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0
110.
“이 근방입니다.”
차서현이 말했다.
괴이가 있다고 표시된 곳은 완만한 산자락이었다.
작은 산을 두 개만 더 넘어가면 바로 마을로 이어지는 지역.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놈이 지하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지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봄이 되어 잡초가 무성해진 땅은 부자연스럽게 굴곡이 져 있다.
지하에 있는 놈이 움직이며, 지면이 내려앉은 자국이 남은 것이었다.
아직도 괴이는 땅속에 있다는 말인데.
이놈을 어떻게 밖으로 유인해야 할까.
“……”
그런 고민을 하는데, 점점 땅이 흔들렸다.
지하의 괴이가 어느새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땅속에 있던 놈의 레벨 표시가 겨우 보였다.
레벨은 53.
그렇게 높은 레벨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음?”
갑자기 괴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마치 내 시선을 눈치챈 것처럼.
하지만 내가 괴이의 레벨 표시를 확인한 것만으로, 괴이가 이쪽을 인식할 리는 없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로그 창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내 시야에 들어온 괴이에게 청룡의 고유 스킬 중 하나가 발동하고 있었다.
즉 괴이는 내 시야에 들어온 순간 그 스킬의 영향을 받았고, 이를 인식한 것이었다.
한편 배로 기는 것들의 왕은 뱀이나 이무기 등, 용과 관련된 것들에게 효과가 있는 스킬이다.
그런데 그 효과를 전부 받는 것도 아니고, 반쯤 받는다니.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일단…”
나는 인검을 꺼내 들었다.
놈의 정체가 뭐든, 땅속에 있어서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놈을 밖으로 끌어내기로 했다.
파직!
인검에 선명한 스파크가 맺혔다.
“저놈을 유인해 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차서현에게 경고를 한 후, 전기를 두른 검을 땅에 꽂았다.
그러자 검에 서려 있던 전격은 땅을 타고 흘러 괴이를 타격했다.
벼락도 아니고, 그저 영력으로 만든 전격인데다 그조차 지면을 통과하며 손실이 생겼다.
그래서 전격 자체의 공격력은 보잘것없었지만.
쿠구구구-
성질을 긁는 데는 성공한 건지, 곧바로 둔중한 소음과 함께 땅이 격렬히 흔들렸다.
나는 검을 고쳐 잡고 지면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차서현 역시 자신의 무기인 철퇴를 꺼내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아래! 옵니다!”
놈은 과감하게도 나와 차서현이 있는 곳을 일직선으로 노렸다.
하지만 지면 밑에서 올라오는 공격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해 봤다.
게다가 레벨 표시까지 보이고 있었으니, 괴이의 초격을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차서현이 각각 반대편으로 크게 뛰었다.
그 직후, 땅에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콰과과과!
막대한 양의 토사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그 지극히 익숙한 모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이세계에서 봤던 샌드웜이라는 몬스터가 뇌리를 스친다.
사막의 지하에서 살던, 모래색의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던 벌레 형태의 몬스터.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괴이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었다.
“……”
괴이를 바라본 차서현의 시선에 미약한 혐오감이 깃들었다.
그것은 거대한 핏빛의 내장처럼 생긴 초거대 지렁이였다.
긴 뱀과 같은 형태의 몸이지만, 그 두께는 3미터에 이르렀다.
또한 그대로 지상으로 전신을 드러낸 놈의 전체 길이는 수십 미터.
거기에 입 부분에는 수많은 이빨이 박혀 있는 것이, 말 그대로 엄청나게 큰 지렁이 괴물이었다.
“지렁이라…”
그 모습에 나는 왜 스킬이 반만 적용된 건지 이해했다.
지렁이는 엄밀히 말해 뱀부터 시작해 이무기를 거쳐 용으로 이어지는 계보와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토룡이나 지룡이라 불리며 그와 관련된 설화를 갖고 있었기에, 스킬 범위에 반만 걸쳐 있던 것.
“꾸어어어어!”
그렇게 지상으로 나온 놈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땅을 기었다.
지렁이라 그런가.
눈도 코도 없는 놈이 용케도 내가 있는 곳을 알아채고는, 놀랍게도 그 몸에서 전격을 날렸다.
“전기?”
물론 그 전격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전기를 쓰는 거대 지렁이라니.
그런 괴이가 있던가?
“저건…올고이 호르호이로 보입니다.”
내 의문이 표정에 드러났던 건지,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차서현이 말했다.
“올…뭐요?”
“올고이 호르호이. 몽골리안 데스 웜이라고도 불립니다. 몽골의 고비 사막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괴이입니다.”
몽골리안 데스웜이라.
