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114
114.
훙!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붉은 갑옷의 도끼가 번뜩였다.
긴 자루 끝에 달린 화려한 문양의 도끼.
그 생김새는 이세계에서 보았던 할버드나 폴암과 비슷하다.
동양적인 갑옷을 고려한다면 방천화극이나 대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익숙한 무장이었다.
챙!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내 검이 아래로 추락하는 도끼날을 옆으로 흘렸다.
나는 그대로 붉은 갑옷에게 파고들 생각이었지만.
“음?”
그 직후 놈의 도끼가 옆으로 꺾였다.
내가 접근해오리라는 걸 예측이라도 했던 것처럼 도끼의 궤도가 공중에서 꺾인 것이었다.
그 관성을 무시한 듯한 움직임에 나는 급하게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람 소리조차 없이, 놈의 도끼가 내가 있던 공간을 베고 지나갔다.
“…저걸 단검처럼 쓰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서양의 할버드든 동양의 대부든, 저런 형태를 가진 무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정거리다.
그 대신 무게가 무겁고 다루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었는데, 저 괴이에게 그런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크오오오오!”
붉은 갑옷이 거칠게 울었다.
그리고 놈은 그대로 그 도끼를 휘두르며 나에게 돌진했고, 나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사나운 금속음이 귓가를 메운다.
쏟아지는 맹공 속.
붉은 갑옷과 치열하게 공세를 주고받던 나는 뜻밖의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제법인데?”
붉은 갑옷의 일격은 레벨에 걸맞게 대단했다.
그 속에 담긴 완력은 거짓이 아니었고, 반응속도는 초월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놈의 무도였다.
할버드는 냉정히 말해 무술을 갈고닦음에 있어서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무기다.
그래서 이세계라면 모를까.
현대에서는 검술이나 창술에 비하면, 거의 연구된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붉은 갑옷의 도끼는 달랐다.
놈의 도끼가 만들어내는 공격은 마치 이세계의 기사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그 무술의 토대는 할버드의 정석적인 움직임이지만.
정석대로인가 싶다가도 기회만 생기면 기발한 궤도로 참격이 날아 들어왔다.
거기에 무기의 중간을 잡고 반대편 손잡이로 내 검격을 받아낼 정도로 놈의 움직임은 자유로웠다.
분명 창술은 물론,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뜻.
현실에서 여기까지 도달한 무술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하필 괴이라니.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나는 놈에게서 잠시 물러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을 뺏는 건 물론이고 상대의 스킬 목록을 확인할 수 있기에, 적의 정체를 추측하는 데는 제격인 수였다.
그런데.
“이게 다 몇 개야…?”
놈의 기술 목록이 심상치 않았다.
대충 봐도 그 숫자는 수십 개에 달했다.
그것도 스킬들은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았다.
역시나 온갖 무술에 관한 스킬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 괴이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스킬까지 보였다.
이란다.
괴이가 신성을 보유하고 있다니.
게다가 그 밑에는 재앙신이라는 스킬까지 있었다.
이 붉은 갑옷은 중구난방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킬들을 뭉텅이로 갖고 있는 셈.
“……”
그 특징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일까.
놈의 기술 목록을 살펴본 나는 이내 어렵지 않게 놈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괴이이면서도 군신.
거기에 저 붉은 갑옷과 머리에 난 뿔까지.
그 정도 힌트라면 이에 어울리는 괴이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치우인가?”
치우는 고대 중국에서 전승된 괴이이자 신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소의 머리를 갖고, 붉은 갑옷을 입은 괴물.
또한 그 전승의 역사는 꽤 긴 편으로.
치우 신앙이 존재할 정도로 군신이자 국가의 신으로 숭상받았던 때도 있었으나.
반대로 세월이 지나 영락하여 단순히 영웅에게 퇴치당하는 악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괴이였다.
그렇기에 치우는 괴이이면서도 신의 면모를 갖고 있는 존재.
비록 지금은 괴주에게 짐승의 인을 받고 종속된 탓에 갖고 있던 신격이 크게 상실된 것으로 보였으나.
그렇다 해도 놈의 무위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크우우!”
그런 치우가 다시 한 번 공격해왔다.
여전히 위협적인 참격들이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다.
전쟁의 신이 만들어내는 신묘한 연격들이 내 눈을 즐겁게 했다.
그걸 쳐내고 흘리다 보니, 옛날 생각이 날 정도로.
“전쟁의 신이라…”
사실 치우가 상대라면 이에 유용한 스킬은 얼마든지 있다.
