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07
107.
벼락에 맞은 지네가 검은 연기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지네의 뒤쪽으로는,
“어…”
초췌한 얼굴의 김다영이 보였다.
운 좋게 아직 살아있던 건가.
이 던전이나 다름없는 마역에서 보낸 시간이 50시간이 넘는다.
날짜로는 3일.
그래서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았다.
다만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다영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에 있는 부상은 그렇다 쳐도, 조금 전.
김다영은 괴이가 눈앞에 있음에도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에게 있는 버서커 스킬이 발동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는 육체는 물론 정신력까지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었다.
“괜찮아요?”
그래서 나는 먼저 그렇게 물었다.
김다영의 근처에는 쓰러져 있는 또 다른 퇴마사도 보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김다영은 아예 의식을 잃고 있는 그 퇴마사를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던 모양이다.
“강진우 씨…?”
그렇게 말하는 김다영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서 있기만 한 두 다리도 흔들리고, 검을 땅으로 끌고 있는 팔은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저래서야 당장은 걷기도 힘들 텐데.
나는 지네의 사체를 넘어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예, 접니다.”
“어떻게…여기에…”
“제 능력이 영력 감지잖아요. 그러니 일단 진정하시고-”
나는 우선 검을 내려두게 할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다영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태도의 손잡이가 땅으로 추락했고.
“……”
그와 동시에 김다영의 몸이 기울었다.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지는 그녀.
나는 다가가서 쓰러지는 김다영을 받아냈다.
“다영 씨, 괜찮아요?”
나는 나에게 온전히 안긴 김다영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의식을 잃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건…너무 진정했는데.
나는 급한 대로 지네의 사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녀를 눕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으음…”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던 김다영이 겨우 눈을 떴다.
그녀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천천히 눈을 뜨다가.
이곳이 아직 마역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바로 무기를 찾으려 하는 움직임을 보였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일어나셨어요?”
“강진우 씨…?”
김다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린 건지 그녀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바로 말을 이었다.
“이, 임희수 언니는요?”
“누구요?”
“저랑 같이 있던 분이요!”
“아, 저기.”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있는 퇴마사를 가리켰다.
김다영을 옮겨둔 이후, 저 퇴마사 역시 근처로 데려온 것이었다.
김다영은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이거, 강진우 씨가 치료하신 건가요?”
“치료는 아니고. 그냥 있던 거 쓴 거죠.”
임희수라 불렸던 퇴마사는 척 보기에도 중독 상태였기에, 나는 경찰에서 보급받은 중독 치료용 주술을 사용했다.
“보급용 주술이요? 하지만…”
김다영은 임희수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렇게 상태가 좋아졌는데요?”
보급용인만큼 주술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영력을 부여하고 부적 하나를 태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다만 그 대신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응급수단에 불과한 수준.
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해독 주술은 그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 이유는 주술에 적용되는 전승 때문이었다.
아무리 간단한 주술이라도 힘을 빌려 오는 전승은 존재한다.
그리고 해독에 관한 전승은 특히 그 종류와 숫자가 많은 편인데.
내가 사용한 주술은 그중에서도 나가와 관련된 전승이 사용되었다.
나가는 뱀신인 만큼 중독에 관한 권능도 갖고 있지만, 그 반대인 해독에 대한 권능 역시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가의 모든 전승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스킬이 있었으므로.
나는 사전에 경찰에 이와 관련된 보급품을 요청했고 그걸 사용한 것이었다.
“저희 쪽 보급품이 되게 좋나 보네요.”
하지만 그걸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그러자 김다영은 잠시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이런 종류의 주술은 LB 아카데미의 특기나 다름없었으니.
“아, 그런데…제가 얼마나 자고 있었나요?”
“대충 8시간이요.”
내 대답에 김다영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야 이 마역에서 나를 보초로 세워둔 채 숙면을 취했다는 말이었으니까.
“죄, 죄송해요. 강진우 씨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텐데…”
김다영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틀렸다.
나는 잘 때는 여우를 불러놓고, 편하게 잤다.
여우의 본래 용도는 정찰용인만큼 불침번으로는 제격이었으니.
오히려 너무 편하게 자서 문제였다.
출근할 필요도 없고 폰의 알람도 꺼놨다고 할지언정, 설마 마역에서 평소보다 더 잘 줄이야.
