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09
109.
그 후, 적령 토벌 작전은 그대로 끝났다.
그야 토벌 대상이었던 적령이 제거되었고, 그로 인해 마역도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마역 밖으로 나온 다른 퇴마사들은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독에 중독된 사람부터, 뼈가 부러지거나 혹은 후유증이 남을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람까지.
아무리 베테랑 퇴마사들이라고는 해도 마역에서 며칠이나 머물던 탓에 멀쩡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사망자가 없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나와 김다영은 부상자 이송을 도운 후, 각자 휴식을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날.
“그러니까…결국 너 혼자 마역의 주인을 처리했다고?”
내 보고를 들은 서인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그게 그렇게 되나.
하기야 김다영을 제외하면 마역의 주인의 얼굴도 못 봤을 테니.
“예…뭐. 어쩌다 보니.”
“……”
서인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말을 입에 담았다.
“알았어. 됐으니까, 오늘은 이만 퇴근해.”
“…퇴근이요?”
내 귀가 이상한가.
시간은 이제 막 아침 9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출근하고서 뽑은 자판기 커피도 아직 다 못 마셨는데, 퇴근이라니.
하지만 그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래. 마역에서 3일이나 있었다면서. 나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 그래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알지.”
서인나는 다 이해한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쉬어. 원래는 아예 출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보고서는 써야 하니 놔둔 거야.”
물론 나는 서인나가 말하는 것처럼 마역에서 고생한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퇴근하라면 당연히 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따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 * *
그 후로 약 3개월 후.
계절은 겨울에서 완연한 봄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동안 일은 언제나 그렇듯, 정신없이 바빴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있던 무렵.
“음…?”
아침에 출근해서 내 책상에 앉자마자, 오랜만에 퀘스트 아이콘에 스스로 불이 들어왔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보니, 내용이 추가된 것은 다름 아닌 메인 퀘스트였다.
– 다음 시나리오로 이어지는 단서를 추적하기
메인 퀘스트치고는 짧은 내용.
그리고 보니 지난번에 지하에 있던 파계승을 잡은 뒤로는, 메인 퀘스트는 계속 정체된 상태였던가.
분명 그 후 경찰에서는 정규 기관과 협조하여 사교의 뒷조사를 한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조사가 이제야 끝난 모양이었다.
“강 경감!”
그리고 역시나 서인나가 나를 호출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인나의 자리로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전에 망현인가 하는 사교 놈 잡은 거 기억하지?”
역시나, 메인 퀘스트의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서인나는 곧바로 사건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있던 놈들이 겨우 밝혀졌어. 이름은 신월. 간단히 말하자면 법당을 배반한 파계승들이 만든 사교 조직이지.”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나에게 사건 자료를 넘겼다.
평소보다 유난히 두꺼운 그 자료에는 몇 달이나 걸린 조사의 기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직 전부 다 나온 것도 아닌데 벌써 그 규모가 꽤. 거기 소속으로 밝혀진 파계승만 50이 넘고, 그중에는 까다로운 놈들도 많아.”
“그럼 이번에는 이놈들을 잡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좀 많은데요?”
놈들의 명단은 서인나의 말대로 꽤 길었다.
이걸 다 잡으러 다녔다가는 반년은 걸릴 것 같은데.
하지만 서인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대부분은 법당에서 처리할 거야. 파계승은 원래 그쪽 몫이니까. 그런데 이 중에 아직 소재도 파악되지 않는 놈들이 있거든. 그리고 그중에서도 시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놈이 하나 있어.”
서인나는 긴 명단 중 하나의 이름을 가리켰다.
“법명 ‘괴주’. 쉽게 말해 괴이의 주인이라는 뜻이지. 왜, 망현 잡을 때도 봤겠지만 그 지하에 온갖 종류의 괴이들이 모여있었잖니?”
그랬던 기억이 있긴 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곳에 있던 수많은 괴이들은 생김새는 물론 국적조차 다른 것들이었다고 한다.
자연적으로는 절대 모일 수 없는 괴물들이라고 했던가.
“그게 다 이놈이 벌인 짓이라고 보고 있어. 정확한 전승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놈은 괴이를 조종해. 법당에서는 그 능력을 이용해서 괴주가 세계 각지에서 괴이를 들여왔다고 파악하고 있어.”
이제 밀수할 게 없어서 괴이를 밀수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서 빨리 처벌해야 한다는 거네요.”
법당은 물론, 경찰에서도 위험한 일이긴 했다.