비록 그 피주머니 같은 생김새는 훨씬 더 징그럽지만, 아마도 샌드웜의 시초 같은 놈으로 보였다.
“조심할 것은 전기와 놈의 체액입니다. 체액은 강한 산성을 띄고 있어서-”
차서현이 그런 말을 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놈이 누런 산성 용액을 이쪽으로 흩뿌렸다.
이에 나는 검에서 불을 일으켜, 그것을 공중에서 태워버렸다.
하지만 미처 태우지 못한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내 치이익-하는 소리를 내며 고약한 냄새와 함께 지면을 녹였다.
흙은 물론 돌덩이조차 흔적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리는 것이, 과연 위협적이기는 했다.
“쿠어어-”
전격도 산도 통하지 않자, 마침내 놈은 그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원형으로 난 수백 개의 이빨이 나를 덮쳐온다.
그 지극히 익숙한 광경에 나는 검에 성화를 휘감았다.
직접 베는 것은 위험했다.
저 물컹한 살덩이를 찌르는 순간, 산성 체액이 뿜어져 나올 테니.
그래서 나는 성화를 응축시켜 놈의 입을 향해 사출했다.
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불덩이를 삼켰고, 그 순간.
콰직!
어느새 지렁이의 턱밑까지 접근한 차서현이 그 턱을 철퇴로 후려쳤다.
거기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한 건지, 그 커다란 놈이 단번에 휘청거렸고.
그때 때마침 성화가 폭발했다.
“끼에에에에!”
안에서부터 태워진 고통에 몽골리안 데스웜이 갈라진 비명을 질렀다.
꽤 많은 영력을 소모한 화염이었는데, 역시 저 거체를 한 번에 쓰러뜨리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데.
쿠구구구구-
바닥에 쓰러지나 싶던 놈은 그대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설마 도망가려는 건가?
“어딜!”
놈의 의도를 알아챈 차서현이 곧바로 움직였다.
지면 아래로 빠르게 사라지는 지렁이의 몸을 철퇴로 후려친다.
여전히 강한 힘이 담긴 일격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놈을 땅에서 뽑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그 속도를 늦출 뿐.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바라지도 않던 도움이었다.
“그럼…!”
나는 비구름을 불렀다.
그러자 하늘 위로 천천히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고, 우르릉-하는 위협적인 천둥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번에도 벼락을 떨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저 지렁이를 태우는 것이 아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몽골리안 데스 웜이라면, 분명 전기 내성을 보유하고 있을 테니.
그렇게 준비는 끝났고, 차서현의 방해를 받던 지렁이는 이제 겨우 그 꼬리가 막 구멍 속으로 사라지던 참이었다.
“강 경감님! 데스웜이…!”
차서현의 목소리가 벼락의 폭음에 묻혔다.
그저 지면을 강타한 벼락은 그 전격을 지면 전체로 퍼뜨렸다.
그리고 그렇게 전격이 지나간 땅의 흙은 서서히 짙은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이리저리 뒤집어져 있던 초목들이 순식간에 시들고, 말라붙는다.
벼락이 지나간 지면 전체가 독성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거기 있으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래서 나는 차서현을 불렀다. 그녀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곧장 내 말에 따랐다.
“뭘 하신 겁니까?”
“땅에 독을 뿌린 거죠. 이러면 나오지 않을까 해서.”
내가 사용한 것은 뱀신의 어금니 스킬이었다.
모든 공격에 강한 독성을 부여하는 스킬로, 나는 이를 이용해 벼락에 독을 실어 지면을 오염시킨 것.
그러니 흙을 먹고 산다는 지렁이라면 이 오염된 땅에서 결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끼이이이-”
온몸에 검은색의 반점이 생긴 몽골리안 데스웜이 지상에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이후 도망치듯 지상으로 올라온 놈은 맹독에 괴로워하며 그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렇게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도 잠시.
“키에에…”
점점 움직임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놈은 이내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몸속부터 크게 불탄 데다 맹독까지 흡수한 탓에 오래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놈이 죽기 직전.
나는 그 옆으로 다가가 그 머리를 조심스럽게 칼로 찔렀다.
혹시나 인검에 새겨지지 않을까 싶어 해 본 일이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라이칸스로프나 나가에 비해 너무 격이 떨어지는 괴이였으니.
하지만 뜻밖에도 인검은 이에 반응했다.
* 현재 새겨진 괴물 – 라이칸스로프, 나가, 올고이 호르호이
– 소화액 : 영력을 소모해 강한 산성 용액을 분출.
– 모든 능력치 +23
“…별건 없네.”
바뀐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새로운 스킬은 달랑 하나에, 능력치는 원래 20이었기에 3 밖에 추가된 게 없는 셈이었다.
