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05
105.
일주일 후.
나는 권태수 영감의 성화에 못 이겨, 연지우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걱정되면 직접 할 것이지.
늙은이가 전화해봐야 좋아할 게 없다며 나를 시킨 것이었다.
“몸은 좀 좋아졌냐?”
“네! 진짜 좋아졌어요. 여기 의사도 퇴마사라면서요? 와, 경찰 병원 미쳤네. 아저씨도 여기 와 본 적 있어요?”
연지우는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거기에 어찌나 쉴새 없이 떠드는지, 조금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녀는 이어서 자신이 느낀 경찰 병원의 대단함을 설명하다가, 이번에는 소피아 경무관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리고 아저씨 말대로 그 여자애가 왔어요. 진짜 인형 같이 생겼던데. 저보고 퇴마사 할 거냐고 물어보던데요?”
“그래서? 진짜 퇴마사가 되려고?”
“당연하죠! 저 말고도 그날 구출된 사람 중 절반 정도는 퇴마사가 될 거래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부터 해야 하지만.”
연지우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러니 퇴마사가 되기로 했다고 해도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2년은 기다려야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그보다 킬러 쪽에서 연락은 왔어?”
“아…오긴 왔어요.”
연지우의 대답은 어딘가 시원치 않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건 아닌데…영상통화로 했거든요. 그 거만하던 놈이 확 바뀌어서 사죄하는 걸 보니 신기하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통쾌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당연한 느낌?”
“그거야 그럴 수 있지. 어차피 죽을 놈이라고 생각하면 복수의 재미가 좀 떨어지거든.”
“꼭 겪어본 것처럼 말하시네. 아, 그보다 아저씨-”
그 이후로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다가 통화가 끝났다.
나는 그걸 옆에서 엿듣고 있던 권태수를 돌아보았다.
“이제 만족하시죠?”
“험, 학생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먼. 고맙네, 강 경감.”
이걸로 충분히 안심한 건지, 그는 편안한 미소와 함께 동네 마실 나가는 할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와 교대하듯, 이번에는 서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경감. 이리 좀 와 봐.”
팀장의 호출에 나는 미약한 경계심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지난주에 맡고 있던 사건은 다 마무리돼서, 이제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 슬슬 새로운 일을 던져줄 때가 되긴 했다는 말이었다.
“예, 부르셨습니까.”
“그래. 일단 이거.”
서인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서류를 내밀었다.
사건 정보인가.
하지만 서류의 서식이 평소와는 달랐다.
그리고 그 제목은 적령 토벌 작전.
“적령 토벌이요?”
“최근에 LB 아카데미 쪽에서 적령의 마역을 발견했거든. 그런데 상태가 심상치 않은 모양이야. 강 경감은 적령 토벌에 차출된 게 처음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 임용되었을 때 서인나가 몇 번 적령 토벌 작전에 참가했던 걸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거기에 참가한 적은 별로 없었다.
적령은 레벨로 치면 51부터 70에 해당하는 영체다.
최대 70 레벨에 이르는 그 위험성 때문에, 분명 서인나 급의 팀장들이 모여서 토벌 작전을 펼친다고 했는데.
“그게 왜 저한테…”
“그야 위에서 그만큼 강 경감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거 아니겠어?”
서인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실제로도 그녀는 매우 기분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 차출되는 게 내가 아니었다면 또 그녀가 그 대상이 되었을 테니.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경찰에서 펼치는 토벌 작전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서인나의 말을 들어보면 3일 밤낮을 마역에서 헤맸다고 하질 않나.
10명이 넘는 퇴마 경찰들이 몇 시간 동안 수많은 괴이를 상대로 전투를 펼쳤다고 하질 않나.
게임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보스 레이드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토벌 작전에 대해 설명해줄게.”
그런 까다로운 일을 나에게 넘기게 된 서인나는 힘차게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토벌 작전은 보통 적령 이상의 영체나, 혹은 그만큼 강한 괴이를 상대로 펼쳐져. 하지만 토벌 작전이 진행되는 데에는 그 조건이 있지. 먼저 놈에게 영토와 세력이 있어야 해.”
“세력이요?”
“그래. 쉽게 말해 마역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부하들을 부린다는 거지. 그게 아니라 그냥 혼자 돌아다니는 독립 영체라면, 굳이 토벌 작전까지는 필요가 없거든.”
그건 그랬다.
아무리 70 레벨의 적령이라도, 우리 팀이 통째로 몰려간다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수준일 테니.
하지만 그런 적령이 자신의 영토인 마역과 또 다른 괴이를 부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마역은 이세계에서의 던전과 다를 게 없는 공간.