괴이는 그 자체로도 심각한 인명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니.
그런데 괴주가 하는 짓은 그걸 모아서 군대라도 만들 작정으로 보였다.
“맞아. 벌써 이놈이 뿌린 괴이 중 몇몇이 사고를 치고 있거든. 더 내버려 뒀다가는 우리도 골치 아파질 거야.”
“그럼 저는 뭐부터 하면 됩니까?”
“괴주가 만들어 둔 괴이의 은신처가 발견됐어. 법당이 이미 그쪽을 처리하기는 했는데, 탈출한 개체가 있다나 봐. 우선 그걸 먼저 처리해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나는 말을 덧붙였다.
“위치는 강원도의 태백산 근처야. 아, 그리고 법당에서도 사람이 나올 테니까, 알아두고.”
그녀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곧바로 법당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강 경감님, 오랜만입니다.”
법당에서 나온 것은 익히 아는 얼굴인 차서현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생각났다.
팔부신중도 다음 단계를 전수받아야 하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잊어버리고 있었다.
“수행은 잘하고 계십니까?”
차서현도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이에 나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에 막 끝났습니다. 안 그래도 찾아가려던 차였는데 잘 됐네요.”
“그러셨습니까? 역시 빠르시군요.”
차서현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다행히 저도 가루라의 수행을 다 끝내고, 아수라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루라까지는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있겠군요.”
차서현 역시 한 단계 더 발전한 듯 보였다.
그녀의 레벨 역시 30대에 머무르던 것이 어느새 40.
지금 44 레벨인 나와 그리 큰 차이도 나지 않았다.
“그럼 사건이 끝나고 바로 가르쳐 주시면 되겠네요.”
“그야 무사히 해결되기만 한다면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치레가 끝나고, 우리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차서현은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바뀌더니 스마트 폰을 들고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괴이들의 은신처가 있던 곳입니다. 반야 계곡이라는 곳이죠. 놈은 이 계곡을 중심으로 사방에 결계를 심고, 이곳을 은폐하고 있었습니다.”
차서현은 약 2Km 반경의 땅을 가리켰다.
아무리 산속이라지만 꽤 넓은 지형.
거기다 이 안에 괴이를 숨기고 있었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 정도 넓이를 용케도 안 들켰네요.”
“아마 결계를 특기로 하는 다른 파계승의 소행일 겁니다. 강 경감님 말대로 이렇게 넓은 지역을 철저히 숨기는 결계는 흔치 않으니까요.”
결계 전문 마인이 따로 있다는 건가.
마인끼리의 협업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망현이 지배하던 절 근처를 괴이가 지켰던 것처럼 이 괴주라는 놈도 다른 파계승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겠지.
“여기 있던 괴이는 총 스무 마리에 이릅니다. 전부 다 중형 괴이 이상으로, 대부분은 현재 퇴마된 상태입니다만…가장 큰 대형 괴이 하나가 포위망을 빠져나갔습니다.”
“어떤 놈입니까?”
“그게…아직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차서현은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포위망을 빠져나갔는데,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니.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이게 놈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입니다.”
차서현은 이어서 스마트 폰에 사진 하나를 띄웠다.
그건 산속의 숲이었는데, 지면이 뒤집어진 것처럼 파헤쳐져 있었다.
풀은 물론 성목조차 제대로 서 있는 것이 없다.
이건 아무리 봐도…지상에서 뭔가를 한 것 같지는 않다.
“놈이 땅속에 있다는 겁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직 모습조차 보지 못한 건가.
“지하에 사는 괴이라…”
나는 잠시 고민해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떤 괴이라고 특정할 수가 없었다.
마역에서 봤던 지네와 같은 벌레 계열의 놈들은 물론.
두더지나 토룡, 혹은 이무기 계열의 괴이일 수도 있었으니.
게다가 괴주는 전세계에서 괴이를 모아오는 놈이 아니던가.
그냥 추측만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면의 진동으로, 괴이가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건 파악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건 이 정도인데…강 경감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차서현이 물었다.
이에 나는 조용히 퀘스트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켰다.
지도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차서현의 말대로 동쪽은 아니고.
아무래도 반야 계곡, 즉 은신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먼저 놈이 있던 은신처를 확인해보죠.”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곧바로 우리는 그 은신처였던 곳으로 이동했다.
괴이가 머물던 지역은 계곡에서 산 쪽으로 더 들어간 작은 평지였다.
