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02
102.
“그 종으로 사람을 찾으라고?”
서산 시내에 도착한 권태수는 그렇게 물었다.
그는 송민호가 보내준 종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 참. 수맥 찾는 것도 아니고, 불편하게도 만들었구먼.”
지금 그 종은 10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한 번씩 딸랑거리고 있었다.
이 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예 아무 반응도 없던 걸 보면, 여기에 범인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딥니까. 방향은 제가 지시할 테니 계속 가죠.”
원래는 종이 울리는 빈도를 확인하며 방향을 결정해야 했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이 종을 받은 순간부터 내 눈에 보이는 화살표 역시 범인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내 말에 권태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운전을 계속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상가 건물이 늘어선 상점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종은 이제 3초에 한 번씩 울리고 있었고.
권태수는 그 소리가 거슬리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화살표는 큰길에서 조금 들어간 골목 안쪽을 가리키고 있는 상태.
“이 근처인가 봅니다. 여기서 일단 내리죠.”
우리는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겨우 십여 미터를 이동하자, 종은 진동하듯 떨려왔다.
바로 가까운 거리에 범인이 있다는 뜻.
이에 나는 종을 주머니 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살표가 가리킨 것은 바로 옆 건물 내부.
그리고 건물 안에 있을 범인의 모습은, 이미 나에게 훤히 보이고 있었다.
“저건…”
범인이 있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그 투명한 유리벽 안에서 한가롭게 컵라면을 먹고 있는 범인.
다만, 그 범인은 중년의 무당을 예상하고 있던 내 예상보다 훨씬 어렸다.
“쟤 같은데요.”
“저 아이가?”
그건 아직 교복을 입고 있는 여고생이었다.
긴 생머리에 어디가 아픈 것처럼 창백한 피부와 바짝 마른 몸.
그래서일까.
권태수는 수긍하기보다는 의심의 뜻을 먼저 내비쳤다.
“그 종 엉터리 아닌감? 아무리 그래도 저 어린 것이…”
“아니요.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의 머리 위로 보이는 레벨을 보며 말했다.
거기에 표시된 레벨은 3.
마인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은 레벨이었다.
저 정도면…이제 막 마에 개안한 수준인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최근, 저주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고 했으니.
아마 그 죽음이 불러온 업이 저 학생을 개안시킨 것이리라.
“허…”
내 말에 권태수는 말을 잃었다.
자신이 거두었던 소녀를 키워왔던 그로서는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마인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이야기를 해보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려, 그래야지.”
나는 그런 권태수를 재촉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문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카운터에 선 알바생과 범인의 시선이 동시에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내가 입은 경찰복을 빤히 바라보는 알바생과는 달리.
“…!”
범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반대쪽으로 홱 하고 돌렸다.
그 우스울 정도로 정직한 반응에 나는 권태수에게 눈짓했다.
“여기…그 뭐냐. 빨간 거. 빨간 거 있는 감?”
그러자 권태수는 카운터 쪽으로 가서 피지도 않는 담배를 찾는 척하며 알바생의 시선을 끌었고.
나는 그 사이 범인에게 다가갔다.
범인인 여학생은 내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게, 범인이 아니라는 걸 몰랐어도 수상해 보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범죄에 익숙한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학생?”
“네, 왜요…?”
내가 직접 말을 걸어도 그녀는 끝까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다만 목이 타는지, 컵라면 옆에 있던 커피를 한번 홀짝였을 뿐.
하지만,
“혹시 저주 걸었어?”
“커흑!”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는 콜록거리며 커피를 흘렸다.
그녀는 옆에 있던 휴지로 입가와 테이블을 닦은 후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닌데요.”
“아닌 게 아닌 거 다 알아. 잠시 이야기 좀 할까?”
“그…영장.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학생은 영장 소리를 했다.
영장이라.
사실 경찰이 되고서도, 영장 같은 건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야 마인이나 괴이를 상대할 때는 그런 건 전혀 필요치 않았으니.
하지만 나도 일반 경찰 일을 하며,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었다.
“없어도 돼. 긴급 체포라고 알아?”
“…모르는데요.”
“영장 없어도 48시간은 가둬둘 수 있어. 그러니 이야기 좀 하자고.”
그러자 여학생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보며 작게 목소리를 냈다.
“여기…여기는 안 돼요.”
“그럼 경찰차로 가면 되나?”
여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가시면 안 돼요?”
“되겠냐?”
“아씨…그럼 제 뒤로 따라오세요.”
뒤를 따라오라고?