“아닙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래서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김다영은 자신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싸울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김다영은 아직도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안 괜찮은 거 같은데요.”
“네? 아니, 이 정도는…”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가 나오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내 말에 말문이 막힌 것처럼 김다영은 입만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런 상태의 김다영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친 듯이 몇 번 전투를 치르고는 연료가 다 떨어진 자동차처럼 퍼져 버릴테니.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는 차라리 짐꾼 역할이 어울렸다.
“대신 다영 씨는 저분 좀 챙겨주시고.”
“그건 당연하죠.”
“그리고 이것도.”
나는 김다영에게 커다란 배낭을 내밀었다.
김다영이 자고있는 동안, 세 사람의 물품 중 필요한 걸 골라 하나의 가방에 몰아넣은 것이었다.
김다영은 그대로 그걸 받아 들었다.
“이제 움직이죠.”
“네!”
김다영은 가방을 뒤로 메고, 앞으로는 임희수를 안아 들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답답해 보일 정도로 무거워 보이지만, 김다영에게는 그리 부담스러운 무게는 아닐 것이다.
아까 전처럼 다 죽어갈 때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쉬게 해줬으니, 저 정도는 간단하겠지.
그리고 이어서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다음에는 저기쯤 가 있으세요.”
“저기요? 저기는 왜요?”
“뭐가 옵니다.”
적이 온다는 말에 김다영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나는 말없이 손가락만 흔들며 그녀의 걸음을 재촉했다.
* * *
임희수와 짐을 들고 뒤로 물러난 김다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강진우가 십여 마리에 달하는 괴이에 맞서, 홀로 서 있었다.
그저 검을 뽑아들고, 삐딱하게 앞을 보고 있는 그는 일견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김다영은 그 모습이 내심 불안했다.
물론 강진우의 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연수원에서는 물론 LB 아카데미와의 협력 사건에서도 활약했던 그였으니.
그러나 김다영은 그런 강진우에게 모든 걸 맡길 수가 없었다.
“……”
항상 김다영은 작전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건 단적으로 말해, 그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설령 전혀 제어되지 않는 가짜 강함이라고 해도.
그녀의 검은 베테랑 퇴마사들도 상대하기 어려워 하는 령과 괴이를 매번 베어냈으니.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후방에서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도 단순한 전투력이라면 분명 강진우보다도 자신이 더 강할 텐데.
정말 이렇게 손 놓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김다영은 임희수를 바라보았다.
중독 증세는 많이 약화되었지만,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임희수는 그저 미약하게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자면 자신이 너무 늦게 지원을 했던 탓이 아니던가.
“역시 내가…”
그래서 김다영은 임희수를 배낭에 기댄 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태도를 쥐었다.
여차하면 바로 뛰쳐나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벌어진 전투는 그런 김다영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기 충분한 것이었다.
“어…?”
그녀가 기억하는 강진우는 분명 검을 사용하는 검사였다.
하지만 지금 전장은…번개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독가루를 뿌려대는 나방을 태웠다.
강진우의 검에서 일어난 하얀 화염이 단번에 사방을 일소했고.
그는 그런 전격과 불꽃 사이에서, 산책이라도 하듯 검을 몇 번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두 자리 수에 달하던 괴이들은 전기 파리채에 닿은 벌레들처럼 나가떨어졌다.
“……”
김다영은 차마 탄성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겨우 1분 남짓한 시간.
그게 모든 괴이가 온몸에서 까만 연기를 흘리며 널브러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결말에 김다영은 오히려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어떻게…”
어느새 태도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던 손은 편안히 힘이 풀려 있었다.
LB 아카데미에서는 천재라고 불렸던 자신이건만.
지금 강진우가 보여주는 저 전력은 그런 김다영조차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 전, 전투력이라면 자신이 더 강하다고 믿었던 것이 바보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김다영은 연수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용사…라고 했던가.
그의 말을 의심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진짜로 믿었냐고 하면, 그건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 용사라는 존재를 김다영은 이 순간 체감하고 있었다.
번개와 화염을 조종하는, 마치 신과 같은 권능.
저건 정말로 용사나 가질 법한 힘이 아닌가.
“후우…”
그 압도적인 모습에 김다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인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도 자각하고 있지 못하던 부담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다 죽였으니 내려와요!”