차서현의 사진처럼 푸른 풀이 아닌 검은 흙이 드러나 있는 곳.
또한, 땅은 전체적으로 내려앉아 있어서, 지하를 무언가 휘젓고 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화살표는 분명 이곳을 가리키고 있다.
그럼 나는 여기서 뭘 찾으면 되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평지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평지 한가운데, 역시나 강조 표시가 있었다.
그것은 뿌리부터 뒤집힌 채 흙에 파묻힌 사람만 한 작은 나무 한 그루.
이게 뭐가 어쨌다는 건지.
하지만 그 나무를 흙 속에서 꺼내자, 비로소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이 보였다.
“뭔가 찾으셨습니까?”
“예. 여기 이것 좀 보시죠.”
나는 그 나무를 내밀었다.
뿌리가 뽑혔음에도 아직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는 그 껍질이 부자연스럽게 깎여나가 흰색의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건…탄 겁니까?”
“아니요, 녹은 겁니다.”
강력한 산성에 녹아내린 나무껍질.
이세계에서는 자주 봤던 것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 괴이가 산성 용액을 쓴다는 말이군요. 분명 단서이긴 합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 차서현이 말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나에게는 충분한 단서였다.
산성 용액이라면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을 테고, 나는 이를 추적할 수단이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곧바로 여우를 불렀다.
그러자 새하얀 두 개의 꼬리를 가진 작은 여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켕!”
“이건…?”
“제 식신입니다.”
차서현은 여우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무척 귀여운 여우군요. 만져봐도 됩니까?”
“그러시죠.”
차서현은 여우를 쓰다듬었고 여우는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차서현이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뭡니까?”
“어…딱히 없는데요?”
“없다니요? 아무리 식신이라도 이름은 붙여줘야 합니다. 이렇게 귀여운데.”
차서현은 무척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름이 뭐가 필요한가 싶긴 하지만.
그 옆에서 여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은근히 이름도 없던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지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름이요?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차서현의 재촉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름이라.
다행히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냄새 추적기?”
“그게 뭡니까?”
“이름이요.”
“……”
차서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역시 이상한가.
하긴…생각해보니 요즘 트랜드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 이름이었다.
개들 이름만 봐도 영어가 얼마나 많은데.
“아, 그럼 스멜 트레이서?”
“됐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군요. 차라리 제가 대신 지어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평소와는 달리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차서현은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했다.
“뭐…그러시죠.”
그리고는 얼마나 대단한 이름을 지으려는지, 여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우가 몇 번, 켕켕하고 울었고.
그 직후 차서현의 입이 열렸다.
“켕켕이는 어떻습니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켕켕 운다고 켕켕이라니.
“그건 그냥 울음소리잖아요.”
“그래도 귀엽지 않습니까?”
“차라리 냄추가 더 좋은 거 같은데.”
“굳이 두 글자로 줄일 필요는…그리고 줄이고 나니 더 이상합니다.”
“그럼 스트?”
“…켕켕이로 하시죠.”
그렇게 가벼운 실랑이 끝에 결국 여우의 이름은 켕켕이가 되었다.
사실 그냥 냄추로 하려고 했는데, 여우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서 하는 수 없이 바꿨다.
근데…역시 냄추가 더 낫지 않나?
“그런데 켕켕이는 왜 부르신 겁니까?”
이름이 정해지고 난 후, 켕켕이를 쓰다듬던 차서현이 물었다.
그리고 보니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니었지.
나는 켕켕이 앞에 녹은 나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묻은 산성 용액의 냄새를 기억시켰다.
“어때, 쫓을 수 있겠어?”
“켕!”
그러자 곧바로 켕켕이는 내 스마트 폰을 향해 주술을 걸었다.
그러자 스마트 폰에 띄워진 지도 위로.
여우 발자국 모양의 아이콘이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괴이의 위치를 선명히 표시했다.
위치는 역시 동쪽.
하지만 벌써 꽤 멀리 이동해서, 곧 산지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차서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대단하군요. 이 정도로 정확한 추적 주술은 추적 전문 퇴마사들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요?”
“켕켕이는 예상보다도 더 재주가 많은 아이네요.”
차서현의 칭찬에 켕켕이는 몇 번 더 켕켕거리며 답했다.
“하지만 서둘러야겠습니다.”
차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괴이가 돌아다니는 곳 바로 옆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저 지하로 지나가는 것만으로 건물 정도는 우습게 무너질 테니.
잘못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산길을 지나 괴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