묘한 대답이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도망칠 것 같지는 않고, 도망간다고 해도 못 쫓아갈 것도 없다.
아니, 애초에 범인이니 강제로 끌고 가려면 끌고 갈 수도 있지만.
“…그래, 좋아.”
여학생의 반응은 그 이상으로 수상했다.
어딘가 사전에 지시받은 걸 이행하는 느낌.
어쩐지 이런 여고생이 범인이라는 게 이상했는데, 그 뒤에 누군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러자 여학생은 먹은 걸 치우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도중, 그녀의 바짝 마른 손목이 눈에 띄었다.
“아니, 할아버지. 그런 담배 없다고요.”
“아, 읎어? 그럼 이거나 줘.”
그러자 한창 알바생의 정신을 빼놓던 권태수 역시 초콜릿 하나를 사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학생은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안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뒷골목.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 있었다.
“어? 야, 너 왜 여기 있냐?”
뒷골목에 있던 것은 험상궂게 생긴 두 명의 남자였다.
그들은 건물 안으로 통하는 쇠문을 지키고 있는, 일종의 경비원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는 학생을 보며 아는 척을 했고.
학생은 뒤따라오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에 하찮다는 표정이 어렸다.
“아, 또 야? 그러게 교복 입고 다니지 말라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는 어딘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고, 이에 다른 남자가 우리를 상대했다.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경찰분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당신은 뭡니까?”
머리에 레벨 표시는 없었다.
범죄자일지는 몰라도, 단순한 일반인이라는 뜻.
그래서 나는 일단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보기로 했다.
“저희요? 저희는 얘 보호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호자라는 말에 학생의 얼굴이 그늘이 드리워졌다.
“보호자는 개뿔이…!”
“자자, 화내지 마시고. 이쪽 분과 이야기해 보시죠.”
이에 권태수가 역정을 내자 남자는 이쪽으로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전화 상대와 이야기를 해보라는 건가?
나는 일단 그 스마트 폰을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어디서 오셨습니까?”
상대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나도 대답 대신 물음을 던져 주었다.
“누구 신데요?”
그러자 깊은 한숨과 함께 답이 들려왔다.
“법무법인 이화의 하경진 변호사입니다. 그쪽은요?”
“경찰청 특수본 강진우 경감입니다.”
“트…특수본?”
특수본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인지,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학생은 저희가 보호 중인 아이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보호 중이요?”
“예. 미성년자인데다, 친권자의 동의도 받은 사안이니 거기까지 하시죠.”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앞의 남자들도 그렇고, 이 법무법인이 어쩌고 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얽힌 사람이 많았던 탓이었다.
뒤에 있던 게 단순한 범죄자 집단이 아니라, 더 체계화된 조직이 있는 모양.
그래서 나는 마지막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이 학생을 보호하는 주체가 정확히 누굽니까?”
“세린 컴퍼니입니다. 저는 세린 컴퍼니에 선임된 변호사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회사의 이름을 알았다면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그럼 경찰분들은 이제…”
“됐고, 학생. 이야기 좀 하지.”
나는 남자의 말을 끊고, 여학생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당황했고,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여학생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는 다소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방금 못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근데 저희가 우선이에요.”
“우선은 뭐가 우선-”
“내 권한이 더 높다고, 이 새끼야.”
퇴마 사건에 한해서, 일반적인 법은 크게 의미가 없다.
비록 범인이 마인이 아니더라도, 그 수사 과정에 있어서는 모두 특별법의 관리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방금전의 통화를 무시하고 여학생을 데려가려 했다.
“알겠으면 이제 따라와.”
“아니! 그건 안 되지.”
그러자 남자 둘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여학생과 내 사이를 가로막으며 내 앞에 선다.
“권한은 모르겠고, 얘는 못 데리고 갑니다.”
“지금 공무 집행 방해하는 겁니까?”
“그래. 잡아가려면 날 잡아가시던지.”
그들은 냉소와 함께 뒷짐을 지고 섰다.
이렇게 나오면 너희가 어쩔 거냐는 듯한 태도.
어지간히도 그 변호사라는 양반을 믿고 있는 듯 보였지만.
아쉽게도, 난 이것들을 잡아갈 생각이 없었다.
“영감님, 이것들 좀 치웁시다.”
“오냐, 내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권태수가 나섰다.
남자들은 그 노인네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커헉!”
“억!”
짧은 단말마와 함께 그들은 혼이 나간 인형처럼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순식간에 커다란 남자 둘이 기절하자, 그 뒤에 있던 여학생은 입을 벌리며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이제는 따라올 거지?”
내 질문에 여학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경찰차 안.