그래서 재촉하는 듯한 강진우의 말에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다영은 내려놓았던 동료와 짐을 챙기고 그에게로 돌아갔다.
* * *
괴이들을 쓸어버린 후.
우리는 짐도 다 싼 김에 그대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방향은 당연히 마역의 주인을 향해서였다.
미리 여우를 보내서 정찰한 결과, 다행히 마역의 주인은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았다.
걸어서 5시간 정도.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먼 건가.
마역이 하도 넓다 보니, 거리 감각이 이상해진 느낌이었다.
한편 나는 이 사실을 김다영에게도 전했다.
“이제 마역의 주인에게 갈 겁니다.”
“주인이라면…적령에게 직접 가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다소 위험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이 넓은 마역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그냥 마역의 주인을 퇴마하고 마역 자체를 없애 사람들을 현실 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마역의 주인을 혼자 상대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나는 김다영이 한마디 할 줄 알았지만.
“알겠어요.”
의외로 그녀는 곧바로 내 말에 수긍했다.
너무 가벼운 그 대답에 오히려 내가 되물었다.
“어…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엄청 강하시던데요?”
내가 싸우는 걸 본 탓인지 김다영은 그렇게 말했다.
아부하는 느낌도 아니고, 그저 담담히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엄청까지는 아닌데…뭐, 어쨌든 갑시다.”
그렇게 우리는 황무지를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꽤 오래 걸어가야 하기에 나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던 중, 문득 김다영이 말을 꺼냈다.
“저, 퇴마사 그만둘까 봐요.”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닌 듯 보였다.
“왜요?”
“싸우는 게…싫어서요.”
“그럼 진작 그만두시지.”
그녀가 싸우기 싫어한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말에 김다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가 없었어요. 진우 씨가 보기에도 저, 검에 소질이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다영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였어요. 저 강하잖아요. 그래서 아카데미에서는 2학년 학생회장도 되고, 주변에서도 엄청 칭찬받았거든요.”
“그게 아까워서 못 그만뒀다는 겁니까?”
“아니요. 그런 것보다는…제가 강하면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잖아요.”
“구해요?”
“네. 제가 의사가 된 이유도 그거였어요. 사람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퇴마사를 한 다음부터, 저 때문에 목숨을 구했다는 동료도 많았어요. 그래서 보람도 엄청 느꼈는데…”
김다영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말로 제가 그만둬도 되는 걸까요?”
거기에서 나는 이게 캐릭터 퀘스트의 분기임을 직감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김다영에게 영웅의 인도자 스킬을 써라, 이 말인가.
그 스킬이라면 전투를 두려워하는 김다영의 타고난 성격조차도 바꿔줄 수 있을 테니.
게다가 김다영의 재능을 고려한다면 그런 투자는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재능이다.
그런데 거기에 스킬의 효과까지 더해진다면, 김다영은 그 이상은 없을 강력한 동료로 성장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김다영에게 가볍게 답했다.
“당연히 때려쳐야죠.”
“그런…가요?”
“보람이고 나발이고 적성에 안 맞는데 뭐하러 계속합니까.”
내 말에 김다영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는 듯.
하지만 내 판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다영 씨가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어차피 그렇게 대단한 재능은 아니니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는 말이었다.
사실 김다영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내 그녀는 한숨과 같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건…그렇네요. 진우 씨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만둘래요.”
마침내 고민을 해결한 김다영의 목소리와 함께, 퀘스트 버튼이 깜빡거렸다.
이를 확인해 보니, 캐릭터 퀘스트가 완료되어 있었다.
“……”
조금 의외였다.
나는 사실 퀘스트에 실패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김다영을 동료로 만들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검을 놓게 했으니.
하지만 지금 퀘스트는 분명 완료되었고, 같잖은 보상도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면…어떤 식으로든 캐릭터 스토리를 완료하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나에게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모니카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굳이 불편한 관계를 늘릴 필요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거 때려치우면 뭐 하실 겁니까?”
“아카데미의 연구직으로 가보려고요. 분야는…아직 못 정했지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장에서 칼 들고 설치는 것보다는 그녀에게 몇 배는 더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퇴직 후의 일을 떠들던 우리는 어느새 마역의 주인이 머무르는, 둥지 근처까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