어딘가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그 크기는 쉽게 짐작할 수도 없다.
설령 똑같은 수준의 적령이 마역의 주인이라도, 독립 영체와는 느껴지는 부담감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위험성이야. 적령이라면 흑령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경우, 그리고 영체가 가진 전승이 대량 학살에 적합한 경우 등이 그렇지.”
“그럼 이번에는 어느 쪽입니까?”
“안타깝게도 둘 다야. 이번 적령은 정확한 건 모르지만, LB 아카데미에서는 놈을 질병과 관련된 악령으로 추정하고 있어.”
“……”
“질병은 태초부터 인간이 두려워했고, 심지어는 지금도 두려워하고 있는 개념이야. 그래서 이와 관련된 악령은 대부분 그 역사가 깊어. 관련 전승 역시 많은 편이고. 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적령 역시 흑령이 될 가능성은 충분한데다, 최악의 경우 치료 불능의 전염병을 퍼뜨려서 대량 학살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지.”
질병의 악령이라.
그렇다면 경찰에서 경계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럼 저는 누구랑 가나요?”
“우리 팀에서는 강 경감 혼자야.”
“저 혼자요?”
서인나가 갔을 때는 다른 팀원들을 여럿 데리고 갔었던 걸 기억하고 있는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래. 조사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번 작전은 경찰 단독으로 펼치는 게 아니거든. LB 아카데미와 협력 작전이지. 그래서 경찰에서는 경감급 이상 인원만 투입돼.”
LB 아카데미와의 협력 작전?
그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퀘스트 아이콘이 번뜩였다.
대상 : 김다영
성향 : 중도, 선
– 캐릭터 스토리 2를 완료하세요.
보상 : +1~+3 랜덤 강화권
퀘스트 창에는 어느새 김다영과 관련된 두 번째 캐릭터 퀘스트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렇다면…LB 아카데미에서 누가 나올지는 뻔한 이야기겠군.
그래서 나는 퀘스트 창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작전은 언제부터입니까?”
“작전 시작 날짜는 이틀 후야.”
“시간이 좀 남네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작전을 준비하는 데는 좀 모자랄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내 앞에 몇 권의 책을 꺼내 놓았다.
하나 같이 무척이나 두꺼워 보이는 서적들.
나는 그걸 보며 물었다.
“이건 뭡니까?”
“질병에 관련된 전승들. 미리 공부해 두는 게 좋잖니?”
“……”
“다른 사건은 안 줄 테니까,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봐. 아무리 강 경감이라도 이번 토벌 작전은 만만하지 않을 거야. 그런 사건에서 이런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강 경감도 잘 알고 있지?”
이걸 이틀 안에 다 볼 수는 있는 건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지만, 서인나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그리고 이틀 후.
나는 토벌 작전이 진행되는 경상북도의 주왕산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마역의 발견으로 산행은 일제히 통제된 상태.
다만 작전을 진행하는 퇴마사들은 그 입구에 모여 있었다.
“어? 혹시 강진우 경감?”
그렇게 말하며 가장 먼저 나를 인식한 것은 경찰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나는 그의 옷에 붙은 경정 표식을 순간적으로 스캔하고, 자연스럽게 답했다.
“예. 맞습니다.”
“반가워. 내가 정재석 경정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이를 받았다.
정재석 경정이라면 오늘 작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
현재 조직범죄수사 3팀의 팀장이면서, 레벨이 63에 이르는 베테랑 퇴마사였다.
나와는 면식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는 나를 어렵지 않게 알아본 모양이었다.
“강 경감 소속이 지원 2팀이었지? 그래, 서인나 팀장은 잘 있나?”
“예, 일에 치여 사는 거 말고는 잘 계십니다.”
“하하, 뭐. 일에 목매달고 있는 거야 우리가 다 그렇지.”
그렇게 정재석 경정과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인원들을 태운 차량이 산 입구에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번 토벌 작전에 참가하는 퇴마사는 모두 12명으로.
경찰과 LB 아카데미 측에서 각각 여섯 명씩 동원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동원된 인원 중,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어, 강진우 씨?”
막 LB 아카데미에서 온 차량에서 내린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내가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란 얼굴이었다.
“강진우 씨도 오늘 토벌 작전에 참여하시는 건가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구나! 이런 데서 보니 더 반갑네요!”
나는 김다영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김다영의 레벨은 51.
여전히 성장이 빨랐다.
하지만 김다영은 지금 모여 있는 퇴마사들 사이에서는 그리 높은 레벨이 아니었다.
다른 퇴마사들의 평균 레벨은 60이 넘었으니.