재앙신이라는 점을 파고드는 가루라의 전승부터.
소와 관련된 부분을 공략할 수 있는 괴수 사냥꾼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녀석은 왜인지, 그냥 검으로 꺾고 싶었으니까.
챙!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단순히 방어에만 전념하던 내 검이 방향을 바꿨다.
치우가 펼치는 연격 사이에 보이는 찰나의 틈.
그것을 노리고 칼날은 놈의 손목을 향해 뱀처럼 쏘아졌다.
“크오!?”
까득-하는, 붉은 갑옷이 갈려나가는 소음에 치우가 당황했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채채챙!
검과 도끼가 쉴새 없이 부딪혔다.
그 사이에서 공세를 퍼붓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쪽이었다.
내 접근을 막아서려는 놈의 도끼날을 유려하게 흘려내며, 나는 그대로 놈의 팔꿈치를 베어냈다.
“크으…!”
방어에 급급한 치우가 초조한 울음소리를 냈다.
놈에게 있어서도 이해가 되는 일은 아니리라.
나는 아직 놈의 안쪽으로 완전히 파고들지도 않았건만.
치우는 끝없이 뒤로 물러서면서 나를 쫓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분명 자신의 무기가 유리한 영역 안임에도 오히려 방어에만 급급하다니.
“크오오오!”
자신의 불리함을 직감한 걸까.
내가 집요하게 노린 오른팔의 갑옷이 깨져나가자 마침내 놈이 승부수를 던졌다.
한 손으로 대부의 손잡이를 짧게 잡고, 오히려 치우가 스스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갑옷이 남아있는 다른 한 손에는 어느새 또 다른 검이 들렸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치우는 원래 4개의 손을 가졌다는 전승도 있고, 그 4개의 손과 2개의 발까지 6개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고도 했으니.
순식간에 근접전으로 전환한 치우의 두 참격이 나를 향했다.
양손을 모두 쓰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어설픈 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오러만 있었어도 이세계에서 소드 마스터 소리는 들었겠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을 흩뿌렸다.
찰나의 섬광과 함께 빛나는 일섬이, 놈의 두 무기를 단숨에 베었다.
“크-?”
투구 속에 있는 치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야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저 멋들어진 검술처럼 보이겠지만.
군신의 격을 가진 치우라면 이 일섬의 진가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
훅!
궤도가 완전히 틀어진 두 무기가 허공을 가른다.
말할 필요도 없는 치명적인 빈틈.
그 텅 빈 치우의 목을 향해, 내 검이 쇄도했다.
그리고.
촤악!
무언가의 목이 잘려나가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붉은 갑옷을 입은 거구는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흠…”
아직 내 실력이 죽지는 않았구만.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검을 한 번 털고, 다시 검집에 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레벨 업이라.
아마도 반복 퀘스트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하긴, 치우 정도의 괴이라면 인검에 새겨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좋은 건 안 줄 거 같은데.”
나는 인검의 설명 창을 열기도 전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치우의 격 자체는 결코 나가나 라이칸스로프에게 밀리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치우가 보유한 특징들이 나와 상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로그 창에 불길한 메세지가 우르르 올라왔다.
근접전과 무술에 도움을 주는 스킬이 무려 셋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 셋 전부가 무효화되어 사라졌고.
그 결과, 인검에 추가된 스킬은 이번에도 겨우 하나뿐이었다.
– 안개가 드리운 전장 : 영력을 소모해 주변 지대에 안개를 생성.
– 모든 능력치 +33
“…안개?”
그리고 보니 치우에게는 안개를 조종한다는 전승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보기에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스킬이지만.
내가 보유한 다른 스킬과의 연계를 생각해보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저 안개에 독성을 부여하는 뱀신의 어금니를 사용한다면, 광역으로 독무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흠…”
아쉽지만 광역기 하나라도 정도라도 건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나는 그렇게 아이템 창을 치우고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치우를 육지에 남겨두고, 바다로 도망간 괴주와 이를 쫓은 미카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그 둘은 꽤 먼 바다까지 나가 있었다.
역시 90 레벨에 가까운 두 존재의 전투이기 때문일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과연 그 스케일이 달랐다.
“…또 옛날 생각나네.”
바다 위는 온통 화염으로 가득했다.
모두 레비아탄과 미카엘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먼저 상체를 드러낸 레비아탄은 여기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그 전체 크기는 대충 봐도 킬로미터 단위에 육박할 정도.