거기다 추가된 스킬의 성능 역시 미묘하다.
하지만…불만을 말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딱 이 정도의 괴이였으니.
오히려 진짜 보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반복 퀘스트의 보상으로 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이로 인해 내 레벨은 이제 45.
15 레벨부터 10 레벨마다 있는 레벨 달성 퀘스트로 용사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레벨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 퀘스트를 완료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괴이는 바로 조사해 보시겠습니까?”
괴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 차서현이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괴이는 괴이 농장을 만든 장본인, 괴주를 찾을 수 있는 단서였다.
“그래야죠. 그런데 다른 괴이들에게서 나온 건 없었습니까?”
“예. 딱히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거칠게 제압하다 보니…남은 게 별로 없더군요.”
차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법당은 주술보다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련이라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보니 생겨난 자연스러운 흐름이긴 하지만.
그 탓에 괴이의 사체를 온전히 남기기는 어려웠겠지.
그에 비해 나는 의도한 건 아니었어도, 독을 사용한 덕분에 지렁이의 사체가 상당히 멀쩡했다.
“그럼 한 번 살펴봅시다.”
차서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영력을 감지하려는 듯, 징그러운 몸에 직접 손을 대기까지 하며 세심하게 조사했지만.
나는 그저 산책이라도 하듯 올고이 호르호이의 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차피 뭐가 있다면 알아서 강조 표시가 보일 테니.
“……”
그리고 잠시 후, 예상대로 내 눈에 강조 표시가 눈에 띄었다.
긴 몸의 가장 끝부분.
피처럼 붉은 지렁이의 표피 안쪽에 무언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검은 반점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금속 조각 같은 것이었다.
“쯧…”
내키지는 않지만, 지렁이의 피부를 칼로 찢어 그것을 꺼냈다.
산성을 띄는 체액 속에서도 전혀 녹지 않고 있던 것은 금속 인장.
그리고 그 인장 위에 새겨진 것은 어떤 숫자였다.
그건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숫자였기에 그 의미는 금방 이해가 갔지만.
그걸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666?”
기독교에서는 악마의 숫자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괴주라는 놈은 파계승일 텐데.
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건가.
그래서 나는 바로 차서현을 불렀다.
“666이라고요?”
하지만 차서현 역시 그 숫자에는 의문을 표했다.
“그건 교회에서 짐승의 인이라고 불리는 숫자긴 합니다만…법당에서는 아닙니다. 이게 의미가 있는 단서는 맞습니까?”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차서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올고이 호르호이의 사체에서 강조 표시가 되어 있던 것은 이게 전부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인장은 굳이 지렁이의 꼬리 쪽에 얕게 박혀 있었다.
조금이라도 거친 싸움이 벌어진다면, 일부러 떨어지라고 하는 것처럼.
즉 이 인장을 박아넣은 놈이 의도적으로 이를 숨기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그건…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희가 발견하지 못한 것도 설명됩니다. 아니, 어쩌면 법당의 퇴마 방식을 알고 있기에 그런 잔꾀를 부린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차서현은 그렇게 수긍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차서현은 인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괴주가 기독교 쪽의 전승을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보통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마인들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네요.”
“다르다니요?”
“퇴마사들이 사용하는 전승의 뿌리는 각 종교의 신입니다. 하지만 마인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악귀나 귀신의 전승을 따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악귀의 전승을 차용한다면…상대의 종교를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귀는 어디에서나 악귀니까요.”
차서현의 말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의 절대 신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또 다른 절대 신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각 종교의 전승이 서로를 부정하는 이유지만.
전승 속에서 악귀로 규정되는 놈들은 그게 아니다.
그것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아무리 다른 종교의 세계관에 갖다 놔도 그대로 악마나 귀신으로 존재할 뿐.
그 존재 자체가 모순되지는 않는 것이다.
“666이라는 숫자가 그 힌트입니다. 이건 묵시록에서 짐승과 악마를 뜻하는 숫자. 그리고 불교에서도 악마나 짐승에 대응되는 존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 이걸 이용해서 괴이를 조종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건…”
차서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기독교의 666 낙인으로 괴이의 위치를 일반적인 짐승, 즉 축생으로 격하시키는 게 가능하다면…그런 축생을 조종하는 전승은 불교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두 전승을 엮을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힘들지만 할 수는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아마도 그 추측은 진실일 것이다.
전에 만났던 망현 역시, 힌두교와 불교의 아수라 전승을 교묘히 섞어 운용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두 개 이상의 종교 전승을 서로 엮는 것이, 이 사교 집단의 특기인 듯 보였다.
“그럼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차서현이 물었다.
그녀의 의문대로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666이라 새겨진 인장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돌아가서 교회 쪽에 물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