이윽고 인원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정재석이 목소리를 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작전을 지휘하게 된 정재석 경정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렸다.
이어서 정재석은 능숙하게 가벼운 인사를 던지고, 인원을 확인하더니 사람들을 통솔하여 산 안쪽으로 이동했다.
다른 것보다도 먼저 마역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거친 산길을 오른 후.
“…저건가 봐요.”
깊은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며 김다영이 말했다.
골짜기 아래에 있는 것은 땅속으로 향하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입구부터 벽이 탁한 붉은색 암석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척 보기에도 이질적인 분위기로.
그 내부는 짙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심상치 않은 기운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곳이 마역의 입구입니다. 작전은 사전에 통지한 대로-”
이어서 정재석의 짧은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는 작전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작전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냥 경찰과 LB 아카데미 두 조로 나뉘어 마역을 탐색.
마역의 주인을 찾을 경우, 다른 조와 합류하여 처단하는 아주 간단한 작전이었으니까.
“아시겠지만, 이번 마역은 특히 위험합니다.”
이어서 정재석은 주의 사항을 덧붙였다.
그건 마역의 주인이 사용할 법한, 질병과 독에 대한 내용이었다.
디버프 면역인 나야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지만, 다른 퇴마사들은 단단히 준비할 필요가 있으리라.
“따라서 각 조에는 회복 역할을 맡은 퇴마사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회복 역의 인원을 지키는 쪽으로-”
정재석은 이것저것 주의 사항을 덧붙였지만, 결국 들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기에 나는 지루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마침내 그에게서 진입 명령이 떨어졌다.
정재석이 가장 먼저 마역으로 향하는 입구로 뛰어내렸고, 다른 퇴마사들 역시 차례차례 마역 안으로 향했다.
“조심하세요.”
“예. 다영 씨도 조심하시고.”
그리고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김다영의 배웅을 받으며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얼마나 깊은지 짐작도 되지 않는 어둠이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이내 모든 시야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의외로 아래로 낙하하는 부유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싹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뜨였고, 이내 땅을 밟은 나는 어느새 완연한 마역에 도착해 있었다.
“여긴…”
주변은 입구를 장식하고 있던 붉은색의 암석이 깔린 황무지였다.
거기에 바위산처럼 거친 지형은 물론 짙은 안개까지 깔려 있어 시야는 매우 줄어든 상태.
그나마 다행히 주변에 당장 눈에 보이는 레벨 표시는 없었다.
바로 적 한가운데에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
하지만.
“어?”
내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 직후였다.
레벨 표시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적뿐만이 아니라, 먼저 들어간 퇴마사조차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당황하는 일은 없이, 일단 나는 가장 먼저 스마트 폰을 꺼냈다.
“이건 안 되고.”
그건 사전에 정해놓았던 행동 지침이었다.
마역에 들어가서 고립되었을 경우, 먼저 사용 가능한 모든 통신 수단으로 연락을 시도해 볼 것.
그러나 스마트 폰은 통화권 이탈 상태였다.
그리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작전을 위해 지급 받은 통신 관련 주술과 무전기, 그리고 무전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신기까지 시도해봐도 작동하는 것은 없었다.
“의도적인 건가?”
다른 건 몰라도 주술이나 신기까지 통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이 마역의 주인인 적령이 강제로 통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는 건…어쩌면 나만 따로 떨어져 나온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즉 마역에 들어온 모든 퇴마사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 좀 위험한데.”
나는 혀를 찼다.
나보다는 다른 퇴마사들이 문제였다.
병과 관련된 악령이라고 해서 힐러까지 데려왔는데.
이래서야 그 힐러 본인은 물론, 이를 믿고 있던 퇴마사들도 위험해지는 셈이 아닌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미 마역으로 들어온 이상,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마역을 정리하는 것뿐.
그래서 나는 곧바로 퀘스트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켰다.
그러자 커다란 화살표가 두 개나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역시 붉은색 화살표와 녹색의 화살표였다.
붉은색은 분명 마역의 주인을, 그리고 녹색은…아마도 김다영을 가리키고 있겠지.
캐릭터 퀘스트이기 때문일까.
아쉽게도 다른 인원은 화살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우선은 녹색인가.”
내가 그렇게 방향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
불현듯 황무지의 땅이 진동해왔다.
그리고 동시에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무언가의 레벨 표시가 보였다.
전부 40 레벨 전후의 중간급 괴이에, 그 숫자는 총 일곱.
들어오자마자 처음 만나는 적치고는 절대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시작부터 난리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검을 꺼내 들었다.
그 직후, 땅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나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