부를 양도받은 것뿐이다.
정확히는 녀석의 촉수를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처음에는 촉수가 테티스의 몸의 일부인 줄 알았지만 만약 그랬다면 협곡 밑에서 사고를 당해 몸뚱이가 토막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위화감을 느껴 에너지를 흘려 조사해봤더니 저 어마무시하게 단단한 촉수들은 타르뭐시기 시스템으로 조종하는 것이었다.
아데카를 벗어나면 떨어져 나갈 것이니 무슨 소용이냐 할 수 있겠지만 행성 밖으로 나가는 순간 녀석이 능력을 못 쓰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녀석을 경계하는 것도 아데카 내부에서만의 이야기라는 뜻이지.
[자, 빨리빨리 입을 열어라. 촉수들이 강제로 벌리게 하기 전에.] [큭······! 비열한 놈!]테티스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내 말에 복종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당연하게도 내 탄생 배경.
녀석은 내 존재가 아주 오래전부터 안배되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발할라를 들어보이자 테티스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아무나 탈출시키는 건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어.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온 인간이 코드를 입력하고 사령관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했지. 하지만 당신들은 그걸······]녀석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리케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정석적인 방법이 아닌 방식으로 고대의 우주선과 세라프를 손에 넣었던 것을 비난하는 거겠지.
[원하는 것?] [당신과 같은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는 물질. 다아트가 바로 그것이지. 다아트는 진화에너지에 침식당한 오르그들로 하여금 온전한 사고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줘.]다아트라는 물질은 유전적인 영역에 관여해 대를 거듭해 내려갈수록 진화에너지의 간섭은 건부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뇌를 개발시킨다고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 물질을 가져온 인간은 이곳에 세워져 있던 연구소에서 그것을 양산해 곧바로 나와 같은 존재들을 탄생시켜야 옳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늦게 왔지. 다아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연구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인공지능들과 저장소만 남아있었을 거야.]나는 그때서야 고대의 기록저장소 근처에서 발견된 총이 누구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테티스의 요청을 받아 다아트를 이곳으로 가져온 인간이 소유했고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죽으면서 남긴 유품이겠지.
[네 추측이 완전히 빗나갔는데, 어이.] [저는 그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조합한 결과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오르그에게 지성을 부여하는 물질이라니, 악취미 같은 것을 개발해냈군요.]내 타박에 리케는 로봇의 팔을 으쓱하며 능청을 떨었다.
녀석은 이곳에 푸른색 물질을 가져온 인간이 내부 분열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라는 점은 맞췄지만 그 인간의 목적은 성대하게 빗나갔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비난할 처지는 못 되지만.
[그런데 잠깐. 방금 분명 대를 이어서라고 했는데, 내 모체는 다른 오르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내 모체는 지금 내 영역에서 동쪽으로 가야 나오는 늪지의 패자이기는 했지만 그건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다른 네임드급 오르그들과 똑같이 자식들을 생산해 데이터를 모으고 그 자식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워 강해진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인간과 비슷한 지성을 지녔다면 좀 더 체계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성장을 도모했겠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좀 더 능동적으로 테크를 선택해 충분히 보스급으로 거듭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랬다면 내가 반항해 볼 겨를도 없었을 테니 내게는 모체의 지성이 낮았다는 사실이 행운이 되었지만 테티스의 말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당신은 이쪽 지식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전이라는 건 그렇게 단순하게 발현되는 게 아니거든.] [음?]솔직히 내가 아는 유전이라는 건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신체적 특징 정도다.
대머리라던가, 머머리 같은 것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대머리는 격세 유전이었나?
[유전의 발현이라는 것은 결국 확률의 문제야. 다아트는 그 확률에도 관여하고 대를 이어갈수록 그 확률이 올라가지만 반드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테티스는 이와 관해서 주사위를 예시로 들었다.
6이라는 숫자가 당첨이라고 하면 유전이 진행될수록 주사위의 나머지 숫자가 6으로 변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그 속도를 가속시키지 않는 이상 자연적으로 주사위의 모든 면이 6이 되려면 2의 16제곱 정도 되는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그리고 그나마도 100퍼센트가 될 수는 없다.
리케가 대신 계산해준 숫자로 보면 99퍼센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도 약 6만 5천 번의 수정이 필요하다.
1년 동안 100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져도 65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내 모체가 알을 낳는 간격을 계산해볼 때 급격한 진화가 필요한 환경변화가 닥치지 않는 이상 1년에 100회는 불가능하므로 다아트가 내 대에 당첨이 된 것은 정말 천운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행운을 거머쥔 개체가 다아트가 발현된 순간 내가 전생한 건가.
내 형제가 되는 개체들도 근처에 많이 있었는데 혹시 그 녀석들도 지성을 가졌을까.
대부분 모체한테 잡아먹혔고, 도망친 개체도 군단과 싸우고 청소부들에게 분해되면서 소멸되긴 했지만.
대체 왜 나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다른 궁금증은 이것으로 전부 풀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테티스나 나이트메어가 내게 집착하는 이유 같은 것 말이다.
[운 좋게 하나 걸렸으니 신이 난 건 알겠지만 그 사실이 내가 네 녀석에게 빚을 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군. 오히려 네가 답도 없는 놈들 사이에서 이렇게 성장한 내게 빚을 졌다고 보는 게 옳겠지.]모체부터 시작해서 처음 만났던 쿠파, 그리고 군단과 검둥이까지.
어느 하나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워해야 할 것은 테티스 쪽이다.
만약 내가 전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개체에 다아트가 발현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테니까.
어쩌면 이미 내가 전생하기 이전에 몇 번 발현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득시글거리는 강자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을 뿐.
나는 루카스의 부대가 발견했던, 채굴되어 동력원으로 쓰인 거대한 오르그의 사체를 떠올렸다.
보통 그 정도 녀석이라면 이 지역에서 거의 범접할 수 없는 수준.
보스 쿠파나 와이번 정도가 되면 비벼볼만하겠지만 두 녀석들은 나라는 절대강자가 출현하며 생긴 환경과 법칙 아래에서 태어난 이레귤러들이다.
그 둘이 없는 상태에서 그만한 녀석이 살아서 돌아다녔다면 능히 최강자를 자칭해도 이견이 없었을 테지.
결국 검둥이에게 잡혀 죽기는 했지만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그렇게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성장력이라면 고도의 사고능력을 지녔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그 지성이라는 게 인간이라 자칭하기에 덜 여문 상태였다는 문제가 있었기에 테크의 선별과 합성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추측된다.
다시 말해 내가 전생했기 때문에 비로소 고대 인류의 다아트 연구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 전에 발현된 녀석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과 마주해도 적대하지 않아 리케라는 존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해 내가 이 시대의 지식들을 얻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기록저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건 오르그가 지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실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데는 녀석의 공도 상당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거지.
내가 슬쩍 녀석이 조종하고 있는 로봇을 바라보자 공 모양의 몸통이 갸웃거리듯 살짝 기울어졌다.
잠시 생각하듯 가만히 있던 녀석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금속으로 만들어진 손가락을 튕겼다.
[감히 본인이 대장님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다니 건방지군요. 처리할까요?] [······그 헛돌아가는 알고리즘이나 처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