“먼저, 이름.”
“…연지우요.”
범인인 여학생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어서 나는 다니는 학교나 사는 곳에 대한 신상을 물은 뒤, 본격적인 신문을 시작했다.
“저주에 대해 알지?”
“…네, 알아요.”
“저주 거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
“할머니한테 배웠어요.”
“할머니?”
“외할머니가 무당이셨는데요.”
말투는 조금 삐딱했지만 연지우는 묻는 말에 순순히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저씨.”
“왜?”
“저주를 믿는 거에요?”
“그럼.”
“아저씨도 저주 알아요?”
“알지. 더 대단한 것도 알아.”
“혹시…무당이에요?”
“무당은 아니고. 저주 거는 놈들 잡으러 온 경찰이지.”
“……”
이에 연지우는 딱딱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그 사이 사건에 관한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자 연지우는 옅은 냉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거, 여기 맞아요. 저 말고도 저주 거는 사람들이 10명도 넘게 있거든요.”
“그 세린 컴퍼니에?”
“컴퍼니는 무슨. 그 새끼들 그냥 조폭이에요. 쓰레기 같은 새끼들.”
연지우는 세린 컴퍼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날카롭게 반응했다.
“조폭이라고?”
“지금은 기업 이름 걸고 멀쩡한 척하는데, 예전에는 그랬어요.”
이에 나는 스마트 폰으로 세린 컴퍼니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뻗은 회사로, 30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는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회사였다.
이게 그 기업형 조폭이라고 불리는 놈들인가.
“그럼 넌 어쩌다 거기서 일하게 된 건데?”
연지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세린 컴퍼니와 얽혔던 것은 무당이었던 그녀의 외할머니였다.
오래전, 세린 컴퍼니를 이끄는 조직의 보스는 원래 평범한 손님으로 무당인 외할머니를 찾아왔다.
하지만 연지우의 외할머니는 실제로 효과가 있는 주술을 일부 알고 있는 신통한 무당이었고.
조직의 보스는 그 효과를 절실히 체감하고는, 이를 범죄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었다.
“할머니도 처음에는 절대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주라는 거, 그만큼 위험한 거니까. 그런데 그 새끼들이…우리 엄마까지 잡아가서…”
연지우의 어머니는 무당이 아닌 일반인으로, 일찍 죽은 남편을 대신해 홀로 연지우를 키워왔다고 했다.
세린 컴퍼니는 그런 연지우의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는, 할머니에게 저주를 강요했다.
딸이 위기에 처한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놈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럼 할머니는 지금도 세린 컴퍼니에 계셔?”
“아니요. 저주 때문에 살 맞고 돌아가셨어요. 저 새끼들이 죽인 거에요. 우리 할머니, 눈 감으실 때도 편히 못 감으셨는데…이제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저보고 하래요. 진짜…개새끼들…”
그런 사정이 있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었다.
“저주 의식은 의뢰인에게 위험성을 떠넘기는 거 아니었어?”
“저주가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요? 의식의 일부를 의뢰인에게 넘기고 뭐하고 하는 개지랄을 해도 결국 다 저한테 돌아와요. 이거 봐요.”
연지우는 자신의 팔 한쪽을 걷었다.
거기에는 뼈밖에 남지 않은 팔이 있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붙어요. 애초에 얼마 들어가지도 않고. 더 먹으려고 해도 맨날 토하고.”
“경찰에 신고는 안 해봤냐?”
“했어요. 했는데…저기에는 변호사도 있고, 저주 얘기를 해봐야 소용 없을 것 같아서 안 했더니 설명이 제대로 안 돼서…”
나는 쯧-하고 혀를 찼다.
차라리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퇴마 경찰이라도 개입했을 텐데.
아예 아무말도 못한 탓에 그저 묻혀버린 것이었다.
“그럼 거기에서 저주 의식하는 사람들은 전부 너처럼 잡혀 온 거야?”
“대부분 그럴 거에요. 제정신이면 이 짓 못하죠.”
처음에는 그냥 적당한 무당들 몇 명이 모여 작당 모의를 한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본격적인 범죄 행각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 해도 상대는 일반인인데.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역시 서인나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연지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저씨.”
“왜?”
“혹시, 사람…죽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시선이 떨려왔다.
이에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자 연지우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었다.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고 이내 소리 죽여 울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 셈인가.
나는 그런 연지우를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권태수에게 생각이 미쳤다.
이 영감이 이런 소리를 그냥 흘려들을 노인네가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본 권태수의 얼굴은 과연,
“……”
귀신이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