또한 악어처럼 생긴 입에 물 위로 솟아오른 몸체는 용과 고래를 합쳐 놓은 것만 같았고.
그 중간에 붙은 지느러미는 낫처럼 꺾인 데다 번뜩이는 날이 달려 마치 사마귀 같았다.
그리고 놈은 그 큰 입을 벌려 사방으로 불을 내뿜고 있었다.
저게 레비아탄인가.
나는 놈의 모습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레비아탄의 정보를 찾아보았다.
“……”
레비아탄은 신격을 보유하지는 않았지만, 신조차 두렵게 한다는 괴이이자 바다의 지배자로 그 격이 결코 낮지 않았다.
거기에 대천사와 격전을 치렀다는 전승도 존재하는 등, 거의 악신에 가까운 괴이였다.
또한 그 기원은 악어, 혹은 고래로 성경에서는 악마와 사탄을 상징하는 용과 동일하게 여겨지기도 한다는 괴물.
“…애매한데.”
나는 레비아탄의 정보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쉽게도 딱히 내가 치고 들어갈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화염을 사용하는 놈이라는 걸 제외하면 약점이 될 만한 전승이 없었다.
정면 공격밖에는 답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된다면 너무 변수가 많았다.
그럼 우선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에 나는 이에 맞서는 미카엘을 확인했다.
그는 엘리야의 제단석으로 하늘 위에서 불비를 내리게 하면서도, 자신은 불타는 병거를 타며 레비아탄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가 조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소용돌이 셋이 화염을 받아들여 불타올랐고.
그것은 레비아탄의 사방에서 몰아쳐 그 거체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놀랍게도 미카엘은 저 괴물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일단은…”
그 모습에 나는 바다를 향했다.
사실 그냥 놔둬도 되긴 했다.
어차피 레비아탄이나 괴주나 모두 미카엘의 몫이었으니.
하지만 나에게 저 레비아탄은 귀중한 재료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막타라도 칠 수 있다면…내 검이 그 능력을 흡수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천천히 수면을 걸어 그들이 싸우는 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하, 저거 봐라?”
사방으로 불을 내뿜는 레비아탄의 머리 위.
그 위에 탄 괴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날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불병거가 비췄다.
괴주도 그 정체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저 불병거의 정체는 엘리야가 승천했을 당시 나타났다는 신의 전차다.
승천을 앞둔 엘리야와 그의 제자인 엘리사를 갈라놓았다는 그 불병거는 신의 힘과 뜻을 상징하는데.
이는 괴주의 예상 이상으로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쇄애애액!
레비아탄이 쏘아낸 화염 사이로 거대한 낫과 같은 지느러미가 허공을 갈랐다.
미카엘이 탄 불병거를 노린 것이었지만, 그 화염을 두른 전차는 레비아탄의 움직임을 비웃는 듯 여유롭게 그 궤도를 벗어났다.
“파리 같은 게…!”
이에 괴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2KM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 그리고 그 몸집에 걸맞는 막대한 공격력, 거기에 괴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격까지.
분명 레비아탄은 무적의 괴이였다.
하지만 그의 레비아탄은 미카엘을 상대로 지루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미카엘의 불병거는 레비아탄의 화염에 견디는 것도 모자라, 하늘을 날며 불비를 내리게 해 천천히 레비아탄의 체력만 깎아 먹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일으킨 소용돌이는 덤이었다.
화염을 머금고 레비아탄을 압박하려 드는 그 회오리는 위협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착실하게 신경에 거슬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패배하지는 않을지언정, 이길 수는 없는 상태.
“……”
하지만 이를 직감하고도 괴주는 짜증을 낼 뿐, 초조함은 내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방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레비아탄은 강대한 괴이다.
성경으로 치면 구약에 한 장을 통째로 차지하며 그려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괴주가 자신을 지켜줄 마지막 괴이로 레비아탄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레비아탄이 바로 묵시록에 기록된 멸망의 짐승, 일곱 개의 머리를 한 용의 원전이기 때문이었다.
괴주는 레비아탄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전승 속에 묻힌 그 멸망의 짐승이 가진 일면을 깨울 수 있다.
비록 그 방법을 알려준 교회의 이단, 이사카르 지파조차 전승을 완성시키지 못해 완전한 재현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세를 불러온다는 그 짐승의 권능은 극히 일부만 사용해도 실로 파격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괴주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레비아탄에게 손을 댔다.
더 이상 시간 끌 것 없이 곧바로 이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놈…?”
괴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비췄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화염을 두른 바다 위.
거기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